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균열 같아요?"
-모르겠어!
"숫자는요?"
-그건 근처에 가봐야 알 것 같은데?
"어디에요?"
-강 위쪽!
"알겠어요. 바로 갈게요."
재능마켓 입장이 하루 한 번이기 때문에 회의는 건물 1층 커피숍에서 하기로 했다.
'균열이라면 다행이긴 한데….'
그게 아닐 경우가 문제였다.
'기척을 숨길 수 있는 놈일수록 강할 거야.'
그런 놈이 갑자기 냄새를 풍긴다?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이었다.
'일단은….'
팀을 모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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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이라는 게 있다. 누군가는 기류라고도 부르고 또 누군가는 감이라고도 하는데 범죄자들을 상대하는 사람들일수록 이게 발달한다.
광수대도 그랬다.
'이상해. 이건 진짜 이상하다고.'
광수대 4년 차 강한석은 최근 들어 밀려드는 정보에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최근에 벌어진 큰 사건이라고 하면 고등학교 인질극 방화인데 그것을 빼더라도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는 기괴한 일들이 지난 100년간의 데이터와 대조해도 말이 안 됐다.
'이걸 어떻게 보고해야 하나.'
오래전부터 귀신을 봤다는 사람이나 UFO를 목격했다는 사람, 혹은 별 말도 안 되는 얘길 떠벌리는 정신이상자도 많았었지만 최근 수집되는 정보는 거짓 같지 않다는 게 그를 섬뜩하게 하고 있었다.
'누락하지 말고 다 쓰자. 대장님께서 알아서 판단하시겠지.'
광수대 4년이란 기간이 베테랑 소릴 들을 만큼 현장 경험이 많다곤 할 수 없었지만, 그는 언제나 자부심이 있었다. 대원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고 영악한 범죄자들을 싸그리 잡아 처넣겠다는 의지도 강했다.
그는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신음했다.
'왜 이렇게 실종자가 많아진 거지?'
빈부격차가 심화하고 온갖 갈등이 많아지는 사회라서 가출하는 사람도 빈번하고 빚에 쫓겨 숨어버리는 케이스도 많다. 하지만 그것들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감'이 들었다.
3시간…. 4시간….
그가 막 보고서를 완성했을 때쯤 대장님이 사무실로 들어오셨다.
윤일권은 대원들을 보자마자 말했다.
"야마구치 형사가 자료 보내올 거야.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정리해."
"그쪽이랑 얘기가 된 겁니까?"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지만, 일본에서도 골치 아픈 사건들이 제법 일어나고 있는 모양이야. 범인을 특정할 수 없어서 야쿠자의 소행 어쩌고 하는데 딱 보면 알지. 이건 S등급이야."
광수대는 'S'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세상 사람들은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인질방화극을 단편적으로만 보고 있지만, 그 이면엔 아주 수상한 일이 겹쳐 있었다. 특히 학교 내부 벽에서 발견된 그 흔적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히트맨은?"
"새로 걸린 건 없습니다."
학교 주변 CCTV와 인근 차량, 건물 영상을 다 뒤졌지만, 활 같은 물건을 든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큰 물건을 옮기려면 반드시 눈에 띄어야 할 텐데도 감쪽같았다.
"대장님. 부검 결과 나왔습니다."
"줘봐."
소견서를 보며 윤일권은 신음했다.
"으음…. 이게 뭔데? 드릴이라도 썼다는 거야?"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망한 인질범들의 시신은 증거이자 용의자가 어떤 흉기를 사용했는지 알려주는 사인이었다.
"이상한 건 말입니다."
"뭔데?"
"왜, 누군가 공격하려고 하면 본능적으로 피하거나 물러서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희도 칼 든 놈들이 앞에 있으면 일단 도망치라고 말하는 것처럼요."
"그렇지."
"그런데 이 시신들은 그런 흔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죽을 걸 알면서도 뛰어들었다는 거야?"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케이스는…."
"오키나와랑 같지."
"네, 히트맨이 두 곳 모두 있었을 가능성도 있고요."
두 사람의 대화가 잠시 멈추자 강한석이 일어났다. 그리곤 자신이 만든 보고서를 윤일권에게 전했다.
"최근 몇 달간 실종신고 들어 온 케이스 정리한 겁니다."
"아, 다 된 거야? 뭐, 걸리는 건?"
"일단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여기면 별일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하게 보면 한도 끝도 없어서요."
"알았어. 고생했어."
윤일권이 의자에 앉으며 강한석의 보고서를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홍대 8명?'
첫 페이지의 단어가 그의 눈에 박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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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대교.
북단 쪽으로 걸어가며 우리는 도화지의 코에 집중했다.
"어때?"
참지 못하고 김우태가 채근하자 도화지는 얼굴을 찌푸렸다.
"아직 정확하지 않아요."
김우태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게 물었다.
"로드는 얼마나 강할까?"
"저도 잘 모르겠어요. 확실한 건 지금까지의 미션들로 볼 때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500만 원 벌기나 필라테스 같은 건 미션이 나오면 부담 없이 수행할 수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진짜 조심해야 했다. 아무런 대비 없이 강적을 만나기라도 하면 우리 쪽이 전멸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리를 건너가며 한강을 보았다. 아무 일 없다는 듯 흐르는 강물을 보고 있자면 우리가 하는 일이 다 헛것 같지만 도화지가 냄새를 맡았다는 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괜히 쫄지 말자고. 남산에서처럼 별거 아닐 수도 있으니까."
그러면 참으로 다행이겠는데 도화지의 반응이 그때와 다르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우린 다리의 끝까지 걸었다.
"이쪽이야."
"괜찮아요? 누나?"
"어, 그냥 현기증이…. 가까워졌나 봐."
합정에서 홍대 방향으로 도화지가 얼굴을 돌렸다.
"저쪽에 있어."
"어떤 것 같아요?"
"이런 적은 처음이라 전혀 짐작이 안 돼."
평소엔 그렇게 밝던 도화지였는데 지금은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녀가 감당하기엔 어떤 존재감이 너무도 컸던 것이다.
'여차하면 훈련을 더 하는 수밖에….'
요즘 생각한 건데 우리 셋은 일종의 필살기가 있다. 우리가 상대할 수 없는 적이 현실에 나타난다면 우리는 재능마켓으로 가서 힘을 키울 때까지 무기한 처박히면 된다. 그러면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었다. 물론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층 미션을 하다가 잘못될 수도 있고 정신적으로 미쳐버릴 수도 있었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여기에 뭐가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이쪽으론 처음 와보네."
상수역에서 홍대로 올라가면서 주변을 둘러본 도화지가 신기한 듯 말했다. 강남역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초고층 빌딩도 없고 허름한 음식점도 많았는데 수십 년 전에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유행에 민감한 작은 점포들도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힘들면 오늘은 확인만 해요."
"알았어. 아직은 괜찮아. 더 가보자."
세 번째 균열이 있으면 좋겠는데 왠지 그건 아닐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떠돌 때 해가 저물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지나자 거리로 쏟아져나온 인파가 어마어마했다. 강남역도 유동 인구가 많지만 여긴 어두워지자 외부에서 모여드는 사람들이 더 많은 기분이었다.
"이 근처야. 더는 추적할 수 없어."
공영주차장 앞 작은 공원에 선 우린 주변을 보면서 이상한 게 없나 살폈지만 수많은 사람과 그들을 반기는 상점들 말곤 특정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게 어떤 느낌이냐면 이 동네 전체에서 스멀스멀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아."
"으음…."
이렇게 광범위하게 냄새를 풍겼던 적은 백작밖에 없었다. 그때는 백작이 상처를 입은 상태라 어렵지 않게 사냥에 성공했었지만, 오늘은 온전한 백작급의 괴물을 마주칠 수도 있었다.
'우리도 그때완 다르다고.'
나와 도화지도 강해졌고 김우태까지 합류했으니 백작급은 어찌어찌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 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돌아보죠."
김우태가 내게 물었다.
"흩어질까?"
"아니요. 우린 모여 있어야 해요. 만약 적이 우릴 발견하기라도 하면…."
뒷말은 하지 않아도 됐다.
이 근방엔 수많은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었다. 1층과 지하엔 상점이 있고 2층엔 주택이 있는 구조의 건물이 굉장히 많았다.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다들 어딜 가는 거야?"
김우태의 말에 도화지가 풋, 웃었다.
"오빠, 여기 홍대에요. 클럽이 몇 개나 있는데요."
"아…."
서울 전역에서 모여든 젊은이들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 근방엔 유명한 대학이 몰려 있었다. 외국인들도 심심찮게 보였고 다가오는 밤에 대한 흥분과 호기심이 온 거리에 가득 찼다.
"오! 분위기 죽인다! 일 빨리 끝나면 좀 놀다 갈까? 내가 쏜다!"
김우태가 말했지만 나와 도화지는 그를 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도 오가는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김우태를 피해 다니고 있었다. 여기서도 개똥처럼 보는데 클럽 같은 곳에 들어가면 무슨 대참사가 벌어질지 모르겠다.
"저희, 미성년자거든요?"
"아, 그랬지? 하하! 자꾸 까먹는다니까? 못 들어가겠구나?"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잠깐만."
도화지가 우뚝 섰다.
"찾았어요?"
내가 급히 묻자 도화지가 얼굴을 흔들면서 말했다.
"아니, 그건 아닌데 이 근처에 뭔가 있긴 있어. 우리가 따라온 냄새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평범하지도 않아."
그녀의 시선을 따라 우리는 고갤 돌렸다.
"저 학교 안에요?"
홍대 남문이 보였다.
"응."
도화지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불 켜진 곳이 많네? 학교 끝나지 않았나?"
그 대답은 내가 해줬다.
"야간 수업도 있어요. 대학원 같은 곳도 그렇고."
"아, 정말?"
배달을 다녀봐서 안다.
"제가 앞장설게요. 발견하면 바로 말해줘요."
"응."
삼삼오오 모여서 걷는 학생들도 있었고 산책하는 주민도 보였다. 우리가 학교에 들어갔지만,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왼쪽."
"으음…."
10분쯤 걸었다.
"기숙사인데요?"
"맞아. 저기야. 저기에서 풍겨오고 있어."
기숙사까지는 함부로 들어갈 수 없을 거다.
우린 벤치에 앉아 잠깐 기다렸다.
"거의 다 온 것 같으니까 지금부터는 언제든 싸울 수 있게 긴장하셔야 해요."
"응, 근데 괜찮을까?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상황 봐가면서 하죠."
기숙사에서 나오는 학생들이 많았다. 잘 차려입은 학생도 있고 극단적으로 편한 차림도 있었는데 다들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서 학교를 나갔다.
우린 그걸 지켜보면서 말했다.
"어때요?"
"아직 저기 있어."
그간 지켜보니 오가는 사람을 통제하진 않는 것 같았다. 더 깊은 밤이 되면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면 슬쩍 내부로 침입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들어갈까?"
김우태의 말에 나는 10분만 더 기다리자고 말했다. 인적이 뜸해지고 있다. 자유롭게 움직이려면 저기 저 한 무리의 학생들이 떠나야 했다.
도화지가 중얼거렸다.
"늘었어."
"네?"
내가 그녀를 보자 도화지는 콧등을 찡그렸다.
"조금 전보다 냄새가 늘었다고."
"으음…. 같은 종류에요?"
"응. 둘 중 하나야. 균열에서 또 뭐가 나왔거나 아니면…."
"동료가 있는 거겠죠."
어느 쪽이든 낙관할 상황은 아니라고 보였다.
"형."
우선 김우태에게 말했다.
"응."
"저는 괜찮으니까 무조건 누날 지켜주세요."
"나만 믿어."
나는 안경을 고쳐 쓰고 두 사람을 보며 입을 열었다.
"좋아요. 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