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전투라는 건 1과 1이 붙었을 때, 반드시 양패구상하는 건 아니다. 어떤 전략을 사용하느냐, 혹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싸우느냐도 매우 중요한 요소다.
'빠르지만 상대 못 할 정돈 아니야.'
나는 차분히 활을 겨눴다.
'우선, 하나.'
화살이 시위를 떠났다.
강력한 회전력을 머금은 화살은 정확히 놈에게 날아갔다.
"…?"
하지만 웬걸? 녀석은 그걸 보면서도 피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반쯤 미친 게 아니라 완전히 돌아버린 눈빛으로 나를 향해 전력 질주만 할 뿐이었다.
'후회할 텐데?'
나는 두 번째 화살을 뽑아 시위에 걸며 첫 번째 화살이 녀석의 몸에 박혀 드는 걸 보았다. 아마 가까이 있었다면 콰드득! 녀석의 어깨가 통째로 갈려 나가는 소릴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커엉-!
하지만 놈은 짧은 울음을 토해내면서도 계속 거릴 좁혀왔다. 달꽃이 녀석들에게 영향을 끼친다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칫."
하지만 나 역시 물러설 수 없었다.
이 꽃은 내게도 중요했다.
피잉.
두 번째 화살도 내 손을 떠났다. 그게 다시 녀석의 복부를 관통하는 걸 보며 나는 앞으로 뛰어나갔다.
'저 지경인데도 뛴다고?'
사람이었으면 벌써 고꾸라졌을 것이건만, 놈은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내게 달려들고 있었다.
이제 거리는 고작 5미터.
나는 마지막 화살을 녀석의 얼굴에 똑바로 겨냥했다.
'무식한 건지….'
뭔진 모르겠지만 이 거리에서 이제 녀석은 절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녀석은 그걸 알 것임이 분명할 텐데도 여전히 마약중독자처럼 입을 떡 벌리고 뛸 뿐이었고, 드디어 세 번째 화살이 녀석의 얼굴에 박혀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주르르륵.
녀석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며 미끄러졌다.
【늑대인간을 사냥했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500p를 얻었습니다.】
"…."
나는 쓰러진 녀석을 잠시 지켜보다가 재료 수집망을 꺼냈다. 정신력은 훌륭한 것 같지만, 이렇게 무작정 달려드는 녀석은 다루기 어렵지 않다.
그런데 이때였다.
-아우우우우우우우!
-우우우우우!
저쪽에서 들려오는 불길한 소리는 늑대인간이 한 마리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었다.
"어쩐지 너무 쉽더라니."
나는 달꽃 주변으로 화살을 땅에 푹푹 꽂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빼서 쓰는 것보다는 이렇게 바로 뽑아 쓰는 게 아주 작더라도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순식간에 수십 대의 화살이 빼곡하게 내 주변에 박혔다.
'열매는 언제 숙성되는 거지?'
알 순 없었지만 드링크를 다 쓴 이상 무조건 이걸 지켜야 했다.
"…."
나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던 저쪽 능선을 바라보면서 활을 겨누고 섰다. 하지만 뒤에서 나타날 수도 있었기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계속 눈을 돌렸다.
'다리부터 노려야겠어.'
처음부터 얼굴을 노리면 즉사시킬 수 있겠지만 거리가 멀면 쉽게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속도를 줄이면서 확실하게 하나하나 상대해야 해.'
적이 하나라면 모르겠는데, 울음소릴 들어보면 심상치 않았다.
"후우…."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어. 겁먹지 않으려고 속으로 되뇔 때, 저 앞에서 그림자가 움직였다.
'왔다!'
보이자마자 시위를 놓았다.
그런 뒤 곧장 또 하나의 화살을 걸었다. 모든 화살이 다 명중하지 않더라도 쉴 틈은 없었다.
'무조건 공격하는 거야.'
적이 많더라도 내게 더 가까운 놈부터 쓰러뜨리면 되는 거다. 수십 미터 밖의 늑대인간이 나를 죽일 수단은 없다.
'쫄지 마.'
컹!
-아우우우우우우!
울음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막 나타난 놈은 골반에 화살을 매단 채 달려오고 있었는데, 나는 활을 옆으로 돌렸다. 그리곤 곧장 시위를 놨다.
핑-!
두 번째 놈에게 화살이 날아갔다.
'침착하면 돼. 당황하지 말자.'
내 화살은 스크류를 먹어서 아주 강력하다. 일단 맞기만 하면 전투력이 급격하게 하락할 거다. 가슴을 관통했는데, 계속 달려오는 두 번째 놈을 보면 뭐가 잘못됐나 싶지만 그건 내가 부족한 게 아니라 이 녀석들이 이상한 거다.
'셋, 넷, 다섯….'
놈들이 빠르게 불어났다.
나는 새로 나타나는 놈들에게 화살을 하나씩 더 날리면서 가장 첫 번째 놈이 바짝 거릴 줄였을 때, 녀석의 얼굴을 겨냥했다.
퍼억-!
3미터 앞에까지 다가왔던 녀석의 뒤통수에 삐죽 화살이 튀어나왔다.
【늑대인간을 사냥했습니다.】
'머리를 쏘면 돼!'
쓰러지는 놈을 보면서 곧장 7미터 앞의 늑대인간에게 화살을 쐈다.
그리곤 짧은 호흡을 내쉬었다.
콰과과곽!
이번엔 녀석의 턱을 부수면서 화살이 파고들었다.
'여섯, 일곱.'
계속해서 놈들의 숫자가 불어났다. 달밤에 늑대인간이 출몰하는 산에서 나 혼자 싸운다는 게 심장이 바들바들 떨릴 일이었지만, 나는 오히려 극도로 차분해졌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그동안 죽도록 훈련해오지 않았나!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니까. 50마리, 100마리가 한 번에 달려들지만 않으면 내가 이겨.'
놈들의 그림자가 9마리까지 불어났을 때, 나는 세뇌가 필요했다.
한데, 이때 구원자가 나타났다.
'범아!'
오른쪽 능선에서 나타난 은빛 표범은 압도적인 크기로 빠르게 전장에 달려들더니 가까운 늑대인간의 머리를 콱! 물었다. 그리곤 그대로 씹었다.
빠각!
머리가 저렇게 터지면 아무리 깡 좋은 놈들이라도 살아날 방법이 없다.
카앙!
'잘한다! 잘해.'
범이는 물 만난 오리처럼 빠르게 발을 움직였는데, 녀석의 앞발은 할퀴는 그 순간 늑대인간의 가슴을 너덜너덜하게 만든다. 그뿐인가? 힘이 워낙 좋아서 한참이나 처박혀버린다.
"꽃을 지켜야 해!"
알아들을 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범이가 한 축을 맡아준 덕분에 나는 더 수월하게 놈들에게 활을 쏠 수 있었다. 하지만 놈들은 범이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오로지 나를 향해 달려온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달꽃을 노리는 것 같았다.
퍼억! 퍽!
화살에 맞아 나뒹굴고 범이에게 공격당해 쓰러지면서도 놈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어느새 쓰러진 수가 무려 10마리가 넘어가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능선을 넘어오는 늑대인간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후우우…."
호흡을 가다듬었다.
숨을 쉬면서 화살을 쏠 수 없었기에 무호흡을 유지하는데 얼마나 참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처럼 몸을 돌릴 때를 이용해서 들이마시거나 내뱉어야 했다.
핑-!
등을 노리고 달려오던 녀석의 입에 화살이 틀어박혔다. 나는 곧장 화살을 걸며 동시에 시위를 당긴다. 그리곤 90도 몸을 틀어 곧장 화살을 날렸다.
커어….
등장과 동시에 내가 진즉 날린 화살 한 대를 다리든, 옆구리든 달고 오는 녀석들이었는데, 회전하는 화살촉이 스치기만 해도 보통 사람은 주저앉아버리겠건만 이놈들은 달랐다.
【축하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하아, 하아…."
짧은 순간에 몇 발이나 쏜 거지?
셀 수도 없이 많은 활을 쏜 것 같다. 얼마나 많이 잡았으면 레벨까지 상승하나?
-아우우우우우우!
-우우우우우!
하지만 울음소리는 더 늘어났다.
'젠장, 얼마나 더 있는 거야?'
이제까지 상대한 숫자보다도 훨씬 많은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나는 잠깐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망쳐?'
오늘 이 꽃을 포기하더라도 다른 달꽃이 언젠가 때가 되면 열매를 맺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다 죽도록 놔둘 순 없어.'
슉슉!
화살은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날아갔다. 그러면서 나는 급히 머리를 숙였다.
후우우우웅!
늑대인간 한 마리가 내 옆에서 팔을 휘두른 것이다.
"…흐읍."
몸을 뒤집으면서 녀석의 얼굴을 향해 시위를 놨다.
퍼억-!
"학, 학…."
놈의 손톱에 코끝이 스쳤다. 꼭 면도칼로 벤 것같이 시렸지만, 손으로 만져볼 여유도 없었다. 어느새 근접 공격을 받기 시작한 거다. 아무리 범이가 선전하고, 내가 활을 빨리 쏴대도 모든 방위를 다 막을 순 없었다.
'더 빨라야 돼!'
이미 나는 1초에 1발씩 화살을 쏘고 있었다. 그런데도 점차 내게 더 가까이 접근해 공격하는 놈들이 늘어났다는 건 전반적인 흐름이 밀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크읏…."
이번엔 두 마리가 양쪽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아까 한 번씩 화살을 먹여놓은 놈들이었지만 기세는 멈출 줄 몰랐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두 마리가 내게 도달하는 시간이 비슷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범이도 저쪽에서 다른 놈 목을 물어뜯고 있어서 나를 도와줄 수 없다.
고민도 찰나 그새 달려드는 놈들을 보며 나는 시위를 놓았다.
'우선 하나부터 확실하게!'
피잉-!
시위를 놓자마자 나는 옆으로 발을 뻗었다.
콰드득!
화살이 한 놈의 얼굴에 박힐 때, 내 발은 다른 쪽 녀석의 배를 걷어차고 있었다.
퍽!
정확하게 킥을 맞은 녀석의 몸이 주륵 2미터가량 밀려났지만, 안타깝게도 그게 전부였다. 샌드백도 날려버리는 내 발차기를 놈이 버텨낸 거다.
크아악!
더 미친 듯이 달려오는 녀석을 보며 나는 재빨리 다시 화살을 놓았다.
피잉!
나 역시 발차기로 승부를 보려는 건 아니었다. 단지 또 하나의 화살을 시위에 걸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퍽!
녀석의 얼굴에 화살이 박히는 걸 보며 나는 일종의 깨달음을 얻었다.
'활로 모든 걸 해결할 필욘 없어.'
나는 격투기를 배우고 있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내 힘이 사람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이걸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다면 나는 가만히 서서 활만 쏘는 궁사에서 언제 어느 때든 자유롭게 공격을 할 수 있는 형태로 발전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편견을 버려야 해.'
여차하면 몇 대 얻어맞을 각오도 필요했다.
'내 공격력은 절대 밀리지 않으니까. 맞출 수 있으면….'
그 방법만 찾는다면 거리는 상관없었다.
"후우우우…."
나는 더 집중했다.
그리곤 저쪽을 향해서 계속 화살을 쏘았다.
【명중률이 상승했습니다.】
이 스킬은 아주 눈물 나게 고마운 녀석이었다. 이게 아니었다면 오늘 내가 쏜 화살의 절반은 빗나갔을 거다.
-아우우우우우!
'열하나, 열둘, 열셋. 제기랄!'
달을 등지고 새로 나타난 녀석들의 수를 세며 나는 눈앞이 아찔해졌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런데 이때,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퍼억-!
막 한 녀석의 머리가 날아갈 때,
【레벨이 올랐습니다.】
내 인생을 바꿔놓을 힘이 깃들었다.
【축하합니다!】
【상승한 레벨의 효과로 유니크 스킬이 출현했습니다!】
【스킬(유니크): 철벽! 한 지점(5미터 내외)에서 활을 쏠 때 방어력이 +5 상승한다. 방어력은 더 강한 공격력에 깨질 수 있으나 일정한 수준의 물리적, 마법적, 정신적 공격은 모두 상쇄할 수 있다.】
"…!"
유니크 스킬이라니?
아무리 레벨이 오르면 좋은 일이 생긴다지만 10만 포인트짜리 스킬보다 더 좋은 게 덜컥 나오니 이게 꿈인가 싶었다.
그런데 여기서 안 끝났다.
【축하합니다! 활로 늑대인간 30마리를 사냥했습니다!】
【늑대인간 사냥꾼 명성을 얻었습니다!】
【늑대인간 사냥꾼: 명중률 보정+1. 화살 추가 타격+1.】
경사가 겹쳤다.
그리고 이건 화살을 쏘자마자 바로 느껴졌다.
피잉-!
6미터 거리의 놈에게 쏜 화살 끝이 놈에게 닿기 전에 미세하게 움직였다.
커엉!
놈은 머리를 틀어 화살을 피하려 했지만, 화살은 유도탄처럼 놈의 턱을 박살 내면서 박혀 들었다.
'오!'
-아우우우우우우!
-아우우우!
다섯 마리가 저쪽 능선에서 더 나타나며 울어 재꼈지만, 나는 입가에 미소를 매달았다.
"2차전이다. 이것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