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음…. 이거 딱딱해. 부서질까?"
김우태가 지네 고치를 발로 차며 말했다.
"상당히 위험해 보이죠?"
"어, 이게 부화하지 못 하게 하는 게 이번 미션일 것 같은데 말이지."
그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것들도 다 처리해야 할 것 같고."
아직 깨어나지 않은 개미 알들이 사방에 있었다.
"알은 내가 부술게요!"
도화지가 망치를 들고 팔을 걷어붙였다. 나는 지네 고치를 손으로 만져보면서 혀를 찼다.
"그래도 해보긴 해야겠죠?"
내 가장 강력한 공격이라고 한다면 인내를 머금은 화살이었다.
김우태가 끄덕이며 물러서자 나는 활을 들고 조준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라면 쇠도 뚫는 화살이다.
그그그그극!
힘이 모였다. 타점에 빗나가지 않게 집중한 뒤 시위를 놓았다.
틱!
하지만 화살은 허무하리만치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빗맞은 것도 아니었고 힘 조절에 실패한 것도 아니었다. 표면을 뚫지 못해서 미끄러진 것이었다.
"와…. 장난 아니네."
이제까지 많은 적을 상대했었지만 이렇게 화살이 무력한 적은 없었는데.
"뭐가 태어날진 몰라도 이런 방어력을 갖고 나오면 그땐 재앙이야. 지금 처리해야 돼."
저쪽을 보니 도화지가 신나게 망치질을 해대고 있었다. 퍽퍽 부서지는 개미알들은 오래 지나지 않아, 해결될 것 같은데 문제는 이 고치였다.
"형."
"응?"
"일단 옮기죠."
"어디로?"
"우리에게 가장 안전한 곳이라면 한 군데밖에 없잖아요. 만약 이게 깨어난다고 해도 재능마켓에서라면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없을 거예요."
"좋은 생각이다."
"제가 범이랑 먼저 갈게요. 형은 누나랑 여기 마무리하고 오세요."
"알겠어. 조심해. 가는 길에 이놈이 깨어나기라도 하면 큰일이야."
나는 고치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뭐 이런 자식이 다 있는진 모르겠지만 아까 그 강력한 개미도 한 방에 죽어버렸다. 최소한 이놈이 고치를 깨고 나오면 그보다 강한 것이고 그러면 우리 셋이 힘을 합쳐도 버겁다는 뜻이었다.
"범아."
이럴 때 이동 수단이 있다는 게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
.
.
새벽녘, 홍대 기숙사에서 타는 냄새가 난다는 신고가 들어왔었다. 소방당국과 경찰에선 별일 아니라고 치부하고 넘어가려고 했지만, 보일러실에서 이상한 구멍이 발견된 후 일이 걷잡을 수 없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경비원이 실종된 게 언제라고 했죠?"
급히 달려온 서초서 강력반 팀원들은 마포구 담당 경찰에게 물었다.
"CCTV를 보면 나흘쯤 된 것 같습니다. 근데 대체 저게 뭡니까?"
강나은 경위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도 처음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두 사람이 더 보일러실로 급히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광수대에서 나왔습니다. 아, 경위님도 와 계셨군요? 하하! 이거, 자주 뵙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일반적인 사건이라면 '광수대에선 어쩐 일로?'라고 말했겠지만, 그녀 역시 이쪽 담당이 아닌데도 온 만큼 이 케이스는 공유해야 했다.
"팀장님은 어디 가셨습니까?"
윤일권의 말에 그녀는 구멍을 바라보았다.
"두 시간 전에 현장에 진입하셨어요."
"안에서 뭐 나온 거는요?"
"모르겠어요. 무전이 닿질 않아서. 보시다시피 전자기기들이 잘 작동하지 않아요. 꼭 정전이라도 한번 됐던 것처럼."
그녀의 말에 광수대 강한석이 윤일권에게 말했다.
"실제로도 아까 이 일대에 전기가 나갔다는 신고가 접수됐었다고 합니다. 2시간쯤 지속됐는데 이상한 건 휴대폰까지 먹통이 됐었다고 하더라고요. 통신사까지 그러는 건 비상식적이죠."
그 말에 윤일권이 눈을 가늘게 뜨며 구멍을 바라봤다.
"최근에…. 이 지역에서 실종자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타지에서 올라온 대학생들이 많아서 부모님들이 신고를 늦게 했어요."
"실종이요?"
"그렇습니다. 단순 가출이라고 하기엔 미심쩍은 부분이 많아서…."
이때였다.
"팀장님?"
구멍 저쪽에서 인기척이 들렸고 팀장이 나타났다.
"아, 광수대에서도 오셨군요."
"확인할 게 있어서요. 겸사겸사 들렀습니다."
"뭘 확인하시려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찾는 건 아닐 겁니다. 가시죠.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팀장과 함께 나온 형사들이 부랴부랴 움직였다. 밖으로 나가며 외치는 그들을 보며 강나은 경위가 팀장에게 물었다.
"살인사건이라고요?"
"그래, 안에 사체가 있어. 그것도 아주 많이…."
강나은 경위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살인사건이야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겠지만 팀장의 안색이 너무도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세요? 팀장님."
"후…. 보는 게 더 빠를 것 같아."
그가 돌아서며 왔던 곳을 향해 걷자 그녀와 광수대도 따라붙었다.
팀장이 말했다.
"발밑 조심하십시오."
각자 든 핸드폰에서 플래시가 주변을 밝혔다.
"보기보다 넓군요. 성인 남성이 자유롭게 드나들었겠습니다. 혹시 그 실종되었던 경비원 짓입니까?"
여긴 대학교 기숙사다. 만약 누군가 못된 마음을 품고 이런 지하공간을 만들어서 학생을 납치라도 한다면….
"관련이 없다고 말씀드릴 순 없지만 그가 혼자 이걸 해낼 순 없었을 겁니다. 중장비도 동원하지 않고 삽으로 이렇게 파려면 몇십 년은 걸립니다. 경비원은 일한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어요."
강나은 경위가 벽을 손으로 만지며 말했다.
"장비를 동원했다면 표면이 매끄러워야 할 텐데 이건 마치."
"조금씩 뜯어낸 것 같지."
팀장이 거들자 강나은 경위가 용기를 내서 벽면의 마른 나무뿌리 같은 것을 만져보았다.
"이런 건 처음 봐요. 뿌리는 아니잖아요?"
"더 놀랄 일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여기서 기운 빼지 말자고."
한참을 걸어갔다.
윤일권이 말했다.
"설마 어떤 미친 인간이 서울 전역에 동굴을 파둔 건 아니겠죠?"
"그렇진 않습니다. 거의 다 왔거든요."
첫 번째 현장에 도착했을 때 모두가 멈칫했다. 이미 경찰들이 증거도 수집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바삐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들도 낯선 사건에 흥분한 상태였다.
"이건…."
"뭡니까? 이게?"
광수대 사람들이 입을 떡 벌리자 팀장이 말했다.
"뭐 같습니까?"
"사람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잠시 그곳에 머물던 그들은 더 이동했다. 그러자 넓은 공간이 나타났는데 아래로 내려가야 할 것 같았다.
"저게 다 뭐에요?"
강나은 경위가 눈을 크게 떴다.
팀장은 한숨을 크게 내쉬면서 모두에게 말했다.
"보면 불과 얼마 전에 무슨 일이 이곳에서 벌어졌습니다. 더 조사해봐야 하겠지만 지금까지 확인된 사람은 다섯이었고 모두 죽었습니다."
"사람은 그렇다 치고 대체 저건 뭡니까?"
흔적이었다.
윤일권은 팀장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아래로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갔다.
"…하…."
알은 모두 파괴되어 있었지만, 그 안에 있던 것들은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는데 완전히 자라지 않아서 확실히 특정할 수 없긴 해도 사람은 아니었다.
"외계인이라도 온 거야 뭐야."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기괴한 모습이었다. 수백 마리의 흔적은 잔혹하다기보다는 너무도 낯설었는데 그가 쪼그려 앉아서 하나의 사체를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
"아직 수분이 마르지도 않았어."
그가 벌떡 일어났다.
"한석아!"
"네! 대장님!"
"빨리 나가서 학교 CCTV 다 뒤져! 근처에 주정차했던 차들 블박도 다 확보하고! 팀장님!"
"네."
"혹시 아까 우리가 들어온 곳 말고 출구가 더 있습니까?"
"모릅니다. 저도 여기까지만 봤거든요."
"알겠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 광수대가 맡아야 할 것 같습니다. 언론 통제 확실히 하고 이것들이…뭔지 알아낼 때까진 쉬쉬하는 게 좋을 것 같죠?"
"믿지도 않을 겁니다. 이렇게 큰…뭐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어떤 미친놈이 대학교 기숙사 지하에서 이런 일을 벌였는진 모르겠지만 따지고 보면 그래서 여기일 수도 있는 겁니다. 이게 보통 사람이 저질렀을 리 없잖습니까?"
"혹시 학교가 관련되었다는 겁니까?"
"제가 볼 때는 단순 감금이나 그런 건 벗어난 것 같습니다. 여기서 어떤 연구나 실험 같은 게 있었을지도 모르고요."
윤일권의 머릿속에 한 기업이 스쳤다.
'그놈들 짓일지도 몰라.'
요즘 잠잠하다 싶었는데 이런 일을 꾸미고 있었나?
"저희가 도울 일은 없겠습니까?"
"강력반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긴 한데…."
"찝찝하시죠?"
이미 두 사람은 이상한 사건에 계속해서 마주쳐왔다. 한강 괴물들도 그랬고 고등학교 인질극 사건 때도….
"뭔가 있는데 그게 어떤 놈 소행인지를 모르겠단 말이죠. 혹시 아시는 게 있으십니까?"
팀장의 말에 윤일권이 그에게 눈짓했다. 일행들과 조금 떨어진 곳까지 걸어간 윤일권이 말했다.
"의심스러운 놈들이 있긴 합니다만 워낙 거물이라 당장 나설 수가 없습니다. 팀장님께서도 여기 계신 걸 보면 마포 쪽에 끈을 두신 거죠?"
"동기들에게 다 연락을 해뒀었습니다. 그때 그 여자가…. 어디에서 나타날지 모르니까요."
마음 같아선 괴물이라고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우선은 저게 뭔지부터 밝혀내고 진행하시죠. 이곳에서 발견된 사체들 신원도 확인해야 하니까요."
"알겠습니다. 기다리죠."
팀장은 몸을 돌려 강나은 경위에게 걸어갔다. 여기까지 오긴 했어도 두 사람이 이 사건을 계속 진행할 순 없는 일이었다.
"조금만 빨랐어도 잡을 수 있었을 건데."
"최초 신고는 저녁이었다고 했죠?"
"그래, 그때는 단순히 담뱃불이라도 붙었겠거니 했겠지. 설마 지하에 이런 공간이 있으리라곤 소방관들도 상상이나 했겠나."
"그런데 연기가 계속해서 올라온 거고요."
"불이 붙었던 흔적이 있었어."
두 사람이 막 현장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였다. 저쪽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나왔다. 감식반이 뭔가를 발견한 거다.
-이거!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뭔데?
-이게…. 그…화살촉 같은데요?
그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동시에 움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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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선 큰 표범으로, 밖에선 오토바이로 변신한 범이의 등에 고치를 매달고 재능마켓으로 돌아왔다.
고치의 크기는 경차 타이어만 했는데 무게도 상당했고 무엇보다 100층 높이에서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을 것같이 단단했다. 대체 뭘로 만들면 이럴 수 있을지 의문까지 들 지경이었는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이런 놈이 깨어나면 절대 안 될 것 같았다.
【재능마켓에 입장하셨습니다.】
고치를 바닥에 내려놓고 나는 팔짱을 끼고 앉았다.
"고생했다."
범이가 저쪽으로 가서 엎드리자 나는 피식 웃은 뒤 미소를 지웠다.
'군단의 잉태를 막으라고 했었어.'
새삼 끔찍한 건 바로 이것이었다. 아까는 워낙 정신이 없어서 의논하지 못했던 일이었지만 돌이켜보면 '군단'이라는 단어 자체가 지칭하는 게 뭐던가?
'이런 게 천 마리면….'
핵이라도 터지지 않는 이상 이걸 죽일 무기는 없을지도 몰랐다. 이것도 아까 그 지네 상태였을 때를 가정한 거다. 훨씬 더 강한 무언가로 성장해서 고치를 뚫고 나온다면?
'군단이 고작 천 마리 정도는 아니겠지.'
최하 일만 단위 정도 앞에 붙는 말 아니던가?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고치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내가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