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146화 (146/277)

#146화

"잉태를 막으라고 했는데…. 이게 깨어나지 않게 하면 된다는 거지?"

혹시나 해서 소리 내 물어봤다.

【하층 천년 지네: 최초 알에서 깨어나 충분한 영양분을 흡수하면 첫 번째 변태를 진행한다. 총 10번의 변태를 거쳐 성체가 되는데 한 번씩 변태할 때마다 몸집을 불린다.】

꽤 대단한 놈인지 설명이 길다.

【하층에서 가장 강력한 생물 중 하나인 천년 지네는 단단한 외피도 위력적이지만 변태를 거쳐 성체가 되면 독성 침을 뱉을 수 있다. 그 침에 노출되면 살 수 있는 생물이 없다고 전해진다. 특히 천년 지네 성체는 매우 지능이 뛰어나서 주인의 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다.】

"군단이라고 했는데 이거 하나가 군단 역할을 한다는 건가?"

불친절한 재능마켓이 대답해줄 때는 무조건 하나라도 더 물어보는 게 좋다.

【성체 천년 지네는 자웅동체가 되어 알을 낳을 수 있다. 한 번에 1만 개 이상의 알을 낳으며 천년 지네는 모든 생물을 먹는다.】

"만 개?"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런 놈이 일만? 그러면 또 그 일만이 자라서 알을 낳기 시작하면 십만? 백만? 천만?

【대대로 하층의 지배자들이 천년 지네를 부려왔으며 마지막으로 목격된 천년 지네는 300년 전이었다.】

설명은 여기서 끝이 났다.

더 물어봐도 재능마켓은 대답이 없었다.

"후….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소리 같은데."

그 퀸이란 놈이 목표로 하는 게 어쩌면 이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하층의 절대자라면 최상층에 혼자 넘어와서 가장 먼저 무얼 할까?

'내 부하들을 다시 만들겠지.'

어중이떠중이는 필요 없을 터. 현대 화기로도 상대할 수 없는 강력한 부하를 필요로 할 거다.

그게 바로 이 천년 지네일지도 몰랐다.

'이 정도라면 탱크가 밟아도 안 죽을 거니까.'

고치를 만져보며 잠시 보고 있다가 망치를 소환했다. 그리곤 힘껏 내려쳤다.

까앙-!

역시 이럴 줄 알았다. 화살도 안 박히는데 망치로 깨질 강도가 아니었다.

"으윽…."

반탄력에 손바닥이 찢어질 것 같다.

'힘으론 안 돼. 머리를 써. 머리를….'

지력+4의 두뇌를 풀 가동하면서 앉아있는데 김우태와 도화지가 재능마켓으로 돌아왔다.

"형! 누나!"

"여어, 그거 그대로지?"

"네. 그쪽은 정리된 거예요?"

"일단 거기 있는 건 다 깼어. 화지가 땅에 묻혀 있는 것도 찾아내더라고."

도화지의 후각이라면 생존한 개미는 없을 것이다.

도화지가 지켰다는 듯 벽에 기대앉았다. 그러면서 물었다.

"이제 뭘 해야 해?"

나는 두 사람에게 천년 지네에 대한 것들을 말해주었다.

"만 개의 알을 낳아? 저렇게 단단한 놈들을?"

"그 지경이 되면 이미 여긴 멸망한다고 봐야겠죠. 이놈들 먹성도 장난이 아닐 건데."

아까 봤다. 아무리 공격을 받아도 식탐이 앞서는걸.

우리 셋은 더 깊은 대화를 해야 했다.

"그러면 그 로드라는 놈은 시녀들을 부리거나 촉수 달린 괴물 같은 걸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거고. 이 퀸은…. 전의 그 벌레도 그 녀석 작품일 가능성이 크겠네요. 개미나 지네까지 키우는 걸 보면."

"뱀파이어는?"

"다른 하나겠죠. 백작은 벌레와는 궤가 달라요."

이야기를 듣던 김우태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면 정리해보자. 최소 두 놈이 저쪽에서 넘어왔고 그놈들이 지금 이 고치 같은 부하를 까고 있다는 거잖아. 우린 놈들이 군단을 만들기 전에 작살내야 하는 거고."

"네, 이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요. 그래서 재능마켓이 저를 훈련 시킨 것 같아요."

"너 혼자로 안 되니까 우리까지 끌어들였겠지."

도화지가 미소지었다.

"두근두근하네? 다 끝나면 우리 할머니도 치료할 수 있겠지?"

지금까진 나도 재능마켓이 뭘 하려고 하는지 몰랐는데 이제 알 것 같다. 이 세상을 지키는 것.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인 거다.

"그래서 네 생각은 어때?"

김우태의 말에 나는 웃었다.

"가야죠. 여기서 이놈을 풀어놓을 순 없잖아요."

"하층으로?"

"네. 퀸도 이런 놈을 대량으로 계속해서 만들 순 없을 거예요. 그러면 적어도 우리는 이놈만 사라지게 하면 퀸의 계획을 늦출 수 있게 되겠죠. 게다가 저쪽 세상에선 이런 놈이 깨어나 봐야 그닥 힘을 못 써요. 더 말도 안 되는 괴물들이 있는 거 봤잖아요."

"하긴 그레이트 웜만 해도…."

"꼭 부술 방법을 찾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버리고 오죠?"

"크크큭! 좋은 방법이네. 퀸도 거기까진 예상 못 했을 거다. 이게 어떻게든 깨어날 거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그러면 이제 남은 문제는 어디에 버리냐인데."

가고 싶다고 언제나 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다들 체류 시간 얼마나 남았어요? 저는 800시간 넘게 남아서 다 소비해버릴 순 없을 것 같아요."

도화지가 대답했다.

"나는 459시간!"

김우태가 가장 적었다.

"난 29시간이라고 뜨는데?"

"형은 왜 그거밖에 없어요?"

"어제 운동 좀 진득하게 했거든. 전에 필라테스 하면서도 많이 까먹었고."

"좋아요. 앞으로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 얼추 알았으니까 이제 놈들에게 우리도 전략적으로 대항해야 할 것 같아요. 특별한 미션이 나올 때가 아니면 우리는 저쪽 세상에 마음대로 갈 수 없다는 건 아시죠?"

"응."

"1,000시간을 쓰면 간다며?"

두 사람을 보며 내가 작전을 말했다.

"앞으로 이런 강력한 적이 계속 나올 예정이라면 우리도 빨리 강해지는 방법밖엔 없어요. 다행인 건 우리가 지금까진 더 유리할 것 같다는 거예요. 놈들의 시간은 멈춰있지만 우리는 아니니까."

강한 적이 서울 한복판에 있다는 걸 알았으니 이제 우리에게 선택지는 없다. 최선을 다해서 놈들과 대항할 수 있게 실력을 키워야 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로 가냐?"

"제 예상이 맞는다면 부패의 주인이요. 설원일 거예요."

그나마 이런 루틴이라도 발견했으니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으으으, 추운 거 싫은데."

김우태가 엄살을 부리자 내가 웃었다.

"그 사막도 만만친 않았잖아요."

"그랬지. 끔찍했어."

"남은 시간 동안 정비하고…. 그때까지 이놈이 깨어나지 않길 빌자고요."

.

.

.

"이거,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는데?"

그는 기분 좋은 듯 웃었다. '천년 지네'가 느껴지자마자 이곳으로 왔는데 이미 상황은 다 정리된 후였다.

저쪽에서 경찰이 다가왔다.

"누구시라고 하셨죠?"

"서초서 조우진 형삽니다."

"아, 네. 서초서에서는 아까도 다녀갔었는데요. 더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아닙니다. 확인할 게 있었는데 다 됐습니다."

경찰이 물러가자 조우진 형사는 옆의 여자에게 말했다.

"몸은 어때?"

"오래…. 버티진 못할 것 같습니다."

시녀의 얼굴이 부자연스러웠다. 원래 무표정했었는데 조금씩 살들이 중력에 흘러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새로운 몸을 찾아야 돼. 아파트에서 골라봐. 이왕이면 젊고 싱싱한 육체로."

"네."

지금까진 그의 마법과 종속력으로 육체의 붕괴를 막고 있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퀸이 천년 지네를 낳았어. 이건 그녀가 어느 정도 힘을 회복했다는 증거겠지."

"천년 지네는 로드께서 죽이지 않으셨나요?"

"그랬지. 300년 전쯤이었나. 마지막 천년 지네를 내 손으로 잡아 죽였는데 천년 지네를 낳을 수 있는 존재는 퀸이 유일하거든. 그녀가 출산을 시작했다는 건 이 세상의 끝도 멀지 않았다는 거야."

"그건 로드께서 안 계실 때의 얘기겠죠?"

"훗, 어느 쪽이든 마지막에 남는 건 나일 거니까."

그녀가 파괴의 중심에 있다면 그는 그 과정에서 모이는 고통과 상처의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다.

"내가 온 걸 모르는 모양이야. 무식하게 알을 까기 시작할 걸 보면."

"피 바라기들은요?"

"그놈들은 어차피 인간에 빌붙어 사는 놈들이라…."

로드에게 가장 부담되는 존재는 퀸이었다.

"오든 안 오든 신경 쓸 필요 없다. 마법 없는 종속만으론 육체의 한계를 절대 넘을 수 없거든."

"네. 로드."

로드가 물었다.

"부녀회가 언제라고 했지?"

"다음 주 토요일이요."

"좋아. 그때 세를 늘린다. 그전까지 좋은 몸을 찾아."

"알겠습니다."

거리로 나간 그가 택시를 탔다.

뒷좌석에 앉자 시녀가 물었다.

"어디로 가세요?"

"강남."

"강남 어디요?"

"일단 가. 근처에 가면 알 수 있을 거니까."

천년 지네의 마지막 흔적이 끊긴 곳. 거기에 뭐가 있는지 봐야겠다.

부릉.

택시가 출발하자 뒤를 따르는 차가 있었다. 로드는 그걸 느끼며 피식 웃었다. 이제 저렇게 꼬리를 밟는 것도 끝낼 날이 머지않았으니까.

.

.

.

휘이이이잉.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으으으, 추워."

"누나, 형한테 좀비 잡는 법 알려주세요."

"응!"

두 사람이 저쪽으로 걸어가자 나는 지네 고치를 들고 설원에 섰다.

'이렇게 추우면 얼어서 동면이라도 하려나?'

그건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여기, 먹을 게 없다는 거다.

'굶어 죽으면 더 좋고.'

생각 같아선 용암에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그 뜨거운 곳에서도 살아가는 물기기를 봤다. 이 지네도 버텨낼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해야 했다.

'식탐이 강하다는 건 그만큼 영양분이 절실하다는 거지.'

여기 있는 거라곤 좀비 몇 마리가 전부다. 그마저도 내가 재료 수집망에 담아버릴 거니까 지네가 깨어나도 먹을 게 눈밖에 없다.

나는 지네 고치를 설원 한복판에 두고 잠시 기다렸다. 이곳의 좀비 따위는 이제 도화지 혼자서도 쉽게 처리할 수 있다. 거기에 김우태까지 있으니 부패의 주인도 이젠 장난감 취급해 버릴 거다.

【10P를 얻었습니다.】

-사장님! 나이스 샷!

저쪽에서 도화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좀비 한 마리가 비명횡사한 모양이다.

-아오! 추워! 후딱후딱 하고 가자!

김우태의 목소리도 들렸다.

긴장감 전혀 없는 둘을 느끼면서 나는 미소 지었다. 처음에 내가 여길 와서 미션을 할 때는 참 섬뜩하고 외로웠는데 저들은 시작부터 아주 윤택한 카펫이 깔린 길을 가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더 성장이 빠를 것이란 뜻이고 내겐 아주 좋은 일이었다. 특히 육체만 강하다고 전투가 되는 게 아닌데 무서운 좀비를 장난치듯 이겨낼 수 있다는 건 앞으로 어떤 상황이 닥쳐도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거다.

'좋아. 나도 열심히 하자.'

지금까진 시간이 부족하면 미션을 하고 필라테스를 해야 하면 그때그때 해왔지만 천년 지네 같은 게 우리 발아래에서 자라고 있다는 걸 안 이상 더 주도적으로 재능마켓을 이용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꺄아아! 오빠! 빗맞았잖아요! 다 튄다고요!

-하하! 미안! 추워서 손이 떨려서 그래!

좀비 학살자들을 보면서 나는 부패의 주인이 있는 동굴로 먼저 이동했다. 어차피 김우태에게 맡길 거지만 어떤 돌발상황이 벌어질지 몰라 지키곤 있어야 했다.

'지네가 깨어나지 않아서 다행이야.'

속으로 안도하면서 막 동굴에 진입하는데 메시지가 울렸다.

【세 번째 진입으로 비궁이 열립니다.】

【유니크 미션이 발동했습니다.】

【비궁의 발견으로 10,000P를 획득했습니다.】

'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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