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금요일.
조우진 형사의 집은 이제 항시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그의 수발을 들고자 자청한 사람들이었지만 외부에서 보면 무슨 교주처럼 떠받들어지고 있었다.
오늘도 역시 거하게 상차림을 받은 그는 손수건으로 입을 닦으며 물었다.
“훨씬 낫군.”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새내기 여대생처럼 아직 풋풋함을 유지한 여자가 고갤 숙였다. 하층에서 넘어와 새로운 몸을 찾은 시녀였다.
“새 몸에 적응할 때까지는 전처럼 힘을 쓸 수 없겠지만 차차 익숙해질 거야.”
“힘이 없다고 해도 여기선 잘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그렇겠지. 이 세상은 우리가 살아온 곳과는 전혀 다르니까.”
개인의 무력보다는 돈과 관력으로 굴러가는 사회.
어쩌면 이게 더 편할지도 모르겠다.
그가 일어나자 그녀가 물었다.
“외출하십니까?”
“그래. 강남역에 다시 가봐야겠어.”
“짚이는 게 있으셨습니까?”
“그건 아닌데 묘하게 거슬려. 거기에 뭔가 있다면 확인해봐야 할 것 같다.”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시녀가 현관으로 걸어가자 아줌마들이 고개를 숙이며 옆으로 물러났다. 이제 그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무려 30명이 넘었다. 처음엔 주로 이 아파트 단지 사람들이었지만 친구에 친척에 연인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가자 주차장에 있던 차에서 두 남자가 내렸다.
“외출하십니까?”
“강남역으로 간다.”
“알겠습니다.”
조우진 형사를 미행하던 형사들이었다. 이제 그들도 완전히 그에게 종속된 상태였다.
두 사람이 뒷좌석에 오르자 차가 출발했다.
그가 조수석 사내에게 물었다.
“특별한 일은 없었나?”
“어제부터 광수대가 영등포구 일대를 뒤지고 다닌다는 얘긴 있었습니다만 왜 그런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영등포라….”
형사 둘을 포섭하니 정보가 편하게 흘러들었다.
“알아내. 티 나지 않게.”
“네!”
두 사람이 대화하는 동안 시녀가 차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영혼 없는 사람처럼 무표정했지만 지금 그녀의 머릿속은 상당히 혼란스럽다. 두 개의 기억이 공존하는데 자동차도 핸드폰도 저 거리도 알고 있지만 낯선 기분이었다.
“당분간 계속 그럴 거다.”
“네.”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여.”
시녀는 그에게도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 이곳 사람들은 0부터 10까지 죄다 가르쳐야 하는 놈들밖에 없었는데 하층에서 넘어온 시녀는 동질감이 진하게 들었다. 이성적이거나 하는 감정은 아니었지만 키우던 개를 다시 만난 기분이랄까?
“노력 중입니다….”
“그래. 복잡한 세상이라 단숨에 이해할 순 없을 거다.”
최상층에 처음 왔을 때는 머리가 박살 나는 줄 알았다. 약육강식 사회에서 살 때는 내가 죽거나 상대가 죽거나 둘 중 하나였지만 이곳은 남의 눈치도 봐야 하고 법도 지켜야 했으며 방심하면 사기를 당할 지경이었다. 그가 익힌 복잡한 마법보다도 더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대한민국이란 나라였는데 이 작은 나라에서 왜들 그리 싸워대는지.
그녀도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을 것이었다.
차가 강남역에 도착하자 뒷좌석 두 사람이 내렸다.
“가서 일 봐.”
“네!”
형사들을 보낸 뒤 조우진은 그녀와 함께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지럽나?”
“조금…. 괜찮습니다.”
여긴 왜 이리도 사람이 많은지. 양쪽으로 늘어선 높은 건물에서 반사되는 햇빛은 계속해서 두통을 유발하고 빵빵대는 차들은 전부 부숴버리고 싶었다.
조우진 형사가 가까운 커피숍으로 걸어갔다.
“괜히 저 때문에 이러실 필욘 없으십니다.”
그녀가 미안한 듯 말하자 그가 웃었다.
“하염없이 돌아다닐 순 없지 않나? 걸리는 게 있을 때까지 여기서 대기하지.”
“아, 네. 그러면 커피로 준비하겠습니다.”
“시럽 없이 따듯한 거로.”
창가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꼰 그는 밖을 보면서 의자에 기댔다.
‘거슬려.’
당연히 복잡한 곳이니까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기가 쭉쭉 빨릴 장소였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본능이 경고하는 어떤 거북함. 그냥 넘어가면 반드시 후회할 것 같다는 찝찝함이 뒤통수에 진득하게 달라붙어서 떨어지질 않았다.
“뜨겁습니다. 로드.”
시녀가 커피를 들고 와서 맞은 편에 앉자 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곤 의식을 노곤하게 풀었다. 사림의 정신은 언제나 최소한의 긴장을 유지한다. 내가 오늘 해야 할 일, 내일은 어떤 일정이 있고 저녁엔 누굴 만나야 하며, 갑자기 비가 오면 어쩌지? 같은 사소한 것부터 날아가던 비행기가 뚝 떨어져서 이쪽으로 오면 어떡하지? 같은 망상까지. 무의식중에도 뇌는 사용자의 패턴에 맞춰서 일을 하고 있다.
이 모든 걸 내려놓는다.
명상은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수련의 방법이었지만 제대로 사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육체가 가동할 수 있는 만큼의 최소한만 남겨두고 뇌를 깔끔하게 비우는 일.
마법은 바로 이 상태의 집중에서부터 시작한다.
뚜우우우우-!
귓가에 아련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이 시작되면 성공적으로 의식 너머의 영역에 접속했다는 의미다.
이제 그는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직관한다. 바로 앞의 테이블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커피에서 나는 향이 코에 스몄지만 미동하지 않았다.
미각, 촉각, 후각 같은 모든 감각이 사라지고 오로지 그와 타인, 물질과 의식만이 떠돌았다.
‘있는데…. 뭔가가 분명히…. 이 근처에….’
이건 일종의 라디오 주파수와도 같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가시 너머에서 분명 존재하는 영역이었고 해당 주파수를 사용하는 자는 무조건 걸리게 되어 있었다.
이 세상엔 없는 라디오.
그러나 마법이나 이능을 사용하기 위해선 반드시 접해야 하는 통로였다.
그런데 이때였다.
“…?”
그가 차창 밖, 어떤 지점을 응시했다.
“…!”
그러더니 눈빛이 변했다.
무언가를 느낌 시녀가 고갤 갸웃하며 입술을 벌렸을 때 그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움직이지 마라.”
“로드….”
시선이 계속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오가는 차들 사이로 그 존재의 모습이 살짝살짝 드러났다. 건너편 인도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는 고등학생? 많아 봐야 18살을 넘지 않을 것 같은 작은 체구의 소녀였다.
그러나 그 존재감만으로 로드가 이토록 긴장하고 있었다. 비록 과거의 힘을 다 되찾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이건 매우 드문 일이었다.
“만약 저자가 공격해오면 너는 즉시 이 주변을 부숴라.”
“…무슨 일이십니까?”
“나도 모른다. 하지만 싸움이 벌어지면 시선을 끌어야 한다. 그래야 저자도 쉽게 나서지 못할 거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할까요?”
“최대한 눈에 띄어야겠지. 몇 사람 죽어도 좋다.”
“네.”
한가로운 커피숍에서 이런 끔찍한 대화가 일상처럼 오가고 있었지만, 거리의 사람들은 평소처럼 아무 일 없다는 듯 움직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이었다.
“…!?”
로드가 아차, 한 표정으로 고갤 휙! 돌렸는데 커피숍 문이 열렸다.
“….”
“….”
언제 이동한 걸까? 가까운 건널목의 빨간불이 파란불로 바뀐 적도 없었는데?
소녀가 똑바로 걸어왔다. 그러더니 시녀 옆에 섰다.
“캐러멜 마키아토. 테이크 아웃 잔으로.”
너무 태연하게 말하는 통에 시녀가 황당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거렸다.
시녀가 일어나서 카운터로 걸어가자 소녀가 입술을 비틀며 시녀가 앉아있던 곳에 엉덩이를 붙였다.
“현명하네?”
“…퀸이겠군.”
“아마도?”
로드는 부글부글 터지려고 하는 힘을 최대한 억눌렀다.
“온 지 얼마나 됐어?”
소녀는 그를 깔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정체를 짐작하지 못하고 있는 거다.
“며칠….”
소녀가 카운터의 시녀에게 고갤 돌렸다. 왠지 어색한 시녀의 모습에 소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참 좋은 곳이지?”
“….”
소녀가 엷게 웃으며 말했다.
“여긴 내 구역이야. 서로 지킬 건 지키고 살자고.”
“어디서 어디까지가 구역이라는 거지?”
“서울. 내 거야.”
“그건 불공평한데.”
“그래서?”
지금 붙으면 이길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99%의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1%의 불확실성이 마법을 망가뜨리는 거다.
“시간이 필요하다. 기반이 없어.”
“좋아. 한 달 주지. 이왕이면 최대한 멀어지는 게 좋을 거야. 곧 내 아이들이 깨어나면 나처럼 친절하진 않을 거니까.”
소녀가 재미있다는 듯 미소 짓고 있을 때 시녀가 음료를 가져왔다.
“예쁜 껍데기를 입었네?”
“….”
옆에 선 시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로드가 움직이지 않는다. 이 보잘것없는 소녀가 거물이란 뜻이다.
그녀가 시선을 돌려 그에게 물었다.
“동료가 더 있어?”
“조금….”
“다 데리고 떠나. 다음번에 날 만날 땐 네 머리가 그 자리에 붙어있지 않을 거야.”
소녀가 생긋 웃으며 컵을 쥐었다.
“이건 잘 마실게.”
그러더니 일어나서 가게를 나가버렸다.
“….”
그가 손을 뻗어 잔을 들었다. 후루룩, 목이 탔는지 커피를 들이켰다.
“앉아.”
“네…. 그런데 로드. 그녀가 퀸입니까?”
“그렇겠지. 저런 존재감은 쉽게 풍길 수 없으니까.”
맹수처럼 누린내 풀풀 내고 다니는 게 아니라 선택적으로 그걸 조절할 수 있는 경지였다.
“힘을 상당히 회복한 모양이야.”
“그러면 이제 어쩝니까?”
“뭘 어째. 아직 한 달 남았잖나.”
그가 피식 웃었다. 오늘은 대충 넘겼지만 다음번엔?
‘누구 머리가 떨어질지 두고 보자고.’
어차피 퀸과는 공존할 수 없었다. 그녀는 하층에서도 오로지 파괴만 일삼았다.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아니면 존재 자체가 파괴에 맞춰진 건진 모르겠는데 세계의 멸망만 위해 움직였다.
그런 그녀가 이곳에 있다?
이 좋은 세상을 위해서라도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다.
“왜 그렇게 거슬렸는지 이제 알겠어. 퀸이 여기에 둥지를 틀고 있었군.”
이건 오해였지만 아무튼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일단 피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것만 마시고.”
그가 다릴 꼬며 느긋한 표정으로 생각했다. 이미 퀸을 만났으니 이제 위험은 없다고 판단한 거다.
“지난 수천 년간 퀸이 거쳐 간 모든 왕국이 파괴됐어.”
그가 공존을 바란다면 그녀는 재앙 그 자체였다.
“이곳마저 그렇게 둘 순 없다. 내 노예들이 무력하게 죽어가는 건 막아야지.”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깊은 생각에 잠겼던 그가 일어났다.
그리곤 말했다.
“계획을 더 앞당겨야겠어.”
.
.
.
“그런데 민준아.”
깊은 곳으로 걸어가는데 도화지가 물었다.
“걔네들은 왜 기를 쓰고 넘어오려고 하는 걸까?”
“누구요? 로드요?”
“응. 괴물들.”
답은 간단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탕 떨어지면 개미가 꼬이잖아요. 양이 있는 곳으로 늑대가 따라갈 거고.”
더 쉽게 말하자면 초식동물이 먹이를 따라 먼 곳도 이동하는 것처럼 이건 본능일 것이다.
“그냥 여기 살아도 되잖아. 왜 굳이 넘어와서 괴롭히려고 할까?”
그러게, 그건 나도 물어보고 싶네. 대답을 해줄진 모르겠지만.
“그냥 모두 행복하게 살면 될 텐데.”
“모두가 누가 같진 않으니까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갤 돌렸는데 저쪽에서 뭔가 움직였다. 작은 촉수 같은 게 아니었다.
크르르르!
범이가 곧장 반응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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