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172화 (172/277)

#172화

“어디든 일단 가세. 놈들이 변심할 수도 있으니까.”

사람들이 서둘러 자릴 이탈했다. 보이는 뱀파이어는 없었지만 그게 더 공포심을 자극했다. 다들 어디로 간 것일까?

규우우.

범이가 내 옆으로 붙자 나는 녀석의 머릴 쓰다듬으며 저쪽을 바라보았는데 멀리 산이 보였고 푸른 하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화창했다.

‘미션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어.’

단순히 싸워서 이기는 게 끝이 아니다. 이번 미션은 호위였고 저 소녀가 잘못되면 나도 치명적인 상황을 맞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보수도 확실했다. 이미 얼마의 포인트를 벌었는지 모른다. 이번 미션만 끝나면 재능마켓에서 여유롭게 쇼핑을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미션이 시작했을 뿐이었으니까.

‘그놈, 상당히 상했어.’

뱀파이어 백작은 이제까지 내가 상대했던 인간 형태의 적중에서 가장 강했다. 그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놈은 처음이었다.

‘나도 그만큼 강해져야 한다는 거겠지.’

그걸 뛰어넘어야 로드나 퀸 같은 놈들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고.

성벽을 나서자 너른 평지가 나타났다.

“도망친 사람도 분명히 있을 텐데 그들이 무사했으면 좋겠어.”

대장이 아련한 눈길로 주변을 바라보다가 발길을 재촉했다. 괴물들이 난입했을 때 사람들은 혼비백산해서 도주했을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으니 어딘가에서 군집을 이룰 수도 있었다.

“그런데 대체 그놈들의 목적이 뭔가?”

그가 나를 보며 물었다.

“놈들은 사람의 피를 마시고 살아가는 괴물입니다.”

내가 아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래서 반드시 사람이 있는 곳에서 살려고 하겠죠. 사람이 없으면 그놈들 또한 피를 마시지 못하니까요.”

“그런 끔찍한….”

“어쩌면 우릴 놔주는 것도 훗날을 위해서일지도 모릅니다. 이건 좀 잔인한 비유겠지만 돼지나 소, 양도 씨를 말리진 않지 않습니까? 새끼를 낳아야 계속 기를 수 있으니까요.”

“하… 우리가 가축이라는 건가?”

“놈들은 그렇게 여길 수도 있다는 겁니다.”

“빌어먹을. 이 사실을 모두에게 알려야 할 텐데.”

그러고 보니 전에 비궁에 왔을 때 흑마법사를 봤었다.

“왕국에 마법사가 있습니까?”

“없네. 그러한 자들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우린 믿지 않았지.”

뱀파이어가 눌러살기 시작하면서 왕국이 변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가 훨씬 이전인 것 같네.’

내가 미션을 하며 거쳐왔던 모든 곳의 시간과 시대가 일치하는 게 아닐 수도 있었다. 실제로 거대 원숭이만 봐도 녀석이 어릴 때부터 지금의 상태까지 마주했었다.

‘여기에도 어떤 정보가 있다는 거겠지. 이유 없는 미션은 없을 거니까.’

로드, 퀸에 이어 이번 미션의 정보는 뱀파이어 일족일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는 건 내가 최종적으로 상대해야 할 절대자가 셋이라는 뜻이었다.

도화지에게 들었던 것도 비슷했었다.

‘셋이라.’

우리도 셋이니까 성장하기만 한다면 못 싸울 것도 없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계속 걸었다.

반나절을 걷자 왕국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사람이 다니는 길조차 사라졌다.

“이쪽으론 마차길도 없다네. 저 산맥으로 이어지는데 그쪽이 워낙 험해서 예로부터 다니지 않았지. 몬스터도 살고 있고 곰 같은 포악한 맹수도 종종 목격되었어.”

“잠시 쉬었다 갈까요?”

“나도 마침 그 얘길 하려던 참이었네.”

어른들은 몰라도 아이들이 지쳤다.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기 전에 배라도 채워야 했다.

“….”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주저앉자 나는 소녀에게로 걸어갔다. 내가 지켜야 할 아이. 눈이 크고 피부가 하얗다.

나는 소녀에게 다가가서 손을 내밀었다. 가방에서 꺼낸 초코바를 녀석이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먹을래?”

“…이게 뭔데요?”

“맛있는 거.”

100여 명을 다 먹일 정돈 안 되지만 아이들에게 하나씩은 돌아갈 것 같다.

소녀가 조심스럽게 받아들자 나는 빙긋 웃으며 다른 아이들에게 걸어갔다. 아이들과 친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이 선물 아닐까? 작지만 이건 이 세계에 없는 것이었으니 더욱 특별할 것이었다.

-우와!

-맛있어!

-이게 뭐지?

쿠키 같은 건 먹어봤어도 이렇게 달콤하고 매력적인 간식은 처음이었을 아이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아이들이 밝아지자 지켜보던 어른들도 흐뭇한 미소가 생겼다.

대장이 내게 걸어왔다.

“저런 건 어디에서 구했나?”

“이곳저곳을 떠돌았으니까요.”

“고맙군. 귀해 보이는데. 나중에 언제든 왕국을 되찾게 되면 사례는 톡톡히 하겠네.”

“그런 걸 바란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소녀를 힐끔거리며 대장에게 물었다.

“왕께선 변고를 당했습니까?”

“그렇다네. 후작님도 가장 먼저 괴물에게 목을 물어뜯겼고…. 놈들은 마을이 아닌 왕궁을 첫 번째로 습격했고 그 때문에 대비할 수 없어서 피해가 컸네. 우린 필사적으로 빠져나왔지만 그러지 못한 분들이 더 많았지.”

죽은 사람을 되살릴 방법은 없었다. 산 사람이 살아가는 게 더 시급했다.

“몬스터가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놈들입니까?”

우리가 가야 할 산을 보며 묻자 대장이 대답했다.

“고블린을 토벌한 적도 있었고 오크를 봤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금도 그것들이 살고 있는진 모르네.”

“알겠습니다.”

그 정도라면 위협적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우린 아이들이 충분히 휴식할 수 있게 2시간 정도 쉬다가 다시 여정을 시작했다. 3일이란 시간 동안 최대한 멀리 가던지 안전한 곳을 확보해야만 했다.

어느덧 밤이 찾아왔다.

걷던 아이들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자 어른들이 아이들을 하나씩 업었다. 밤이라고 해서 무작정 자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고 달이 밝았기에 조심해서 걸어가면 조금이라도 멀어진단 생각이었다.

대장이 물었다.

“아까 보니까 활을 쓰던데. 사냥꾼인가?”

“가장 잘 사용하는 것이 활일 뿐입니다. 사냥이 목적은 아니었고요.”

“음, 자네를 보면 상당히 훈련한 몸 같아서 물어봤다네. 활만 사용하는 사냥꾼들은 주로 날렵한데 그러기엔 근육이 많아.”

“이런저런 운동을 했었습니다.”

“검도 쓰나?”

“잠깐 배운 적은 있습니다.”

그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익혀보겠는가? 우리 기사들이 배우는 검과 방패 다루는 법이라네.”

“이걸 제가 받아도 되는 겁니까?”

“자네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겠지. 더군다나 이제 왕국이…어떻게 될지도 모르겠고 혹시라도 우리가 잘못되면 기사단의 맥이 끊어지네.”

그가 뒤쪽 소녀를 응시하면서 말했다.

“만일 우리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자네가 아가씨를 모셔주겠나?”

그는 일부러 공주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노력해보겠습니다.”

내 미션 자체도 저 소녀를 지키는 것이었으니 마다할 이윤 없었다.

“고맙네. 자네에겐 계속 고맙다는 말만 하게 되는군.”

그가 웃으며 작은 책을 내밀었다.

【스킬북을 얻었습니다.】

【스킬북을 익히면 검술과 방패술 중급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익힌 스킬은 사용할수록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와, 스킬북?’

스킬북은 재능마켓에서도 매우 비쌌다. 그런데 이건 초급도 아니고 중급이었다. 미션이 중급으로 올라가면서 내가 얻는 스킬도 한 단계 성장한 것 같았다.

【스킬북을 사용하시겠습니까?】

‘당연!’

【중급 검술을 익혔습니다.】

【중급 방패술을 익혔습니다.】

재능마켓 시스템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게 바로 이거였다. 기사들은 검술이나 방패를 잘 쓰려고 엄청난 세월을 연습했겠지만 나는 스킬북 하나로 비슷한 성취를 이뤄낼 수 있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많은 포인트를 써야 하거나 운이 좋아야 아이템을 얻지만, 상대적으로 시간을 절약한다는 것은 장점이었다.

‘예상 외의 소득이었어.’

검과 방패는 없었지만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익힌다는 건 매우 중요했다.

4시간을 더 걸었을 때 대장이 말했다.

“이쯤에서 해 뜰 때까지 눈 좀 붙이지.”

그의 말에 내가 활을 들었다.

“주무십시오. 제가 불침번을 서겠습니다.”

“자네도 쉬어야 하지 않은가?”

“저는 여행을 오래 해서 익숙합니다.”

“음, 그러면 내가 조금만 쉬다가 교대하겠네.”

그의 말이 끝나자 나는 홀로 더 높은 지대로 올라갔다. 사방이 한눈에 보여야 대비하기 쉽다. 특히 나는 활을 사용하니까 보초엔 특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오늘 밤만 무사히 넘겼으면 좋겠는데.’

주변이 내려 보이는 나무에 들을 기대고 서자 범이가 근처에 엎드려 몸을 말았다. 녀석도 피곤했는지 곤장 눈을 감았다. 그런 범이의 귀가 쫑긋거렸다.

기척을 느낀 거다.

소녀가 걸어오고 있었다. 어리지만 기품이 느껴지는 걸음과 자세였다.

소녀가 내게 오더니, 양손으로 치마를 잡고 살짝 무릎 굽혀 인사했다.

“우리를 도와줘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나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직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인사는 나중에 받지.”

공주라지만 다들 쉬쉬하는데 내가 존칭을 쓰는 것도 이상할 것이어서 자연스럽게 대했다.

“아까… 그 간식은 어디에서 구했나요?”

내가 주머니에서 아까 것보다 좀 더 큰 걸 꺼내 건넸다. 보초 서다 먹으려 했던 건데 에너지 드링크가 있어서 반드시 이걸 먹어야 열량을 얻는 것도 아니었다.

“어머? 이건 또 뭔가요?”

“초코파이. 먹어봐. 맛있을 거다.”

“당신은 신비한 걸 많이 가지고 다니시네요. 이 동물도 그렇고.”

“여행자니까.”

“모든 여행자가 다 당신 같진 않죠?”

“내가 특별한 편이지. 어서 먹어. 배고플 텐데. 그거면 잠이 올 거다.”

내가 윗부분을 뜯어주자 소녀는 초코파이를 물끄러미 보다가 깨물었다.

“…!?”

그 표정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하하! 천천히 먹어. 체한다.”

내가 지켜야 할 대상이었기에 이 녀석은 항시 체력이 유지되어야 했다. 여차하면 이 녀석만이라도 살려서 도망칠 생각도 했다.

“와… 이렇게 부드럽고 달콤한 건 처음이에요.”

감탄하던 소녀가 나머지를 주머니에 넣었다.

“왜? 더 먹지 않고.”

“왠지 그러면 안될 것 같아요. 생각날 때 조금씩 먹을게요.”

“그러던지….”

피식 웃으며 대꾸했는데 소녀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뭐야?”

“계속 받기만 했으니까…. 귀한 건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여행하시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오래된 추적자의 나침반을 얻었습니다.】

“내가 받아도 되는 건가?”

“저는 쓸 줄도 모르는걸요.”

내가 웃으며 끄덕였다.

【오래된 추적자의 나침반: 특수한 마법이 걸려 있어서 대상을 지목하면 그 방향을 침이 가리킨다.】

‘오호?’

나침반을 보면서 소녀를 떠올려보았다.

‘이렇게 하는 건가?’

【대상이 지정되었습니다.】

바늘이 소녀를 향해 똑바로 움직였다.

‘꽤 쓸만한데?’

이거면 도화지나 김우태와 흩어져도 찾을 수 있는 거 아닌가?

스킬북에, 아이템에….

‘이렇게 퍼주는 걸 보면 뭔가 있다는 건데.’

재능마켓에 공짜는 없다는 걸 몸소 체험 중이었기에 묘하게 불안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자둬.”

“네, 그럴게요.”

소녀가 미소 지으며 돌아설 때였다.

‘…?’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839-322-6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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