#188화
“절대 가만두지 마!”
도화지의 뾰족한 목소리가 울려 퍼질 때 화살이 근처 뱀파이어의 가슴을 뚫었다.
-꺄아아아아아아!
여자 뱀파이어는 비명을 질렀는데 심장을 정확하게 뚫은 화살에 치명상을 입었고 도화지가 망치를 들고 그쪽으로 뛰어가서 소리쳤다.
“죽어!”
현대사회에서 정의롭다는 뜻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도화지는 무척 화가 나 있었고 뱀파이어에 대한 분노는 그녀의 망치를 더욱 힘차게 했다.
퍼억-!
머리에 망치를 맞은 뱀파이어가 저쪽으로 쭈욱 날아가 처박혔는데 도화지는 그래도 분히 풀리지 않았는지 씩씩거렸다.
“한 놈도 살려둬선 안 돼!”
유명한 아이돌이 많이 참여한 콘서트였다. 당연히 어린 학생들이 많았고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이 수만 명이나 있는 곳에 괴물이 설친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인 일이었다.
게다가 또 한 사람,
“이 망할 것들!”
김우태도 어마어마하게 성나 있었다.
“감히 채린이 있는 곳에서!”
인형을 들고 사방에 휘두르는 김우태는 저주를 풀풀 날리고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그의 인형은 빠른 뱀파이어를 맞출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도와야 했다.
‘다 보여.’
놈들의 붉은 안개를 내 드링크가 덮어버렸는지 아니면 특수한 효과가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형체가 뚜렷하게 보이는 이상 내가 화살을 맞추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픽, 픽픽픽픽!
화살이 연사로 빠르게 날아갔다.
【명중률이 상승했습니다.】
【바람을 무시합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일단 내 화살에 맞으면 뱀파이어의 속도가 느려졌고 그러면 도화지와 김우태가 달려들어 사정없이 마무리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콘서트장에서 느닷없이 이런 싸움판이 벌어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우린 침착하게 대응했고 하나씩 뱀파이어의 숫자를 줄여갔다.
그렇게 셋이 죽었을 때 붉은 안개에 숨을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뱀파이어들이 쭉 뒤로 물러났다.
“….”
“….”
수는 일곱이었다.
김우태와 도화지가 내 옆으로 빠르게 섰다.
“다들 괜찮지?”
김우태의 말에 우린 고갤 끄덕이면서 저쪽을 바라보았다. 뱀파이어들도 정비가 필요했는지 우리를 노려보면서 대치했는데 하층에서 만났던 ‘백작’급이 있었다면 싸움의 양상이 달라졌겠지만, 저들은 그 정돈 아니었다. 하지만 방심할 순 없었다. 놈들에겐 날카로운 손톱과 빠른 순발력이 있었고 자칫 공격을 허용하면 치명적인 부상을 당할 수 있었다.
“피가….”
“부족해….”
“피가….”
뱀파이어들이 중얼거렸다. 마치 한 몸인 듯 동시에 입을 열었다가 결심한 듯 뛰어올랐다.
화악-!
“도망친다!”
“잡아!”
피이잉-!
화살이 가장 중앙의 뱀파이어에게 날아갔다.
-꺄아아아아아!
아까처럼 안갯속으로 숨으려다가 가슴에 화살을 맞고 떨어진 뱀파이어에게 도화지가 뛰어가서 망치를 휘갈겼다.
퍼억!
하지만 이 사이 나머지 뱀파이어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는데 우린 이마를 와락 구기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쩌지?”
김우태가 난감한 듯 말했다. 안개 덕분에 놈들을 파악할 수 있었는데 이 구역에서 벗어나면 아까처럼 궁지에 몰릴 수도 있었다.
“찾아야 해요!”
하지만 방도가 없다. 사람들이 위험했다.
“흩어지죠!”
놈들의 전투력은 대강 파악했으니 지금은 최대한 빠른 속도로 놈들을 찾아내야 했다.
“오케이!”
“모두 조심해!”
혹시 몰라서 가이와 아리, 범이를 한 마리씩 나누고 각자 다른 방향으로 뛰었는데 나는 범이와 함께했다.
‘피가 필요하다고 했어.’
놈들이 중얼거린 그 말의 뜻이 무얼 의미하는지 대충 알 것 같았기에 입이 바짝 말랐다.
‘미친것들!’
태창 바이오에서 피의 군주를 봤다. 이미 그놈이 자신의 세력을 구축했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 그 세력이란 거, 이놈들에겐 매우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행위가 있을 것이다.
‘대놓고 막 물진 않을 거야.’
자칫 연쇄살인범이라고 뉴스에라도 나면 놈들도 행동반경이 위축될 것이 분명했다. 사회에 녹아들어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고 살아가는 이상 선을 넘진 않을 것이다.
‘미치겠네. 어디로 간 거지?’
한참을 뛰다 보니 내가 쓴 드링크 효과 지역에서 나왔다. 선명해진 시야와 화장실이 보였다.
나는 잠시 화장실 앞에서 기다렸다. 콘서트 도중이었지만 워낙 많은 수의 관객이 모였기에 지금도 화장실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들을 살폈다.
‘도주한 건 여섯. 우리가 모르는 놈들이 더 있다면 모르겠지만 우선은 그 여섯부터 찾아야 해.’
청각을 최대한 열어두고 나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없네.’
양변기가 있는 네 개의 문이 모두 활짝 열려있었다.
“….”
천장 환풍구도 바라봤지만 특별한 기척은 없었다.
‘어디냐.’
화장실에서 나가며 복도를 쭉 봤다. 객석으로 가진 않았을 것 같다. 아무리 사람이 미어터지게 많아도 바로 앞이나 옆에서 누가 사람을 물면 금세 난리가 날 거다.
‘놈들이 노리는 건 우리야. 사람들이 아니라.’
막상 붙어보니 우리가 생각보다 강해서 피를 마시러 후퇴한 것 같지만 충분히 섭취하면 다시 올 게 분명했다.
나는 계속 뛰었다.
.
.
.
급히 선 차에서 윤일권이 내렸다.
“어디라고?”
“동문 주차장이랍니다!”
“미친!”
승합차에서 내린 광수대원들이 뛰기 시작했다. 20분을 전력 질주해서 도착한 주차장엔 이미 먼저 온 광수대원들이 증거를 수집하고 있었는데 윤일권이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앞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였다.
“이거, 뭐야?”
“안개입니다!”
“무슨 안개가 이래?”
“…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건 서울에서 처음 봅니다.”
지방 강변에서 가끔 지독한 안개를 본 적은 있었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안개는 매우 희귀한 것이었다. 게다가 안개가 이렇게 특정 구역에만 머물 수 있는 건가?
“대장님! 여기입니다!”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간 윤일권은 움찔했다.
“…죽었어?”
“네. 현재까지 셋입니다.”
“신원은?”
“아직 밝혀지진 않았지만 모두 젊은 여성입니다.”
“사망 추정 시각은?”
“그게 좀 이상합니다. 발자국이나 주변을 보면 얼마 전까지 움직였던 것 같은데….”
윤일권이 사체를 보며 쪼그려 앉았다.
“신체 반응을 보면 이미 죽은 지 꽤 된 것 같습니다.”
“…히트맨이 여기 있어.”
여자의 가슴엔 화살이 박혀 있었다.
“cctv는?”
“보시다시피 안개 때문에 확보해도 별 소용 없을 겁니다. 어떻게 할까요? 공연을 멈춰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랬다가? 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패닉에 빠지기라도 하면 압사당하는 사람이 더 많을걸?”
벌써 세 사람이 죽었지만 4만 명이 넘는 사람이 우르르 움직이면 히트맨은 그 틈에 도주할 것이 분명했다.
“우선 이 근처만 폐쇄하고 지원 요청해.”
광수대 인원만으론 이곳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할 것이었다. 주변 경찰만으로도 안되면 기동대라도 투입해야 할 판이었다.
“셋이 죽었어. 명분은 충분할 거야.”
“알겠습니다.”
윤일권은 다른 사체도 보았다.
‘외상은 조금씩 달라도 화살에 맞았다는 건 똑같아.’
여자들의 시체는 아주 기괴한 모습이었다. 사람 같은 구석이 하나도 없달까? 표정도 소름 끼쳤고 피부도 과도하게 창백했다.
게다가 제일 이상한 건 화살에도 맞고 머리도 깨졌는데 피가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는 거다.
‘출혈이 없다니.’
누가 사체를 이곳에 옮겼다는 건가?
아니다. 주변의 흔적은 이곳에서 싸움이 벌어졌다는 것을 뜻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안개.
‘인위적인가?’
이런 안개를 만들 기술이 있나? 코앞도 보이지 않는다. 어이없는 건 휘이이잉, 바람이 부는데 안개는 전혀 걷히질 않는다는 거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가 어떻게든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할 때 서현덕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장님! 어디 계십니까?”
“여기다!”
무턱대고 뛰다간 서로 부딪힐 것 같았다. 팔을 뻗고 움직이면서 목소리로 방향을 찾아야 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아! 사랑해요! 현민!
안쪽에서 엄청난 함성이 들려왔다. 유명한 가수라도 나온 것 같다.
“협조 요청했는데 주말 저녁이라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어차피 출구는 몇 개 없어. 공연이 끝나기 전까지만 막으면 돼. 히트맨은 아직 이 안에 있을 거다.”
“벌써 빠져나간 건 아닐까요?”
“아니, 아까 태창에서 나온 승합차에 타고 있던 인원이 최소 다섯은 넘는다고 했어. 아직 생존자가 있을 거다.”
“공연 관계자들한텐 알려야겠죠?”
“일단은 하지 마. 외부에서 드나드는 인원만 확인하고.”
새우 잡겠다고 고래를 죽일 순 없었다. 히트맨도 찾아야 하지만 시민의 안전이 가장 우선되어야 했다.
“cctv 전부 확보하고 우린 가지. 놈이 어딘가에 있어.”
주차장에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며 윤일권이 말했다.
“활을 들었을 거야. 그 큰 걸 들고 다니면 당연히 눈에 띌 거고.”
“히트맨이 태창 바이오와 대립하고 있다는 건 확실한 것 같죠?”
“그래, 히트맨을 잡으면 지금까지 우리가 추적했던 모든 사건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을 거야. 무조건 생포한다. 강남서엔 알렸어?”
“네, 곧 도착한답니다.”
이 거대한 공연장을 막으려면 한 사람이라도 더 필요했다.
“태창 바이오에도 몇 사람 보내놓고 만약 여기서 증거가 나오면 바로 수색영장 발부 요청해.”
오늘 무언가 매우 중요한 단서를 잡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활을 들었거나 활을 숨길만 한 길쭉한 가방을 든 건장한 남자.”
여자일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의 행적으로 보면 특수부대를 나온 30대 남성일 가능성이 매우 컸다.
“범행도구가 너무 커서 무조건 눈에 띌 수밖에 없어. 찾을 수 있다!”
“네!”
두 사람이 안개 지역에서 빠져나왔을 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근처에 있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공연 통제인력이었다.
“당신들은 누굽니까?”
“이건 또 뭐고요?”
“소화기라도 터진 겁니까?”
대규모 행사이기에 아르바이트생이 아닌 전문 요원도 있있는데 위협적으로 말하는 그들에게 서현덕 팀장이 말했다.
“광수대에서 나왔습니다.”
“광수대가 뭔데요?”
“광역수사대입니다. 경찰이요.”
“경찰… 이요? 경찰이 왜요? 밖에 계셔야죠. 안엔 저희가 통제한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이때 안쪽에서 또 함성이 터져 나왔다. 공연이 절정으로 향하고 있는지 열기는 더욱 거세졌다.
“조사할 게 있습니다. 비켜주세요.”
곧 경찰들이 도착하면 자연스럽게 알려질 것이다. 여기서 시간을 끌 이유는 없었다.
윤일권이 서둘러 움직이는데 보안요원이 손을 뻗었다.
“안 됩니다. 그쪽은 출연자 대기실이 있습니다. 아무리 경찰이라고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영장 있으십니까?”
출연자 대기실. 확실히 거북한 장소였다. 하지만 만약 그곳으로 히트맨이 숨어들었다면?
윤일권이 보안요원에게 물었다.
“출연자들의 안전은 확인했습니까?”
“…VIP들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을 것처럼 들리는데요? 스토커라도 왔답니까?”
보안요원이 피식 웃으려다가 윤일권의 눈동자를 보면서 찔끔했다. 농담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보다 심각한 일입니다. 출연자들 이상 없는지 확인해 보세요.”
“…잠시 기다리십시오.”
보안요원이 무전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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