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170화 (170/277)

#170화

유령들이 계속해서 지나갔다. 이들을 지켜보면서 나는 천천히 걸어갔는데 아래층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쉽사리 적응이 힘들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이었다.

화악-!

풍경이 변했다.

'어?'

한 걸음 차이였는데 놀라서 뒤로 물러났더니 여전히 어두운 공간이었다.

'음….'

어차피 외길이었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으니 집중력을 끌어올리며 앞으로 갔다.

훅!

다시 바뀌는 주변을 보면서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환상인가?'

저 앞에 사람들이 있었다. 아까 본 유령 같은 것들보다 매우 선명했고 옷도 깔끔했다.

뭘 보여주려는 건진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걸어갔는데 말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는 안전할까?

-지하로 통하는 입구를 완전히 막아뒀으니까 들어오지 못할 거야.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야 해?

-답답해도 참아. 다 죽게 생겼다고!

-그 괴물들이 대체 우리한테 왜 이러는 거야?

사람들은 공포에 질린 얼굴이었다. 그들의 얘길 듣자 하니 변고가 생겨 모두 이리 피신한 것 같았다. 애와 노인도 있었고 주로 여자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괴물'에 관한 얘길 했다.

나는 좀 더 그들에게 가까이 접근했다. 내가 보일 거리였는데 전혀 반응이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이것도 과거의 어느 지점인 건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더 들어보면 알게 되겠지.

16세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말했다.

-저들에게 물리면 괴물로 변한다던데 진짜일까요?

중년의 여자가 대답했다.

-헛소문일 거야. 그런 끔찍한 일이 세상에 있겠니?

이들을 지나쳐 더 걸어갔다. 그러자 벽에 기대앉아있는 무리가 보였다. 약 30여 명이었는데 복장을 보니 일하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괴물들이 언제 떠날까?

-모르겠어. 나는 그것들이 우릴 찾을 때까지 떠나지 않을 것 같아.

-재수 없는 소리!

-우리 가족도 무사히 도망쳤을까?

'흐음….'

사람들을 보며 더 걸었다. 지하 3층과 다르게 이번 길은 굉장히 길었는데 감옥 같은 시설물은 없지만 중간중간 대형 창고들이 보였다. 와인과 곡물 같은 것들이 가득한 걸 보면 규모가 작은 마을은 아닌 것 같았다.

더 걸어가자 갑옷을 입은 남자들이 50여 명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나이 든 남자가 말했다.

-우리 목숨을 걸고서라도 여긴 지킨다.

-네! 하지만 대장님, 그놈들. 창에 찔려도 죽질 않았습니다.

-목을 자르면 된다. 그런 상태로 살 괴물은 없어.

-놈들 숫자가 얼마나 될까요?

-적어도 100놈 이상은 된다고 생각해야지.

늦은 밤이었다. 갑자기 성이 발칵 뒤집혔는데 사람들의 비명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고 경비대가 출동했을 때는 이미 걷잡을 수 없었다. 서둘러 귀빈들만 이쪽으로 대피시켰는데 이 과정에서 괴물 몇 마리와 싸웠고 놈들이 얼마나 강한지 체험했다.

-그 송곳니와 긴 손톱…. 인간은 아니었겠죠?

-절대 아니야. 놈들은 훈련된 우리보다 몇 배 빨랐다. 사람은 그렇게 움직일 순 없어. 몬스터일 거다. 겉모습에 속지 마.

멀리서 보면 사람과 구분할 수 없을 것이다. 옷도 입고 있고 피부도 하얗다. 하지만 가까워지면 그 충혈된 눈만으로도 섬뜩하다.

그런데 저쪽에서 아련하게 비명이 들려왔다.

-아아아아아악!

사내들이 흠칫 놀랐다.

-벌써 여기까지 온 건가?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 싸워야지!

-다들 자릴 지켜! 한 놈도 살려 보내선 안 된다!

사내들이 칼과 방패를 들었다. 똑같은 갑옷을 입은 걸 보니 소속된 사람들이었다.

모두 조마조마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나무 문이 콰앙! 부서졌다. 그리곤 한 사람이 뛰어 들어왔다.

"흐으…."

그의 입가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왔다!

-그 괴물이야!

괴물은 혼자가 아니었다. 홍수처럼 와르르르 안으로 들어오는 그 숫자는 순식간에 열이 넘었는데 나는 활을 치켜들었다. 놈들의 눈동자가 나를 또렷하게 응시하는 걸 봤기 때문이다.

"…흡."

벽으로 붙으며 활을 겨냥했다.

-목을 잘라!

-절대 뚫리지 마라!

사내들이 괴물들과 격돌했다.

-아아아악!

-죽어! 이 괴물아!

-내, 내 팔! 아아악!

저들이 괴물이라고 부르는 뱀파이어들은 힘이 무척 강했는데 손톱으로 갑옷을 꿰뚫어버리기도 하고 잡은 사내의 팔을 통째로 뜯어내기도 했다.

'아까 지하 3층에서 만났던 놈들보다 강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놈들이 아까 거쳐온 뱀파이어보다 빠르고 힘도 셌다.

나는 좀 더 뒤로 물러나며 상황을 주시했다. 그러다가 한 놈이 사내들을 훌쩍 뛰어넘어 이쪽으로 향했다.

【인내가 발동합니다.】

맞을지 안 맞을 진 모르겠지만 일단 쐈다.

퍼억-!

가슴에 정확히 화살을 맞은 뱀파이어가 뒤로 날아갔다. 내 화살에 실린 힘은 몇 가지 스킬이 중첩되어 어마어마하다.

'그걸 피했다고?'

심장을 노렸는데 놈이 몸을 비틀어버렸다.

쓰러졌던 놈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나를 노려보며 상체를 웅크렸는데 이미 주변은 온통 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사내들이 필사적으로 저항해봤지만 뱀파이어가 너무도 강했다.

'이놈들은 나를 인식하고 있어. 빨리 처리해야 돼.'

사내들이 전멸하기 전에 뱀파이어를 상대해야 했다.

피잉-!

다시 화살이 날았다. 그와 동시에 놈이 위로 훌쩍 뛰었는데 이미 나도 거기까진 예상하고 있었고 다른 화살을 꺼내 빠르게 시위를 당겼다.

퍼억-!

놈의 몸에 불화살이 박혔다.

-끄아아아아악!

'역시 불은 통해.'

웬만한 상처엔 끄떡도 안 하는 놈들이지만 몸에 불이 붙으면 비명을 질러댔다.

화륵!

화르르륵!

나는 불화살을 계속해서 쏴댔다. 수많은 화살이 뱀파이어들에게 날아가서 박혔는데 가장 앞에 튀어나와 있던 녀석이 축 늘어지자 메시지가 떴다.

【중급 뱀파이어를 사냥했습니다.】

【6,000P를 얻었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역시 포인트도 더 많고 '중급'으로 놈들의 이름이 바뀌었다.

'여기에선 저놈들을 사냥하는 게 목적인 건가?'

그렇게 생각하곤 미친 듯이 화살을 난사했다. 사람들이 다 죽어버리면 나도 놈들을 한꺼번에 막아내긴 어려울 것이었다. 여차하면 여길 다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겠다는 것까지 염두에 두면서 계속해서 화살을 쐈는데 상처를 입은 뱀파이어들이 많아지니 사내들이 힘을 내기 시작했다.

'오, 좋아!'

나는 사람들을 지원하면서 계속해서 뱀파이어들을 몰아붙였다.

-힘내라!

-이놈들, 약해지고 있어!

-심장을 부숴도 되는 것 같습니다!

-몰아쳐라!

한 놈이라도 뚫고 나가면 뒤쪽 여자와 아이들이 전멸할 것이란 걸 아는 사내들은 목숨 걸고 싸웠다. 이미 죽음을 각오한 듯 용맹하게 외치며 칼과 방패로 뱀파이어를 막아냈는데 조금씩 뱀파이어들이 뒤로 밀리기 시작하자 사내들은 더욱 큰 함성을 지르며 사기를 끌어 올렸다.

그런데 내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앗! 괴물이 여기까지 왔어!

소란에 여자들이 와본 것이다.

-물러서! 절대 이쪽으로 와선 안 돼!

사내들이 외치자 여자들은 겁먹은 표정으로 다시 뛰어갔다. 이 여자들의 모습에 뱀파이어들이 더욱 흥분했다.

-힘내라! 우리가 이길 수 있다!

쩌렁쩌렁 고함이 사방에 메아리쳤다. 그러나 상황이 낙관적이지 않았다. 뱀파이어는 지치지 않았지만, 사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부상도 많았고 움직임도 느려졌다.

그래서 내가 더 열심히 도울 수밖에 없었다.

'이놈들, 진짜 빨라.'

화살을 쏘는데 놈들이 마지막 순간에 치명상을 피해버렸다. 학습까지 했는데 화살에 맞으면 빠르게 그걸 손으로 잡고 뽑아버렸다.

"…."

어느 순간이 되자 이제 놈들의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들한테 막혀서 넘어오지 못하곤 있지만, 벽이 허물어지면 다음은 내 차례였다.

-으아아아아악!

사내 하나가 방패와 함께 벽에 처박혔다.

-이런! 한센!

이름이 한센인 남자는 다시 일어서려고 했지만 그의 앞엔 이미 뱀파이어가 있었다.

-허어어억? 아, 안돼애애애!

뱀파이어가 한센의 목을 물어뜯었다.

-저, 저놈이!

-한센!

다리를 버둥대다가 이내 축 늘어진 한센을 안타까운 목소리로 불러보았지만 뱀파이어는 만족한 듯 일어서며 이쪽을 바라보았다. 턱에서부터 가슴까지 진득하게 흘러내린 피는 너무도 선명했다.

-이놈들! 죽어버리겠다!

나도 옆으로 움직이며 각도를 만들자마자 화살을 날렸다.

쌔애애애애액!

놈들과의 거리가 10미터 정도라서 일단 내가 조준을 끝내고 쏘면 피하기란 불가능했다.

푸욱-!

그런데 이놈들의 반사신경은 상상을 초월했다. 심장을 노리면 어깨나 팔에 맞았다.

'오냐. 누가 이기나 해보자.'

이렇게 반응이 빠른 표적은 처음이었기에 나도 오기가 생겼다. 화살이 놈들에게 더 빠르게 닿게 하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놈들과의 거릴 좁히는 것이었다.

나는 더 접근하면서 활을 쐈다. 이렇게 가까워지면 놈들이 순식간에 다가올 수도 있었지만,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사내들이 위험했다.

-카아아악!

-캬아아!

5미터로 줄이니 화살이 놈들의 얼굴이나 심장 언저리에 박혀 들기 시작했다.

【중급 뱀파이어를 사냥했습니다.】

【활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연사 속도가 상승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피피피피핑!

사내들을 지원하면서 차근차근 놈들의 숫자를 줄여갔다. 처음엔 13마리였는데 이제 그 숫자가 반으로 줄었다. 순식간에 4만 포인트 이상을 누적했고 남아 있는 놈들도 상태가 좋지 않아서 곧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죽어라! 이놈들!

-더 힘내라! 우리가 이겼다!

-와아아아아아!

사내들이 더 힘껏 칼을 휘두르고 방패로 놈들을 쳐냈다.

【6,000P를 얻었습니다.】

한 녀석이 더 쓰러졌을 때였다.

훅-!

어떤 놈이 부서진 문을 뚫고 나타났는데 놈은 다른 뱀파이어완 존재감부터 달랐다. 충혈된 눈과 긴 손톱은 같았지만, 더 차분하고 무서웠다. 심지어 말까지 했다.

-이런 버러지 같은 것들이….

【뱀파이어 백작이 난입했습니다.】

'백작?!'

녀석이 등장하자 다른 뱀파이어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쉬운 상대가 아니야.'

위기감을 느끼자마자 나는 뒤로 황급히 물러났다. 놈과 마주친 시선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놈이 문제였구나?

놈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놈이 훌쩍 날아올랐는데 사내들의 머리를 너무도 쉽게 뛰어넘었다.

나도 대응하고 있었다.

【철벽을 사용합니다.】

쌔애애애액!

첫 번째 화살이 놈에게 날아갔다. 심장을 노렸는데 놈이 팔로 화살을 막았다.

'이런?'

곧장 두 번째 화살도 쐈다.

푸욱-!

또 팔로 화살을 막았다.

"젠장!"

나는 뒤로 뛰면서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아아아앗! 놈을 막아야 해!

-뚫렸다!

-사람들이 위험하다!

그래, 나도 안다고!

【무빙 샷이 활성화 중입니다.】

놈도 내 불화살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는지 두 팔을 교차해서 몸을 보호하고 달려오고 있었는데 5미터, 3미터…! 바짝 따라붙었다.

'뭐 이렇게 빨라?'

불붙은 화살 때문에 두 팔이 타들어 가면서도 놈은 멈추지 않았다.

-잡았다! 이놈!

불길 뒤로 보이는 놈의 눈동자가 나를 향해 웃고 있을 때….

"제길!"

나는 이제 마지막 화살 하나면 끝이란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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