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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마켓-140화 (140/277)

#140화

인형이 애들을 뚜드려 패고 있을 때 도화지는 더 지켜보는 것도 한심해서 민준에게 걸어갔다.

민준이 물었다.

"후련해요?"

"아니, 찝찝해."

"원래 그래요. 쟤들이 안 변할 거란 거 아니까. 근데 이번엔 고생 좀 하겠는데요?"

이 밤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다. 누구한테 말해봤자 믿어줄 사람도 없을 것이고. 특히 꼭두각시 저주가 만만할 리 없었다. 무려 30,000포인트짜리 스킬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김우태는 첫 미션에서 엄청난 포인트를 획득했다. 그 자신은 오십만 포인트도 안 된다면서 투덜거렸지만 레어 미션이 아니었다면 3~4천 포인트에 그쳤을 거다.

"쟤들은 더 당해봐야 돼."

오십만 포인트까지 너무 많이 남아서 그랬는지 김우태는 쿨하게 스킬을 투자했는데 안목이 제법이었다. 느리지만 일단 맞기만 하면 100% 확률로 터지는 스킬은 위력적일 것이 분명했고 그 효과는 지금 저쪽에서 여과 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아아아아악! 살려줘어어어어!

-흐흐흑! 제발, 잘못했어! 죽을 것 같단 말이야! 도와줘!

-엄마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앙!

【대상이 배변장애에 걸렸습니다.】

'아, 저건 진짜 끔찍한데?'

민준이 차마 못 보고 얼굴을 돌릴 때 도화지가 벤치 아래를 보며 물었다.

"이거야?"

"네. 전에 그 백작이랑 같은 냄새가 난다고 했죠?"

"응, 놀라울 만큼 똑같아. 버섯들도 다 다른 냄새가 있는데 이건 그 백작이 다시 돌아온 것처럼 비슷해."

꾸물거리는 덩어리를 보면서 도화지는 손으로 코를 쥐었다.

민준은 수집망을 꺼냈다.

【대상이 그로기 상태가 아닙니다.】

민준이 어깨를 으쓱하며 활통에서 화살을 꺼내 붙을 붙였다. 그러더니 그걸 수직으로 찍었다.

바르르르.

덩어리가 불에 타기 시작했는데 단백질 타는 냄새가 아니라 고무 타이어라도 태우는 것처럼 매캐한 연기가 났다.

잠깐 지켜보던 민준이 다시 수집망을 썼다.

【뱀파이어를 사냥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민준이 일어나며 말했다.

"세 번째 균열은 근처에 없죠?"

"응. 이것도 갑자기 나타났었으니까 기다려봐야 할 것 같아. 괜히 무턱대고 움직였다가 로드와 마주칠 수도 있어."

"알겠어요."

도화지는 포인트를 더 벌어서 방어력이 붙은 아이템을 사야 서브 퀘스트를 끝낼 수 있었다. 김우태는 필라테스를 마친 뒤 미션을 두 개 받았는데 그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어서 균열이 나타나면 이것을 최우선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그래도 균열에서 막 나온 것들은 이런 상태라는 걸 알아낸 것만으로도 좋아요. 빨리 발견할수록 상대하기 쉽겠어요."

"근데 이상하지 않아? 범이는 그대로잖아. 메뚜기도 그렇고."

"동물과 사람, 아니면 지성? 혹은 다른 어떤 능력이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것 같은데 이건 더 지켜보면 알겠죠."

"그 시녀도 이렇게 됐을까?"

"모르겠어요. 개인차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정보가 더 필요할 것 같았지만 지금으로선 한계였다.

"아앗?"

도화지가 저쪽을 봤다. 데굴데굴 구르던 애들 몇 명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뺏을까?"

"아뇨."

민준이 막대 같은 걸 손에 쥐었다.

"고생 좀 더 해봐야죠?"

【전능한 EMP 발생기를 사용하시겠습니까?】

.

.

.

아침 6시.

【재능마켓에 입장할 수 있습니다.】

"으으…."

알람처럼 매일 아침 울려대는 메시지가 아직은 낯설었다. 하지만 이게 거짓말이 아니란 걸 이제 안다.

"영웅으로 산다는 건 괴롭구만…."

평소라면 억지로라도 눈을 붙였겠지만, 그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필라테스를 했더니 미션이 2개 나왔다.

【메인 미션: 10명을 치료하라.】

【서브 미션: 인형과 소통하라.】

그는 침대 옆에 있는 인형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기 전에 분명 벽에 집어 던졌는데 언제 기어 올라와서 베개를 같이 베고 누워있다. 24시간 같이 다니고 있었지만, 아직도 이 녀석은 적응이 안 된다. 생긴 것도 문제인데 본능적인 거부감이 더 컸다. 인형이 지닌 힘 때문이리라.

"어떻게 소통하라는 거야…."

평소처럼 생활하다 보면 반드시 기회가 올 거라고 민준이 말해줬지만 감이 오질 않았다.

그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큰 가방을 들었다. 가방 속에 인형을 처박아 넣고 집을 나섰다.

이른 아침, 수많은 사람들이 출근길에 나섰다. 그 역시 강남의 짐으로 향했다. 요즘엔 몸을 챙기는 사람도 많고 혼자 사는 인구도 늘어서 출근 전에 들러서 운동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

'여기 있다 보면 다치는 사람은 항상 나오지.'

큰 부상은 아니라도 근육이 놀라거나 발목을 삐끗하는 손님이 심심찮게 나온다. 그런 사람 10명만 치료하면 된다는 생각에 그는 의자에 앉아 사람들을 보았다.

"…."

"…."

그런데 그와 눈이 마주친 사람들이 슬금슬금 눈을 피해버렸다. 7개월 동안 매일 아침 인사를 나누던 아저씨도 홱! 고갤 돌려버렸다.

"아… 진짜."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지 안다.

"이러다 손님 다 끊기는 거 아냐?"

이 짐은 아버지 사업체 중에서 가장 매출이 잘 나오는 곳이었기에 여기가 망하면 아버지가 노발대발할 거다.

"곤란하네…."

영웅은 고독한 법이라지만 이렇게 대놓고 미움을 받으니 기분이 썩 좋진 않다.

"안녕하세요오오오…."

막 들어온 손님이 그를 보면서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하고 지나갔다.

"하아…."

그가 한숨을 푹푹 내쉬며 짐을 나갔다. 바람이라도 쐬어야겠다.

"이렇게 서러워서 살겠나."

벤치에 앉아 핸드폰을 꺼냈다.

-오늘도 힘내자! 아자!

세 명밖에 없는 톡방이지만 이 조촐한 구성원이 바로 세상을 수호하는 핵심이다. 울적할 때는 이렇게 녀석들과 소통하면 기분이 나아졌다.

-낮에 넘어갈게요. 마지막 균열 찾아야 해요.

민준인 잠시도 쉬는 법이 없었다. 재능마켓을 가장 먼저 접해서 그런지 지식도 많고 굉장히 능동적으로 미션을 해결했다. 동생이지만 가끔 보면 한 40년 산 것처럼 연륜이 느껴지는 것도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겨서 그렇겠지.

-민준아, 아직 못 정했어? 그 달꽃 열매 치료제, 나 필요한데.

-어차피 누나나 형이 조만간 그쪽 한번 가게 될 것 같아요. 사막이든 차우산이든. 그 후에 결정하죠.

-응! 알겠어! 이따 만나!

-아직 느껴지는 건 없죠?

-어!

-알겠어요.

이거…. 왠지 소외된 것 같다. 하지만 힐러가 된 그의 인생은 이런 취급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지금도 보라. 아무도 그의 옆에 앉지 않는다. 접근은커녕 그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저쪽으로 빙 돌아 지나간다. 그런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내가 아니라 이 녀석 때문이라고!

나는 멀쩡해!

하지만 백날 말해봐야 누가 믿어줄까.

"…쳇. 영웅의 삶이란."

그는 애써 쿨하게 웃으며 손으로 머리를 쓸어넘겼다.

-히이익! 무서워!

-저쪽으로 가자!

"…."

교복 입은 여자애들이 쪼르르 뛰어가자 김우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짐으로 돌아가련다.

그렇게 몸을 돌리는데 저 앞에서 오토바이가 다가왔다. 인도로 다니는 건 불법이지만 요즘 강남은 배달 전쟁이다. 라이더들은 조금이라도 시간을 단축하려고 좁은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젠 다들 익숙해서 사람들도 그러려니 하고 비켜섰다. 하지만 언제나 사각은 존재하는 거다.

"…아아아앗? 비켜요! 비켜어어어!"

조금만 더 가서 차도로 나가려고 했는데 사람들에 가렸던 유모차가 갑작스럽게 오토바이 앞에 나타난 거다.

"꺄아아아아아아-!"

유모차를 끌던 여자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비, 비키라고오오오오!"

라이더가 소리쳤지만 이미 오토바이는 반쯤 넘어져서 미끄러지고 있었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펄쩍 뛰며 옆으로 물러섰는데 오토바이는 유모차를 향해 주르르르르륵, 덮쳐들고 있었다.

"아, 안돼애애애애!"

사람이 살다 보면 가끔 초인으로 변할 때가 있다. 군대에서 유격훈련이나 혹한기 훈련을 해보면 이걸 인간이 멀쩡하게 버텨낸다는 게 하면서도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걸 뛰어넘는 강력한 각성 순간이 있는데 그럴 때는 언제나 찰나에 벌어진다.

"아, 아줌마!"

오토바이에서 떨어진 라이더가 기겁했다. 여자가 유모차를 품에 안았다. 그녀의 등으로 오토바이가 접근했다. 이 짧은 순간엔 그 누구도 대응할 수 없었다. 워낙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퍼억-!

오토바이와 유모차가 한 덩어리가 되었다. 그런데 그 중간에 완충재 역할을 하는 여자가 있었고 그녀는 등이 부서지는 충격을 받았지만 품에 안은 유모차를 놓지 않았다.

얼마나 아팠으면 비명도 못 질렀다.

유모차와 함께 몇 미터 날아가서 쓰러진 여자는 자신의 몸 따윈 돌보지도 않고 아기부터 확인했다.

"…!"

놀랐는지 아기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아…."

아기만 무사하면 됐다. 아주 어렵게 얻은 첫아들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했고 목숨과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래서일까?

"괜찮… 아?"

그녀는 지금, 이 순간 다른 생각은 나지 않고 오로지 아기의 얼굴만 눈에 한가득 들어왔다.

그러나 그녀의 상처는 가벼운 게 아니었다.

"아흑…."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일어나고 싶은데 그게 안 된다. 등도 축축하게 젖은 것 같고 어딜 어떻게 다친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아줌마! 괜찮습니까?

-빠, 빨리 119 불러요!

-사고다!

-애는 어떻게 됐어?

출근길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들 때 곰처럼 큰 덩치가 갑자기 난입했다.

그러더니 유모차 안부터 살피곤 곧장 여자의 어깨를 손으로 붙잡았다.

움찔!

사내를 확인한 여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혼자 산길을 가다가 산적이라도 만난 기분이었다.

"아기는 괜찮은 것 같아요! 제 목소리 들리세요?"

그런데 그의 손길이 너무도 포근하다.

"피가 많이 나거든요? 제가 응급처치해도 될까요? 정신 차리셔야 해요!"

"아, 네…."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통이 싸아아아악! 가셨다.

"크… 윽."

남자의 고통에 찬 신음이 귓가에 들렸는데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의문이 들었지만, 곧 사라졌다. 모든 아픔과 걱정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게 얼마나 행복한 기분이었냐면 고된 야근을 마치고 뜨거운 물을 받아놓은 욕조에 들어가 누운 기분이었다.

'아프지 않아….'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괜찮을 거예요.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아기랑 병원 꼭 가보세요. 아시겠죠?"

"네에…."

뭔진 모르겠지만 여자는 말했다.

"고마워요…."

그녀는 남자가 곁에서 떠나가는 걸 느꼈다. 대신 다른 사람들이 다가왔다.

-119 불렀으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기는 괜찮은 것 같아!

-와! 다행이다!

여자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사람들이 이렇게 걱정해주고 도와준다는 게 고맙기도 하고 안도감도 밀려와서 긴장이 풀렸다.

그런데….

"어?"

어느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움직이지 마세요! 119 곧 올 거예요!

-아줌마! 가만히 계셔야 해요! 많이 다치셨다고요!

오토바이에 치인 게 기억났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자신이 많이 다쳤단다.

그런데….

그녀는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곤 엉금엉금 유모차로 가서 아기를 꺼내 품에 안았다.

울 것같이 뚱한 표정을 짓던 아기가 그녀의 품에서 안정을 되찾았다.

-어? 괜찮으신 건가?

-아주머니!

사람들은 놀라워하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즉사해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던 사고였다.

그러나 모성은 그 어떤 것도 뛰어 넘는다는 걸 사람들에게 증명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여자가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까 그 남자, 누구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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