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184화 (184/277)

#184화

“….”

눈으로 신호를 보낸 뒤 내가 먼저 앞으로 빠르게 걸었다.

【인내가 활성화 중입니다.】

주작의 깃털로 강해진 화살에 인내까지 더해지면 내 첫 타격은 엄청난 괴력을 발휘할 것이었다. 첫 번째 공격이 신중해야 할 이유이기도 했다.

“전보다 더 기분 나쁜데?”

김우태의 목소리가 들렸다.

“맞아요. 왠지 좀 더 깨끗한 거 같지 않아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두 사람의 말처럼 복도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완전히 파괴되었던 피라미드와 멀쩡했던 것을 둘 다 경험한 나였기에 이 피라미드는 그 중간쯤으로 보였다.

‘부수다 만 것 같은데.’

인기척은 없었기에 계속해서 우린 중심으로 나아갔다.

지이잉.

문이 열렸다.

여기저기에 망가진 물건들이 보였다. 잘게 부서진 게 아니라 추락한 비행기의 잔해를 보는 것 같았다.

“뭐지?”

김우태도 의아한 듯 물었는데 도화지가 허리를 숙여 뭔가를 챙겼다.

“혹시 모르니까 가져가야지! 비싸게 팔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어? 그런가? 그러면 나도!”

쓸만해 보이는 물건들을 챙기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나는 다음 방으로 향했다.

‘전체적으로 상태가 양호한데? 전력도 들어오는 것 같고.’

이 복도의 끝엔 중앙 홀이 있다는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다.

마침내 그곳에 도착했을 때 보았다.

‘역시 아직 작동하고 있어.’

중앙 기둥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이 피라미드의 동력원이자 에너지 드링크가 모이는 핵심 시설이기도 하다.

“또 찾아야 하나 본데?”

김우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흩어질까? 아니면 같이 이동할까?”

도화지가 즉각 반응했다.

“혼자는 싫어요! 전처럼 떨어지면 미쳐버릴 거에요!”

호되게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랐는지 도화지가 외쳤는데 김우태가 피식 웃으며 나를 보았다.

“어떻게 할래?”

“급한 건 아니니까 같이 다니죠.”

“좋아, 그러면 위? 아래로?”

“위에서부터요.”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면 빠뜨리지 않고 모두 훑는 것이 좋다. 특히 이 피라미드 구조는 이제 내겐 너무도 익숙한 것이어서 쉽게 최상층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꼭대기에서부터 수색을 시작했다.

“이것저것 많은데? 이게 하늘을 날아다닌다고 했었지?”

“네, 옛날엔 그랬던 것 같아요.”

3시간쯤 이동하면서 우리는 미션이 갱신되는 지점을 찾으려고 했는데 도화지가 물었다.

“여기 있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아마 피라미드가 추락하는 순간 모두 밖으로 도주했을걸요?”

전에도 그런 장면을 본 것 같다. 그때 어린 가이가 나타나서 괴물과 싸웠었지 않나?

“그리고 사람이 아니에요. 벌레들이지.”

“아…. 마주치고 싶지 않네.”

망치로 벌레들을 펑펑 터뜨리던 도화지의 모습이 잠깐 스쳤지만 애써 웃으며 나는 계속 아래로 향했다.

그러다가 어느 방에 들어섰을 때였다.

“…어라?”

처음부터 심상치가 않았다. 입구에서부터 부서진 파편이 가득했고 발을 디딜 틈도 없이 유리 같은 것들이 깔려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시선을 잡아끄는 게 하나 있었다.

“허억, 저거!”

“뭐지?”

“히에엑? 원숭이다!”

원통형 물건 안에 보글보글 기포가 솟아오르고 그 안엔 파란 액체가 가득 담겼다. 다 부서졌는데 멀쩡한 것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엔 원숭이 한 마리가 둥둥 떠서 죽은 듯 잠들어 있었다.

‘원숭이로 실험을 했던 건가?’

가이가 다가오더니 유리 벽을 손바닥으로 탁탁 치면서 입을 벌렸다.

“우오오오우워!”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가이도 놀란 것 같았다.

그런데 이때 유리 벽을 빙빙 맴돌던 가이가 무언가를 눌렀다. 그게 뭔지는 모른다. 그저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겼고 우린 급히 뒤로 물러나야 했다.

솨아아아아아!

통 안의 물이 급히 빠지기 시작한 걸 본 것이다.

“어엇?”

“뭐얏?”

스르르르르릉

모든 물이 빠지자 유리벽이 위로 올라갔다.

“….”

“….”

축 늘어진 원숭이를 보다가 나는 천천히 다가가서 원숭이의 코에 손가락을 대보았다.

그리곤 일행을 보며 머리를 흔들었다. 숨을 쉬지 않는다.

“죽었어?”

“쯧.”

사정은 모르지만 불쌍한 원숭이가 끝내 눈을 뜨지 못했기에 모두 입맛이 썼는데 파스스, 엎드린 원숭이의 몸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후우우웅, 푸르스름한 막이 생겨났다.

“아앗?”

“포탈이다!”

김우태는 이걸 포탈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름은 달라도 뜻은 같았다.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균열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입장하면 난입 미션이 시작됩니다.】

【난입 미션은 매우 위험합니다. 만반의 준비가 요구됩니다.】

【입장하시면 미션이 갱신됩니다.】

“시작됐다.”

김우태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고 나는 활을 단단히 쥐고 균열 앞에 서서 말했다.

“들어갈게요.”

뒤를 돌아보았다. 범이가 내 옆으로 바짝 붙었고 도화지가 가이를, 김우태의 발치론 병아리가 서 있었다.

끄덕.

긴장한 도화지가 고개를 당겼다.

‘이 전력이면 어디 가서도 쉽게 지지 않아.’

사람 셋보다 어쩌면 동물 셋이 더 막강한 파괴력을 낼지도 모르겠지만….

‘간다.’

나는 숨을 들이마시곤 훌쩍 통의 균열로 들어갔다.

【미션이 갱신되었습니다. 미션을 완료하기 전엔 균열의 반대편으로 이동할 수 없습니다.】

【미션: ‘가지를 되찾아라’가 진행됩니다.】

【가지의 소유자에게 접근했습니다.】

“흐으으읍?”

뒤이어 나온 도화지가 코와 입을 손으로 막았다.

“괜찮아요?”

“아니, 지독한 냄새야!”

냄새도 그렇지만 더 큰 문제가 있었다.

“허억? 뭐야? 여기 설마…?”

우린 지금 어떤 사무실에 있었다.

“한국이야?”

그런데 주변에 보이는 것들이 너무나도 익숙했다. 책상, 명패, 가구나 창밖에 보이는 풍경까지도 우리가 TV나 일상에서 보던 것들이었다.

“태창… 바이오?”

김우태가 주변을 보며 두리번거릴 때 나는 창밖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이 보였다.

“8층쯤 되는 지점 같은데….”

혼란스러웠던 건 재능마켓에서 보는 것처럼 저들과 우리의 시간이 다른 건지, 아니면 현실의 실제 상황에서 미션을 진행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 간단한 방법이 있다.

-카톡!

“헛! 깜짝이야!”

도화지가 놀라서 펄떡 뛰었다. 내가 보낸 단체톡이 도착한 거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돌아왔어요.”

“와, 미치고 환장하겠네? 시간이 흐른다고?”

김우태가 정색했다. 그 모습을 도화지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핸드폰을 보았다. 그러면서 물었다.

“왜요? 심각한 거예요?”

“당연하지.”

김우태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얼굴이었다.

“미션을 빨리 못하면 콘서트에 못 갈 거다.”

“….”

“….”

한 대 때려줄까? 라는 도화지의 표정을 보다가 내가 급히 말했다.

“좋은 상황은 아니에요. 여기선 우리가 마음껏 힘을 쓸 수 없어요. 사람들 시선도 신경 써야 하고 가이나 아리가 본체로 돌아갈 수도 없으니까 전체 전투력이 떨어졌다는 거죠.”

“아…. 그치만 이건 이용할 수 있다는 거잖아?”

도화지가 핸드폰을 흔들어 보였다. 그러더니 무언가를 검색했다.

“우리, 지금 서울이야. 이 태창 바이오란 회사는 생각보다 유명한데?”

“어디, 어디.”

김우태가 도화지와 머릴 맞댔다.

“여의도네?”

“맞아요. GPS를 쓸 수 있으니까 이런 건 편하죠?”

김우태가 다시 주변을 봤다.

“토요일이라 이렇게 한산한 건가?”

이 사무실이 누구의 것인진 모르겠지만 주말이라고 해도 건물에 사람이 있을 것이었고 사방에 CCTV가 있을 테니 주의해야 했다.

나는 EMP를 꺼내 들었다.

“일단 이것부터 하죠. 우리가 손님인 것 같은데….”

느낌이 왔다. 고블린이 오피스텔에 나타났던 것처럼, 늑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난입’한 것이다.

범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함부로 사람들 물고 그러면 안 돼. 알았지?”

녀석은 우리와 함께 한 시간이 길어서 어느 정도 적응했겠지만 가이와 아리가 걱정이었다.

“쓸게요.”

“알았어.”

“오케이!”

도화지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망치를 두 손으로 쥐었다.

【출력을 설정하세요.】

“최대로!”

투우우우우우웅!

아이템을 사용하자마자 전기가 끊겼다. 이제 시간이 없다. 서울 한복판에서 정전이 됐으니 복구하려고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었다. 그들이 눈치채기 전에 미션을 끝내야 한다.

‘기다릴까? 나갈까?’

잠깐 고민했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다.

벌컥!

문이 열린 것이다.

“…?”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문손잡이를 잡은 채 우릴 보더니 매우 놀란 표정으로 서 있다가 말했다.

“어떻게?”

남자의 시선은 아리와 범이, 가이에게서 내게 넘어왔다.

“하층의 짐승들이 여기에 있는 거지? 너희는 뭐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묻는 그의 목소리는 당황하긴 했지만 두려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활을 똑바로 겨냥하면서 물었다.

“가지를 당신이 가지고 있나?”

“…하?”

그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왔다.

“멈춰! 더 다가오면 쏜다!”

내 말에 그가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넣더니 피식 웃었다.

“그러던가.”

그의 온몸에서 자신감이 풀풀 풍겼다. 가까운 거리였지만 화살 따위는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는 여유가 느껴졌다.

그가 신기한 듯 아리를 보다가 내게 물었다.

“너희는… 하층민이 아닌데?”

“….”

나는 말을 아꼈다. 그가 시간을 끌려고 하는 것 같진 않았지만 애써 우리 정보를 노출할 이유도 없었다.

“누구 밑에서 일하나?”

“….”

“대답할 생각이 없다면 강제로 입을 열게 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그가 스산하게 미소 짓자 김우태가 버럭 외쳤다.

“가지를 내놔! 그러면 우린 가겠다!”

“…가지가 뭔지는 알고?”

“네가 알겠지!”

“물론 나는 알지. 그런데 그걸로 뭘 할 생각이지?”

김우태가 말려든 것 같아서 내가 나섰다.

“우리도 순순히 물러날 생각은 없어.”

놈이 적이란 걸 안 이상 예의를 갖출 필욘 없었다.

“상당히 시끄러워질걸? 그걸 바라는 건 아닐 텐데?”

이렇게 번듯한 사무실까지 갖춰놓은 걸 보면 저자도 사회에 섞여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입은 양복도 비싸 보였다.

“호오, 협박인가?”

“…마음대로 생각해.”

“참으로 간만에 이렇게 당돌한 녀석들을 보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좋아. 평화적으로 이야길 해보지. 우선 내 질문부터.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대답은 도화지가 했다.

“아저씨 악취는 지구 반대편에서도 맡을 수 있을 정도라고요! 얼마나 지독한데요!”

“흐음, 그럴 리 없는데? 완벽하게 기운을 감추고 있거든. 그런데도 아가씨의 코엔 냄새가 나나?”

“흥! 내가 좀 특별하거든요?”

“확실히 특별하군.”

사내가 혀로 입술을 핥았다. 도화지를 보는 시선이 뱀처럼 느껴졌다.

내가 급히 말했다.

“너는 누구지?”

“…….”

그가 나를 보더니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내 차례인가?”

그의 반짝이는 구두가 보였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뭐라고 설명해야 알아들으려나?”

그의 미소가 진해졌다.

“피의 주인이라고 하면 되나?”

로드, 퀸에 이어 세 번째 절대자.

우린 그의 코앞에 와 있었다.

‘이런 젠장….’

이번 미션, 최악이었다.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839-322-6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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