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중닭을 본 적이 있는가?
완전히 성체가 되면 털도 복슬복슬하고 수탉은 위엄도 느껴지는데 중닭은 의외로 무섭게 생겼다.
그런 중닭처럼 변한 병아리가 계속해서 몸집을 키웠다. 부드럽던 털은 공작의 그것처럼 길게 뻗었고 목도 길어졌으며 날개는 더 커졌다.
“와….”
이윽고 모든 변화가 끝났을 때 내 앞엔 병아리의 모습을 손톱만큼도 유지하지 않은 새로운 생물이 앉아있었다.
【황금 주작을 발견했습니다.】
“허….”
병아리니까 닭이 될 줄만 알았다.
【어린 주작이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받아 성체로 자랐습니다.】
【황금 주작이 당신에게 고마워합니다.】
【이제 황금 주작은 당신의 도움을 언제든 수락할 것입니다.】
병아리… 아니, 주작이 눈을 떴다. 부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황금색으로 뒤덮인 주작은 세상에서 제일 값비싼 새 같은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어이가 없네.”
충격적인 전개에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는데 주작이 일어나서 내게 다가왔다. 병아리 때도 컸는데 지금은 훨씬 더 길어졌다. 가이보다도 클 것 같았다.
“야야, 아니야. 안돼.”
머리를 내려 주둥이를 내게 비비려고 하는데 멀리서 보면 잡아먹히는 거로 보일 거다. 부리가 내 몸보다 큰데 애교는 예전 그대로였다.
“하….”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병아리가 성장했고 미션은 끝났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나는 황급히 돌아섰다. 도화지와 김우태를 구하러 가야 했다.
그런데 이때였다.
콰앙!
저쪽 바닥이 폭발하더니 가이가 튀어나왔다.
“…?!”
그러더니 이쪽을 보다가 흠칫 놀랐다. 황금빛 주작을 보고 놀란 것이다.
“괜찮아!”
내가 아는 애라고 말한들 이해할까?
그래도 섣불리 공격하진 않았는데 잠시 후 가이가 나온 구멍에서 범이가 뛰쳐나왔다. 녀석의 등엔 김우태와 도화지가 타고 있었다. 모두 무사히 빠져나온 것이다.
“허억…! 저게 뭐야?”
“꺄아! 엄청 큰 새야!”
두 사람도 내가 얘기했던 병아리가 설마 이 녀석일 거라곤 상상조차 못 하는 것 같았다.
이거, 이거….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
화라락, 주작이 날개를 폈다. 그러더니 훌쩍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하늘 높이 올라간 녀석은 기분이 좋은지 창공을 누볐다.
내게 두 사람이 뛰어왔다.
가이 덕분에 탈출할 수 있었다던 두 사람은 병아리가 황금 토룡을 잡아먹고 진화했다는 말을 듣곤 매우 놀라워했다.
“주작이라니…. 진짜 귀한 거 아니냐?”
청룡, 백호, 현무 이런 계보에서나 등장해야 할 것 같은 생물이었다.
“딱 봐도 비싸 보인다. 야.”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겠지만 그 크기만으로도 우리에겐 강력한 조력자가 되리란 건 확실했다. 특히 주작은 날개가 있다.
“커스텀하면 데려갈 수 있을 거예요. 가이처럼 작게 만들 수 있으니까.”
“평범하게 해. 저거 방송 타면 난리 날 거다.”
김우태의 말에 내가 끄덕였다. 도화지는 아직도 하늘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진짜 멋있다. 나 주작 처음 봐.”
실제로 본 사람이 몇이나 있겠나.
“그럼 미션은 끝난 거지?”
“그런 것 같아요.”
“오래 안 걸려서 다행이다! 돌아가자! 민준아.”
“네?”
“떡볶이 먹을래?”
“갑자기요?”
“응, 땡기네.”
내가 실소하며 알았다고 하자 김우태가 나도, 나도! 끼어들었다.
으르르르르륵.
그런데 가이가 하늘을 보며 계속해서 불편한 기색이었다. 그런 가이의 다리를 손으로 툭툭 치며 도화지가 말했다.
“싸우지 마. 친구잖아.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주작이라는 어마어마한 동료가 생겼다. 황당하고 놀랍지만 한편으론 가슴이 묵직해졌다. 대체 앞으로 어떤 위험이 오려고 이렇게 퍼주나?
잘은 모르겠지만 그날이 멀지 않았다는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
.
.
재능마켓으로 돌아왔다.
“아우! 귀여워!”
주작은 다시 병아리가 됐다. 그것도 주먹만 한 앙증맞은 모습으로 커스텀했다.
도화지는 그런 병아리를 품에서 내려놓질 못했다.
꾸웅….
졸지에 찬밥이 된 가이가 시무룩해 있는데 그걸 본 김우태가 안아주려고 하자 그의 다릴 걷어차 버렸다.
“아아악! 이 자식이!”
짐승도 도화지의 매력에 반응하나 보다.
나는 웃으면서 벽장으로 갔다.
보상의 시간.
다친 곳은 없었기에 샤워는 당장 필요하지 않았다.
덜컥.
반짝이는 돌들 사이로 유독 튀는 게 하나 보였다. 그걸 집어 들었다.
【주작의 깃털(유니크)
활 통에 부착하면 화살 깃이 주작의 황금빛 깃털로 변환되어 나온다.
깃털 효과: 사거리 상승, 명중률 상승, 파괴력 상승, 관통력 상승.】
“와우…!”
내게 정말 필요하던 아이템이 아닐 수 없었다.
【토룡 진액.】
【토룡 가시.】
빈 병과 재료들도 수북했다. 도화지와 김우태에게도 쓸만한 아이템이 나왔는데 우린 정산을 마치고 회의했다.
“한 판 더?”
정글에 갈 것인가?
“노노! 떡볶이!”
분식집에 갈 것인가.
완전히 다른 두 곳을 놓고 우리는 잠깐 고민하다가 오늘은 주작도 얻었으니 내일 아침 일찍 모이기로 했다.
“완전 동물원이 다 됐네.”
재능마켓을 나가기 전, 김우태가 오피스텔 안을 보며 말했다. 표범에 이어 원숭이도 모자라 이젠 병아리까지 있다.
‘오늘은 그냥 둘까?’
병아리가 범이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전에 놀았던 기억 덕분인지 둘은 금세 친해졌다.
“내가 맛있는 곳 알아. 그리로 가자.”
김우태를 따라 이면도로의 떡볶이집으로 향했다. 생각해보니까 우리끼리 이렇게 떡볶이를 먹는 것도 처음이었다.
“기분 이상하네. 맨날 노숙만 하다가….”
“호호! 진짜 이상하다. 이게 정상인데.”
특히 도화지와 나는 아직 교복을 벗지도 않은 학생 신분이니 정글보다는 이런 곳이 더 어울려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곳에서까지 재능마켓을 떨쳐낼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포인트 얘기로 이어졌다.
“꽤 많이 모였네?”
내가 14만, 김우태가 5만, 도화지가 4만이나 포인트를 모았다. 정상적인 미션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못 모았겠지만 내가 참가한 탓에 난도가 훌쩍 올라버려서 그런 것 같았다.
“이걸 어디에 쓸까?”
전엔 포인트만 모으면 이상한 걸 사려고 했던 김우태였지만 이젠 강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경험을 해서인지 신중해졌다.
도화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말했다.
“아이템은 계속 나오니까 스킬이나 뭐 그런 걸 투자해야 하지 않아?”
그녀가 떡볶이를 포크로 찍었다.
“와! 맛있어! 존맛탱!”
“거봐. 여기가 숨겨진 맛집이라니까.”
김우태도 떡볶이를 먹으면서 다시 얘기했다.
“나는 속도를 올려야 할 것 같아. 이것저것 잡탕으로 해선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하나에만 올인하려고. 어때?”
확실히 그는 힐러라 방어 쪽은 괜찮다. 공격력도 ‘저주’라는 카테고리라서 굳이 파괴력으로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에요. 그러면 누나는요?”
“움, 나는 모르겠는데. 하던 대로 방어력으로 갈까?”
그녀의 물리방어는 지금도 깡패 수준이었는데 그게 더 올라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나도 모르겠다.
우리가 이런 얘길 진지하게 하고 있으니 주인아주머니가 힐끔 쳐다봤지만, 게임 얘길 하나보다, 관심 없는 표정이었다.
나도 내가 떡볶이 먹으면서 이런 대화를 하리라곤 꿈에도 몰랐다.
“그러면 내일 아침까지 각자 생각해보기로 해요. 그리고 주작은 아무래도 이름으로 쓰긴 좀 그런데 다른 이름 없을까요?”
“아리 어때?”
도화지의 말에 김우태가 혀를 찼다.
“병아리라서 아리냐?”
“왜요? 귀엽잖아요.”
“표범이라서 범이고….”
내가 시선을 돌리자 김우태가 쯧쯧, 말했다.
“어째 수준이 둘이 똑같냐?”
“그러면 오빠는 뭐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요?”
그 말에 김우태가 당당하게 말했다.
“치킨! 어때?”
.
.
.
후우우우우우우우웅!
다음 날 아침 일찍 모인 우린 곧장 정글로 향했다. 그리곤 아리 위에 올라탔다. 동료를 치킨이라고 부르는 만행을 저리를 순 없었기에 도화지의 의견을 수렴했다.
바람이 온몸을 날려버릴 것 같았다.
“와아아아아아아! 기분 짱이다!”
바닥에서 몇 미터나 올라온 걸까? 우린 정글을 헤매지 않고 하늘을 날며 피라미드로 향하고 있었다.
【피라미드에 입장하세요.】
미션 자체가 단순했기에 일단 아무 피라미드나 찾으면 될 것 같았다. 전이었다면 몇 날 며칠을 돌아다녔어야 했겠지만, 기동력이 올라가니 이렇게나 좋다. 오토바이만 타다가 비행기로 갈아타면 딱 이런 기분일 거다.
“저기 있다! 피라미드!”
정글은 3회차다.
방심은 금물이었고 긴장을 유지해야 했다.
“빨리해버리고 콘서트 가자!”
김우태는 벌써 마음이 떠나있었다. 채린을 본다는 생각에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
“아휴, 아이돌이 그렇게 좋아요?”
“그냥 아이돌 아니거든? 채린이라고!”
“…그게 뭐가 다른데요?”
“달라! 무조건 달라!”
박박 우겨대자 도화지가 못 말리겠다는 듯 아래를 내려봤다. 메뚜기보다 훨씬 빠른 아리는 우리 모두를 태워도 가뿐하게 날았다.
아리가 피라미드 꼭대기에 착지했다.
“여기서 기다려!”
굳이 같이 들어갈 필욘 없었기에 내가 녀석의 몸에서 뛰어내리며 뱀파이어 날개를 펼쳤다. 이걸 접었다가 펼치며 조절하면 원하는 곳으로 내려갈 수 있다. 평생 땅 위에서만 움직이다가 이렇게 하늘 공간까지 이용하게 되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참으로 많아졌다.
쏘옥.
피라미드 구멍으로 들어갔다.
【미션이 갱신됩니다.】
올 게 왔다.
요즘 연이어 미션을 다니느라 정신이 없긴 하지만 그만큼 강해지는 것에 절박했다. 어려워도 미션을 달성하기만 하면 포인트와 아이템을 확실히 보장받으니 다른 선택지가 없다.
‘이번엔 어렵지 않을 거야.’
믿는 구석이 있었다.
아리와 주작의 깃털로 전력이 강화되었지만, 그것 외에도 막대한 포인트를 사용해서 ‘필살기’를 마련해두었다. 정말 다급한 순간이 오면 우리 셋이 가진 그것들로 빛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미션: 복원
난도가 매우 높으니 주의하세요. 이번 미션은 ‘난입’과 함께 진행됩니다. ‘가지’를 찾아 망가진 숲을 복원하세요.】
이게 무슨 소리지?
【미션을 달성하면 확정으로 매우 귀한 아이템을 얻을 수 있습니다.】
【미션을 달성하면 확정으로 매우 많은 포인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미션을 달성하면 ‘고급 필라테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허어….”
놀랄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우선 필라테스가 고급으로 오른단다. 요즘 내가 워낙 강해진 탓에 웬만한 필라테스는 어렵지 않다고 느끼고 있긴 한 타이밍이었는데 고급이라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그만큼 높은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 확실하니까!
‘확정으로 아이템과 포인트라.’
대체 얼마나 어려운 미션이기에 이렇게 후할까?
내 옆으로 김우태가 다가와 물었다.
“가지가 뭐야?”
“모르겠어요. 그걸 찾는 게 우선일 것 같긴 한데 이 피라미드 안에 있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난입이라는 단어가 거슬리지 않아요?”
미션 중에서 가장 부담스러운 것이 바로 난입이다. 전혀 예상할 수 없기에 미리 준비할 수도 없었고 아직도 고블린이나 늑대와 싸웠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서 문득문득 떠오른다.
도화지도 도착했다.
“아후, 여기 원숭이들 싫은데. 또 원숭이 잡기는 아니겠지?”
나는 복도 안쪽을 보면서 얼굴을 흔들었다. 왠지 이번엔 그런 단순한 미션이 아닐 것 같았다.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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