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대상을 치료했습니다.】
【고통을 분담합니다.】
【미션을 부분 완료했습니다. 1/10.】
【대상이 당신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크윽…."
여자의 상처는 가벼운 게 아니었다. 김우태는 벤치에 앉아 몸을 숙였다. 척추가 박살 나는 느낌이 들었다. 상체를 웅크리고 바들바들 떨었는데 고통이 조금씩 가시고 있었다.
【재생력이 최대치로 활성화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몸은 나아지고 있었다. 월등한 재생력은 타인의 어떤 부상도 그의 몸으로 옮겨와 치료해버린다. 하지만 그 과정이 순조롭진 않다. 고통도 함께 넘어온다.
"후우, 후우…. 괜찮아. 이 정돈 아무것도 아니야."
아버지 덕분에 아주 어릴 때부터 고통에 익숙해진 그였다. 조금씩 몸의 떨림이 멎어가자 그는 고갤 들었다. 아직도 저쪽에선 난리가 났다.
그때 그의 엉덩이를 뭔가가 두드렸다.
인형이 작은 팔로 그를 다독이고 있었다.
"…."
녀석은 표정이 없다. 눈동자도 없었다. 못생긴 봉제 인형일 뿐이다. 그런데 이 순간 김우태는 인형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 녀석만큼은 자신을 알아줄 것 같은 그런 기분?
"쳇…."
하지만 그걸 표현하려고 하니 괜히 머쓱했다. 김우태는 가방에 인형을 넣고 일어났다. 방금은 본능적으로 달려들었지만, 고통이 가시자 미션을 빠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났다. 짐에서 손님이 다치길 기다리기보다는 다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면 되는 거다.
그는 전철을 타고 서초역으로 갔다. 그리곤 인근에서 가장 큰 종합병원으로 걸어갔다. 병실을 가려는 건 아니다. 그보다도 더 원초적인 곳. 1초라도 빨리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곳.
응급실이었다.
-으으으으.
-아파….
-선생님은 언제 오시는 거예요!
환자는 많고 응급실은 부족했다. 밤새 일어난 사건 사고에 환자들과 보호자들은 애가 탔다.
하지만 의사도 아닌데 대놓고 환자를 치료할 순 없었다. 워낙 많은 보호자들이 있어서 그를 의심하진 않았다.
사람들을 보면서 김우태는 생각했다.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힐러라는 직업을 얻었고 민준이와 미션도 함께 했었지만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해본 것은 아니다.
-지우야, 엄마. 잠깐 화장실 다녀올게. 힘내자. 알았지?
근처 병상에서 여자가 일어났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녀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다.
그녀가 사라지자 김우태는 지우에게 스윽 다가갔다.
8살쯤 되었을까?
눈을 간신히 뜨고 있는데 호흡이 좋지 않았다. 색색거리면서 가까스로 정신을 잡고 있는 것 같은데 의사가 아니었기에 김우태는 지우가 왜 아픈지 몰랐다.
그는 지우의 손을 잡았다.
"…누구 …세요?"
간신히 말을 하는 지우였는데 갑자기 지우의 숨소리가 줄어들었다. 그러더니 이내 눈을 감았다.
"…."
김우태는 억지로 미소 지으며 자릴 떴다.
【고통을 분담합니다.】
【미션을 부분 완료했습니다. 2/10.】
어려운 미션을 한방에 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었다.
"…으."
토할 것 같다. 위에서 폭탄이 터진 것 같았다. 그 가스가 꺼억! 나와버리면 좋겠는데 그게 안 된다.
'힘들었겠구나.'
이 고통은 지우의 것이었다. 아랫배도 아팠다. 장이 실타래처럼 죄다 꼬여버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적응이 되는데?'
아까 오토바이 사고가 났던 여자보단 훨씬 짧게 치료가 됐다. 몸의 떨림이 사라질 때쯤 지우 엄마가 왔다.
"지우야! 우리 애가 왜 이래! 아아악! 선생님! 우리 애 좀 봐주세요! 빨리요!"
간절한 외침에 간호사가 급히 다가왔다.
"안정된 것 같아요. 어머니. 곧 선생님 오실 거니까 기다려주세요."
"정말요? 우리, 지우. 괜찮아요?"
"잠들었으니까 깨우지 마시고 기다리세요. 아시겠죠?"
"아…."
십년감수한 얼굴로 지우 엄마는 지우의 손을 잡고 엎드렸다. 밤새 복통으로 고생했던 지우의 얼굴이 확실히 좋아진 것 같았다.
.
.
.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니 아침부터 체육관으로 향했다. 일전에 김우태와 미션을 하면서 확실히 깨달았다. 비록 내가 스텟이 높아서 힘이나 순발력은 월등하다지만 그는 내가 범접할 수 없는 기술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 긴 시간 메뚜기와 싸우면서 버텨낸 거다. 나는 더 배워야 했고 그것이 나와 우리 팀의 생존율을 높이는 방법이었다.
나는 지금 링에 올라와 있었다.
관장님이 말했다.
"상대와 싸울 때 가장 좋은 수가 뭘까?"
관장님은 이렇게 질문을 먼저 던지고 답을 주는 화법을 자주 쓴다.
"선빵이요?"
"그건 거리에서 폼 잡는 애들이나 하는 소리고. 프로들은 웬만해선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지지 않아. 특히 처음엔 잔뜩 긴장하고 대비하니까 더 어렵지."
"그렇겠네요."
관장님이 미트를 내밀었다. 그걸 주먹으로 가볍게 치면서 얘길 들었다.
"정확한 공격도 중요하지만, 시합은 가위바위보가 아니야. 내가 가위로 찌른다고 저쪽 주먹이 반드시 이기는 건 또 아니거든. 왜 그럴 것 같아?"
"피하니까요."
"맞아. 역시 넌 이해가 빨라. 다들 너 같았으면 우리 체육관에서 몇 번이나 챔피언이 나왔을 건데. 쯧."
관장님은 혀를 차며 말했다.
"숙련된 파이터는 회피 능력이 상상을 초월해. 제아무리 핵주먹을 갖고 있어도 맞지 않으면 의미가 없거든. 물론 네 경우엔 얘기가 다르지만 너 역시 맞지 않으면 더 많은 기회를 노릴 수 있어."
회피.
관장님은 일반론을 얘기하고 있겠지만 내겐 목숨이 걸린 일이었다. 링에선 독침을 찌르거나 칼날이 들어오지 않지만 내가 사는 세상에선 뭐든 다 된다.
"자, 지금은 적이 나 하나지만 더 늘어나면 어떻게 막을래?"
나는 몸을 슬쩍 움직였다. 그리곤 슬금슬금 코너로 갔다.
"하하! 맞아! 그렇게 하는 거다. 항상 이 링엔 적이 무더기로 있다고 생각하고 싸워야 돼. 그러면 상대가 어디서 공격하든 대응할 수 있어. 하지만 이것도 만능은 아니다. 네가 코너에 몰렸다는 건 도망칠 기회를 잃었다는 것이거든. 이제 어떻게 하지?"
"카운터를 칠까요?"
"네 주먹이라면 그것도 좋겠지만 그 카운터를 꽂아 넣으려면?"
"발은 묶였으니까 상체를 움직여야겠네요."
"그렇지. 중요한 건 팔로 가드를 만들 수 있으니까 몸은 괜찮아."
"머리를 사용하라는 거군요."
"그래."
관장이 웃으며 미트를 뻗었다. 부웅 날아오는 게 피하지 않으면 얼굴을 때릴 거다.
"끝까지 보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만 피해. 이게 숙달되면 너는 이 링에서 무적이 될 거다. 회피기동이 크면 클수록 네 팔다리가 닿는 거리도 늘어나야 해서 파괴력이 떨어져. 핵심은 공격을 읽고 대응한 뒤, 네 타격을 넣는 거야. 초심자들은 풋워크가 다인 줄 알지만, 더 상대하기 어려운 놈은 상체 회피를 잘 쓰는 파이터다."
상, 하, 좌, 우, 뒤, 앞으로 상체를 움직이면서 적의 공격을 피하려면 상대의 리치를 정확히 계산해야 했다. 이건 지력+4의 머리가 도와줄 터. 관장님은 미트를 들고 있지만 저게 칼로 바뀌어도 피할 수 있어야 했다.
"당분간은 이 훈련만 해보자. 이게 능숙해져야 다음으로 넘어가는 거야."
"네!"
관장님은 대견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웃음기를 지웠다.
"근데…."
"네?"
"우태한테 무슨 일 있냐?"
"왜요?"
"아니, 그냥 요즘…. 녀석만 보면 그냥 화가 나서…. 너희 최근에 자주 만난다며?"
"별일 없는데요."
그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래? 후…. 나도 갱년기인가? 감정 컨트롤이 안되네. 어쨌든 열심히 해."
"네!"
"그리고 우태가 뭐라고 하던 근육훈련은 하지 마."
"네?"
"지금 네 몸은 쓸데없는 근육 붙인다고 나아질 게 없어. 실전 근육으로만 무장해서 속도를 올리는 게 더 좋아. 파괴력은 흘러넘치니까! 괜히 몸 만든다고 우태처럼 우락부락하게 하지 말란 거야."
"아, 네. 하하! 저도 그럴 생각은 없어요."
"그럼 다행이고. 요즘 애들은 몸만 키우면 다 되는 줄 안다니까."
헤비급에선 상대의 강펀치를 버티려면 갑옷처럼 근육을 둘러야 할 수도 있었다. 팔의 중량을 늘려야 상대를 쓰러뜨리기 유리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걸 넘어선 지 오래다.
-수고하셨습니다!
오전 훈련을 마치고 강남역에 왔다. 팀원을 만나기 전에 서점으로 향했다.
"…."
내가 한가로운 일상을 보내는 것 같겠지만 그렇지 않다. 수호자 안경을 쓰고 마주치는 모든 사람을 관찰하고 있었고 사회면 기사도 틈틈이 계속 읽었다.
서점에서 격투기 관련 책을 속독했다. 실전으로 배우고 있었지만, 이론도 병행하면 더 빠를 것이라 생각했다.
'방구석 파이터가 아니니까.'
지금은 가물가물해서 와닿지 않아도 이 단어 하나가 언젠가 이해하는 날 내 목숨을 구해줄 거다.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레전드가 출현한 게 우연일까?'
같은 곳에 반복해서 간 게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다. 처음 내가 차우산에 올랐을 때는 수호자의 돌이 보이지 않았었다. 내 관찰력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발동하고 있다. 나는 이미 서점의 모든 사람을 다 훑었고 새로운 누군가가 들어오면 바로 포착한다. 이런 내가 레전드 아이템을 놓쳤을 리가 없다.
'레벨이 올라서 그럴 수도 있어.'
레벨은 아이템의 출현 빈도나 등급에 영향을 준다. 최근 사정없이 몰아쳤던 미션 덕택에 레벨이 크게 올랐는데 이게 레전드를 끌어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더 많은 게 나올 수도 있다는 뜻이겠지?'
스텟 하나하나도 소중하지만, 아이템의 등급도 무시무시한 영향을 끼친다. 전엔 내 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아니다. 더 좋은 무기가 필요하다. 더 많은 스킬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 혼자 강해지는 것도 의미가 없고.'
내가 모든 걸 다 해결할 순 없다. 내가 못 하는 부분은 팀원이 커버해줘야 한다. 그러려면 도화지와 김우태도 극한까지 성장해야 한다.
'잘하고 있나?'
김우태 생각을 했더니 그가 수행해야 하는 미션이 떠올랐다. 사람들을 치료하고 인형과 소통해야 한다던데….
'이따 물어보면 되겠지.'
일단 책에 집중하자.
나는 몇 권의 책을 더 읽다가 서점을 나왔다. 그리곤 마트로 향했다. 기존의 책가방보다 훨씬 큰 가방을 주문해둔 게 어제 택배로 와 있었다. 군대에서 쓰는 그것처럼 주머니도 많고 재질도 튼튼했다. 단점은 무겁다.
'이번엔 이것도 좀 사볼까?'
무거운 게 단점이라면 내겐 그리 부담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전엔 가볍고 열량 높은 비상식량을 샀다면 오늘은 구성을 조금 바꿔볼 생각이었다.
언제 어떤 환경에 처할지 모르니까 넉넉하게 사서 마트를 나왔다.
'어르신은 잘 계시나?'
보급품을 채울 때마다 생각나는 한 사람. 나도 모르게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차우산의 난쟁이들도 친해졌지만 몇 달을 같이 지냈던 어르신은 더 각별할 수밖에 없었고 그가 혼자라는 게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이때였다.
지이이잉-!
전화가 왔다.
"누나?"
-어디야?
"이제 출발하려고요."
그녀의 목소리에 흥분이 가득했다.
-냄새가 나! 그것도 아주 독한 냄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