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166화 (166/277)

#166화

【미션을 완료했습니다.】

【보상은 재능마켓에서 확인하세요.】

"아…."

다시 돌아왔다. 이렇게 완벽하게 파괴된 피라미드의 모습이 내겐 더 익숙하다.

'도화지는 어디에 있지?'

서둘러 방을 나섰다.

그런데 피라미드 전체에서 진동이 느껴지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드드드드드.

낮은 떨림이 계속해서 느껴지고 있어서 나는 서둘러 피라미드의 중심부로 뛰어갔다. 점점 더 강해진다.

우스스스.

머리 위에서 먼지들이 내려앉았다.

복도를 벗어나 계단을 봤을 때,

"어라…?"

보여야 할 게 없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기둥이 사라져 있었다. 나는 무의식중에 아래를 내려보았는데 바닥엔 수북하게 기둥 잔해가 쌓여 있었고 원숭이들이 끽끽! 사방을 돌아다니며 난리가 났다.

주저 없이 뛰어내렸다.

"누나! 어디 있어요? 누나!"

뱀파이어 날개가 펼쳐졌다. 최대한 큰 목소리로 외치면서 도화지를 불렀는데 기둥이 왜 무너졌는진 모르겠지만 그녀라면 아직 살아있을 거란 강한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이때 그녀의 목소리가 아래쪽에서 들려왔다.

"민준아! 도민준!"

"아아…! 누나! 어디에요?"

"여기야! 여기!"

그녀는 1층 복도에 있었는데 황당하게도 그녀의 손엔 망토가 들려 있었다.

"어딜 갔다 온 거야?"

그녀가 나를 보자마자 물었다.

"미션이 있었어요."

"그랬구나. 다 해결된 거야?"

"네. 누나는요?"

"잡았지! 히히!"

저쪽 구석을 보니 원숭이 한 마리가 축 늘어져 있었다.

"내가 기둥을 부쉈는데 이놈이 나대다가 깔려 죽었지 뭐야? 그렇게 도망을 다니더니! 호호호!"

"미션 완료됐어요?"

"응. 근데 오빠를 못 찾아서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머릴 흔들었다.

"우리가 나가죠."

"오빠 찾으러?"

"네, 아마 그 원숭이를 찾으면 형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워낙 크니까 찾긴 어렵지 않을 거예요."

"알았어."

범이가 내게 다가와서 머리를 비볐다.

규우우웃.

나는 녀석의 머리를 만져주면서 피라미드 밖으로 걸어갔다.

'과거의 피라미드와 지금의 피라미드라….'

이런 피라미드가 정글 곳곳에 존재한다는 걸 이제 알았다. 하늘에 떠다니던 것들이 추락한 거다.

'전쟁이 벌어졌겠지.'

그 후의 일이 궁금했지만 보지 않아도 예상은 된다.

'이게 그 증거인 거고.'

피라미드를 빠져나오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을씨년스러운 피라미드가 과거에서 본 것과 겹쳐져서 낯설었다.

'엘프….'

이번 여행에서 가장 특별한 친구들을 만났다면 그들이 아닐까?

'아, 한 마리 더 있지.'

큰 원숭이를 찾아야 했다.

"근데 민준아. 그 원숭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잖아."

"돌아다니다 보면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워낙 큰 녀석이니까."

그리고 그 녀석이 정말 내가 본 '가이'가 맞는다면 녀석이 여길 떠나지 않는 이유도 알겠다.

'그 엘프들이 살던 곳이 여기였을 거야.'

지금은 이렇게 울창한 정글로 바뀌어버렸지만 내가 갔던 그 엘프 마을이 이 근처 어디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단 모든 미션을 끝냈으니 급할 건 없어서 나는 도화지와 함께 정글을 누볐다. 과거로 가서 하도 정신이 없었어서 이런 한가로움이 너무도 좋다.

"설마 오빠가 그 원숭이한테 잡혀서 끔찍한 일을 당한 건 아니겠지?"

"…왠지 모르겠지만 그건 아닐 거에요."

"어떻게 알아?"

"그냥 알 것 같아요."

생각해 보니까 그 녀석, 처음 만났을 때 나를 공격하려던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오해하고 먼저 화살을 날려서 적대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그 녀석은 엘프의 손에서 컸고 사람을 좋아했다.

모두 사라진 이곳에서 외롭게 얼마나 견뎠을진 모르겠지만 그 마음이 변하진 않았을 것 같았다.

'그래야 할 텐데.'

그게 아니면 김우태는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니까.

나와 도화지는 이틀을 걸었다. 밤엔 늘어지게 잠도 자고 이동하면서 과일도 따 먹었다.

이 사이에 나는 내가 겪은 일들을 다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음…내가 본 엘프들이 그들의 후예였을까?"

"그건 모르겠지만 관련이 전혀 없진 않을 거예요."

오후 3시쯤 되었을까?

얘길 하면서 계속 걷는데 범이가 갑자기 반응했다.

"어? 범아?"

훅! 나무 위로 뛰어오르더니 순식간에 올라갔다.

"뭔갈 찾은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도 범이처럼 소릴 들었다.

우두두두둑!

우두두둑!

무언가 부러지고 밟히는 소리. 이 정글에서 이런 압도적인 사건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는 하나뿐이다.

"근처에 있어요!"

"메뚜기는 안 보이는데?"

"일단 원숭이부터 찾고 생각하죠! 혹시 모르니까 도망칠 준비는 해두세요!"

"응!"

"이쪽으로요!"

일단 원숭이의 이동 경로에서 벗어나야 했다. 재수 없으면 깔려 죽는다.

우두두둑! 우우우우둑!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꼴깍!

왠지 모를 긴장감에 침이 절로 넘어갔는데 마침내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녀석이에요!"

"어떻게 알아? 다른 놈일 수도 있지 않을까?"

"마법으로 품고 자란 원숭이는 저 녀석 하나일 거예요."

저런 놈들이 수십, 수백 마리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문제가 될 거다. 생태계가 완전히 바뀌지 않을까?

두두두둑!

놈이 지나는 자리엔 불도저가 밀고 간 것처럼 길이 생겨난다.

그런데….

"허억?"

도화기가 기겁했다.

"뭐, 뭐야? 저, 저거! 오빠잖아?"

"네?"

"저 원숭이 어깨에! 오빠야! 우태 오빠!"

그녀의 시선을 따라 원숭이를 보자 진짜 김우태가 원숭이 어깨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헉…."

그녀가 손가락으로 눈을 비볐다.

"그치?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네, 위험해 보이진 않긴 한데."

나는 도화지에게 말했다.

"제가 먼저 가볼게요. 누나는 여기 계세요."

"알았어. 조심해."

나는 급히 뛰어서 원숭이를 따라잡았다. 놈이 워낙 보폭이 커서 잠깐 한눈팔면 죽죽 멀어진다.

'어떻게 된 거지?'

잡아서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

"형!"

버럭 외쳤다. 내 목소리에 원숭이가 우뚝 섰다.

-민준아! 야아아아아! 도민준!

"네, 형! 괜찮아요?"

-살려줘어어어어어!

"엥?"

이런 반응은 예상 못 했다.

우두두둑!

원숭이가 나를 향해 돌아서자 주변 나무들이 쓰러졌다.

"…."

나는 피하지 않고 원숭이를 바라보며 섰다.

-민준아! 진짜 반갑다! 야! 나 좀 어떻게 해줘 봐! 이놈이 놔주질 않아!

목소리는 엄청나게 간절한데 외상은 없는 것 같아서 안심이다.

스으으으윽.

원숭이의 상체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얼마나 크면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멎겠다.

"가이."

우오오오옹?

"너 맞잖아. 가이."

오오오오우우우?

내 목소리에 원숭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괴상한 목소리를 냈다.

'아?'

나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 그걸 녀석에게 보여주었다.

"네 거지?"

우정의 증표였다.

우오오오오오!

녀석이 두 손으로 자기 가슴을 두드리며 앉았다.

-히이이이이익!

김우태가 떨어지지 않으려고 납작 엎드려서 가이의 털을 꽉 붙잡았는데 가이는 흥분하면서 계속 몸을 흔들어대다가 내게 손을 뻗었다.

나도 녀석을 향해 팔을 내밀었다.

손가락 하나가 다가왔다. 내가 본 과거보다 몇 배는 더 커진 손가락이었지만 같은 녀석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많이 컸구나."

녀석의 손가락을 만지며 웃었다. 내겐 고작 몇 시간 전의 일이었지만 이 녀석에겐 수천 년의 기다림이었을 것이다.

우오오오오오오오! 우오오!

【가이가 당신을 좋아합니다.】

【우정의 증표가 힘을 발휘합니다.】

【가이가 당신의 동료가 되길 원합니다.】

"헉…."

이건 예상 못 했다.

"동료?"

갑자기 오만가지 상상이 다 든다. 이 녀석을 데리고 재능마켓에 어떻게 들어가나?

【수락하시겠습니까?】

일단 이런 강력한 지원군이 생긴다면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긴 했다.

"잘 부탁해."

우오오오오오오오오!

녀석이 기쁜 듯 포효하다가 내 몸을 잡았다. 그리곤 자기 어깨에 올렸다.

"민준아!"

"괜찮아요? 지금까지 얘랑 같이 있었던 거예요?"

"어! 잡혔을 땐 죽는 줄 알았는데 그 뒤론 놔주질 않더라고!"

그건 아마 가이가 형을 지켜주려고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 녀석에게 엘프나 사람은 가족이나 마찬가지였을 테고 너무도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났으니 간절함이 더했을 것이다.

"넌 어떻게 된 거야?"

"설명하려면 길어요."

내가 웃으며 말할 때 저쪽에서 도화지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오빠! 민준아!

.

.

.

【가이를 커스텀 할 수 있습니다.】

재능마켓으로 복귀했다. 이번 미션에서 가장 큰 선물은 바로 가이였다. 혼자서도 서울 정도는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무적의 원숭이이자 어마어마한 동료였다.

하지만 지금은 작은 원숭이일 뿐이다.

"귀여워!"

도화지가 가이를 번쩍 안아 들었다. 갑자기 찬밥이 된 것 같은 표정으로 범이가 내게 와서 머릴 비볐다.

"우와… 집이다."

김우태가 바닥에 드러누웠다.

"정글, 정글, 말만 들었지, 이렇게 힘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가이에게 잡혀서 끌려다니느라 더 고생이 많았겠지만 어쨌든 가이라는 엄청난 아군을 데려왔으니 우리에겐 적과 맞설 수 있는 선택지가 하나 늘어난 셈이었다.

도화지가 내게 물었다.

"근데 얘는 데리곤 못 다니겠는데?"

애완용 원숭이를 키우는 사람도 있다지만 너무 눈에 띄는 건 사실이었다.

"인형 커스텀 하면 되지 않을까요?"

"아! 범이가 오토바이로 되는 것처럼?"

"네. 그러면 이상하진 않을 거예요. 어차피 우태 형도 저거 들고 다니잖아요."

"하긴 오빠가 더 이상하게 보이지."

인형은 김우태와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 이제 살겠네. 한숨 잘까?"

김우태가 축 늘어지자 나는 도화지에게 물었다.

"이번에 얻은 정보를 종합해보면 그 퀸에 대해서 재능마켓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 같아요."

"엘프도!"

"네, 이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 알게 될 것 같은데 그래도 결론은 퀸과 로드, 그 둘을 이 세상에서 몰아내는 거예요. 누나가 냄새를 맡을 수 있으니까 추적은 되겠지만 아무래도 그 둘 정도 되면 냄새를 지울 수 있나 봐요."

"그런 것 같더라."

"하지만 녀석들이 부하를 늘리면 알 수 있으니까 찾아내서 세력이 커지기 전에 막아야 해요."

"홍대 지하에서처럼?"

"네. 천년지네 같은 것들이 수백 마리가 되어버리면 그때는 서울이 지옥으로 변할 거니까."

"히히! 그딴 지네 따위는 이제 무섭지 않다고! 가이가 있잖아! 다 밟아버려!"

가이를 안고 얼굴을 털에 비비는 도화지를 보면서 부정할 순 없었다. 거미를 찢어버리는 가이를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까.

가이도 도화지가 안아주는 게 좋은지 꼭 안겼다.

"하층에선 몰라도 여기선 가이가 쉽게 정체를 드러낼 순 없을 거예요. 전 세계가 난리 날 거니까."

강남 빌딩보다 큰 원숭이가 서울 한복판에 나타나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지을까?

'가장 큰 문젠 우리가 드러나게 된다는 거지.'

퀸과 로드.

이 둘을 상대하려면 우리의 존재나 위치를 최대한 숨겨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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