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182화 (182/277)

#183화

“뭔가 있다!”

김우태의 외침에 우린 그쪽으로 몸을 돌리며 무기를 들었다.

그러나 금세 사라진 정체불명의 물체는 육중한 소리를 남기면서 어디론가 이동했다.

‘뭐지?’

일단 가보자.

나는 활을 겨냥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동굴 폭이 점점 더 넓어졌다. 50미터쯤 걸었을 때 우린 보았다.

콰르르르르르르르.

구르르르륵!

저 아래 엄청난 것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밖에서 본 토룡과는 생김이 달랐다. 큰 뱀처럼 길쭉한 건 똑같았지만 머리부터 꼬리까지 상어처럼 지느러미가 있었고 그 끝엔 뾰족한 가시가 돋아 있었다. 그 가시 하나가 나만 하니 녀석들이 얼마나 큰지 짐작이 되는가?

“허얼….”

“겁나게 크다….”

수십 마리가 서로 꼬리잡기하는 것처럼 빙글빙글 돌고 있었는데 저 아래로 떨어졌다간 두부처럼 으깨질 것 같았다.

김우태가 주변을 보며 말했다.

【가시 토룡을 발견했습니다.】

【가시 토룡은 매우 포악합니다.】

“쟤들이 원인인 것 같은데?”

작은 촉수들이 벽에 빼곡하게 붙어있었다. 가시 토룡의 꽁무니에서 나오는 형광색 분비물이 벽에 촤악, 촤악 튀었는데 그걸 먹는 것 같았다.

‘지렁이 업그레이드 버전인가.’

다른 점이라면 밖의 토룡들은 큰 몸집을 이용한 공격밖에 없었다면 저것들은 훨씬 위험해 보였다.

길은 끊겼다. 저쪽 벽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긴 해도 건너가긴 어려울 것 같다.

“이제 어쩌지? 쟤들하고 싸울 순 없을 것 같은데.”

김우태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가 아무리 강해도 저런 괴물들하고 싸운다는 건 무리였다.

나는 고갤 돌려 원숭이를 보았다. 가이라면 할 수 있을까?

‘굳이….’

이때 도화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길이 있는 것 같은데?”

오른쪽 절벽을 바라보면서 도화지가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길이라고 부를 순 없었지만 발을 디딜만한 공간이 쭉 이어져 있었다.

‘건너갈 이유가 있을까?’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면 뛸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내려갔다가 막다른 곳에 막히면 그땐 더 막막할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아래에서 반응이 왔다.

“아앗! 움직인다!”

꾸물거리면서 돌던 가시 토룡이 위로 솟구쳤다. 그러자 놈들의 얼굴이 보였다. 눈은 없었다. 하지만 뻥! 뚫린 아가리 안쪽엔 뾰족한 이빨이 수북했고 그 입이 얼굴의 절반이나 됐다.

“흡… 징그러워!”

도화지가 바로 반응했다.

“물러나요.”

괜히 떨어지면 큰일이기에 나는 일행을 뒤쪽으로 보내고 벽에 단단히 매달렸다.

‘열세 마리인가?’

놈들이 흩어지자 숫자를 셀 수 있게 되었다. 가시 토룡의 길이는 조금씩 달랐지만 비교적 작은놈도 길이가 20미터는 되어 보였다.

그런데 이때 저 아래 중심부에서 반짝이는 게 보였다.

금빛이었다.

“헛…. 저기 있어요! 황금 토룡!”

보자마자 알겠다. 황금 토룡은 가시 토룡의 절반밖에 안 되는 크기였는데 단 한 마리였고 눈에 확! 띄었다.

“와… 저걸 어떻게 잡냐?”

“어이가 없네.”

김우태와 도화지도 아래를 보면서 기막힌 표정이었다. 황금 토룡은 가시 토룡처럼 무섭게 보이진 않았지만, 주변 것들이 문제였다.

“일단 녀석들이 여기에서 뭘 하는지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저 황금 토룡이 밖으로 나와주면 베스트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반드시 틈이 있을 것이다. 애당초 불가능한 미션을 주진 않았을 거니까.

콰르르르르르르.

가시 토룡이 벽을 기어 다니며 소리를 냈다. 놈들이 완전히 떠나면 뭐라도 해보겠는데 가시 토룡은 마치 춤을 추는 듯 주변을 기어 다니다가 다시 내려갔다. 그리곤 또다시 소용돌이처럼 맴돌며 하나가 되어갔다.

“….”

“….”

이 퀴즈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어쩌라는 거야?”

도화지가 말했다.

“그냥 막 공격해볼까? 그러면 어떻게라도 되겠지!”

그래, 그것도 방법의 하나일 수도 있다. 우리가 죽지 않는다면 말이지.

김우태가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괜히 들쑤셔서 좋을 게 없어.”

김우태가 토룡들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손을 뻗었다.

“저길 봐. 황금 토룡이다.”

“오오오…! 올라왔네? 민준아, 화살로 맞출 수 있겠어?”

나는 거리를 가늠해보았다. 놈이 아래에 있으니 어떻게든 거리는 닿을 것 같은데 저 반들거리는 비늘을 뚫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그러는 사이 김우태가 말했다.

“짝짓기하는 건가?”

“오빠! 변태!”

짜악! 등을 얻어맞은 김우태가 휘청거렸다. 이제 도화지는 보통 여자의 힘이라 할 수 없었다.

“아니야! 봐, 딱 그렇잖아!”

김우태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황금 토룡이 가시 토룡 한 마리에게 달라붙어 있었는데 조금 전에 가장 화려하게 춤을 추던 녀석이었다. 이마에 상처가 있어서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뭐가 어쨌든 저렇게 황금 토룡이 위로 올라왔을 때가 기회인 것 같아요.”

그런데 문제는 첫 번째 공격이 먹혔을 때 놈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모든 준비를 다 해둬야 할 거예요. 형이랑 누난 가이와 범이에게서 떨어지지 마세요.”

우리 중 가장 강력한 전력이 가이였기에 도망치려고 해도 가이와 함께하는 것이 안전했다.

“너는?”

“사냥해야죠.”

돌아가서 방법을 찾아본들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럴 때는 부딪혀보는 거다.

“쏩니다.”

그그그그극!

시위를 극한까지 당겼다. 놈과의 거리는 약 200미터 남짓. 좀 더 내려가면 좋겠지만 그건 위험부담이 컸다.

‘첫발에 맞춰야 해.’

놈이 아래로 기어들어 가면 골치 아파지니까 어떻게든 명중시켜야 한다.

피잉-!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을 다 쓴 화살이 활을 떠났다.

스아아아아아악!

날아가는 화살이 수직으로 떨어지면서 힘을 더했는데 이때만큼 긴장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푹!

“됐어!”

“박힌다!”

두 사람이 말했지만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강한 회전력까지 먹은 화살이 깊이 박히질 않았던 것이다.

그리곤 곧장 반응이 터졌다.

후우우우우우웅!

우우우우웅!

금빛 토룡이 몸을 꿈틀거리면서 아래로 내려가자 가시 토룡들이 대가리를 쳐들었다.

“온다!”

“어떡하지?”

워낙 압도적으로 큰 놈들이기에 김우태와 도화지의 얼굴이 핼쑥해졌는데 구원투수가 등판했다.

“아앗! 가이야!”

원숭이가 구덩이 쪽으로 달려가더니 훌쩍 뛰어내렸다.

-쿠어어어어어어어!

넓은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몸집을 부풀리며 두 주먹으로 가슴을 치던 가이가 아래로 떨어지며 가시 토룡을 밟았다.

“허얼….”

“위험해! 가이!”

아무리 큰 원숭이라도 가시 토룡들 역시 만만치 않았기에 도화지가 뾰족하게 소리쳤는데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래로 뛰어내리며 활을 들었다.

【뱀파이어 날개가 활성화되었습니다.】

화악 펼쳐진 날개가 중력을 없앴다.

-쿠어어어어어어!

가이가 가시 토룡들과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는데 퍽퍽! 주먹으로 때리고 이짤로 몸통을 깨물어도 가시 토룡은 쉽게 죽지 않았다. 한 놈은 가이의 팔을, 다른 녀석은 다리를 칭칭 감아댔고 구렁이처럼 목을 조르려고 하는 놈도 있었다.

‘빨리 도와야 돼.’

문제는 뾰족한 가시들이었는데 그게 몸을 찌를 때마다 가이가 고통스러운 울음을 터뜨려댔다.

피잉-!

핑!

두 번의 화살을 연속으로 쏘았다. 직선으로 내려간 화살이 황금 토룡의 몸에 푹푹 틀어박혔다.

꿈틀!

본능적으로 몸을 뒤트는 녀석이 다른 곳으로 도망치려고 했지만 이미 가시 토룡들은 다 가이와 싸우고 있어서 몸을 숨길만 한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도망친다!’

황금 토룡이 저 아래의 구멍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날개를 접고 빠르게 떨어져 내렸다.

-우어어어어어어!

바로 옆에서 가이가 가시 토룡과 뒤엉켜 싸우고 있었는데 내가 도와줄 방법이라곤 최대한 빨리 황금 토룡을 잡는 것 뿐이었다.

콰앙! 쾅!

가이의 몸이 벽에 부딪히고 우스스 돌덩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사이 황금 토룡의 몸이 반쯤 구멍으로 사라졌는데 나는 놈의 꼬리 쪽에 착지하자마자 화살을 쏘며 몸을 엎드렸다.

콱 박힌 화살을 꽉 부여잡으며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래, 가라!’

이놈이 가시 토룡과 떨어져야 승산이 있었다. 가시 토룡을 가이가 막아주고 있었으니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

스으으으으윽.

황금 토룡이 구멍을 열심히 기어갔다. 좁은 곳에선 벽에 등이 쓸렸지만 악착같이 참아내며 끝까지 매달렸다.

쿠드드드드드득.

벽이 무너지고 천장에서 돌가루가 떨어졌다. 이놈들은 태생이 지렁이라 자유롭게 흙 속을 오갔다.

‘화살이 비늘을 완전히 뚫지 못했어.’

이놈에게 타격을 주려면 화살이 끝까지 박혀야 어느 정돈 대미지를 줄 것 같은데 이래선 아무리 쏴도 효과가 없어 보였다.

수우우우욱.

황금 토룡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위험을 감지했는지 필사적으로 기어갔는데 몸집이 있다 보니 순식간에 몇 미터씩 이동했다.

그렇게 10분쯤 갔을까?

‘빛?’

시야가 조금 밝아지는 것 같았다.

불쑥!

녀석의 몸이 지상으로 튀어나왔을 때 나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온몸을 적셨다.

솨아아아아아.

내리는 비는 홍수를 만들었고 황금 토룡은 물속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이런!’

이건 내게 최악의 결과였다. 놈이 물속 흙을 뚫고 내려가면 나는 버텨내지 못할 거다.

“안돼애애애애애!”

내가 안타까움에 비명처럼 고함을 지르며 손에 든 화살로 황금 토룡의 등을 콱콱 찍어댈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우정의 증표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우정의 증표?’

경황이 없어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의식하지도 못할 때 뭔가 커다란 게 하늘에서부터 뚝 떨어져 내렸다.

“…?!”

푸드득, 날아온 노란 빛의 그것은 날카로운 발톱을 지니고 있었고 그 발톱이 황금 토룡의 몸을 움켜쥐었다.

“…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꾸우우우우우!

병아리가 주둥이를 한껏 벌리며 울었다. 황금 토룡이 병아리의 발톱에서 벗어나려고 몸을 뒤틀어대자 병아리는 날개를 활짝 펴더니 주둥이로 황금 토룡의 대가리를 찍어댔다.

콱콱콱콱!

나는 휙! 황금 토룡의 몸에서 뛰어내리며 병아리를 보았다. 이렇게 반가울 때가 있나?

지렁이에겐 천적이라 할 수 있는 강력한 존재의 등장에 주변이 초토화되고 있는데 황금 토룡의 머리를 처참하게 박살 낸 병아리가 덥석 황금 토룡의 머리부터 삼켰다.

“에에?”

녀석이 지렁이를 잡아먹는다는 건 전부터 봐서 알고 있었다.

【미션을 완료했습니다.】

꿀꺽, 꿀꺽 병아리 목으로 넘어간 황금 토룡이 완전히 모습을 감췄을 때 재능마켓을 접한 이후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 내 앞에 벌어졌다.

화아아아아아악-!

병아리가 날개를 펴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과식해서 답답한지 몸통을 바닥에 붙이고 앉아서 눈을 꼭 감았다. 어떻게든 토하지 않으려고 버티는 주정뱅이 같았다.

【보상은 재능마켓에서 수령할 수 있습니다.】

“야! 괜찮아?”

내가 외칠 때 병아리는 계속해서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원래도 노란빛의 털을 가진 녀석이었는데 갑자기 그게 황금빛으로 변해갔다.

“…어?”

색만 변하는 게 아니었다.

번쩍, 번쩍!

오래된 형광등처럼 빛이 점멸하면서 그 안에 웅크린 병아리의 몸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허얼.”

짧았던 깃털이 길쭉하게 자라났다. 부리는 뾰족하고 날카롭게 변했고 다리는 3배 굵어졌다.

하지만 아직도 변화는 끝나지 않았다.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839-322-6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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