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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마켓-157화 (157/277)

#157화

-챔피언은 자기 몸집의 몇십 배가 넘는 적도 들어 올릴 수 있습니다! 강력한 턱으론 바위도 부숴 삼키죠! 자! 오늘은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됩니다!

사람들이 개미를 미물로 취급하는 건 작기 때문이다. 만약 개미가 고양이 정도만 컸어도 인류는 굉장히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저놈의 머리를 씹어버려!

-화끈하게 죽여라!

-우와아아아!

모두가 챔피언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내 힘으론 막을 수 없겠지.'

챔피언의 발에 잡히면 벗어날 수 없다. 창처럼 몸을 뚫은 뒤 저 턱으로 머릴 씹어버릴 거다.

'그래도 그냥 당하진 않아.'

그의 눈이 복수심으로 활활 타올랐다.

'다리 하나라도 가져간다.'

놈들이 마을을 습격했을 때 모두가 죽었다. 아이, 노인 가리지 않고 놈들이 먹이가 되었다. 그런데 가장 선두에서 치열하게 싸운 그는 어쩐 일인지 살려뒀는데 이렇게 쓰려고 했던 거다.

'아빠가 곧 갈게.'

한 마리라도 더 죽이고 자식들이 기다리는 하늘로 떠나고 싶었지만 여기까지인 것 같다. 그래도 뒤의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챔피언에게 일격을 먹여야 했다.

"하아아아아압!"

챔피언의 다리가 찔러 들어오는 걸 보면서도 그는 두 손으로 도끼를 힘껏 들었다. 심장이 꿰뚫리더라도 개죽음을 당할 순 없었다.

한껏 옆으로 돌렸던 도끼가 후우웅! 날았다.

-하하하! 저런 공격으로는 챔피언의 외피를 뚫을 수 없을 겁니다! 챔피언은 세 번의 진화를 거쳐서 매우 강력한 외피를 완성했습니다! 어설픈 도구는 상처조차 낼 수 없죠!

이건 남자도 안다. 챔피언의 다리는 개미 특유의 특정 때문에 무척이나 길었고 놈의 몸통을 가격하려면 우선 넓은 범위의 공격지점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모든 도전자가 그 길을 넘지 못하고 죽었다.

그래서 그는 놔버렸다.

-아아아아아앗?

개미는 딱딱한 외피를 가졌지만 몸의 모든 부위가 다 무적인 건 아니다. 입속이나 관절, 눈이나 더듬이 같은 급소도 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도끼는 정확하게 챔피언의 턱을 때렸고 동시에 챔피언의 뾰족한 다리는 남자의 심장으로 찔러 들었다.

'쳇, 조금 짧았나?'

입을 찢어버리려고 했는데 마지막에 힘이 너무 실렸던 것 같다. 그래도 놈의 피를 봤으니 그는 웃을 수 있었다.

그런데….

퍼억-!

남자의 몸이 둥실 떠올라 뒤로 날아가 처박혔다.

"…허억?"

챔피언도 놀랐는지 우뚝 섰다.

-뭐야?

-챔피언의 공격이 막혔어?

-또 무슨 일이고?

당황한 건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손으로 가슴을 더듬었다. 옷은 뚫렸다. 그런데 피부엔 생채기도 없다.

【철갑 드링크의 효과가 51분 남았습니다.】

아까부터 머릿속을 울리는 음성이 뭘 뜻하는진 그는 모른다. 다만 지금 이 기적 같은 순간을 그냥 보낸다면 죽어도 후회할 것 같다는 것을 느끼고 벌떡 일어났다.

"우워어어어어어!"

곰처럼 달려드는 그가 도끼를 회수하려고 했다. 그러나 챔피언도 정신을 차렸다.

슉슉!

다리가 또 공격해 들어온다. 이번엔 찌르기가 아니라 두 발로 남자를 붙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남자가 몸을 공처럼 말아서 데구르르 바닥을 굴렀다. 워낙 낮은 지점이어서 챔피언의 다리가 스쳤다. 사실 이때도 챔피언의 날카로운 발끝이 남자의 등을 찢어버렸어야 했지만, 남자의 피부는 무려 천년 지네의 그것과 똑같았다. 고작 개미 따위의 외피와는 비교할 수 없는 힘이 그의 피부에 깃들어 있었다.

덥석.

도끼 자루를 잡았다.

마을 최고의 전사였던 남자는 각종 맹수나 몬스터와 싸워본 경험이 풍부했다. 신체적인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도 괴물이 되었다.

"하아아아아압!"

싸움은 치열했다.

【철갑 드링크의 효과가 37분 남았습니다.】

챔피언도 그를 죽이지 못했다. 남자의 도끼도 정확하게 맞지 않으면 챔피언의 외피를 부술 수 없었다.

"하아, 하아, 하아…."

점점 지쳐가지만 남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텅! 텅! 터엉!

기회가 생길 때마다 놈을 후려치며 자신을 독려했다.

'어떤 나무도 도끼질 한 번에 쓰러지진 않아. 하지만 언제나 이 땅에 서 있는 건 우리였어.'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어르신들의 말씀을 되새기며 그가 훌쩍 뛰었다. 그리곤 다시 힘껏 도끼를 휘둘렀다.

퍼억-!

그게 챔피언의 턱 아래를 또 때렸다.

촤라라락-!

피가 튀었다.

-아아아앗! 위험합니다! 챔피언!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왜 이렇게 무력하죠? 챔피언의 공격이 도전자에게 전혀 통하질 않고 있습니다!

-우우우우우우!

-재미없다! 뭐 하는 거냐!

-진화가 실패했나? 어제까지는 잘 싸웠었잖아?

-음, 이상이 생긴 모양이군. 아쉽지만 저런 불완전한 형태라면 폐기해야겠는데?

그러나 도전자의 공격도 챔피언을 죽일 정도는 아니었다.

"흡?"

도끼가 놈의 턱을 때릴 때 놈의 다리가 그의 몸을 잡았다.

'함정이었나?'

강력한 구속에 그가 버둥대봤지만 빠져나갈 수 없었다. 둥실 떠오른 그의 몸과 바닥으로 떨어지는 도끼가 곧 이어질 어떤 끔찍한 장면을 예상하게 했다.

-와아아아아!

-역시! 그래야지!

-머리를 씹어버려라!

-와하하하! 놀랐잖냐! 끝내버려!

챔피언의 입이 남자의 머리로 곧장 내려왔다. 너무 빨라서 막을 수도 없었다.

콱!

강력한 턱은 아름드리나무도 잘근잘근 씹을 수 있다. 남자의 머리가 통째로 박살 나는 건 자명한 일이었다.

그가 평상시였다면 말이다.

"…!"

챔피언의 턱 사이에 얼굴을 처박은 아찔한 경험을 하던 남자는 두 손을 위로 뻗었다. 그리곤 몸을 뒤집었다. 그러는 사이에 그의 손이 허리춤으로 가서 칼을 뽑아 들었다. 집게 같은 개미의 턱에 아직도 물려있지만, 몸이 껌처럼 개미 얼굴에 달라붙은 형태로 남자가 칼을 찍었다.

콰악!

-아아아아앗!

한 쌍의 더듬이 중에서 오른쪽 더듬이가 시작되는 부분을 칼끝이 파고들었다. 아무리 철갑 같은 외피를 둘렀다지만 틈을 다 메꿀 순 없는 거다.

'됐어!'

고통을 느끼는지 아니면 위기를 감지했는지 챔피언의 몸이 요동칠 때 남자는 놈의 턱에서 힘이 풀리는 걸 느끼며 빠져나옴과 동시에 챔피언의 머리에 올라탔다. 그리곤 또다시 칼을 찍어댔다.

콱, 콱, 콰과과과곽!

한 손으론 더듬이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론 칼질을 해댔다. 뻐걱뻐걱 조금씩 헐거워지는 것 같은 느낌에 남자는 있는 힘껏 칼을 박고 더듬이를 뽑아냈다.

추르르륵!

피와 함께 더듬이가 솟아올랐다.

-저, 저런!

-맙소사!

-말도 안 돼!

그러나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남자는 남은 하나의 더듬이까지 노렸다. 이게 챔피언의 육체에서 어떤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인지도 모르고 그저 공격이 먹히는 부위라는 것만 알았으니 공략하는 것이다.

부르르르!

괴로운지 챔피언이 계속 머리를 털어댔지만 남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두 번째 더듬이까지 뽑혀 나오자 챔피언이 이상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한 방향으로 빠르게 빙빙 돌기 시작한 거다.

"크윽-!"

남자가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나와서 바닥을 굴렀다.

【철갑 드링크의 효과가 22분 남았습니다.】

'도끼가 어디 있지?'

남자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그는 이미 죽을 각오를 했다. 챔피언이 아직도 살아 움직이고 있었으니 끝장을 봐야 했다.

그런데 탄식과 함께 관중의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챔피언이 감각을 상실했군요! 더는 경기를 이어갈 수 없겠습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챔피언의 몸이 축 늘어졌다. 내부의 폭탄 같은 무언가가 작동한 것이다.

-오늘 경기는 여기서 마칩니다! 하지만 내일도 강력하고 많은 새로운 타입의 가디언이 기다리고 있으니 즐기세요!

-우우우우우!

-저 허약한 인간형이 챔피언을 이기다니! 어떻게 한 걸까?

-인간형이 강하면 강할수록 우리에겐 더 좋아.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남자는 꿈만 같았다.

직접 챔피언을 죽이진 못했지만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건 그였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복수심과 함께 울분을 담아 소리쳤다.

나는 경기장을 보며 미소 지었다. 드링크를 주긴 했지만 진짜 이길 줄은 몰랐다.

그가 내게 걸어왔다.

"…."

"…."

손을 내미는 그를 보며 나도 팔을 뻗었다. 내 손을 잡는 아귀에 강인함이 느껴졌다.

"뭔진 모르겠지만 덕분에 이겼다. 내 힘만으론 불가능한 것이란 걸 알아. 고맙다. 내 목숨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써라. 나는 이제 여한이 없으니."

【드워프의 호감을 얻었습니다.】

"먼저 간 우리 마을 사람들 모두가 너에게 축복할 거다."

그의 주름진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이 약속은 영원할 거야. 큰 은혜를 입었다. 친구."

"네가 잘 싸운 거라고."

【진실한 약속을 이뤘습니다! 맹약은 한쪽이 파기할 때까지 유효합니다.】

【이제 모든 드워프는 수호자에게 본능적으로 호감을 느낍니다.】

-와아아! 정말 잘 됐어요!

-저는 당신이 이겨낼 줄 알았어요!

-흐흐흑! 우리는 언제까지 이래야 할까요?

문이 닫혔다.

"…."

나는 그들을 보며 잠깐 기다렸다. 혹시 미션이 끝나지 않을까? 생각한 거다. 그런데 반응이 없다.

'설마… 여기서 내일까지 기다리는 거냐?'

경기가 이어진다고 했다.

'아!'

아까 얻은 돌을 확인해보자.

【고대의 허리띠(레어): 힘+1, 순발력+1. 그대 용사가 사용하던 귀한 물건이다.】

아, 아니네. 쓸만하긴 하는데 여길 탈출할 열쇠는 아니었다.

허리띠를 착용하며 사람들을 지켜봤다. 다들 벽에 가서 등을 기대고 앉았다. 승리의 흥분도 잠시 현실의 비참함이 모두를 덮친 거다.

드워프가 내 등을 툭 쳤다.

"내일도 싸워야 하는데 너도 쉬도록 해."

"음…."

나는 아주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밥은 안 주나?"

"곧 죽을 사람들에게 그렇게 베풀겠나? 물이라면 저기에서 흐른다네."

흐르긴커녕 축축한 벽에 이끼가 잔뜩이었다. 그걸 핥으란 얘기다.

"나쁜 놈들이네."

"자네는 어느 지역에서 왔나?"

"…몰라."

"그렇겠지. 우리들도 다 갑자기 끌려와서 여기가 어딘지 조차 모르니까. 이 괴물들은 우리가 알던 몬스터와는 전혀 다른 것들이라네."

이게 과거의 한 장면이라면 내가 얻어 가야 할 건 정보일 것이다.

"밖에서 이 일을 알아야 할 텐데! 하아!"

'음?'

"전할 방법이 없구나!"

한탄하는 그에게 내가 물었다.

"소식을 알리면 도와줄 사람은 있는 건가?"

"당연하지 않겠나! 이런 끔찍한 괴물들이 사람들을 학살하고 있는데! 모두가 힘을 합쳐야지!"

오호라?

"어디로 가면 되는데?"

"가까운 도시 어디라도 가서 소식을 전하면 곧장 각 나라에 기별이 갈 거네!"

"그들이 내 말을 믿어줄까?"

"음…."

드워프가 입을 다물었다. 그때였다. 저쪽에서 귀가 뾰족한 여자가 일어나서 이쪽으로 걸어와 말했다.

"이걸 보여주면 믿을 거예요."

그녀가 목걸이를 풀어서 내게 내밀었다.

'어라? 저건?'

【우정의 증표(퀘스트 아이템):용도를 알 수 없다. 귀속. 판매 불가.】

내게도 익숙한 물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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