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매번 패턴이 반복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들어올 때마다 미션이 종잡을 수가 없으니 신선하다 못해 무섭기까지 하다.
"형, 이번 미션은 형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뭐가 나오든 당황하지 말고 대처해야 해요."
"알았어. 이 인형을 버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거지?"
"네."
"근데 24시간이나 여기에 있어야 한다고?"
"저는 몇 달도 혼자 갇혀있었던 적도 있어요."
"허얼…. 그게 가능하냐?"
"되더라고요."
우린 마지막으로 장비를 점검하고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놀라지 마세요. 형이 뭘 상상하든 그 이상이 나올 거겠지만 차분하게만 하면 못 해낼 것도 없었어요. 제가 그랬거든요."
"내가 또 근성 하나는 끝내줘. 6살 때부터 아버지랑 대련하면서 컸다."
나는 끄덕이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도화지보다는 확실히 믿음직스럽긴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물씬 앞섰다.
'인형만 놓치지 않고 버티면 된다는 게 더 불안하잖아.'
도화지의 경우엔 버섯을 먹었다. 푸석하고 맛없는 걸 먹는 것도 힘겨웠지만 미션 자체가 목숨을 위협하거나 하진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엔 저 인형 자체가 심각하게 거슬렸다. 일단 생긴 것부터가 온 세상의 저주를 모조리 담아둔 것 같았다. 거기에 장신의 김우태가 들고 있으니까 더 괴상해 보였다. 인형은 약 70cm 정도 되는 크기였는데 팔다리가 짧고 머리가 컸다. 그 얼굴이 흉측해서 꿈에 나올까 찝찝할 정도였다.
'웃고 있는 것 같아.'
섬뜩한 표정의 인형을 보다가 나는 머리를 흔들며 출구로 나갔다.
【안전 지역을 벗어났습니다.】
"형, 이제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어요. 웬만한 게 나오면 제가 어떻게든 처리하겠지만 저나 범이한테 너무 멀리 떨어지진 마세요."
김우태가 범이를 보며 물었다.
"나는 이런 거 언제 줘?"
"그냥 얻는 거 아니에요. 펫은 형이 직접 통해야 해요."
"그래? 생각해보니까 계속 달고 다니려면 피곤하긴 하겠다. 나는 그냥 혼자가 좋을 것 같아."
규웃?
범이가 얼굴을 갸웃거렸다.
나는 웃으며 그런 범이의 목덜미를 손으로 쓸어줬다. 이 녀석이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데!
화악-!
밝아진 시야가 눈을 잠시 멀게 했다.
"…하?"
김우태가 탄성을 질렀다. 감탄했다기보다는 기막혀서 내는 소리에 가까웠다.
"미쳤다. 진짜…. 이게 어떻게 되냐? 아까까지는 분명 강남역 있었는데."
"저는 일본도 가봤어요."
"진짜? 근데 그건 좋은 거 아니냐? 비행기도 안 탔으면 돈 굳었겠는데?"
"놀러 간 거 아니라고요."
여행이라면 얼마나 즐겁겠나. 하지만 나를 기다렸던 건 구울이었다.
"퉤, 퉤퉤! 카아아악! 퉷!"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엔 모래가 잔뜩 섞여 있었는데 김우태가 입안의 모래를 뱉어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아오. 싫으네. 이건."
"아니에요. 시간이 흐르고 있잖아요. 좋은 징조라고요."
달꽃을 지킬 때를 떠올려보면 이렇게 쉴 수 있는 틈이 있다는 건 상당히 날로 먹는 거였다.
그러나 우리에겐 아직 23시간 59분이 남았다.
"형."
"어."
"이번 미션은 멀리 갈 필요가 없으니까 여기서 자리 잡죠. 여차하면 저 안으로 들어가세요. 그러면 뭐가 됐든 따라오지 않을 거예요."
"오! 그거 좋은데?"
내가 생각해도 기막힌 방법이었다. 나는 어느 정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 범이도 웬만해선 쉽게 당하지 않을 거다.
"아앗…?"
김우태가 깜짝 놀랐다.
"왜요? 뭔데요?"
"아니! 이따가 채린이 유튜브 본방사수 해야 하는데!"
"…."
나는 이곳의 시간이 우리와 다르다는 걸 다시 한번 설명해야만 했다.
"대체 채린이 왜 좋은데요?"
"덕질하는덴 이유가 없는 거야. 너는 감정이 메말라서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가면 볼 수 있다니까 다행이네."
"어떤 유튜브인데요?"
"그냥 먹방 하는 애 거. 별건 없겠지만 이런 걸 다 챙겨줘야 진정한 성덕이라고."
아, 네…. 그러십니까.
김우태는 남루한 승려복 같은 걸 입고 있었는데 머리도 벗겨져서 그런지 인형 대신 염주만 들면 이 사막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채린이 저 모습을 보지 않아야 할 텐데.'
둘이 이어지길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괜히 안쓰럽다.
이런 얘기들을 하다 보니까 30분이 훌쩍 지났다.
"흠, 이거 꿀인데? 그냥 사막에서 버티기 잖아? 아까 물이랑 먹을 거 많이 챙겼지?"
"그렇긴 한데…."
재능마켓이 이럴 리가 없었다. 무려 '레어' 등급의 미션이다.
"방심하면 절대…."
이때였다.
파르르르르르르.
내 눈썹이 움직였다. 차우들이 몰려올 때도 반응하지 않던 '위기 감지'가 발동한 거다.
"흡? 형! 조심!"
말하며 김우태의 팔을 잡고 베이스캠프를 향해 뛰었다. 하지만 충격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입장이 거부되었습니다.】
"뭐, 뭐?"
놀랄 때가 아니었다.
"야! 바닥이 꺼진다!"
우리가 선 일대의 모든 모래가 아래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솨아아아아아아.
이 규모가 얼마나 컸냐면 눈으로 보이는 저 끝까지 전부 요동치고 있었다.
"형! 제 손 잡아요! 절대 놓지 마세요!"
바닥이 소용돌이처럼 원을 그리며 흘렀다. 그 중심에 블랙홀처럼 구멍이 뻥! 뚫렸는데 보이는 건 하나도 없지만, 지반이 내려앉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켁켁, 퉤! 퉤!"
"말하지 마시고 중심 잡으세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켁! 퉷퉷!"
"말하지 말라니까요!"
내가 더 소리치지 않아도 곧 김우태는 말할 수 없게 됐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후르르르르륵!
변기 물 내린 것처럼 우리는 찰나에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대항할 수도 없었고 몸을 가눌 수도 없었다. 그저 흩어지지 않으려고 서로를 붙잡았을 뿐이었다.
1분쯤 구른 것 같았다.
"…야! 민준아! 괜찮냐? 아무것도 안 보여!"
나는 대답 대신 활 통에서 화살을 하나 꺼냈다. 그리곤 불기름을 붙였다.
화르륵!
"우왓! 깜짝이야!"
"인형은요?"
"여기 있어."
김우태가 깔고 앉았던 인형을 손으로 들어 보였다.
갸르르르릉.
범이도 근처에서 몸을 털었다. 모래가 사방으로 튄다.
"휴, 살긴 했는데 이거…. 좀 이상하지 않냐?"
나도 느꼈다.
"움직이고 있어요."
마치 지하철에 탄 것 같았다. 우린 그냥 아래로 떨어진 게 아닌 것 같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뭐가요?"
"그냥 느낌이 꼭 아주 큰 어떤 게 우릴 삼킨 것 같거든. 하하! 그게 말이 돼?"
"네…. 돼요."
그 병아리를 보고 나면 뭐든 가능이다.
"후…. 이젠 어쩌냐?"
"일단 시간은 가고 있으니까 여기서 나갈 방법을 찾아봐야죠. 이게 뭔지는 몰라도 너무 멀어지면 베이스캠프로 돌아가는 것도 고생이에요."
"그래, 이쪽? 저쪽?"
길은 양방향이었다.
"모래가 흐르고 있어요. 저쪽이 우리가 들어온 쪽인 것 같죠?"
"호오, 너 똑똑하네?"
"재능마켓에서 지력을 얻었거든요."
"그런 것도 되냐? 그럼 나도 천재로 변신 돼?"
"일단 뭐 다 가능하겠지만 그것도 여기서 나가야 가능하겠죠?"
무엇보다 마이너스 매력부터 해결해야겠지만 지금은 잊자. 미션이 더 중요하니까.
거대한 동굴 같은 곳에서 우리는 모래를 거슬렀다. 만약 김우태의 말처럼 뭐가 우릴 삼켰다면 주둥이가 다시 벌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 틈을 노려서 나가면 될 것 같다.
이런 얘길 했더니 김우태가 말했다.
"아까 같은 상황에서 나갈 수 있을까? 차라리 똥이 되는 건 어때? 뒤로 나가는 게 더 빠르지 않겠냐?"
"저도 그 생각은 해봤는데 만에 하나 이 괴물이 위가 있으면 우린 녹아버릴지도 모르잖아요."
"아, 그것도 그러네."
"위험은 최대한 배제하면서 가죠. 여차하면 제가 저 벽이라도 뚫어볼게요."
삽질을 하든 스크류 화살을 쏘던.
'방법이 없을까?'
달꽃을 키울 때도 드링크의 도움을 받았었다. 내가 가진 모든 걸 활용해서 어떻게 여길 탈출해야 하는지 머릴 굴릴 때였다.
하지만 이런 고민은 곧 무색해졌다.
콰과과과과과과!
"허엇?"
또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건 눈썹을 가장했지만 더듬이다. 오감을 넘어선 그 어떤 걸 감지한다는 거다.
"형! 조심해요!"
말하자마자 우리가 향하는 방향에서 엄청난 양의 모래가 쏟아져 들어왔다.
"허억!"
"쓸려간다아아아아!"
늑대 인간 같은 것들은 맞서 싸우면 되지만 이런 규모의 자연은 대항할 수조차 없다. 하지만 이번엔 모래만 들어온 게 아니었다.
"아아아악! 뭐야! 방금 뭐가 날 물었어!"
정확히 말하면 모래 속의 무언가가 김우태를 공격한 것이었다.
"형! 가만히 있지 말고 계속 뛰어요!"
뭔진 모르겠지만 내겐 오지 않았다. 모래 속의 위협은 오직 김우태에게만 집중되고 있었다.
깨물리고, 찔리고, 할퀸다.
"아아아아아악! 아프다고! 진짜 아팠어!"
그것들의 크기는 다양했다. 모래 속에 있어서 잘 보이지도 않는 것들이 어떻게든 김우태를 공격하려고 안달이 나 있었다.
나는 활을 꺼냈다. 머리가 주먹만 한 뱀이 입을 쩍 벌리고 김우태를 향해 날아가는 걸 봤기 때문이다.
화르르르륵!
불화살이 날아가 뱀의 머리를 꿰뚫었다.
하지만 뱀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하악? 떨어져! 저리 가라고!"
김우태를 향해 달려드는 온갖 생명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공격으로 김우태를 죽이려고 했다.
'저 인형 때문이야.'
김우태는 벌떼에 쫓기는 사람처럼 인형을 휘두르며 달렸다.
퍽퍽퍽!
몇 마리는 인형에 맞아 터져나갔다.
'보기보다 타격력이 좋네.'
푹신할 것 같은데 맞는 순간, 작은 벌레의 몸이 터진다는 건 둔기 같은 무기라는 얘기다.
'추가 타격 때문인가?'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나는 계속 뛰면서 김우태에게 따라붙었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화살에 불을 붙이며 외쳤다.
"형! 버텨야 해요!"
"아아아아악! 이딴 게 힐러라니! 아파 죽겠다고! 이것들은 왜 나만 무는 건데!"
나는 김우태를 보며 이 미션의 정체를 깨달았다.
'앞으로 23시간….'
말은 저주받은 인형 지키기지만 이건 김우태의 맷집을 기르는 훈련이었다. 고통에 익숙해져야 하고 힐러로서의 능력을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덥석!
범이가 훌쩍 뛰며 전갈 비슷하게 생긴 걸 씹어 삼켰다. 하지만 이내 모래 때문인지 뱉어버렸다. 도와주려고 해봤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범이도 힘을 쓸 수 없는 것 같았다.
"으으음…."
모래와 함께 깊은 곳으로 흘러가면서 나는 안타까운 눈으로 김우태를 바라보았다.
"형!"
"왜!"
"포기하지 마요! 절대 인형을 버려선 안 돼요!"
"아오! 미치겠네! 정말!"
계속해서 뒤쪽으로 흘러가다가 어느 순간부터 모래의 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차츰 완전히 멈추자 나는 범이와 함께 김우태의 곁에 바짝 붙었다.
"형! 괜찮아요?"
"으으…. 모래를 엄청나게 먹었어. 물 좀 줘봐."
입을 헹구는 그를 보다가 나는 문득 주변을 바라보았다.
"형…."
"퉤퉤! 왜?"
"아무래도…."
그에게 진실을 말해줘야 할 것 같았다.
"형, 엄청나게 미움받고 있는 것 같아요."
모래 속에서 각종 독충과 생물들이 꾸역꾸역 기어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