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파티 미션: 지하 군단의 잉태를 막아라! 확정 보상:10,000P.】
'파티 미션?'
일개미나 날개 개미보다는 몸집이 작은 녀석이었다. 그런데 말을 한다.
"…!?"
나는 그쪽으로 돌아서면서 활을 겨눴다.
"감히…. 퀸의 자식들을…."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녀석은 다른 녀석들과 달리 사람의 얼굴을 고스란히 가졌다. 하체가 개미의 그것이지만 크기가 작다. 그렇다고 해서 저놈이 자른 개미보다 약할 것 같진 않았다. 무엇보다 존재감이 대단했다.
"퀸이라고?"
낯설지만 아주 중요한 단어를 들은 것 같았다.
"죽어라…."
놈이 상체를 낮추며 기어 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었다.'라고 하기엔 그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
바바바바바박!
하체에 붙은 여섯 개의 다리로 알들을 넘나들며 접근하는 녀석은 두 눈이 보일 때마다 살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형!"
나는 더 옆으로 뛰며 외쳤다.
"봤어! 여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그놈만 집중해!"
다른 개미들은 김우태에게 자연스럽게 끌렸다. 인형의 저주는 그만큼 강력한데 새로 등장한 놈은 그걸 무시하며 내게 달려들었다. 이것만 보더라도 이놈이 얼마나 특별한지 알 수 있었다.
'빨라. 그리고 섬세해.'
놈의 다리는 알을 넘으면서도 알의 표피에 상처를 입히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힘 조절에 능숙하다는 뜻이다. 이미 코앞까지 다가온 놈을 보며 나는 시위를 놓았다.
투웅-!
불 기름을 먹은 화살이 놈의 가슴에 날아갔지만, 놈은 앞발을 휘둘러 화살을 후려쳤다.
"헛?"
정면에서 화살을 후려치는 놈은 처음이었다. 화살을 꺼내 시위에 걸 시간이 없었다. 그대로 활을 놓으면서 망치를 소환했다. 그리곤 바짝 다가온 놈에게 휘둘렀다.
후웅-!
바람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망치를 보면서 놈이 말했다. 종잇장 하나 차이로 망치를 피한다는 것, 이 와중에 침착하게 말까지 한다는 것이 얼마나 오싹 한가?
"왜 방해하는 거냐? 퀸께서 은혜를 내리셨는데 네까짓 게! 내 행복을 부수려고 하는 거지?"
놈의 앞발이 날아왔다.
'피할 수 없어!'
나는 두 팔을 교차해서 가슴을 가렸다.
퍼억-!
엄청난 힘이 가드를 때렸다. 둥실 날아오르며 몸이 뒤쪽으로 쏠렸다.
"살면서 처음으로 이렇게 행복한데! 왜! 왜!"
놈이 나를 따라잡으며 외쳤다. 이성을 잃은 눈동자는 맹수의 그것처럼 번들거렸다.
'제길, 이 자식. 강해.'
김진명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농촌에서 그가 출세할 길은 오직 공부밖에 없었다. 그에겐 꿈이 있었다. 그림을 좋아했지만, 돈이 없어서 도구조차 못 샀다. 언젠간 돈 걱정 없이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온 대학.
반에서 계속 1등을 했고 대학에 왔으니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했을 때 진정한 지옥은 시작됐다.
돈.
등록금은 학자금대출로 어떻게든 처리했지만 살인적인 서울 물가는 그를 더 궁지로 몰았다. 그림을 그린다는 건 사치였다. 학교 수업에 알바까지 마치면 언제나 곯아떨어졌고 꿈은 멀어져만 갔다.
그러다 퀸을 만났다.
"이 쓰레기 같은 세상은 망해버려야 해! 정화가 필요하다고! 방해하지 마라!"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진정한 해방. 그 자유에서 그에게 주어진 사명은 오직 하나였다.
약육강식!
돈도 법도 남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힘을 얻은 그는 이제 거칠 게 없었다. 이 알들만 부화하면 대군을 이끌고 썩어빠진 서울을 모조리 파괴할 생각이었다.
"웃기지 마."
말캉한 알에 등을 기대고 놈의 팔을 막았다. 놈의 사정 따윈 모르겠지만 이런 놈들이 지상으로 올라가면 어떤 참사가 벌어질지 눈에 선했다.
"너는 퀸의 노예일 뿐이라고."
"…그! 그분을 모욕하다니! 찢어버리겠다!"
퀸이 뭔진 몰라도 이놈을 자극하는 덴 성공한 것 같았다.
'흥분할수록 빈틈이 생기는 거야.'
체육관에서 회피를 배우기 시작한 게 이렇게 큰 도움이 된다.
'마음이 떨리면 뻗는 주먹도 떨릴 수밖에 없고.'
깡!
망치가 놈의 앞발을 때렸다. 놈의 갑각이 얼마나 딱딱하면 쇠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퀸이라….'
나는 저쪽을 힐끔 봤다. 범이가 날개 개미의 머리를 물어뜯고 있었다. 셋의 호흡이라면 오래 걸리지 않아 날개 개미들은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놈도 이렇게 강한데 퀸이 나타나면 답이 없어. 빨리 해치우고 빠져야 돼.'
도화지와 김우태가 합류하길 기다려야 하나?
'아니야. 그러다가 퀸이 올 시간을 벌어주면 곤란해.'
이 개미굴을 보고 느낀 게 있었다. 이렇게 강한 힘을 가진 놈들이 왜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지하에 굴을 팠을까? 개미라서? 본능이니까? 내 생각은 퀸이고 뭐고 이놈들도 사람들 앞에 대놓고 나타나기엔 아직 힘이 모자란다고 여긴 거다.
투웅!
놈의 힘을 이용해서 알을 밟고 위로 솟구쳤다가 뱀파이어 날개를 펼쳤다.
화악-!
허공에서 우뚝 멎는 나를 보며 놈이 당황할 때 나는 망치 대신 활을 소환한 뒤 빠르게 불화살을 들었다. 그리곤 쐈다.
"…흥!"
한참 빗나가는 화살을 보며 놈이 비웃는데 나는 씨익 웃곤 두 번째 화살을 쐈다. 방금 날아간 화살의 옆이었다.
화르르르륵!
"…어어엇?"
내가 노린 건 놈이 아니었다. 정면에서 쏴봐야 놈에겐 통하지 않았다.
"이, 이 자식이! 멈춰!"
놈이 맹목적으로 퀸을 따른다면, 퀸을 대신해서 이 알들을 지켜야 한다면 나는 놈에 비해서 잃을 게 없었고 본래 싸움은 잃을 게 없는 쪽이 유리한 법이다.
활 통에서 뽑아낸 화살에 기름을 잔뜩 먹인 뒤 휘둘렀다. 촤악-! 기름이 사방으로 튄다. 메뚜기와 밤새도록 싸우면서 불을 질러본 경험이 있어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질 안다. 걱정되는 것이 하나 있다면 이런 곳에서 불이 났을 때 그 연기에 우리가 질식할 수도 있다는 위험성이었다.
그걸 따질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기에 극단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만, 그만하라고오오오!"
놈이 소릴 지르며 뛰어왔지만 나는 날개를 접고 말캉한 알을 밟은 다음 힘차게 뛰어올라 다시 날개를 폈다. 어릴 적 놀았던 트램펄린 위에 있는 것 같았다.
'좋아! 저렇게 흥분하면…!'
놈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그때였다.
쿠르르르르릉.
"…!"
"…민준아?"
"뭐야?"
모두가 놀랄 만큼 큰 진동이었다.
"핫…?"
나도 당황해서 아래를 봤는데 쩌억-! 갈라진 바닥이 알을 집어삼켰다. 이건 고작 한 호흡 만에 벌어진 일이었는데 우리보다 더 놀란 건 알을 지키던 녀석이었다.
"아, 안돼애애애애애애!"
아래로 떨어지는 놈을 걱정할 틈은 없었다.
"누나! 형!"
나는 날개가 있었지만 두 사람은 아니었다.
"잡았다!"
김우태가 기적처럼 기지를 발휘했다. 싸우던 놈의 다리를 잡고 도화지의 팔을 움켜쥐었다. 범이가 몸을 작게 하더니 개미의 등에 올라탔다. 날개 개미가 푸드득! 날아올랐는데 이사이, 바닥은 완전히 꺼져버렸다.
첨벙, 첨벙!
흙과 돌이 물에 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김우태에게 날아갔다. 날개 개미가 발광하는 통에 그가 오래 버티질 못할 것을 알았다.
"꽉 잡아요!"
도약한 것도 없었고 이미 우리가 들어왔던 통로는 저 위였다. 도화지와 김우태의 손을 잡고 나는 하강했다. 범이가 날개 개미의 몸에서 훌쩍 뛰어 내 머리에 매달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바닥이 그리 깊지 않았다는 거다.
"물…?"
김우태가 인상을 구겼다. 찝찝한지 킁킁 냄새도 맡았다.
"하수도인가 봐요."
위가 무너져내리면서 기존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오물과 물이 섞여 흐르는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 죽을 뻔했네. 다들 괜찮냐?"
김우태의 말에 도화지가 저쪽을 봤다. 내가 불화살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아까 그 자식은? 어떻게 됐어?"
날개 개미들은 위로 솟았으니 다시 내려올지도 몰랐다. 하지만 더 무서운 적은 알을 지키던 놈이었다.
"저쪽으로 떨어졌어요. 아까 다들 미션 받았죠?"
"응! 군단의 잉태를 막으라던데 저 알들이 그걸까?"
지금까지의 흐름으로 보면 확실할 것 같았다. 대충 둘러보니 대부분 알은 추락하면서 터져버렸지만, 아직도 건재한 것들이 있었다.
"조심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몰라."
김우태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을 때 불길한 소리가 났다.
-으아아아아아아! 이 쓰레기들…!
저쪽에서 흙더미가 솟았다. 튀어나온 놈은 이성을 잃고 소릴 질렀다.
"눈이 완전히 뒤집혔는데?"
"날개 달린 개미들이 오기 전에 저놈부터 같이 잡자!"
김우태와 도화지가 동시에 말했을 때였다.
"자, 잠깐만요!"
나 역시 놈에게 화살을 쏘려고 했다. 그런데 시야에 잡히는 게 있었다.
"다른 게 있어요!"
그건 아주 은밀하게 부서진 알들 사이로 움직이더니 깨진 알에서 나온 유충을 덥석 물었다.
"히이이이익?"
"저, 저거?"
우리가 보며 놀라자 알을 지키던 놈도 머릴 홱! 돌렸다. 그러더니 충격을 받은 듯 고함을 질렀다.
"무, 무슨 짓이냐!"
말과 동시에 습격자에게 달려갔다. 새로 나타난 놈은 지네처럼 생겼다. 다리가 아주 많았고 컸다. 그런데 악 유충을 먹더니 실시간으로 몸집을 불렸다.
번쩍, 번쩍!
놈의 딱딱한 껍질에서 붉은빛이 뿜어졌다.
콰곽!
개미의 날카로운 앞발이 놈의 몸통을 찔렀다. 그러나 놈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유충에게 기어갔다. 그러더니 덥석 물었다.
쯔으으읍.
맛있게 유충을 먹어 치우는 걸 보면서 개미는 고함을 질렀다. 콱콱콱! 앞발을 사정없이 도끼처럼 내려쳤지만, 지네의 껍질은 생채기도 나지 않았다. 그러더니 귀찮다는 듯 몸을 뒤틀었다.
철석!
꼬리 부분으로 후려쳐진 개미가 저쪽 벽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지네는 몸을 푸르르, 털더니 다시 유충들에게 기어갔다.
【파티미션: 지하 군단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잉태를 막아야 합니다.】
"개미가…."
"…아니었어?"
우리도 충격을 받은 건 마찬가지였다.
파르르르르륵!
위에서 날아든 날개 개미들이 지네를 향해 돌진했다. 우리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평생의 숙적을 만난 듯 지네를 공격했다. 하지만 지네는 계속해서 유충을 잡아먹을 뿐이었다. 날개 개미들이 달라붙어서 별짓을 다 했지만, 지네에게 타격을 주지 못했다.
불룩불룩.
지네가 점차 커졌다.
"왜 저러지? 둘이 같은 편 아니었나?"
도화지가 끔찍하다는 듯 말했다.
나는 이 모습을 보면서 퀸이 어떤 존재인지 간접적으로 느꼈다.
개미도 지네도 모두 퀸의 자식들이라고 한다면 저 개미들은 지네가 성장하기 위한 양분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 죽여버리겠다!
분노하며 뛰어오는 저 강력한 개미도 결국 소모품이었다. 퀸의 명령으로 애지중지 알들을 지켜왔지만, 그 임무의 끝엔 더 강한 포식자에게 모든 걸 바쳐야 했던 것이다.
"그냥 놔두면 안 될 것 같은데?"
김우태가 말했을 때 개미는 이미 지네에게 다가선 상태였다.
"그만둬! 먹지 말라고! 으아아아!"
개미가 지네를 끌어안으며 필사적으로 유충에서 떼어내려고 할 때였다. 지네의 머리가 방향을 바꿨다.
"…어억?"
그러더니 어금니를 개미의 얼굴에 박아넣었다.
"컥!"
쯔읍, 쯔으읍, 쭈우우웁….
개미의 몸이 순식간에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고 지네는 만족한 듯 바르르 몸을 떨더니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저, 저거…."
동그랗게 말린 껍질에 실타래 같은 게 맺혀갔다.
【파티 미션: 군단이 잉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