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152화 (152/277)

#152화

-다 죽여버리겠다.

음성에 살기가 한껏 묻었다.

"형."

"응?"

"23분 남았어요. 빨리 봉인 찾아서 깨버려야 해요."

"아, 맞다! 저 후작이 수호자의 돌을 들고 있었어!"

"수호자의 돌이요?"

"그게 봉인 아닐까?"

"…누나를 도와주세요!"

더 얘기할 수 없었다. 드리트리가 나를 향해 뛰어왔다. 왕은 후다닥 후작의 머리 쪽으로 뛰어갔는데 검을 뽑아 들고 도화지를 공격하려고 하고 있었다.

-네가 암살자구나! 이제 확실히 보인다!

목이 잘렸던 충격요법이 통했는지 왕은 도화지를 노리고 달려들었는데 도화지가 후작의 머리를 축구공처럼 걷어차더니 도망쳤다.

-이, 이이이이!

그 모습에 당황한 왕이 분노했다. 후작의 머리를 따라가야 하는지 암살자를 쫓아야 하는지 판단하지 못한 거다. 그사이 김우태가 도화지와 합류했다.

"이제 우리가 보이나 본데?"

"어떡하죠? 저 대가리가 안 부서져요!"

김우태가 도화지를 보며 놀라운 아이디어를 냈다. 이건 우연이자 기적이었다.

"아까 저놈 칼에서 냄새난다고 했었지?"

"네. 그게 왜요?"

"저놈의 칼이 지네 고치를 작살 냈어! 그렇다는 건 해골도 자를 수 있다는 거잖아?"

"하지만 저 해골이 후작의 머리를 자르겠어요?"

말하면서 김우태는 뛰었다. 그가 가는 곳은 머리 방향이 아니었다.

"그런 게 여기, 하나 더 있다고!"

김우태는 슬라이딩하는 것처럼 바닥을 미끄러지며 뭔가를 움켜쥐었다.

【아르펠 흑마법사의 지팡이: 귀속된 물건으로 소유해도 본래의 고유 효과를 사용할 수 없다.】

대단한 마법사의 지팡이니까 각종 스텟과 효과가 덕지덕지 붙어 있겠지만 김우태가 노리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도화지!"

"네! 이해했어요!"

도화지가 후작의 머리 쪽으로 뛰었다.

-이, 이놈들이?

왕도 눈치챘다. 하지만 왕이 더 가깝다. 그를 무시할 만큼 왕이 든 칼은 녹슬지 않았는데 김우태가 안타깝다는 듯 바라보다가 눈을 크게 떴다.

"범아아아아아! 그거 차버려!"

왜 저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였는지도 못 봤다. 하지만 범이는 후작의 머리 근처에서 서성거리고 있었고 김우태의 목소리에 귀를 쫑긋하더니 멀뚱히 이쪽을 봤다.

"차버렷!"

도화지도 외쳤다.

"패스해! 범아! 제발! 한 번만!"

범이가 알아들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간절하게 외치는 두 사람이었다. 그 마음이 통했을까?

규우우웃…?

범이가 앞발을 휘둘렀다.

터엉!

거대한 발에 차인 후작의 머리가 김우태 쪽으로 날아왔다.

"사장님! 나이스 샷!"

도화지가 소리칠 때 김우태는 야구 하는 것처럼 지팡이를 두 손으로 잡고 기다렸다.

"내가 왕년에…."

휘이이이잉.

후작의 머리가 강속구처럼 다가왔을 때 김우태가 버럭 외쳤다.

"좀 쳤다고!"

후웅, 휘둘러지는 지팡이의 머리 부분이 정확한 타이밍에 후작의 머리를 허공에서 때렸다.

-아, 아아아아아아악! 안돼애애애애애!

뭔가를 직감한 왕이 비명을 지를 때 후작의 머리가 쩌저저적! 금이 가더니 그대로 터져버렸다.

화아아아아악!

빛과 함께 먼지폭풍이 사방으로 몰아쳤다.

【봉인이 깨졌습니다.】

【축하합니다! 미션을 완수했습니다!】

【비궁의 저주가 풀립니다.】

"…아?"

드리트리는 우뚝 멈춰 섰다.

"아아아아?"

그러더니 헛바람 같은 숨을 토해냈는데 그 몸이 거짓말처럼 허물어졌다.

"아아아아아…."

그가 있던 곳에 남은 건 수북하게 쌓인 고운 뼛가루뿐이었다.

"오오오오! 됐다! 역시 난 천재였어!"

김우태가 와하하! 웃어 재꼈다.

"끝났어요? 된 거예요?"

도화지가 달려왔다. 왕도 뼛가루로 변했다. 이 공간에 남아 있는 건 이제 우리가 전부였다.

"이게 뭐냐?"

김우태가 바닥에 떨어진 걸 집어 들었다.

【고대 용사의 일지 193페이지: 아르펠 흑마법사는 리치를 만들려고 하고 있었다.】

김우태가 든 쪽지가 빛을 냈고 어떤 장면을 우리에게 그래픽처럼 보여줬다.

-후작! 이게 다 뭐요?

왕성 밖 하수도롤 통해 나온 비밀공간엔 사람보다 훨씬 큰 괴물이 있었다.

후작이 왕에게 말했다.

-우리 왕국을 부흥시킬 병사입니다. 이것으로 군대를 만든다면 다시는 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건… 괴물이 아니오?

-제가 통제할 수 있습니다. 죽지 않는 병사가 왕국을 지킨다면 그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부패의 주인은 후작의 지팡이가 두려운지 으으으, 신음만 흘렸다.

-제 육신이 다 감당할 것입니다. 모든 죄도 제가 다 가져갈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왕국을 대륙 제일로 만들어주십시오.

-후작…. 당신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요.

-제겐 왕국이 곧 목숨이자 인생입니다.

마법사는 어느 순간 거대한 벽을 느꼈다. 정상적인 방법으론 그 벽을 절대 깰 수 없다는 한계를 직감하곤 편법을 찾기 시작했다.

흑마법이었다.

파앗-!

과거의 영상이 사라졌다.

"…벌써 끝났나?"

"에이, 감질나게. 더 보여주지! 막 재밌어지려고 했는데!"

김우태와 도화지가 투덜댔다. 나는 두 사람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가끔 이런 게 나오더라고요."

전에도 이런 걸 한번 주운 적이 있었다.

"미션도 된 것 같은데 아이템부터 회수할게요!"

"아, 맞다! 수호자의 돌! 그거, 후작한테 있었어!"

봉인은 수호자의 돌이 아니라 후작의 머리였다. 괜히 돌을 깰 뻔했다.

"여기 있다!"

후작의 뼛가루 속에서 반짝이는 돌을 찾아낸 도화지가 손을 높이 들었다.

【수호자의 돌(레전드)】

"오오오, 레전드."

김우태가 놀라워했다.

나는 그걸 보며 미소 짓다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변신이 풀리기 전에 최대한 많은 재료를 수집하려는 거다.

"한 바퀴 싹 돌고 밖에서 만나요!"

저주가 풀린 왕궁엔 스켈레톤이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 뼛가루만 남아 과거의 영광을 쓸쓸히 추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촤악!

【스켈레톤 뼛가루를 수집했습니다.】

물론 나는 이마저도 남겨둘 생각이 없었다. 무려 유니크 미션이었다. 여기서 얻는 아이템이나 소재가 평범할 리 없다.

'이런 걸 일타쌍피라고 하던가?'

지네 고치 처리하러 왔다가 골치 아픈 걸 다 해결했다.

【변신 드링크의 지속 시간이 3분 남았습니다.】

진득한 아쉬움이 몰려오고 있었다. 이 강함과 스피드를 또 언제 맛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드링크를 더 많이 만들어놔야겠어.'

워낙 귀한 소재가 필요하니 유니크 드링크를 팍팍 생산하진 못하겠지만 언제 어떻게 쓸지 모르니까 포인트를 과감하게 투자하더라도 많은 종류를 확보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성을 샅샅이 돌고 밖으로 나갔을 때 도화지와 김우태가 기다리고 있었다.

범이는 늘어져서 자는 중이다.

"이거 봐라?"

도화지가 두 손을 내밀었다.

"와, 많이 찾았네요?"

"응응! 헤헤! 고생한 보람이 있네!"

모은 두 손에 돌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재능마켓으로 돌아가면 훨씬 많은 보상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 거였다.

"범아! 가자!"

갸르르릉.

졸지에 유니크 미션을 만나버렸지만 우린 또 이겨냈다. 그리고 강해졌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

.

【저주받은 인형의 팔찌(유니크)

인형이 착용하면 저주를 더욱 강하게 한다. 지속 시간 상승효과도 있다.】

재능마켓에 돌아온 우린 각자의 집으로 출발했다. 인형의 팔찌는 김우태가 가졌다.

【아르펠 여왕의 반지(유니크)

방어력+3. 힘+1. 아르펠의 보물. 대대로 여왕이 대물림해서 착용한다.】

이건 도화지가 가졌다. 방어력 덕분에 그녀도 이제 미션을 완료하고 다음 필라테스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스킬: 기氣(유니크) 무기에 무형의 기운을 실을 수 있다. 아르펠 기사들이 연성했던 고대의 힘이다.】

드리트리가 쓰던 바로 그 기술을 얻었다. 아직 화살에 실어서 써보진 않았지만 벌써 기대가 된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이건 비궁에서 얻은 확정 보상이고 천년 지네를 처리한 보상이 또 있었다.

【천년 지네 사냥꾼: 은밀함+1. 독기 내성+1. 이제 모든 지네가 당신을 두려워합니다.】

모두가 호칭을 공통적으로 받았다. 원숭이 사냥꾼보다는 조금 더 멋진 것 같다.

【천년 지네 사체(유니크): 매우 귀한 재료다.】

【빛나는 스켈레톤 뼛가루(유니크): 마법을 담기에 최적의 재료다.】

이런 수확도 있어서 전부 드링크를 만들어서 숙성 중이다.

또 레어 아이템 같은 것들을 각자 쓰임에 맞게 나눠 가졌는데 이것들도 앞으로의 전투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어쨌든 내일도 해가 뜬다.

오늘은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 모두에게 휴식이 필요했다.

덜컹, 덜컹!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토록 평화로운 곳에 그 스켈레톤들이 침입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드리트리를 막을 무기가 있나?

'더 강해지고 싶어.'

무엇보다 나는 1시간이었지만 드리트리가 되었었다. 그 갈증이 아직도 가시질 않는다.

'지금보다 더!'

.

.

.

아침.

【재능마켓에 입장할 수 있습니다.】

메시지가 들렸지만 도화지는 한 귀로 흘려버렸다.

"음냐."

그녀는 좋은 꿈을 꾸고 있었다. 어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이렇게 꿀잠을 자는 것도 오랜만인 것 같았다.

생각 같아선 온종일 자고 싶었다.

그런데 코끝이 절로 움직였다.

킁킁.

냄새를 맡자마자 배가 요동을 쳤다.

꼬르르르르륵.

"…우웅."

그녀가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할머니?"

"일어났어? 우리 강아지."

할머니가 도화지의 엉덩이를 손으로 두드렸다.

"어서 씻고 나와. 아침 먹자."

"으응."

완치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예전보단 좋아진 할머니는 아침잠이 없었다. 산책도 하고 된장찌개도 끓였다.

욕실로 들어간 도화지는 거울을 보다가 말했다.

"소환."

그녀의 손에 분홍색 빛이 맺혔다. 그게 빗으로 변한다.

"오, 짱이당!"

어제 그녀도 포인트를 투자해서 이것저것 장비를 갖췄는데 무엇보다 이렇게 원할 때 언제든 물건을 뺄 수 있다는 게 대박이었다.

슥슥 빗질을 하던 그녀는 겨우 웃음을 참았다. 욕실에서 혼자 실실 웃고 있으면 할머니가 이상하게 생각할 거다.

하지만 이 빗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원래는 도끼였는데 그녀가 작은 빗으로 커스텀 해버린 거다.

【몽환의 도끼(레어)

매력+1

힘+1

추가 타격+1】

"더 예뻐진 것 같지?"

매력만 붙으면 뭐든 좋았다. 헝클어진 머리만 정리하고 밖으로 나간 그녀가 의자에 앉으며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

"응?"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애써 웃어버렸다.

"아니야."

"싱겁긴. 어서 밥 먹어. 식으면 맛없어."

"응!"

그녀는 오늘 필라테스에 도전할 생각이다. 어쩌면 남은 시간을 다 써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도 모자라서 하층에 또 가야 할지도 몰랐다.

그러면 보름은 후딱 간다.

할머니에겐 고작 반나절이 그녀에겐 그리움이 쌓이는 시간이 되기에 도화지는 꼭꼭 밥을 씹으면서 할머니 얼굴을 계속 바라봤다.

'내가 꼭 지켜줄게. 그러니까 아프지 마.'

후작의 머리를 망치로 깰 수 없었다는 무력감을 경험한 그녀였기에 필라테스를 미루지 않기로 했다.

학교를 마치고 곧장 재능마켓으로 향했다.

그녀의 눈빛이 변했다.

"어? 언제 왔어?"

"저는 학교 안 가잖아요."

민준이 소재들을 늘어놓고 드링크 연구를 하고 있었다.

"이거 볼래요?"

"뭔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