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153화 (153/277)

#153화

"예쁘다!"

"이번에 새로 얻은 병으로 만들어본 거예요."

"어제 만든 거? 그게 벌써 숙성됐다고? 너 대체 얼마나 있었던 거야?"

"300시간쯤 된 것 같은데요."

"헉…."

【안개 드링크(유니크): 일정 범위를 자욱한 안개로 덮을 수 있다. 사용자는 안개를 투영해 볼 수 있다.】

【철갑 드링크(유니크): 천년 지네의 외피처럼 단단한 피부를 1시간 동안 유지할 수 있다.】

"좋은 게 나온 것 같아요. 더 많이 만들 수 없어서 아쉽긴 하지만."

"쉬엄쉬엄해. 그러다가 쓰러져."

"괜찮아요. 푹 잤어요. 아직 하층 은행나무를 되살릴 방법을 모르긴 하지만 더 연구해보면 답이 나오겠죠?"

도화지가 끄덕이며 물었다.

"수호자의 돌을 어디에 쓸진 정했어?"

"아무래도 다음에 하층에 가게 되면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무 곳에나 쓰기엔 아까운 물건이니까요."

하나면 모르겠는데 두 개나 되니까 표정에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응, 그러면 계속 수고해. 나도 필라테스 할 거야!"

"네. 제가 도울 일 있으면 말해주세요."

"혼자 할 수 있어!"

도화지가 팔을 걷어붙였다. 민준이처럼 빨리 중급으로 넘어가고 싶었다.

그녀는 어제 받은 두 가지 미션을 떠올렸다.

【메인 미션: 둔기 사용 특화 코어 획득.】

【서브 미션: 파티 미션 1회 달성.】

당장 할 수 없는 것들이라서 필라테스를 먼저 지정해야 했다.

【팔라테스를 이용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응."

【사용자의 난이도에 맞게 새로운 필라테스가 생성되었습니다.】

"그래? 뭔데?"

【둔기 사용 1만 회. 목표에 정확한 타격 필수. 방어력+1. 회피력+1.】

"우움…."

그녀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망치질은 그녀에게 가장 익숙한 것이기도 했다.

"그래! 이거로 할게! 스텟이 두 개네!"

【필라테스를 시작합니다.】

"민준아! 나, 시작한다!"

"뭔데요?"

"몰라!"

답은 바로 나왔다.

우우우우우웅.

그녀의 근처로 작은 원반 같은 게 생성되었다. 총 9개였는데 하나하나가 어른 머리만 했다.

그걸 보더니 민준이 물었다.

"허얼, 이게 뭐예요?"

"모른다니까!"

뿅망치를 소환한 도화지가 웃으며 대답했다. 민준도 신기하다는 듯 이쪽을 바라볼 때였다.

불쑥!

뭔가가 구멍에서 튀어나왔다.

"히익!"

도화지가 깜짝 놀라 뒷걸음쳤는데 구멍에서 나왔던 어떤 녀석이 도화지를 보며 혀를 내밀었다.

메롱.

"…?"

녀석은 혀를 날름거렸는데 팔다리는 없고 얼굴만 있었으며 엄지손가락처럼 생겼다.

"이, 이게? 나 놀렸어?"

기막힌 얼굴로 녀석에게 다가가자 쏘옥 숨어버렸다.

"어, 없어졌어?"

당황한 도화지가 말하자 민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뒤에 있어요."

"뒤에?"

돌아보자 다른 구멍에서 녀석이 얼굴을 내밀고 혀를 날름댔다.

그러더니 또 들어갔다.

"누나."

민준이 말했다.

"응?"

"3초였어요. 정확히 3초가 지나면 들어가네요."

"아, 그래?"

"중심부에 서 있다가 놈이 나오면 때려야 해요. 두더지 잡기 알죠? 그런 것 같은데요?"

"아…."

역시 민준인 머리가 좋았다.

도화지는 심기일전해서 망치를 잡았다.

그리곤 녀석이 튀어나오자마자 뛰어들었다.

뿅!

빗맞았다.

"아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차피 1만 번이나 해야 했고 물릴 수도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뿅뿅! 망치 소리가 울려 퍼지는 재능마켓에서 민준은 드링크 제조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문이 열렸다.

김우태다.

민준은 열린 문을 보며 생각했다.

'저 타이밍에 나갈 수 있지 않나?'

필라테스가 시작되면 여기 갇히는데 파티원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틈이 생긴다.

"여어."

김우태가 손을 흔들며 안으로 들어왔다.

"쟤 뭐 하는 거냐?"

"두더지 잡기요."

"재밌겠네."

피식 웃곤 민준의 곁에 앉은 김우태에게 도화지가 빼액 소릴 질렀다.

"재미없거든요!"

"얼마나 했는데?"

"81번!"

"아, 그래…. 고생하겠네."

쯧, 혀를 차며 김우태가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곤 민준에게 물었다.

"밖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해. 그 난리가 났는데 기사 한 줄 안 뜨더라. 경비 아저씨도 죽었잖아? 개미처럼 변한 다른 사람도 더 있었던 것 같고. 내가 어제 거기서 나올 때 소방차 오는 소리는 들었거든?"

"저도 봤어요. 없더라고요. 너무 깨끗해요."

김우태가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둘 중 하나 아니겠냐?"

"숨기거나 맥을 전혀 못 짚거나요."

"그렇지. 개미랑 사람이 반쯤 섞인 걸 보면 누가 생각해도 이상하지. 대학교 밑에 그런 굴이 있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거고. 어느 쪽인 거 같아?"

"사람들이 동요하지 않게 정보를 차단하는 것 같아요."

"요즘 세상에 그게 쉽진 않을 건데."

"조심해야죠. 흔적이 남지 않게."

민준이 몇 개의 드링크를 내밀었다.

"오! 이거 죽이네? 그 지네처럼 몸을 단단하게 만든다고?"

"그렇지만 무적은 아니에요. 드리트리의 검에 잘리는 거 보셨잖아요."

"그놈은 괴물이었고. 그 경지에 든 사람이 많진 않을 거야."

김우태가 일어났다.

"어쨌든 뭘 해도 나는 한숨 자고 해야겠다. 체력 만땅으로!"

"네."

전엔 체류 시간을 아꼈다면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우리는 한 번이라도 더 하층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아이템도 늘어나고 포인트도 벌 수 있으며 실전 경험도 쌓일 것이다. 혼자일 때보다 좋은 건 셋이 시간을 각기 소모하니까 기회가 세 배가 된다는 거다.

뿅뿅뿅!

도화지의 망치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

.

.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잔반율이 제로에요!"

"제가 학교 급식만 10년인데 이런 건 처음이에요!"

요즘 식당에선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점심 한 끼 차려서 아이들 먹이는 게 뭐 대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학교가 불에 타버려서 순수하게 자원봉사로 모인 이들이었기에 사명감도 대단했다.

"밥이 너무 맛있지 않아요?"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아주머니들은 왜 이렇게 급식이 맛있을까를 두고 열띤 토론을 이어갔는데 학교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지만, 밥을 잘 먹고 건강한 아이들을 보면 다 이겨낼 수 있었다.

실제로도 아이들은 살이 오르고 있었는데 잘 먹어서 그런지 표정도 좋았다.

뭐, 이런 소소한 사건은 식당 관계자들만 아는 일이었고 외부에서 온 사람들에겐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오키나와에서 온 야마구치 타다시라고 합니다."

"먼 길 오셨습니다. 저는 광수대 윤일권입니다."

통역은 광수대 강한석이 맡았다. 능숙하진 않아도 뜻을 확실히 전달할 정도는 된다.

"이 학교인가요?"

"그렇습니다."

윤일권이 초청했지만 그걸 반드시 따를 이유가 없었던 야마구치 형사였지만 그도 오키나와 지역에서 최근 벌어지는 수상한 사건들 때문에 연락을 받자마자 비행기를 탔다.

"그 큰일을 당했는데 분위기가 생각보다 나쁘진 않군요?"

"다들 힘을 내는 것 같습니다."

학교를 둘러보면서 두 사람은 의견을 교환했다.

"오키나와에선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히키코모리입니다."

"네에? 히키코모리요?"

그게 어떤 단어인지는 들어본 적 있다. 요즘 한국말로 하자면 방구석 폐인이던가?

"처음엔 이걸 문제 삼지 못했습니다. 일본에선 전 지역에서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니까요. 그런데."

"그런데요?"

"그들이 보이는 공격성이 일반적이질 않았습니다. 낮엔 전혀 활동을 하지 않다가 밤이 되면 거릴 활보하며 무작위로 사람들을 공격했습니다."

"묻지 마 폭력, 그런 건가요?"

"살인도 벌어졌습니다."

"으음…. 억눌린 분노가 터져 나오는 거겠죠. 한국에도 최근 그런 케이스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학교의 곳곳에서 어떤 흔적을 둘러보던 야마구치 형사는 주차장으로 가서 차에 탔다.

강한석이 모는 차가 홍대로 향했다.

차 안에서 야마구치가 가방을 열었다.

"아까 말씀드렸던 그 행인 습격 사건 자료입니다."

"…이거, 설마 물어뜯긴 겁니까?"

"네, 경동맥 부분을요."

목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물었다? 개도 아니고 사람이?

"왜 이런 겁니까? 범인은 잡았죠?"

"원한도 동기도 없습니다. 범인은 유치장에서 횡설수설만 하고 있어요. 피가 모자라 다나 어쩐다나…."

차가 홍대에 도착하자 야마구치는 자료를 받아 다시 가방에 넣었다. 외부로 막 돌릴만한 것이 아니었지만 윤일권과는 교류해야만 했다.

"여기입니다."

그들이 직면하는 사건들이 기존의 것과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굴의 입구에서 야마구치 형사는 신음했다.

"사람이 판 것 같진 않네요. 이건 뭡니까?"

줄기줄기 말라비틀어진 것이 나무뿌리 같진 않다.

"성분을 분석 중이긴 한데 나온 건 없습니다. 가시죠."

현장은 그대로 보존되고 있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괴소문이 돌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필사적으로 언론에 흘러가는 걸 막고 있었다.

"여기서 일차 충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흔적, 알아보시겠습니까?"

"화살입니까?"

"그렇습니다. 타다남은 화살을 발견했습니다."

"으음. 흔히 쓰는 흉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오키나와에서도 사용되었었고요."

"같은 사람 소행으로 보시는군요?"

"이 자경단인지 히트맨인지 모를 범인이 우리보다 한발 앞서 다닌다는 건 확실합니다. 그런데 이제까지와는 다른 패턴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오시라고 한 것이고요. 이쪽으로요."

윤일권이 야마구치를 아래로 이끌었다.

광수대 사람들이 지금도 사방에서 무언가를 조사하고 있었다.

"이건? 족적인가요?"

"그렇습니다. 최소 셋이에요. 이것 하나는 아주 작습니다."

"이 크기라면 여성이나 청소년 남성쯤 되겠습니다."

윤일권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몸집이 작은 어른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범인이 혼자 움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족적 표본을 드릴 테니 혹시 일본에서 일어났던 사건들 중에 일치하는 게 있는지 알아봐 주시겠습니까?"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분들은 뭘 하시는 겁니까?"

"찾는 겁니다."

"뭘요?"

"여기서 일어났던 모든 흔적을요. 그래서 재구성해보려고 합니다. 대체 이것들이 다 뭔지. 왜 여기에 있었고 무슨 목적을 가졌는지를요."

.

.

.

"절대자가 셋 있다고 했잖아?"

잠에서 깬 김우태가 나와서 물었다.

"네."

"로드와 퀸이 넘어왔다는 건 알겠는데 그러면 나머지 하나는."

김우태는 가끔 핵심을 찌를 때가 있다.

"혹시 한국에 없는 거 아니냐? 이상하지 않아? 우리보다 훨씬 큰 나라도 있는데 왜 다 죄다 여기로 몰려오냔 말이야."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건요 아마도…."

고갤 돌려 저쪽을 봤다. 한참 망치질하던 도화지가 쓰러져서 졸고 있다.

"재능마켓 때문인 것 같아요."

"여기 때문에?"

"제가 여기로 끌려왔고 그다음부터는 저와 연관된 사람들이 들어왔어요. 형도 그랬고요."

"그거 말 되네. 그래서 앞으로도 괴물들이 이쪽으로 올 거다. 이거지?"

"어쩌면 이 재능마켓이 세계의 질서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 같은 것일지도 몰라요."

내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나는 유리벽 속 아이템을 보면서 말했다.

"저것들을 다 나쁘게 쓰라고 갖다 놓은 것 같진 않거든요. 그리고."

"응?"

"단기간에 우리가 강해질 방법을 찾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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