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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마켓-163화 (163/277)

#163화

"여긴 지루하기 짝이 없어."

하나는 사마귀, 또 하나는 거미다. 근데 곤충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덩치가 컸고 묘하게 사람처럼 행동했다.

사마귀가 앞발로 홀로그램처럼 떠오른 버튼들을 연신 두드리고 있었다.

"손도 불편하고.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단 말이야."

거미가 옆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이 정도만 감지덕지하지. 지난번을 떠올려봐. 그때는 손도 없어서 얼마나 고생했어? 이렇게 말이라도 할 수 있는 것도 나는 감사하다고."

사마귀는 계속해서 불만을 터뜨렸고 거미는 매우 긍정적이었는데 나는 놈들을 내려보며 고민했다.

이것들을 처리해? 말아?

사마귀가 말했다.

"데이터 수집이 거의 끝나가고 있어. 이곳도 곧 떠날 때가 다가오는군."

"아쉽네. 더 오래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여기가 마음에 들어."

"그러면 눌러 살지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어."

"불가능하단 걸 알지?"

"알지."

얘길 계속 듣다가 나는 괜한 소란을 벌써 일으킬 필욘 없다고 생각했다.

슥슥슥.

조심해서 앞으로 더 기어갔다.

다른 방이 보인다. 환풍구 이동의 단점은 자세가 불편하다는 것이지만 더 큰 장점이 있기에 감수할 수 있었다.

"음?"

"왜?"

"아니야. 내가 예민해졌나 봐."

다른 방에도 이상한 것들이 있었다. 이놈들은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꼭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왜, 거미면 사람이 짐작할 수 없는 본능적인 행동을 할 텐데 이들은 지능을 갖추고 목적을 가졌다.

'더 치명적인 일격을 날릴 수 있는 곳을 찾아야 돼.'

괜히 어설프게 나섰다간 놈들의 경각심만 일깨울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몇 개의 방을 더 거쳤다.

내 기억 속 환풍구가 완벽히 일치하고 있었기에 원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었는데 그렇게 이동할 때 분위기가 급변했다.

우우우웅, 우우우우웅!

내가 알던 사이렌 소린 아니었지만, 비상 상황이라는 걸 누가 봐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인가?'

엘프들이 발각된 것 같았다. 시간이 꽤 흘렀으니 지금까지 버틴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적이 침입했다!

-전투 병력은 적을 찾아 죽여라!

-적이다! 적이 침입했다!

부산한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올 때 나는 기회를 틈타 더 빠르게 이동했다. 우우우우웅! 소리 덕분에 내 움직임이 묻혔다.

'좋아.'

엘프들이 벌어준 기회를 날려선 곤란했다.

'중앙으로 가자.'

멀쩡한 피라미드의 모습이 쉽사리 적응되지 않아서 여기가 거긴가 간혹 헷갈릴 때가 있긴 했어도 길 자체는 똑같아서 방향을 잃진 않았다.

우우우우우웅. 우우우우우우웅!

울림이 더 커졌을 때 나는 탁 트인 곳을 보고 있었다. 원형 계단이 위아래로 뻗어있는 심장부이자 홀이었다.

"저게 엔진이었던 건가?"

중앙엔 바닥부터 끝까지 솟은 기둥이 있었다. 큰 원숭이가 저걸 잡고 성큼성큼 올라와서 나를 죽이려고 했던 게 떠오른다.

그때는 불 꺼진 남산타워처럼 느껴졌었는데 지금은 오색조명 다 켜진 크리스마스트리처럼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저것만 깨면 될 것 같은데?'

작은 방에 있던 기계들을 언제 다 부수나? 뭐가 뭔지도 몰라서 조작도 못 한다. 그런데 물리적으로 딱 봐도 이거다! 하는 게 내 앞에 있었다.

'이거로 될까?'

기둥의 크기에 비해 한없이 초라해 보이지만 내 활을 믿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

착!

계단에 내려섰다. 위아래 계단엔 접근하는 놈은 없었다.

으그그그그그극!

시위가 당겨졌다. 워낙 표적이 커서 빗나갈 린 없었지만 그래서 더 어딜 노려 쏴야 하는지 고민된다. 기계란 게 부위에 따라 역할이 다르다 보니까 잘못 쏘면 공격한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인내가 발동합니다.】

그러면 귀한 스킬 효과 하나 날린다.

'에잇!'

더 봐도 모르겠는데 가장 큰 불빛을 내는 것부터 쏘자. 중요하니까 큰 걸 달아놓은 게 아니겠어?

그렇게 잡아당긴 시위를 놓았을 때 나는 헛바람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촤악-!

화살이 날아가다가 뭔가에 맞아떨어졌다.

"흐읍?"

거미줄이 화살을 매달고 벽에 달라붙었다.

츠릇, 츠르르르르릇!

아래에서 불길한 소리가 올라왔다.

"…허억."

몸집이 10미터쯤 되는 거미가 기둥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잠깐 크기에 놀라고 갑작스러운 등장에 당황했지만, 옆으로 뛰며 활로 거미를 겨냥했다.

저 기둥이 중요하니까 지키는 놈도 있는 거 아니겠는가?

'저렇게 큰 거미가 여기 있을 이유가 없지.'

아까 방에서 봤다시피 이놈들은 지성이 있다. 방 크기도 일정하고 말도 하며 자신의 생각을 얘기한다.

그런데 저런 큰 거미는 왜 존재할까?

-전투 병력은 적을 찾아 죽여라!

아까 들었던 놈들의 말을 이제 알 것 같았다. 그 경기장에서도 저렇게 극단적으로 전투에 특화된 것들이 등장했었다.

촤르르르륵!

거미가 나를 향해 거미줄을 뿜어냈다. 상체를 숙이며 그걸 피하는데 벽에 달라붙은 거미줄은 본드처럼 점성이 강했다.

'맞으면 위험하겠지만 나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아!'

쌔애애애애액!

화살이 날았다.

푹!

거미는 피하지 않았다. 자기 다릴 뻗어서 화살을 막았는데 이걸로 확실해졌다.

"네놈 약점이 그거구나?"

거미는 저 기둥을 지킨다. 그리고 나는 그걸 부수면 되는 아주 간단한 게임이었다.

이때 계단에 벌레 한 마리가 나타났다. 저게 뭔지도 모르겠다. 그냥 나보다 컸고 징그러웠다.

나는 곧장 놈에게 화살을 쏘며 몸을 뒤집었다.

푸욱!

-키애애애애액!

머리에 정확히 박힌 화살이 회전하게 뼈를 부수고 들어가자 놈이 바르르! 경련하다가, 푹 자빠졌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400P를 얻었습니다.】

포인트도 짭짤하고 상대하기도 어렵지 않다. 무섭게 생기긴 했는데 확실히 방에 있던 놈들은 전투보다는 지능 캐릭터들이었다.

키이이이잇!

큰 거미는 신경질이 나는지 나를 향해서 계속 거미줄을 쏴댔지만 나는 이미 이 피라미드는 빠삭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전엔 저 거미보다 훨씬 강력하고 무식한 녀석과 어울려본 적도 있었다.

'거리 때문에 이쪽으로 완전히 넘어오질 못하는 건가?'

퍼엉!

위쪽 어딘가에서 폭음이 울렸다.

큰 거미가 움찔하는 틈을 타서 나는 일단 복도로 뛰었다. 저놈을 떨쳐내지 않으면 기둥을 부수기 힘들 것 같았다.

'생각보다 빠르단 말이야.'

다리가 많아서 그런지 놈이 기둥을 기어오르며 화살을 쳐내는 속도가 무시무시했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나는 환풍구를 이용해서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

지이이이잉.

가까운 방문이 열림과 동시에 나는 화살을 빠르게 세 대 날렸다.

키익!

애애액!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정확히 날아가 관통한 화살에 방 안에 있던 세 놈이 쓰러졌는데 내가 강해진 것도 있겠지만 이놈들이 보기보단 약했다. 경기장에서 만난 놈들은 이것들보다는 훨씬 강했었다.

'확실해. 껍데기만 쓴 거야.'

사마귀 앞발은 따지고 보면 강력한 무기이자 공격수단이다. 칼이나 마찬가지인 그 앞발로 컴퓨터나 두드려대고 있으니 어색하지 않을 수 없다. 아까 봤지 않나? 거미줄을 쏴대며 무시무시하게 내게 다가오던 큰 거미를. 포식자는 포식자다워야 하고 그런 녀석들의 몸은 모든 것이 사냥에 집중되어 발전해왔다.

'이렇게 어설픈 것들이 나중엔 그렇게 끔찍하게 성장한 건가?'

학교에 쳐들어왔던 기생충을 떠올리면서 나는 환풍구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곤 빠르게 기었다. 이제 눈치 볼 것 없기 때문에 순수한 전투모드였고 보이는 건 다 사냥한다.

픽. 픽픽!

-커어억!

-뭐, 뭐? 커억!

환풍구 위에서 아래로 저격하는 건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놈들은 경보가 울리자 방안에서 잔뜩 움츠리고 대기하고 있었는데 가만히 있는 상대를 맞추는 건 숟가락 들기보다 더 쉬웠다.

【400P를 얻었습니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나름 짭짤한데?'

포인트도 많고 놈들도 사냥하기 쉬웠으며 방안에 한둘씩 모여있으니 이만한 사냥터도 없었다.

'하지만 계속 이렇겐 곤란해. 빨리 기둥을 부숴버려야 하는데.'

시간만 넉넉했다면 여기 있는 놈들을 싹 다 이런 식으로 저격했겠지만 지금도 저 아래 도시에선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이게 비록 과거라고 해도 나는 최선을 다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또다시 불빛이 보인다. 계단으로 나온 것이다. 여기까지 오면서 사냥한 놈들이 무려 20마리가 넘었다. 포인트가 8천이고 아이템도 쏠쏠하게 떨어졌다.

'없나?'

기둥은 엄청나게 길다. 저 아래 바닥에서부터 꼭대기까지 이어져 있으니까 거미가 나를 막으려고 이동하며 돌아다니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스윽.

활을 겨냥해서 앞으로 나가는데 이때 나를 향해 뭔가 날아왔다.

촤악!

또 거미줄이다!

"흐읍…."

뒤로 물러났더니 입구가 거미줄로 완전히 막혀버렸다.

'어떻게 나를 따라왔지?'

이게 말이 되나? 생각했을 때 무언갈 보았다.

"…허."

아래에서 한 마리, 저쪽 벽에 붙어서 내려오는 놈 한 마리!

'많네?'

기둥을 지키는 거미는 한 마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제길!'

어쩐지 너무 쉽더라니. 저런 중요한 시설을 지키는 병력이 하나일 리 없잖은가.

'그러면 나도 방법을 바꿀 거라고!'

다시 환풍구로 들어갔다. 그리곤 아래쪽으로 계속 이동하며 방안의 놈들을 사냥하는 한편 내가 지금 어디쯤 와있나 계속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이 앞에서 오른쪽으로 가야 아래층으로 갈 수 있는 통로가 나와.'

환풍구는 시설 전체에 있었기에 잘만 활용하면 내가 못 갈 곳은 없었다. 물론 중앙 계단을 통해 내려가는 것이 가장 빠르겠지만 큰 거미들을 피하긴 어려울 것 같아서 이 방법밖엔 없었다.

왜 아래로 가냐고?

'자고로 불을 지르려면 아래에서 불씨를 놔야지!'

아까 겪어보니까 내가 환풍구나 복도에서 나오면 거미들이 위아래에서 덮친다. 그러면 나는 양방향을 다 막아야 하는데 하나라도 줄이면 놈들을 상대하는 것이 수월할 거다. 그리고….

화르르르륵!

나는 아래를 보며 화살에 불기름을 붙였다.

'이제부턴 앞뒤 안 가린다.'

스아아악!

날아간 화살이 개미처럼 생긴 놈의 몸통을 뚫었다.

화륵!

개미가 불타기 시작했는데 저게 곧장 큰 대형 불길로 번질진 모르겠지만 불이란 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다.

커튼 같은 거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온통 메탈 소재라 뭐에 불을 놔야 할지도 알 수 없어서 나는 닥치는 대로 방마다 불화살을 쏘고 다녔다.

'붙었나?'

30분쯤 그러고 다녔더니 뒤쪽에서 연기가 환풍구로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이건 너무도 당연한 거다. 내가 있는 곳이 바로 '환풍구' 아닌가? 불이 나면 가장 먼저 냄새를 맡을 수 있는 포지션이기도 했다.

그렇게 이동하던 나는 다시 계단으로 통하는 곳을 보면서 슬쩍 머릴 내밀고 정찰했다.

퍼어엉-!

펑!

위쪽에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지 우스스스, 기계 조각이 떨어져 내렸다. 엘프들이 꽤 선방하는 것 같은데?

생각하면서 기둥을 보는데 거미들이 꽁무니를 바르르 떨어대고 있었다.

'왜 저래?'

마치 감전된 것처럼 그러고 있는 놈들을 보면서 나는 곧장 뛰어내렸다.

화라라락-!

뱀파이어 날개가 양쪽으로 뻗어 나가면서 중력을 밀어낼 때 내 눈에 들어온 게 하나 있었다.

'오, 저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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