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갱신!’
예상은 했다. 하나도 아니고 셋이나 들어왔으며 나는 김우태나 도화지에 비해 강했으니 미션 난이도가 조정되는 건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유념해야 할 것은 단순히 몬스터가 강해진다거나 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알던 판 자체가 다른 것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솨아아아아아.
풍경은 비슷했다.
【미션:황금 토룡을 사냥하라.】
“황금 토룡이래!”
“무슨 말이지? 황금으로 만든 지렁이랑 얘기냐?”
도화지와 김우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을 때 나는 앞을 보고 있었다. 아직은 땅이 잠잠하다. 하지만 내 기억엔 곧 반응이 올 것이었다.
【황금 토룡의 부산물은 매우 희귀합니다.】
【황금 토룡을 사냥할 때 극히 드문 확률로 희귀한 아이템이 출현할 수도 있습니다.】
10분쯤 지났을까?
“꺄악! 저게 뭐야! 징그럽잖아!”
도화지가 펄쩍 뛰었다.
드디어 거대 지렁이들이 나타난 것이다.
“와…. 진짜 싫다.”
김우태도 넋을 잃었다. 나도 저것들을 처음 봤을 때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당황했었다. 하지만 이젠 어깨를 으쓱하며 태연하게 말할 수 있었다.
“저걸 잡는 미션은 아니니까 비가 그치면 이동하죠. 우린 황금 토룡을 찾아야 해요.”
“그게 어디 있는데?”
“모르죠. 그래도 지금은 움직일 수 없어요.”
콰아아아아아-!
비보다 더 위험한 건 급류였다. 지역 전체가 물바다라서 휩쓸렸다가는 흙탕물에 처박힌다. 일반 강이나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과 저런 흙탕물 급류는 차원이 다르다. 일단 조금이라도 벌컥! 들이켜게 되면 몸과 정신을 통제할 수 없다.
“이렇게 비가 오는 건 처음 보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거냐?”
김우태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도화지도 벽에 등을 기대며 하늘을 보았다.
“저 지렁이는 그냥 둬?”
“황금 토룡은 아니니까 괜히 힘 뺄 이유는 없어요. 비만 오면 나오는 녀석들이니까 필요하면 그때 사냥해도 되고요.”
“응.”
도화지가 원숭이를 품에 안았다. 범이도 내 옆으로 와서 배를 깔고 누웠다. 갑자기 한가롭게 변한 것 같지만 비가 그치면 곧장 밖으로 나가야 해서 미리 방향이라도 잡아두면 좋다.
“전에 제가 저쪽으로 가봤는데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오늘은 안 가본 곳으로 목표를 잡을게요.”
“그래.”
김우태의 말을 도화지가 받았다.
“그 병아리는 어디에 있어? 빨리 보고 싶다!”
“비가 오니까 어디 안전한 곳에 피해 있겠죠. 곧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응! 귀엽겠다!”
글쎄, 그 녀석을 실제로 보면 그런 말은 안 나올 텐데.
2시간쯤 지나자 빗줄기가 차츰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우린 한 번 더 장비를 점검하면서 비가 완전히 멎길 기다렸다.
“출발할까요?”
“응!”
찰박, 찰박.
젖은 땅을 밟으며 우린 저 먼 곳에 보이는 산을 행해 걸었다. 얼마나 먼지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지만 이런 이정표가 있으면 방향을 잃지 않을 것이다.
‘황금 토룡이라….’
보통 황금이란 건 무척 귀한 것에 붙이는 이름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황금 지렁이는 매우 특수한 녀석일 것이 분명하니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녀석이 어디에 있느냐가 관건인데.’
일단 계속 걸어보는 수밖에.
“와, 거짓말처럼 날이 개네.”
구름이 걷히자 맑은 빛이 대지에 내려왔다. 땅의 수분이 보석처럼 반짝거렸고 썰물처럼 사라진 홍수는 아까 그곳이 여기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방심하면 안 돼요. 비가 또 언제 쏟아질지 모르거든요.”
“여긴 날씨가 왜 이래?”
“이유가 있겠죠.”
전엔 그저 미션을 위한 장소니까 아무리 이상해도 그러려니 했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볼수록 사연이 있었고 대표적으로 용암지역이 그랬다.
‘이곳 또한 마찬가지겠지.’
큰 지렁이도 정상적이지 않았고 계속된 폭우도 무언가 뒤틀려있다고 생각하면 바로잡을 수 있지 않을까?
‘키 포인트를 찾아야 해.’
반나절을 걷자 풍경이 조금 달라졌다. 진흙 대신 파릇한 초목이 보였다. 울창하진 않았지만 분위기가 변하니 기분이 환기되었다. 범이도 좋은지 원숭이와 함께 뛰어다녔는데 도화지가 웃으며 말했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평화롭네. 바람도 시원하고.”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날씨였지만 이 순간을 즐기는 것도 자연이 준 작은 선물이라는 걸 알기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1시간이 더 지났다.
‘곧 해가 질 건데.’
정글보단 빨리 끝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선택한 미션인데 장기전이 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지평선에 점차 가까워지는 해를 보면서 나는 쉴 곳을 찾아 주변을 눈으로 훑었는데 김우태가 말했다.
“저기, 저쪽에 뭔가 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뭐지?”
도화지도 궁금한 듯 움직였다.
큰 바위 아래.
이런 걸 돌산이라고 불러야 하나? ‘산’이라는 말을 붙이기엔 작았지만 5층 빌라 높이 정도 되는 바위가 서 있고 일부가 무너졌는지 돌무더기가 있었다.
김우태가 발견한 건 돌무더기에 붙어있는 이상한 것들이었다.
“버섯인가?”
“아니에요. 이거, 움직여요.”
김우태와 내가 바짝 접근해서 말했는데 도화지가 뾰족하게 외쳤다.
“어엇! 나, 이거 본 적 있어! 그때는 훨씬 크고 징그러웠지만! 이렇게 생겼었어!”
말미잘처럼 생겼는데 촉수가 있었다. 손톱만 한 것부터 주먹보다 큰 것까지 크기도 제각각이었는데 처음 보는 생물이라 무척 낯설었다.
이게 자라서 촉수 괴물이 되는 건가?
“일단….”
나는 주변을 보면서 말했다.
“오늘 밤은 이 근처에서 보내죠. 비가 와도 이 위로 올라가면 될 것 같으니까.”
쉰다고 해도 텐트를 치거나 하는 건 아니라서 각자 편한 곳에 앉았다.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기온이 떨어졌다. 나는 나무 화살을 뽑아 불을 피운 뒤 둘러앉은 일행에게 말했다.
“혹시 흩어지게 되면 저 산을 기준으로 움직이도록 해요.”
추적술이 있다고 해도 수고를 줄이면 좋다.
타닥, 타닥.
간단히 배를 채우며 몸을 녹였다. 완전히 해가 지고 달이 휘영청 떠올랐다.
“하아암, 좀 잘까?”
김우태가 기지개를 켰을 때였다.
사라라락. 사라락.
뭔가 움직이는 소리에 우린 동시에 고개를 획! 돌렸다.
“히이익? 움직인다!”
“그렇다니까! 저것들! 원래 움직이는 애들이었어!”
김우태와 도화지가 바위를 보면서 비명을 질렀다. 게처럼 움직이는 것들이 너무도 끔찍했다.
“흐음….”
나는 뭐 이제 이런 거에 이골이 났다. 혹시 모르니 활을 단단히 쥐고 녀석들에게 다가갔다.
사라락, 사라라락.
놈들이 지네처럼 움직였는데 짧은 다리가 바위 위를 기었다. 처음엔 모두가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것 같더니 곧 한 방향으로 길게 늘어서서 이동했는데 달빛을 받은 촉수들이 바르르 떨어댔고 오리들처럼 줄지어 저쪽으로 향했다.
“어딜 가는 거지?”
김우태가 이상하다는 듯 이마를 찌푸렸다.
“모르겠어요. 일단 같이 가보죠.”
미션을 위해서라면 이런 작은 단서도 다 소중했다. 바위에 붙어있던 모든 녀석들이 일어나서 기미처럼 졸졸졸 바닥을 기었다. 우리가 옆에서 함께 걷고 있었지만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수상하지?”
김우태가 물었다.
“네, 근데 뭐가 뭔진 모르겠어요. 미션도 갱신되지 않고.”
고갤 들어 저쪽을 보았지만, 이 녀석들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렇게 1시간을 녀석들과 함께 이동했다. 그리 빠르지 않았기에 천천히 걷는 정도의 속도였는데 둔덕을 넘자 도화지가 탄성을 터뜨렸다.
“와…! 저거 뭐야!”
저 아래, 흡사 하수구처럼 뚫린 구멍으로 사방에서 몰려온 작은 것들이 줄지어 들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따라온 녀석이 다가 아니었던 것이다.
“엄청 많은데? 어디로 가는 거지?”
김우태가 놀랄 만했다. 지금도 모여드는 긴 줄은 끝이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었고 인근에 있던 모든 녀석이 죄다 온 것 같았다.
“가보면 알게 되겠죠.”
“으으윽, 저기로 들어간다고? 쟤들이랑?”
도화지가 소름이 돋았는지 손으로 팔을 비볐다.
“저 혼자 정찰하고 와도 되긴 한데 괜히 그러다가 저만 따로 떨어지면 곤란하니까 함께 가요.”
“으응.”
대답은 하는데 얼굴을 계속 절레절레 흔드는 도화지였다. 왠지 저 구덩이 안으로 내려가면 촉수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을 것 같았고 그게 온몸에 달라붙을 것 같은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다. 아마 누구라도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원숭이가 한 놈을 덥석 집었다. 그러더니 한참을 고민하다가 던져버렸다. 먹을 게 아니란 판단을 한 것 같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구덩이로 걸어갔다. 점차 지대가 낮아지면서 바람에 흙이 쓸려 내렸다.
‘확실히 전에 없던 현상이야.’
이전 미션에선 토룡과 악천후만 상대했었는데 오늘은 전혀 다른 전개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게 미션과 전혀 상관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녀석들이 이러는 이유가 반드시 있을 것이고 꼬리를 따라가면 몸통도 보일 것이라고 믿었다.
“저부터 갈게요. 조심하세요.”
“응!”
“너도 조심해!”
구멍은 약 3미터 정도의 폭이었는데 거의 수직으로 떨어지고 있어서 중심을 잘 잡아야 데굴데굴 구르지 않을 것이다.
‘비 때문인지 아직도 젖어있어.’
촉촉한 흙에 엉덩이를 붙이고 자세를 낮춰 미끄럼틀을 내려가는 것처럼 아래로 향했는데 이 와중에도 촉수 달린 것들은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바스스스스.
흙이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김우태와 도화지도 진입한 것 같았다.
5분쯤 내려왔을까?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가자 나는 활을 들었다. 그리곤 불화살을 시위에 걸고 저 아래로 쐈다.
투웅-!
불붙은 화살이 쭉 나가자 어둠이 밝아졌다.
‘깊어.’
상당히 내려갔는데도 끝이 보이지 않았고 화살은 바닥에 박혔다. 굴곡이 있어서 저기까진 가야 다음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사삭, 사사사삭.
이동하는 것들을 따라서 나는 속도를 좀 더 냈다. 김우태와 도화지가 시야를 확보할 수 있게 곳곳에 불화살을 박아두며 내려갔다.
이윽고 아까 쐈던 화살에 도착했을 때 구멍은 완만하게 변했고 앉아 미끄러지는 게 아니라 서서 움직일 수 있는 경사가 나타났다.
“…으음.”
푸르스름한 빛이 저 앞에서부터 쏟아졌다. 조금 더 걷자 풍경이 180도 변했고 어두침침하지만, 파란빛을 내는 돌들이 보였는데 돌이 어떻게 빛나는진 모르겠지만 표면이 반질반질했다.
손을 뻗어서 돌을 만져보았다.
“….”
돌을 만진 손가락에 빛이 옮았다. 꼭 형광페인트 같다고 해야 하나?
“민준아, 뭔데?”
어느새 김우태가 바짝 다가와 있었다.
“모르겠어요.”
작은 녀석들이 계속 이동하고 있으니 더 따라가 봐야겠다.
‘더듬이는 반응하지 않았으니까….’
치명적인 위기가 닥치진 않을 것 같긴 한데 이상하게 가슴이 묵직했다.
“형, 긴장 풀지 마세요.”
“그렇지 않아도 오줌마려워 죽겠다. 야.”
이제 완전히 평탄해진 땅을 밟으며 우린 형광 빛이 나는 공간을 지나 안쪽으로 계속해서 걸어갔고 발치엔 여전히 작은 것들이 촉수가 흔들거렸다.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839-322-6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