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158화 (158/277)

#158화

【미션이 갱신되었습니다.】

내가 목걸이를 받아들자 새로운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수호자의 길(유니크)

세상에 멸망이 찾아왔을 때 수호자가 탄생했다. 그 고된 길의 발자취에서 희망이 태어난다.

성공 조건: 증표 전달.

실패 조건: 사망.

확정 보상: 100,000P.】

엄청난 포인트다. 이만큼 후하게 보상이 걸렸다는 건 난이도가 초절정이란 거다.

'10만 포인트면….'

군침만 흘리던 재능마켓의 아이템을 덥석 하나쯤 집을 수 있을 거다.

【수호자의 길 미션이 진행됩니다.】

후웅!

바람이 불었다.

-아앗! 저게 뭐지?

-와아아아!

-마법이다! 마법!

균열처럼 분홍색 물결이 내 옆에 생겨났다. 사람들이 신기하게 바라보며 다가왔는데 드워프가 물었다.

"확실히 자네는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어."

【1분 안에 입장하세요.】

"가려는가?"

"그래."

드워프가 다시 손을 내밀었다.

"자네가 어디에 있다고 해도 우리 약속은 유효하네. 생각 같아선 당장 멋진 도끼나 망치를 한 자루 만들어주고 싶지만 그건 다음 생애에나 가능할 것 같군."

귀가 뾰족한 여자가 홀린 듯 균열에 손을 뻗었지만 그대로 통과해버렸다.

【50초 안에 입장하세요.】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좋겠네."

그의 푸근한 웃음을 보며 나는 왠지 그의 말이 이뤄질 것 같다고 느꼈다.

"그럼…."

이들이 안타깝지만 이건 과거의 편린이다. 내가 개입한다고 해서 미래 자체가 바뀌거나 이들이 편해질 가능성은 희박할 것이다.

막 돌아서려다가 멈췄다. 그리곤 가방을 열었다.

후두둑!

시간이 없어서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끄집어내서 던졌다.

【12초 안에 입장하세요.】

"아끼지 마!"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이게 조금의 위안이라도 되길 바랐다. 의미 없는 행동일지라도….

"다 먹어버리라고!"

-우웅? 이게 먹는 거야?

-신기하게 생겼네.

-뭐로 만든 거지?

【3초 안에 입장하세요.】

"고맙네. 친구…."

얼굴에 주름을 가득히 만들어내는 드워프를 보면서 나는 균열로 들어갔다.

.

.

.

"와 씨…. 이거 실화냐."

김우태는 절벽에 숨어서 저쪽을 노려봤다. 큰 원숭이가 산더미만 해서 쉽게 눈에 띈다.

"언제까지 이럴 건데? 미친 거 아니야?"

놈도 지쳤는지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지만 언제라도 벌떡 일어나서 또 따라올 거란 걸 알고 있었다. 벌써 며칠째던가. 이젠 메뚜기가 세상 절친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가 메뚜기의 이마를 손으로 쓸어주었다.

"너도 참 고생이 많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전해지지 않았다. 머리를 홱! 돌려버리는 메뚜기가 야속하다.

"그러지 말자…."

급해서 타고 오긴 했는데 메뚜기는 기회만 생기면 도망가려고 했다. 목줄을 꽉 잡고 있지 않으면 혼자 튈 거다.

"하아, 이놈의 매력…."

해가 뜨고 있다. 이렇게 쓸쓸하고 처량한 밤을 연속으로 버티는 것도 태어나서 처음인 것 같았다.

"히어로의 길이란 건 왜 이렇게 고독하기만 한 거냐…."

채린이 보고 싶어진다. 그녀의 목소리로 치유 받고 싶었다.

"그래, 여기서 이렇게 죽을 순 없지. 암! 콘서트에 가야 한다고! 나는!"

그녀 생각에 장신이 번쩍 든다. 심기일전해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라?"

일출을 보는데 그 끝 지점에 뭔가가 보였다. 끝이 뾰족하다. 산은 아니다. 저렇게 인위적으로 각지게 만든 산은 없다.

"피라미드? 허얼! 저게 그 피라미드구나!"

어젠 너무 지쳐서 절벽에 기댔고 밤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니 몰랐는데 세상이 밝아지니까 짜잔! 오아시스처럼 피라미드가 나타났다.

"오…. 대박! 미션만 깨면 되는 거잖아? 그 녀석들도 저기 있는 건가?"

일행들하고 합류한다고 해도 저 원숭이가 무섭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민준이 귀 따갑게 말하지 않았나? 미션만 하면 되는 거라고!

"좋아, 좋아."

그가 메뚜기의 등에 슬쩍 올라탔다.

"뚝아."

며칠 밤을 같이 보내면서 이름까지 지어줬다.

"저쪽으로 가자. 제발. 부탁이다."

지금까진 메뚜기 마음대로 날았지만, 이번 한 번만 말귀를 알아들었으면 좋겠다.

"…."

조금 기다리다가 메뚜기 등을 두드렸다.

"지금!"

푸드드득!

"오오오오오! 그래! 이 방향이야!"

김우태가 속 시원하다는 듯 웃을 때 저 아래에서도 반응이 왔다.

쿠오오오오오오!

"아, 저 X낀 잠도 없어!"

원숭이가 근처의 돌멩이를 잡아서 이쪽으로 던졌다.

후우우웅!

놈에게나 돌멩이지 어른 머리통만 한 거다.

"피해! 그렇지!"

며칠간 메뚜기도 학습을 했다. 원숭이는 기회만 있으면 뭐든 집어던졌다.

"더 높이!"

푸드드드드득!

메뚜기의 날갯소리가 필사적으로 거릴 벌렸다. 둥실둥실 떠오르니 피라미드가 더 잘 보였다.

"오오오! 진짜 피라미드야!"

그가 흥분하자 메뚜기도 마음이 통했는지 피라미드를 향해 곧장 날아갔다.

"민준아! 형이 간다!"

뛰는 놈은 나는 놈을 못 이긴다는 말은 맞다. 차가 아무리 빨라 봐야 비행기는 넘사벽이다. 하지만 예외는 어디에나 존재했다.

쿵! 콰앙! 드드드드득!

불도저처럼 정글을 관통하는 원숭이는 메뚜기를 올려보며 일정 거리를 유지했다.

'흐윽, 여기서 나가기만 해봐. 스토킹하는 놈들은 내가 다 뼈를 부러뜨려줄 거다!'

서러움에 코가 시큰할 때 메뚜기가 피라미드에 도착했다. 메뚜기는 피라미드 꼭대기에 착! 달라붙었다. 그러더니 움직이지 않는다.

"야, 왜? 아니야! 저기까진 가야지!"

구멍이 한참 남았는데 메뚜기가 미동도 안 했다.

쿠어어어어어어어!

원숭이가 무섭게 달려오고 있었다.

"이런 젠장! 난 모른다! 모른다고! 나중에 후회하지 마!"

메뚜기 등에서 내려선 김우태가 미끄러지듯 구멍을 향해 이동했다. 저기에만 들어가면 저 큰 원숭이는 닭 쫓던 개가 될 거다. 무식하게 큰 몸집으론 절대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이래서 토끼들이 굴을 파는구나!'

구멍에 가까워질수록 안도감이 밀어닥쳤다. 며칠간 힘들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와하하하! 이제 이별이다! 이 스토커야!"

워어어어어어어!

큰 원숭이도 곧 헤어짐을 직감했는지 우렁차게 울분을 토해냈지만, 녀석과의 거리는 꽤 됐다. 여기까지 올라오려면 최소 10초는 걸릴 거였다.

"그래, 울어라! 울부짖으라고! 이 끈질긴 원숭이 새끼야! 와하하하하!"

김우태가 크게 웃으며 구멍으로 도착했을 때였다.

펄럭!

"…응?"

옷자락 같은 걸 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에게 먼저 도착한 건 발길질이었다.

퍽-!

"…!?"

순간적으로 놀라서 비명도 안 나왔다. 구멍 안에 숨어있던 원숭이는 김우태를 걷어차더니 낄낄 웃었다.

'망토 두른 원숭이?'

워낙 방비 없이 맞아서 김우태는 뒤로 붕-! 날아갔다. 그러면서도 이 상황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며칠이나 날아와서 겨우 의지할 곳을 찾았는데 이런다고? 고지가 코앞인데?

그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거꾸로 뒤집히자 뒤가 보였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아래가 보였다.

"…이…."

커다란 원숭이가 팔을 뻗는 게 보였다.

"…히히히…! 이히히히히히힑!"

믿고 싶지 않은 꿈 같은 현신에 김우태는 실성한 듯 웃었다.

"…히히히힑힑!"

덥석.

그의 웃음소리가 덥석 움켜쥔 원숭이 손아귀에 묻혔다.

참으로 지랄 같은 악몽이었다.

.

.

.

-히히히힑힑….

복도를 걷던 도화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 멀리에서 아주 괴상한 소리가 들려온 것 같았다.

"뭐야…. 진짜 싫다."

귀신이 웃어도 저것보단 듣기 좋겠다.

"하아, 정글 진짜 싫어."

민준이와의 작전은 처음엔 좋았다. 근데 갑자기 민준이의 냄새가 없어져 버렸다. 홀로 남겨졌다는 공포는 생각보다 심했는데 범이가 곁에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근데 이놈의 자식은 대체 어떻게 싸돌아다니는 거야?"

원숭이 왕을 계속 따라가고 있는데 그야말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기분이었다. 조금 전까진 분명 근처에 있었는데 갑자기 꼭대기 쪽에서 냄새가 난다.

"만나기만 해봐, 진짜!"

두더지보다 더 세게 때려줄 거라고 다짐하면서 그녀가 계속 걸었다.

우끼기?

끼끼!

저쪽에서 원숭이들이 그녀를 바라보며 골려댔다. 민준이처럼 활을 쏠 수 없다는 걸 놈들이 이미 파악한 것 같다.

"하아, 이놈이나 저놈이나…."

놈들은 일정 거리 이상을 절대 좁히지 않았는데 몇 놈 우르르 덤벼들었다가 그녀의 망치에 머리가 깨진 이후론 계속해서 저러고 있다.

"마음대로 해라. 언닌 갈 길 간다."

범이의 목덜미를 손으로 쓸면서 그녀는 계속 걸었다. 기본적으로 원숭이 왕의 냄새를 따라 하염없이 걷지만, 주변을 살피는 것도 잊진 않았다.

그르르릉.

그때였다. 범이가 울음을 내면서 속도를 높였다.

"어? 왜?"

그러다니 성큼성큼 뛰었다. 그 꼬리를 따라서 그녀도 달렸다.

휙휙-!

복도를 뛰던 범이가 한곳으로 들어갔다.

"왜? 아무것도 없잖아?"

방안을 보자마자 말했는데 범이가 저쪽으로 가더니 위를 보고 앉았다. 그리곤 훌쩍 뛰어서 앞발로 한곳을 후려쳤다. 환풍구였다.

"오옹? 거기로 들어가라고?"

스스스스.

범이의 몸이 작게 변했다. 그리곤 그녀의 품으로 쏘옥 뛰어들었다.

"아항! 저기가 비밀통로야?"

범이는 그저 민준이와 갔던 곳을 기억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사실을 모른다.

"알았어. 기다려봐. 누나가 어떻게 해볼게."

망치를 삽처럼 들고 바닥의 잔해를 끌어모아 올라선 그녀가 손을 뻗었다. 재능마켓을 얻기 전이었다면 때려 죽어도 못 했겠지만 이제 그녀도 자신의 체중 정돈 끌어올린다.

"호오, 아늑한데?"

도화지가 웃으며 앞으로 기어갔다. 품에 안겨있던 범이가 그녀의 몸을 타고 등으로 올라갔다. 그러더니 발을 모으고 자릴 잡았다.

"그놈들 안 보이니까 좋네. 흐흐."

재수 없는 원숭이들이 얼쩡거리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진작 알려주지, 그랬어."

범이가 그녀의 등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는 걸 보지 못했다. 본래 고양잇과 동물은 틈만 나면 잔다. 5초든 1분이든 중요하진 않다.

"와…. 이거 봐. 다른 방이야."

아래를 내려보며 신기해하던 도화지가 다시 기어갔다.

"내가 이렇게 움직이는 걸 그놈은 모르겠지?"

뭔가 엄청나게 은밀해진 기분으로 도화지는 환풍구를 누볐다.

'오오…. 내려온다.'

원숭이 왕의 냄새가 가까워지고 있다. 민준인 어디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미션이 끝나면 해결되리라 생각했다.

'뒤통수 조심해라. 이놈아.'

흐흐흐, 웃음을 참으며 그녀가 다시 기어갔다. 시원하게 녀석의 머리통에 한방 쳐줄 그 순간을 기약하면서 망토 입은 원숭이가 나타나길 바랐다.

그렇게 20분쯤 지났나?

'온다. 와. 온다고!'

하늘이 도와주려나?

냄새가 바로 아래에서 난다.

'근처야! 진짜 가까워!'

감동해서 가슴이 찡했다. 하지만 다 된 밥에 코 빠뜨릴 순 없었다. 최대한 조심해서 살금살금 기었다. 무릎이 아팠지만 참을 수 있었다.

저 앞의 빛은 방에서 올라오는 거다. 냄새는 바람을 타고 흐르는 방식이 아니지만, 이 아래 녀석이 있다는 것은 진실이었다.

'보자. 이놈!'

그녀의 얼굴이 빼꼼히 아래로 향했다.

그리곤 봤다.

"…."

망토 입은 원숭이가 그녀가 있는 곳을 올려보며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고 있었다.

"이, 이런 개XXXXX!"

그녀의 머릿속에서 뭔가가 툭 끊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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