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이동합니다.”
태창 바이오를 감시하던 광수대 대원들이 분주해졌다.
“추적해!”
“네!”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는 인원들이 급히 대표의 차를 따라갔다.
“앗! 한 대 더 나옵니다! 승합차입니다!”
“따라가!”
“넵!”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주말임에도 급히 대표가 회사에 나왔고 직원들도 다수 목격됐다.
윤일권 대장은 태창 바이오 건물을 바라보면서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장면을 곱씹어보았다.
‘히트맨이었어. 활을 무기로 쓰는 사람은 그밖에 없으니까.’
석궁도 아니고 활이었다.
‘국가대표 수준이 아니라면 저기에서부터 여기까지 그렇게 강하게 화살을 쏠 수 있나?’
게다가 넝마처럼 파괴된 대표이사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대체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수류탄이라도 터지지 않았다면 부서진 벽이나 망가진 문 같은 걸 설명할 수 없었다.
서현덕 팀장이 급히 다가왔다.
“잠실 방향으로 가고 있답니다. 올림픽대로를 타려는 것 같은데요?”
“계속 추적해. 어디로 가는지 알아야 해.”
본사가 저 난리가 났으니 비밀 연구소나 시설로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윤일권이었다.
그가 다시 생각을 이어갔다.
‘히트맨이 나타났다는 건 태창 바이오가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연관이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겠지. 내 직감이 틀리지 않았어.’
몇 달이나 태창 바이오를 감시했지만, 지금까지 소득이 없어서 조마조마했었는데 이제 확실해졌다.
‘놈들이 열쇠야.’
그가 전활 들었다.
“팀장님, 저 광수대 윤일권입니다. 오늘 태창 바이오에서 일이 있었습니다. 추적 중인데 놈들이 어디로 가는지 확인하면 공유하겠습니다.”
팀장과 강나은 경위가 놈들을 흔들어준다면 광수대가 파고들 틈이 있을지도 몰랐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그가 서연덕 팀장에게 물었다.
“빠져나간 놈들, 인원은 파악됐나?”
“틴팅이 짙어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타이어 눌린 형태로 볼 때 8인 이상 탑승한 것 같습니다.”
“…좋아. 대응할 수 있게 우리 팀도 대기시키고 잘 따라붙으라고 해.”
“그런데 대장님.”
“왜?”
“아까 태창 바이오 대표에게 노출되셨지 않습니까? 앞으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어떤 부분에서?”
“놈들도 우리 존재를 파악했다면 여러 가지로 압박을 가해올 겁니다. 태창 바이오의 자금동원력이라면 이미 정치권이나 검경에 줄을 대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우리가 뭘 어쨌다고? 서로 혐의가 없는 건 마찬가지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이지만 저들이 불편하게 여긴다면 앞으로의 활동에 지장이 있지 않겠습니까?”
서현덕이 뭘 염려하는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윤일권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광역수사대는 말 그대로 독자적인 활동을 하는 조직이다. 제아무리 검경이 공권력을 장악했다고 해도 광수대를 까려면 더 높은 곳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인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태창 바이오와 엮인 더 높은 누군가의 꼬리를 잡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제약회사라지만 이런 고속 성장은 납득이 안돼.’
시장이 얼마나 냉정하고 치열한가? 그런데 태창 바이오는 단 한 번의 고비도 없이 무럭무럭 크기만 했다. 겉에서 볼 때는 그게 뭐가 문제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윤일권의 직감으론 뒤에 무언가 있지 않고선 불가능했다.
‘그 로봇이라는 것도 이상하고.’
그가 물었다.
“서 팀장.”
“네, 대장님.”
“그 로봇이 호랑이 같다고 했나?”
“정확히 말씀드리면 표범이었습니다. 외피가 금속이라서 느낌이 전혀 다르긴 했지만, 표범이 확실합니다.”
“크기가 얼만 하다고 했지?”
“백곰보다 컸습니다. 꼬리까지 하면 10미터는 넘을 거고요. 덩치가 얼마나 큰지 머리가 복도 천정에 닿았습니다.”
“그거, 무기잖아. 그렇지?”
“…설마 태창에서 방산까지 건드리려고 하는 걸까요?”
“모르지. 그런데 그런 로봇을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회사가 얼마나 될까?”
“만약 그게 군대나 경찰에 투입된다면 앞으로 세상이 엄청나게 달라지긴 할 겁니다.”
두 사람이 심각하게 의견을 나누고 있을 때 미행 팀에서 연락이 왔다.
-잠실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뭐?”
윤일권이 이상하다는 듯 되물었다.
“잠실로 왜 가?”
-모르겠습니다! 계속 추적 중입니다!
동쪽으로 향하고 있으니 양평이나 광주 혹은 이천이나 여주로 가는 게 아닐까 했었다. 그런 지역이 연구소를 은밀하게 운영하기에 좋지 않나? 그런데 잠실이라니? 그렇게 복잡한 서울 도심에서 가능한가?
“로봇 공장이 어딘가에 있을 거야. 히트맨과도 그것 때문에 마찰이 있었을지 몰라. 우리가 찾아야 돼.”
“알고 있습니다. 잠실에도 놈들의 연고지가 있을지 모르니 계속해서 찾겠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점점 더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놈들은 올림픽대로에서 나와 잠실로 향하더니 종합운동장으로 곧장 갔다.
“거길 왜 갔는데?”
“모르겠습니다! 주차장에 섰다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오늘 무슨 행사 있어? 야구라도 하나?”
“콘서트가 있답니다!”
“…콘서트? 가수들 나오고 하는 그거?”
“네!”
이게 뭔 일인가? 본사가 난리가 났는데 직원들이 단체로 콘서트를 보러 갔다고? 살면서 수많은 사건을 접했지만 이건 상식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어떻게 할까요?”
“출동해!”
“네!”
뭔진 모르겠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
.
.
【돌발 미션: 뱀파이어의 습격을 막아라.】
【추적 안개에 노출되었습니다. 추적 안개는 24시간 지속됩니다.】
“어? 어어어?”
막 첫 번째 가수가 나와서 모두가 미친 듯이 열광하고 있을 때였다. 우린 서로를 바라보며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내가 급히 나침반을 봤다.
‘변함은 없는데?’
피의 군주는 아직도 그 자리에 있거나 아니면 직선으로 곧장 왔다는 건데 지금은 이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민준아! 아까 그 안개! 그게 우릴 추적할 수 있었나 봐!”
“냄새는요?”
“모르겠어. 조금씩 구린내가 풍기는 것 같은데 정확하질 않아!”
당황한 도화지가 말할 때 김우태가 먼저 이동하며 외쳤다.
“가자! 여긴 사람이 너무 많아!”
우린 객석에서 나가며 주변을 살폈다.
‘뱀파이어라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심지어 여긴 하층도 아니었다. 현실에서 뱀파이어가 난입할 줄은 상상도 못 했기에 충격은 더 컸고 아까 그 붉은 안개가 우릴 따라왔다니 소름이 끼쳤다.
“사람 없는 곳으로 가요!”
“그래! 놈들은 우릴 따라올 거야!”
모두가 콘서트에 집중하고 있다는 건 천만다행이었다. 앞으로 두어 시간은 무대에 집중할 것이니 우릴 눈여겨보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놈들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 거지?”
“일단 더 가요!”
곳곳에 진행요원들이 있어서 더 한적한 곳으로 움직여야 했다.
‘EMP도 쓸 수 없는데!’
CCTV도 많고 통제하는 인력도 있었다.
“누나! 냄새는요?”
“아직!”
“네! 저쪽으로요!”
종합운동장 특성상 경기장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복도가 이어져 있었는데 콘서트 때문에 최소한의 공간만 사용할 수 있도록 곳곳에 통제 띠가 둘러 있었다. 누는 그걸 넘어가며 말했다.
“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최대한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은밀하고 빠르게 정리해야 해요!”
학교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었던가? 만약 이곳에 불이라도 난다면? 생각만 해도 오싹한 일이었다.
다시 나침반을 봤다.
‘움직이지 않아.’
피의 군주는 오지 않은 건가? 만약 그렇다면 해 볼 만한 싸움이었다.
“민준아! 저쪽으로!”
“네!”
주차장으로 연결된 통로가 보였는데 이어진 주차장은 오늘은 사용하지 않는 곳 같았다.
우린 주차장 앞에 서서 잠시 숨을 돌렸다.
“형, 여차하면 아예 밖으로 나가요.”
“어디로 가야 하지? 여기, 잠실이야!”
이 시간엔 한강에도 사람이 북적거릴 것이었다. 차를 탄다고 해도 길바닥에 묶일 것이다.
‘드링크도 마음대로 못 쓸 것 같은데.’
【불바다 드링크: 반경 10미터에 불길을 일으킬 수 있다.】
【폭탄 드링크: 반경 10미터에 강력한 폭발을 일으킬 수 있다.】
【물 폭탄 드링크: 반경 10미터에 홍수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아무리 많아 봐야 여기선 득보다 실이 클 것이었다.
“와, 정신이 하나도 없네.”
김우태의 말에 내가 가방을 내려놓았다. 가방 속 범이에게 당부했다.
“미안한데 여기선 숨어있자. 보는 눈이 너무 많아.”
아리나 가이가 아니라도 범이가 본체로 날뛰면 사람들이 충격을 받을 것이었다.
“…흡.”
“왜요?”
“뭔가 있어.”
도화지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주 기분 나쁜 표정으로 인상을 쓰다가 고갤 홱 돌렸다.
“저기야!”
“뭐지?”
“안개!”
붉은 안개가 주차장 끝에서부터 이쪽으로 모여들고 있었는데 자욱하게 덮여서 시야를 가렸다.
“놈들인가?”
“안 보이는데?”
“조심해요!”
잔뜩 긴장하면서 활을 빼 들었다.
‘안갯속에 숨어있는 건가? 아니면 단순히 우릴 따라온 안개인가?’
모르겠지만 뱀파이어가 곧 나타날 것이란 건 확실했다.
두근, 두근!
예원이까지 있는데 큰 싸움이 벌어져선 곤란했다. 객석을 가득 채운 사람들에게 피해가 없어야 한다.
“…불길한데….”
안개가 점차 진해졌고 우릴 감싸기 시작했다.
휙휙!
도화지가 망치를 휘둘렀지만, 안개는 걷히지 않았다.
그런데 이때 무언가 내게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갑자기 나타난 손이었다.
“흐읍!”
급히 뒤로 물러나며 화살을 쏘았다. 손톱이 아슬아슬하게 내 가슴을 스쳤다.
푹!
화살이 손에 틀어박혔다.
-꺄아아아아아!
안갯속에서 비명이 터졌는데 나타났던 손은 빠르게 사라졌고 투욱, 화살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놈들이 있어요!”
내가 버럭 외칠 때 이미 도화지와 김우태에게도 공격이 가해지고 있었다.
“화지야! 붙어!”
“알았어요!”
두 사람이 서로를 등지며 무기를 휘둘렀다. 안갯속에서 손과 발, 섬뜩한 이빨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이놈들 대체 뭐야?”
본체가 없으니 놈들에게 치명타를 줄 수 없었다.
“저기, 조심…!”
김우태의 옆구리에서 나타난 손을 향해 내가 화살을 쏘았다.
-꺄아아아아아!
화살이 맞을 때마다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한창 공연 중이라 소리가 묻힌다는 것이었다.
“제기랄! 딴 곳으로 갈까?”
“여기가 그나마 사람이 없잖아요!”
놈들은 이쪽을 정확히 보면서 공격하는데 우린 놈들의 실체를 구분할 수 없이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해야 했다. 이렇게는 불리했다.
‘그걸 써볼까?’
생각이 나는 즉시 실행에 옮겼다. 뭔들 이 상황보단 나아지겠지!
【안개 드링크(유니크): 일정 범위를 자욱한 안개로 덮을 수 있다. 사용자는 안개를 투영해 볼 수 있다.】
휘익!
드링크가 날아갔다.
“형! 누나! 아이템 쓸 거예요!”
“알았어!”
무려 유니크 드링크다.
화아아아악-!
하얗고 짙은 안개가 일대를 덮기 시작했다. 붉은 안개가 완전히 파묻힐 정도로 안개 드링크의 효과는 엄청났다.
‘보인다.’
그런데 그 안개를 나는 아무런 지장 없이 보고 있었다.
【효과가 파티에 공유됩니다.】
갑자기 공격이 뚝 멎었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안갯속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그림자들을.
‘이제 내 차례다!’
화살이 빠르게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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