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기숙사 정문으로 슬쩍 들어갔다.
"너, 왜 이렇게 능숙하냐? 누가 보면 여기 학생인 줄 알겠다."
김우태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계속 들어갔다. 배달 몇 년 해보면 이렇게 된다.
도화지가 말했다.
"저쪽이야."
나는 계단으로 향했다.
"아래요?"
"응."
경비아저씨라도 마주치면 곤란하겠지만 인적은 없었다. 그런데 CCTV가 보인다.
"형, 시작할게요."
"오케이!"
【전능한 EMP 발생기(레어)를 사용합니다.】
이걸 쓰면 우리 핸드폰도 먹통이 된다.
화르르륵!
불화살 두 개를 붙여 도화지와 김우태에게 나눠줬다.
전자기기들이 마비되는 걸 보며 나는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오른쪽!"
도화지의 목소리에 몸을 틀면서 달려갔다.
"여긴 것 같은데요?"
우리 앞에 세 개의 문이 보였다.
보일러실 앞에서 도화지가 외쳤다.
"이 안이야!"
손잡이를 잡았다. 잠겼다. 하지만 이럴 때 쓸만한 아이템이 내게 있다.
【마스터 키를 사용합니다.】
세상의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전지전능한 아이템! 만약 내가 나쁜 놈이었다면 세계적인 은행털이범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철컥!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활을 소환해서 손에 들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어둠이 우릴 반겼는데 그보다 먼저 콧속으로 밀려드는 게 있었다.
악취였다.
"으윽, 이게 뭔 냄새야."
김우태가 손으로 코를 막았다.
"…저거에요."
나는 건너편으로 뛰어가서 몸을 숙였다. 그리곤 바닥을 만져보았다.
"허억…. 이게 뭐냐. 징그럽게도 생겼네."
보일러실 구석 바닥에 커다란 구멍이 있었는데 구멍 주변에 울퉁불퉁한 혈관처럼 괴상한 것들이 있었다. 마치 굵은 나무뿌리 같기도 했다.
"가까워. 이 안에서 냄새가 나."
도화지가 말하자 나는 가방에서 범이를 꺼내주었다. 그리곤 구멍을 향해 다리를 뻗었다.
"미쳤네. 서울 한복판에서 이게 말이 되냐?"
김우태도 내 뒤로 따라 들어오며 혀를 내둘렀다. 구멍은 어른이 드나들 수 있을 만큼 컸다. 아까 입구에서 봤던 것처럼 구멍 벽면엔 혈관 같은 이상한 흔적이 계속됐는데 그것들에서 썩은 냄새가 났다. 도화지가 말하지 않아도 여기에 뭔가가 있을 것 같다는 걸 모두가 알 수 있었다.
"멀어지고 있어."
"얼마나요?"
"그것까진 몰라. 움직이나 봐."
나는 속도를 높이며 활을 앞으로 겨냥했다.
'벌레인가?'
지하에 이만한 구멍을 판 게 사람일 린 없어 보였다. 장비를 쓰면 가능하기도 하겠지만 지금까지의 흔적으로 보면 그건 아닐 것 같았다.
"누나. 로드가 어떤 괴물을 부린다고 했죠?"
"다양했어. 촉수 달린 것들도 있었고 사람처럼 생긴 것들도 있었고."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생각을 정리해봤다.
'어쩌면 로드가 아니라 다른 놈이 만들어놓은 걸지도 모르겠는데.'
내가 상대해온 괴물을 종합해보면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사람 형태이거나 사람과는 전혀 다른 생물이었다. 둘 사이의 가장 큰 특징은 전자라면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지만 후자라면 내가 뭘 상상하던 그 이상을 보여줬다는 것이었다.
'들어갈수록 이게 더 말랐어. 바깥쪽을 최근에 뚫었다는 건가?'
혈관 같은 게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처럼 변해가는 걸 보면서 나는 침을 삼켰다.
'꽤 깊이 들어왔어.'
대체 뭐가 이렇게 대공사를 할 수 있었을까? 그레이트 웜 같은 녀석이라면 그저 지나가기만 해도 이런 동굴이 생기겠지만 그런 게 있었다면 이미 서울이 난리가 났을 거다.
"으으. 기분 나빠."
소름이 돋는지 김우태가 몸을 떨었다.
"설마 그 지렁이 같은 게 기어 다니는 건 아니겠지?"
그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이때였다.
사사사삭-!
뭔가가 저 앞에서 움직이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쉿!"
나는 주의를 준 뒤 앞으로 뛰어나갔다. 불붙은 화살을 든 김우태가 빠르게 뒤로 따라붙었다.
"형!"
"알아! 뛰라고!"
내가 더 속도를 높였다. 1분쯤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긴장 탓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앗! 저기 있다!"
마침내 놈을 따라잡았다.
김우태의 말과 동시에 내 활에서 화살이 쏘아졌다.
콰르르르르륵!
회전하는 화살은 인내 스킬을 머금고 매우 강하게 날아갔다.
퍼억-!
-기에에에에에엑!
꽁무니에 화살이 박힌 괴물이 바르르 떨었다. 하지만 아직 죽지 않았다. 놈은 상체를 우리 쪽으로 돌렸는데 그걸 본 도화지가 헛구역질을 했다.
"우엑, 저게 뭐야…."
개미? 사마귀?
모르겠다. 하지만 여러 개의 발이 달렸고 몸통 아랫부분은 곤충의 특징을 고스란히 가진 형태였지만 상체는 사람의 그것이었다. 특히 얼굴이 끔찍했는데 우리 학교를 습격했던 벌레보다도 더 기괴했다.
슉슉-!
두 대의 화살이 더 날아갔다. 하나는 놈의 가슴에 또 하나는 놈의 목덜미에 정확하게 박혀 들었다.
"조심해요!"
그런데도 놈이 죽질 않았다. 다리 몇 개가 떨어져도 움직일 수 있는 곤충 특유의 특징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기에에에에에!
놈이 입을 쩍 벌리며 나를 향해 뛰어왔다. 상체에 달린 두 개의 앞발이 낫처럼 생겼다. 하체에 난 3쌍의 다리는 매우 기민하게 움직였고 몸길이가 2미터는 넘을 것 같았다.
"흥! 어딜! 비켜!"
뒤에서 김우태가 황소처럼 뛰었다. 그러더니 놈에게 정면으로 부딪쳤다.
퍼억-!
김우태의 어깨가 놈의 몸통에 닿는 순간 그의 인형이 놈의 몸에 달라붙었다.
【대상이 정신질환에 걸렸습니다.】
"하하하! 별것도 아닌 게! 까불고 있어!"
벌러덩! 넘어진 괴물이 몸을 파르르 떨어댔는데 달라붙은 인형이 그 짧은 팔로 공격을 계속할 때마다 저주가 중첩된다.
【대상이 시력 저하에 걸렸습니다.】
【대상이 이명에 걸렸습니다.】
김우태도 지지 않고 괴물의 얼굴을 발로 콱콱 밟아댔다.
"…."
"…."
나와 도화지는 그걸 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왠지 불쌍하네…."
도화지가 질렸다는 듯 말했다. 나는 쓰게 웃으며 물었다.
"저거였어요? 그 냄새."
"응. 근데 하나가 아니야."
"그렇겠죠. 이 굴을 파려면 혼자선 불가능했을 거니까."
"어떻게 할까? 더 가?"
나는 축 늘어지는 괴물을 보면서 턱을 당겼다.
"이렇게 좁은 공간이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운동장 같은 개활지에서 수백 마리가 달려들면 위험해도 이 상태면 앞과 뒤만 막으면 된다. 하나씩 처리한다면 승산이 있다.
【하층 일개미를 사냥했습니다.】
【400P를 얻었습니다.】
"개미?"
"일개미?"
"이게 개미라고? 옷을 입고 있잖아!"
우리가 황당해서 한마디씩 했다. 하체는 개미라고 해도 믿겠다. 하지만 이 사람이 상체에 걸친 옷은 분명 우리에게도 익숙한 것이었다.
"균열에서 나온 괴물에게 당한 걸 수도 있어요. 게다가 이게 일개미라면 다른 종류의 개미도 존재할 가능성도 있고요."
꼭 하층이 아니라도 우리가 사는 세상엔 기생벌이나 파리 같은 것들이 있다. 먹이의 몸에 알을 낳은 뒤 그 알이 부화하면 숙주를 잡아먹는다. 이런 형태의 생물이 하층에서 넘어왔다면 이 땅엔 너무도 쉬운 숙주가 사방에 널려 있을 것이었다.
나는 재료 수집망을 꺼내며 일개미에게 다가갔다.
"…."
얼굴은 사람 같지만 눈은 벌처럼 생겼다. 입은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고 귀도 변질했다. 하지만 그 기본은 40대 후반의 남성이라는 걸 유추할 수 있었다.
"야, 이거 설마…."
김우태도 일개미를 보면서 뭔가 깨달았다.
"경비아저씨 같죠?"
하체가 변하며 하의는 없어졌지만, 몸통에 걸친 옷은 경비원들이 흔히 입는 그런 종류로 보였다.
"제기랄, 우리가 늦은 것 같다."
나는 수집망에 일개미를 담으면서 김우태의 등을 손으로 두드렸다.
"지난 일을 돌이킬 순 없잖아요. 그냥… 지금이라도 찾아낸 걸 다행으로 생각하는 게 나아요."
아까 오면서 봤지 않나? 이 구멍 위엔 수만, 수십만의 인파가 있다. 그들이 전부 이 개미들처럼 변한다는 생각만 해도 재앙 그 자체였다.
"근데 형, 괜찮아요?"
어느새 어깨에 구멍이 났다. 아까 충돌할 때 일개미의 앞발이 그의 어깨를 찍은 것 같다.
"이미 나았어."
김우태가 웃으며 인형의 팔을 잡았다. 그리곤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다 쓸어버리자."
오래 본 사이는 아니었지만, 김우태는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마음이 여렸다. 그 선하고 순한 감정이 분노와 합쳐지면 무서울 정도의 투지로 변한다.
도화지가 외쳤다.
"멀어지고 있어!"
듣자마자 뛰었다. 구불구불 이어진 동굴은 엄청나게 길었다. 대체 이 동굴의 목적이 뭔지 왜 이렇게 길게 파놓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개미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도화지의 말이 우릴 더 자극했다.
이윽고,
"잠깐만요."
동굴이 좀 더 넓어졌다는 느낌이 받았을 때 나는 멈춰 섰다.
길은 아래로 이어졌다. 지금까지처럼 통로 형태가 아니라 완만하고 넓은 지역으로 닿았다.
어두웠기에 나는 화살에 불을 붙였다. 그리곤 저쪽으로 쐈다.
투웅.
날아가는 불길에 주변이 보였다.
"…허억…."
김우태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저게 다 뭔데?"
도화지도 기막히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알이네요."
얼추 수백 개의 알이 빼곡하게 들어찬 공간을 보며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것들이 전부 부화하면 어떻게 되는 건가?
"민준아!"
도화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나는 화살을 겨누며 불을 붙여 위로 치켜들었다.
"헛! 많아!"
"날개도 달렸어!"
"조심해!"
천장에 다닥다닥 붙은 개미는 셋이 넘었다. 그것들이 동시에 아래로 쏟아져 내려왔다.
파르르르르륵!
소란스러운 날갯짓이 섬뜩했고 아까 만났던 일개미보다도 몸집이 더 길었다. 모두를 동시에 상대할 수가 없었다.
"범아아아아아!"
내 외침에 범이가 몸을 은색으로 두르고 도화지 앞에서 펄쩍 뛰었다. 날개 달린 개미 한 마리와 뒤엉켜 바닥으로 떨어지는 범이를 보며 나는 불화살을 연사했다.
'꿈틀거리고 있어.'
불길이 지날 때마다 알 속의 개미들이 반응했다. 그걸 보며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어떤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알을 뭐가 낳은 거지?'
언제까지 생각만 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후두둑! 날개 달린 개미가 천장에서 더 내려오고 있었다.
"도화지! 뒤로 가!"
"아니에요! 저도 싸울 수 있다고요!"
도화지가 뿅망치를 꺼내 들었다. 날아오는 개미 한 마리를 김우태가 온몸으로 막아섰는데 도화지가 뛰어올라 개미의 머리를 망치로 때렸다.
뿅!
우스꽝스러운 소리와는 다르게 망치의 파괴력은 대단했다.
'의외로 조합이 좋아.'
둘을 화살로 지원하면서 나는 옆으로 뛰었다. 공간이 비좁아서 알 위로 뛰어올랐다. 물컹한 알이 중심을 흩트렸지만 발란스 볼 오르내리기 훈련이 이렇게 쓰이다니!
"형! 벽으로 붙어요!"
"노력 중이야!"
나는 옆의 알로 뛰면서 개미들을 유인하려고 소리를 질렀다. 두 사람보다는 내가 전투에 익숙하기에 놈들의 시선을 끌어야 했다.
샤샤샤샥!
놈들은 날지 않아도 벽에 붙어 기는 게 능숙했다. 주로 쓰는 무기는 사마귀처럼 생긴 두 앞발과 흉측한 이빨이 돋은 입이었다. 그것만 피하면 된다.
'할 수 있어.'
김우태와 도화지도 놈들에 빠르게 적응하는 게 보였다. 이대로면 우리가 이긴다는 확신이 들 때였다.
"…이…. 쓰레기 같은 것들이…."
저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