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137화 (137/277)

#137화

가까이 오면 망치로 후려치겠다는 뜻을 역력하게 내비치는 도화지가 적개심을 풀풀 풍길 때,

"…어?"

화장실 문이 열렸다.

"어어어! 민준아! 야!"

"아, 누나? 어떻게 된 거예요? 괜찮아요?"

막 씻고 나와서 그런지 머리의 물기도 채 마르지 않았다.

도화지는 망치를 놓고 민준의 품으로 뛰어들며 펑펑 울었다.

"으아아아아아앙!"

김우태는 그간의 사정을 얘기하는 도화지를 보면서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서 있었다. 실비아인지 뭔지, 로드는 또 누구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어쨌든 저 애도 재능마켓 일원이라는 건 알겠다.

한참을 울고 떠들다가 겨우 진정한 도화지가 김우태를 보며 미안한 듯 어색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죄송해요. 아깐 제가 오해를 했었어요…."

"아니야. 하하! 그럴 수 있지! 나 때문도 아닌데!"

"그 인형이 저주받아서 그렇다고 하셨죠?"

"응. 민준이 말로는 내 매력이 –6이랬나? 그래서 그렇대. 이것만 올리면 된다니까 나아지겠지."

"-6이요…?"

"왜?"

"아, 아니에요! 호호호!"

도화지는 어색하게 웃으며 돌아섰다. 아이템을 사용하면 +6까지 매력을 올릴 수 있는 도화지다. 순수하게 매력만 놓고 보면 그녀와 김우태는 무려 12계단이나 차이가 나는데 스텟 하나가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김우태는 아직 모르는 것 같다고 도화지는 생각했다.

"야! 도민준! 빨리 드링크부터 써보자!"

이들도 차우산에서 온 지 얼마 안 됐었다. 아직 아이템조차 확인하지 않았다.

"알겠어요."

자라나라! 얍! 드링크를 머리에 뿌려주자 김우태는 반신반의하면서 거울로 다가갔다.

그런데 마법같은 일이 벌어졌다.

"오오오오…!"

정말로 머리카락이 뽀송뽀송 돋아나더니 쑥쑥 자라는 게 아닌가?

"…뭐야. 징그러워…. 허헙, 아, 아니에요. 저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도화지가 얼굴을 홱!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김우태는 어떤 반응이든 상관없었다. 머리가 다시 자랐다는 것만으로도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거 효과 죽이네. 팔면 대박 치겠다."

"그러기엔 원가가 너무 비싸요. 하하!"

"넌 탈모인의 마음을 몰라서 그래. 내가 돈만 있어 봐. 이게 수억이라도 안 사겠냐?"

남자에겐 젊음, 키, 머리칼은 억만금을 주고서라도 바꾸고 싶은 순간이 반드시 온다.

김우태가 감격해서 새로 자란 머리칼을 보고 있을 때 뒤에서 도화지가 민준이랑 얘길 했다.

"그 로드란 사람, 조심해야 할 것 같아. 지금 우리 상태론 만나면 위험할 거야."

"냄새는요?"

"찾아봐야지. 감추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가까워지면 맡을 수 있지 않을까?"

김우태는 두 사람의 얘길 들으면서 장롱으로 걸어갔다. 미션도 성공했으니까 이제 아이템을 확인할 차례다.

무려 '레어'등급의 미션이었다. 민준이의 말로는 초보에겐 아주 어려운 미션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보상도 값질 터!

'한 오십만 포인트 주려나?'

그러면 단박에 원하는 아이템을 구입해서 채린에게….

터엉!

장롱 안의 돌을 보며 민준에게 말했다.

"엄청나게 많은데?"

"대부분 재료나 빈 병일 거예요. 저렇게 다른 색깔로 빛나는 게 좋은 아이템을 확률이 커요."

"오! 그래?"

김우태는 두근두근한 심정으로 파란 돌을 집었다.

【종속된 저주받은 인형(레어)(귀속)

저주받은 인형이 당신에게 달라붙었습니다. 인형은 언제나 당신의 곁에 머무릅니다.

매력-3

재생력+3

고통 분담+3

고유 효과: 타격 시 적은 확률로 치명타를 낸다.

착용 효과: 모든 생물이 적대해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다. 도발할수록 효과가 올라간다.

추가 효과: 인형 스스로 당신을 보호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다.】

"허억…?!"

미션이 끝났으니까 인형과 이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스스스스스.

돌이 인형으로 변해서 그의 팔에 잡혔다.

"…이. 이이…."

김우태는 충격을 받은 듯 바르르 떨다가 바닥에 인형을 패대기쳤다.

"싫어! 싫다고!"

버럭버럭 그가 소리칠 때였다.

바닥에 떨어졌던 인형이 갑자기 상체를 일으켰다.

"히이이이이이익!"

얼마나 놀랐는지 김우태가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도화지도 꺄악-! 소릴 질렀다.

인형은 일어나서 뒤뚱뒤뚱 김우태를 향해 걸어갔다.

"오, 오지 마…."

소름 끼치는 듯 김우태가 뒤로 물러났지만, 인형은 묵묵히 그를 향해 계속 걸어갔다.

"하아…."

민준이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 오빠 어떻게 해?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야?"

도화지는 침을 꿀꺽 삼키며 인형을 바라보다가 민준의 말을 들었다.

"우태형 스킬이…. 아니, 직업이라고 해야 돼나. 하여튼 우태형은 괴물들한테 밉보여서 대신 표적이 되는 그런 거라서…."

"헤엑? 그런 게 어딨어? 그건 너무…."

비참하잖아! 라는 말은 간신히 삼키는 도화지다.

"그러게요…."

도망치는 김우태와 끝까지 따라가는 인형을 보다가 민준이 아이템을 회수했다.

그리곤 말했다.

"체류 시간 아까우니까 나가서 얘기해요. 우리 셋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상의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 그러자.. 근데 변태 오빠…. 아, 아니…. 나도 일부러 이러는 거 아니야. 알지?"

매력 –6의 강력함은 없던 욕도 튀어나오게 한다.

"네."

"저 오빠 괜찮을까?"

한참을 도망치던 김우태는 어느 순간 포기해버렸는지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가슴엔 인형이 포옥 안겨 있다.

"괜찮아야죠…."

새로운 영웅이 탄생한 날, 그 자신은 전혀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

.

.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지만 그게 크면 클수록 파고들 여지는 많아진다.

조우진 형사는 순식간에 아파트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가 한가롭게 산책을 할 때도 마주친 경비아저씨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을 만난 듯 머리를 조아렸다.

'아직도 감시하고 있군.'

저쪽 차에서 느껴지는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조우진 형사는 빙긋 웃었다. 그는 로드의 자리까지 올랐었지만, 신체적인 능력 자체는 다른 절대자에 비해 뛰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마법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고 그 힘이 점차 강해지는 걸 느낄 때마다 그의 마음속에 있는 여러 가지 감정이 들끓었다.

'너희 모두를 내 발아래 두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야.'

우선은 이 아파트 단지부터 장악한 뒤 동네 전체로 세를 확장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층에선 폭력과 피로 군림했지만, 이곳에선 그렇게 접근하면 공공의 적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더 많은 고통과 상처를 모아야 해.'

그의 마법은 정신력에 기반한 것이기에 초반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무형의 것들은 어느 순간이 되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그 시점이 되면 누구도 막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부르르르릉.

오토바이가 뒤쪽에서 달려왔다.

그가 미간을 좁히며 옆으로 물러났다. 아슬아슬하게 스친 오토바이가 앞에서 멈춰서더니 고함이 터졌다.

"이봐! 조심해!"

"…."

조우진 형사는 울컥했다. 언제 이런 취급을 받아보았나. 심지어 여긴 인도다. 오토바이는 저쪽 차도로 다녀야 하는 거 아닌가?

당장 머리를 깨버리고 싶었지만, 그는 꾹 참았다. 지켜보는 시선이 있는 이상 함부로 움직여선 곤란하다.

'3311, 기억했다.'

소심하게 번호판이나 외우는 자신이 어이가 없었지만 쯧, 혀를 차며 그는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음?"

현관 앞에 도착했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네가 어떻게?"

하층의 성에 있어야 할 시녀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사실 그녀의 얼굴은 기억도 안 난다. 그저 복장과 분위기,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맹목적인 감정이 익숙했을 뿐이다.

"로드…."

시녀가 감격한 듯 몸을 떨었다.

조우진 형사는 그녀를 이끌고 집으로 들어갔다. 깨끗하게 정리 정돈된 방이 나타났다. 얼마나 쓸고 닦았는지 먼지 한 톨 없었다.

그가 침대에 걸터앉아 물었다.

"설명해."

"저는…."

시녀의 말은 정확하진 않았다. 성에 손님이 왔고 그녀가 시키는 대로 했다고 했다.

'실비아, 그 아이인가?'

조우진 형사의 입술이 재미있다는 듯 뒤틀렸다. 어차피 하층의 성 따위 이제는 아무런 미련도 의미도 없었다. 이 좋은 세상이 있는데 뭐가 아쉬울까?

"용케 내가 있는 곳을 찾았구나."

"저는 로드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겠지. 같은 시공간에 있다면 그게 당연할 건데…."

그렇다는 건 앞으로도 다른 녀석들도 넘어올 수 있다는 뜻이었다.

"곤란하네?"

이 시녀처럼 멀쩡하게 생겼으면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은 것들도 상당히 많았다. 그것들이 이 세상에 출몰한다? 뉴스가 그 사건으로 도배될 거다.

"아니지. 차라리 잘 됐나?"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의 눈이 초승달처럼 변했다.

"한번 흔들어 둘 필요도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이곳에 왔노라.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선전포고이자 또 누군가에겐 공포와 상처가 될 것일지도 몰랐다.

.

.

.

자, 잠도 푹 잤으니까 어제의 일을 정리해보자.

침대에서 일어나 학교에 갈 준비를 하면서 생각했다.

'전력이 확실히 늘었어. 혼자보다는 셋이 무조건 나으니까.'

갑자기 김우태가 떠올라서 입이 씁쓸해졌다.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그가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진 보지 않았지만 대충 눈에 그려졌다.

세상 모두가 나를 거부하는 경험은 보통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지독한 시간은 나도 처절할 만큼 겪어봤다.

그런데 또 이게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 파티 일원으로서 확실한 한 자리를 매김 할 수 있었다. 일단 나는 근접 전투 캐릭터가 아니다. 도화지도 방어력은 월등하지만 공격력은 다소 빈약하다. 이런 상태에서 김우태의 등장은 매우 안정적인 전투 운용을 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그 인형, 파괴력도 나쁘지 않았었고.'

치료라고 하는 것보다는 남의 피해를 자신이 가져가는 것에 더 가까웠지만, 김우태는 힐러라는 직업이었고 힐러는 어느 파티에나 가장 소중한 직업군이기도 했다.

지이이이잉.

교복을 입는데 톡이 왔다.

나, 김우태, 도화지. 셋이 함께하는 단톡방이다.

-좋은 아침! 오늘 저녁에 알지?

도화지다. 오늘 밤에 재능마켓에 모여서 다음을 의논하기로 했었다.

분명 다 읽었다는 표지가 떴는데 김우태의 대답이 없었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형, 괜찮아요?

그가 답이 없자 도화지가 말했다.

-민준이 오늘 긴급소집이라고 했지?

-네.

-혹시 저번처럼 또 너한테 놈들이 쳐들어갈지도 모르니까 긴장 풀지 말고! 무슨 일 있으면 어제 얘기 한 대로 곧장 비상 연락망 가동해!

우리도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다. 필라테스처럼 혼자 하는 일은 혼자 하겠지만 다른 미션들은 서로 돕는다. 특히 하층이 아니라 일상에서 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은 더욱 강해져서 빠른 대응이 중요했다.

'상처의 로드.'

이번 도화지의 실종 사건은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소득도 있었다.

'벌레의 퀸.'

하층의 절대자들. 그들이 이 세상을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피의….'

혈주라고 불리는 그의 이야기는 도화지도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이 셋이 당장 시급한 최악의 난제였다.

-사내새끼가 아침부터 밥상머리에서….

방심하고 있었는데 김우태의 톡이 왔다.

-인형 놀이한다고 우리 아버지가 밥상 엎으셨다.

아, 이쪽이 더 문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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