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168화 (168/277)

#168화

'피의 저주라….'

언제나처럼 이런 메시지만으론 전혀 이 앞에 벌어질 일을 확신할 수 없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진입했다.

'어두워.'

일단 미션이 중급으로 올라갔다는 것 자체가 이제까지완 전혀 다른 위험을 경고하고 있었으니 곧장 대응할 수 있도록 활을 겨눈 채 계속 걸어갔는데 바닥이 살짝 위로 경사지는 것 같다고 생각될 때 메시지가 다시 나타났다.

【지하 3층에 진입했습니다.】

'어디의 지하 3층이라는 거지?'

단편적인 정보만 나타날 뿐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은 채 긴장감이 더 높아졌다. 5분쯤 더 걸어갔을까?

꿈틀!

눈썹이 반응했다.

'뭔가 있다.'

한기에 솜털이 곤두섰다.

'가까워.'

시궁창 냄새가 더 진해졌다. 코끝이 시릴 정도로 암모니아 향이 훅! 불어왔는데 일렁이는 불화살 저쪽으로 괴물 그림자가 일렁이는 것 같았다.

'저건 착시야.'

나는 조금 뒤로 물러났다. 근처에 있는 건 그림자 따위가 아니었다. 더 위험하고 민첩할 것 같다.

이때 훅-! 나를 향해 달려드는 게 있었다.

나는 곧장 시위를 놓았다.

피잉!

날아간 화살이 무언가에 정확히 박혀 들었다.

"커억…!"

나와 비슷한 체형의 남자가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가 쓰러졌다. 그런데 모습만 비슷하지, 그의 얼굴은 사람과 전혀 달랐다. 무엇보다 한 쌍의 송곳니가 길게 자라 있었고 손톱도 뾰족했다.

'뱀파이어?'

나는 이런 모습의 남자를 이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으으으으… 아아아아아악!"

명치를 관통한 화살이 그의 온몸에 불길을 퍼뜨렸다. 본래 사람의 몸이 저렇게 쉽게 불이 붙질 않는데 그는 온몸이 휘발성 액체라도 뿌려놓은 것처럼 타버렸다.

【뱀파이어를 사냥했습니다.】

【4,000P를 얻었습니다.】

"으음…."

새카만 재로 변해버린 남자의 잔해를 보다가 나는 다시 움직였다. 아직 뱀파이어 하나 확인한 것뿐이었지만 4,000포인트짜리 뱀파이어를 처음부터 만났다는 게 위화감이 들 정도였다.

'중급이라 그런가?'

조금 전엔 가슴에 화살이 정확히 맞아 떨어졌고 인내가 발동했으며 표적도 하나였기에 빠른 대응을 했지만, 앞으론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조금씩 한발 한발 신중하게 걸었다. 외길이었기에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00미터쯤 걸어가자 천장에 붙어 있는 한 여자가 보였다. 마치 거미처럼 찰싹 달라붙어서 얼핏 보면 그냥 지나칠지도 몰랐다.

'이런….'

나는 곧장 시위를 놓았다.

쌔애애애애애액!

날아간 화살이 정확히 여자의 머리를 꿰뚫었다.

"꺄아아아아아악!"

바닥으로 떨어진 그녀가 당황한 듯 버둥거렸지만 이내 축 늘어져 화르르륵! 불탔다.

【뱀파이어를 사냥했습니다.】

이제 확실해졌다.

'뱀파이어 소굴이었구나.'

이 길이 얼마나 더 이어졌는진 모르겠지만 두당 4,000포인트까지 괴물들이 득실거린다는 뜻이었다.

티딕, 틱.

재로 변한 여자의 몸에서 불길이 사그라들 때 나는 앞으로 가지 않고 기다렸다. 놈들이 저 앞에 더 있다면 방금 여자가 지른 비명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나씩 상대할 때는 내가 유리하지만….'

불길한 예감이 머릴 스쳐 갔다. 여자는 천장에 박쥐처럼 붙어 있었다. 일반인은 저렇게 안정적으로 매달리기 힘들 거다. 그렇다는 건 놈들이 나를 향해 다가오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정면뿐 아니라 위, 옆, 아래에서까지도 달려들 수 있다는 것이다.

"…."

귀를 기울였다.

정글에선 도망칠 곳도 있었고 내가 약해도 머리만 잘 쓰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몸을 숨길만 한 곳조차 없었다. 순수한 내 능력을 검증해야 한다는 기분이 들 때 심상치 않은 기척이 들려왔다.

슈우우우우욱!

무언가 빠르게 접근하는 소리!

'왔다!'

나는 첫 발을 쐈다. 이건 시야 확보를 위한 것이어서 최대한 멀리 날아가도록 정면으로 길게 방향을 잡았다.

'하나, 둘, 셋, 넷!'

벽에 하나, 천장에 둘, 바닥에 납작 엎드린 놈까지 모두 네 명이었다.

나는 최대한 빠른 동작으로 화살을 뽑아 불을 붙였다.

【스킬 철벽을 발동합니다.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이 통로에서 화살에 붙은 불로 저쪽을 보면 최대 8미터 정도밖에 확인할 수 없었다. 호흡을 멈추고 불길이 흔들리지 않게 하면 좀 더 멀리 보이지만 조금만 흥분해도 손이 떨려버렸다. 이럴 땐? 일단 쏘는 게 상책이었다.

피잉-!

화살이 맞는 걸 확인하지도 않고 다음 화살을 준비했다. 겨누자마자 곧장 쏜다.

핑! 핑핑! 핑!

가장 앞서 달려오던 놈의 어깨에 한발이 명중했다. 그 뒤로 따르던 여자의 정수리에 화살이 박혔을 때 여자의 끔찍한 비명이 터졌고 뒤의 남자는 팔을 십자처럼 만들어 내 화살을 팔로 받아냈다. 이들도 이제 내 무기를 학습한 거다.

【뱀파이어를 사냥했습니다.】

【뱀파이어를 사냥했습니다.】

"읏!"

네 중 둘이 죽었지만 둘이 살아서 거릴 바짝 조였다.

"캬아!"

순식간에 다가온 뱀파이어가 나를 향해 팔을 뻗었다. 저 손에 집히면 절대 안 된다는 예감에 등줄기가 서늘했지만 나는 끝까지 움직이지 않고 겨냥하던 활을 그의 가슴에서 놓았다.

퍼억-!

화살의 힘에 그가 뒤로 날아가 처박힐 때 네 번째 뱀파이어가 오른쪽에서 달려들었다. 그의 팔엔 이미 내 화살이 박혀 관통해있었는데 나는 몸을 둥실 띄워 허공에서 뒤집으며 화살을 뽑아 겨눴다. 그리곤 화라라라락! 뱀파이어 날개가 펼쳐졌다.

"…?"

공격해오던 뱀파이어가 움찔했다. 공중제비를 돌았으니 착지하면 손톱을 박아넣으려고 했는데 내가 허공에 뜬 상태로 멈추자 당황한 거다.

우리 사이에 이 정도 틈이면 이미 화살 하나는 날아간다고 봐야 했다.

퍼억-!

"크아아아아아아아아!"

이마에 화살이 박힌 뱀파이어가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나는 침착하게 다시 화살을 하나 더 그의 가슴에 날리곤 또 하나의 화살로 아까 저쪽으로 튕겼던 세 번째 녀석의 얼굴에 쐈다.

【뱀파이어를 사냥했습니다.】

"후우…."

이제야 한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방심하지 않았다.

피잉-!

핑!

화살이 연달아 사방으로 날아갔다. 푹푹푹! 벽에 박혀든 불화살이 타면서 주변을 밝혔다.

대략 방향만 잡고 계속 연사하며 앞으로 조금씩 걸어갔다. 막 10미터 앞에 하나를 쏘고 두 번째는 좀 더 멀리 쏘면서 내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는데 깊게 박히면 불이 꺼질 수 있었기에 완급조절을 하며 활을 쐈다.

'아깐 위험했어.'

넷이 아니라 다섯이었다면 한 대 맞았을지도 모른다. 뱀파이어의 공격력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 손톱에 찔리면 살이 찢어지고 배가 뚫릴지도 몰랐다. 물리면? 뒤는 상상하기도 싫다.

'오기 전에 무조건 잡아야 돼.'

포인트가 순식간에 쌓이고 있었지만 이걸 쓰려면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10만이든 100만이든 죽어버리면 그냥 다 날아가는 거다.

'초반부터 이런 놈들이 이 숫자로 나온다는 건….'

저 길 끝에 더 많은 놈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암시였다.

피피피피피핑!

계속해서 화살이 날아갔다.

그러다가 나는 한곳을 조준했다. 막 날아간 불화살에 무언가가 보였던 것이다.

쌔애애애애액!

이전의 화살보다 강력한 한 발이 그쪽으로 날아갔다.

"끄아아아아악!"

허벅지에 화살이 꽂힌 뱀파이어가 뒤로 뛰어갔다. 놈이 물러나면서 새로운 시야가 확보되었을 때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많아.'

놈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이쪽을 보고 있었는데 불길이 다가오자 슬금슬금 물러나고 있었다. 벽, 천장, 바닥에 납작 엎드린 놈들의 수가 다섯이 넘었다.

"아아아악!"

타들어 가는 다리 때문에 발광하며 뛰어가는 녀석 덕분에 놈들이 노출되었고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일 때 단 한 마리라도 숫자를 줄여둬야 내 생존율이 올라간다.

핑! 핑핑! 피잉-!

놈들을 향해 화살이 난사됐다. 정확히 맞지 않아도 된다. 놈들의 몸에 닿기만 하면 오히려 놈들은 불붙은 표적이 되어서 뒤쪽을 밝혀준다. 어떤 놈은 지금처럼 맞자마자 내 쪽으로 달려들지만 10미터 거리 정도 여유가 있으면 내 화살이 계속 빗나갈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퍼억-!

【뱀파이어를 사냥했습니다.】

나가떨어지는 놈을 보지도 않고 다른 놈들을 향해 계속 화살을 날렸는데 이렇게 계속 연사를 하는 것도 처음인 것 같았다. 늑대인간과 싸울 때도 바쁘긴 했지만, 지금은 바늘 하나 차이의 틈만 있어도 놈들이 비집고 들어올 것이었다.

"후우."

짧게 호흡까지 조절해야 할 만큼 피 말리는 싸움이 이어졌다. 베이스캠프로 돌아가서 정비해야 하나? 생각이 들다가도 괜히 그랬다가 다시 나왔을 때 몇백 마리로 늘어나 있으면 감당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화르르르륵!

화르륵!

5분도 안 됐는데 내가 쏜 화살이 사방에 고슴도치 가시처럼 빼곡하게 박혀있었다. 바퀴벌레처럼 뒤로 샤샤샥 물러나는 놈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문득 혼자 오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 이 전투는 그만큼 위험하고 작은 실수도 용납할 수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나는 혼자가 아니었지?

크르르르르.

고갤 돌려 범이를 확인할 여유조차 없었다. 내 뒤에서 따라오고 있다는 기척을 느끼는 게 전부였다.

【뱀파이어를 사냥했습니다.】

한 마리 더 잡았다.

슉슉!

기뻐할 수도 없이 다음 화살을 쏘아냈다. 나는 일종의 방어선을 구축하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이 안에 들어오면 내게 다가올 때까지 불화살 비에 노출된다. 그걸 버티고 뚫는다면 녀석의 승리, 저지하면 내가 이기는 게임이었다.

'열이 넘었나?'

저 끝에서 어둠으로 숨어드는 놈들의 숫자를 가늠하면서 나는 속도를 늦췄다. 놈들의 달리기 속도는 일반인보다 월등히 빨랐다. 만일 몇 놈이 방패처럼 앞을 막아서고 뒤로 따르는 놈이 공격을 한다면 내가 위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놈들에게 그런 지능까진 없는 것 같았다. 말을 하는 녀석도 없었다.

'단순하게 본능으로만 움직이는 녀석들인가?'

내가 만난 서큐버스와 뱀파이어는 사람 행세를 했었다. 그렇다는 건 이놈들보다 더 머리가 좋은 상위 그룹이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이렇게 20미터쯤 이동했을 때였다. 저 끝에서 변화가 감지됐다.

'어?'

지금까진 그저 동굴처럼 쭉 뻗은 길이었고 벽이나 천장에 인공적인 구조물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그런데 '나무'가 나타났다. 화살 하나가 그것에 빠르게 박혀 들었다.

'저게 뭐지?'

더 가까이 가서 확인해야 했는데 기름먹은 불화살이 닿자 나무의 표면이 서서히 그을렸다. 화살을 몇 발 더 그쪽으로 쐈다.

'아?'

나무 기둥은 일정한 간격이 있었고 그 안쪽으론 공간도 있었다.

'설마….'

서둘러 뛰어갈 순 없었지만 조금씩 드러나는 형태를 보며 직감할 수 있었다.

'감옥인 건가?'

오른쪽, 왼쪽으로 벽이 깊이 파여 있고 나무 살이 막고 있었는데 멀쩡한 게 없을 정도로 파괴되어 있었다.

'그러면 저들은….'

죄수였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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