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124화 (124/277)

#124화

【차우를 사냥했습니다.】

【80p를 획득했습니다.】

포인트를 받자마자 깨달았다.

'역시 별거 아니었어.'

나는 두 번째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그리곤 곧장 놓아버렸다.

휘리리리리릭!

회전하며 날아간 화살이 다른 차우의 머리에 박혔다.

커엉!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차우가 머리부터 땅에 처박혔다.

핏핏핏핏핏핏!

나는 계속해서 활을 쐈다.

화살을 뽑아 조준하고, 시위를 놓는 것까지 걸리는데, 3초 남짓. 높은 지대에서 엄폐물도 없는 상태여서 내 활은 백발백중이었다. 명중률 보정에 벽도 뚫어버리는 강철 촉 화살은 녀석들에게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순식간에 10마리가 죽었다.

하지만 놈들은 아주 용맹하게도 동료가 죽건 말건 내가 있는 나무로 모여들었다. 그리곤 컹컹! 짖으면서 나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뛰었다.

"바보구나…."

이놈들이 80p인 이유는 지능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무심한 눈으로 활을 겨눴다. 고작 5미터도 안되는 거리라서 그냥 쏘면 맞았다.

핏핏핏핏핏핏!

화살은 비처럼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80p를 획득했습니다.】

【90p를 획득했습니다.】

【80p를 획득했습니다.】

컹컹!

위협적으로 짖으면서 옆으로도 피해 보지만, 내 화살은 녀석들이 이 거리에서 회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죽은 차우들의 시체가 쌓이고 있었다. 어떤 녀석은 동료의 시체를 밟고 뛰어오르다가 목구멍에 화살이 박히며 떨어졌다.

"…."

나는 기계적으로 계속 화살을 쐈다. 이런 순간에 연민을 가지면 한없이 불쌍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애초에 나는 놈들이나 꼬마들, 어느 한쪽 편을 정해야 했다. 그게 더 마음이 편하다.

깽!

30마리쯤 죽였을까?

차우들도 이대론 답이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슬금슬금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퍼억-!

하지만 이 순간에도 나는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화살을 쏘고 있었다.

퍼퍼퍼퍼퍽!

새로 얻은 10만p짜리 스크류 샷 스킬은 너무도 위력적이었다. 내 활잡이 인생을 어느 기점으로 나누라고 한다면 나는 오늘이라고 대답할 거다.

'두 배 이상 강해졌어.'

움직이는 차우들은 좋은 연습용 사냥감이 되었는데, 회전하는 화살은 비켜 맞아도 치명상을 남겼다. 왜 아니겠는가? 날카롭고 뾰족한 강철 촉이 드릴처럼 다 찢어버리고 지나가는데!

'엄청나네.'

내가 쏘고 있지만 보면서도 파괴력이 믿기질 않았다. 화살은 계속해서 차우들의 숫자를 줄여갔다.

컹컹! 컹컹컹!

놈들이 50미터 밖으로 물러날 때까지 계속해서 나자빠지는 차우가 있었다.

【축하합니다! 차우 50마리를 사냥했습니다!】

결국, 차우들은 꼬리를 말고 도망쳤다. 나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는데, 범이가 보이질 않았다.

'놀러 갔냐….'

범이가 왜 그렇게 심드렁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차우 따위는 범이에게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던 거다.

【재료 수집망을 사용합니다.】

나는 나무에서 내려와서 차우 시체를 회수해나갔다. 비록 들개 수준의 괴물이었지만, 이런 거 하나가 드링크를 만들 때 어떻게 쓰일지 모른다.

'나도 이제 진짜 사냥꾼이 다 됐네.'

배달부가 배달하면서 별 생각 안 하는 것처럼 나도 죽은 차우를 수집하면서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히려 신경 쓰이는 게 있다면 차우를 사냥했지만, 치료에 대한 실마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조급할 필요 없어.'

나는 계속 수집망을 쓰면서 산으로 다가갔다.

'어딘가에 단서가 있겠지.'

차우가 여기 모여있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마을 어른들이 왜 병에 걸렸는진 모르겠지만, 그 일은 주기적으로 일어난다고 했다. 그렇다면 병을 얻게 하는 것도, 아니 반대로 낫게 할 수 있는 무언가도 근처에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차우를 다 수집하고 나서 다시 활을 들고 능선에 올랐다. 마을 꼬마들에겐 이 산이 에베레스트처럼 보였겠지만, 800m쯤 오르자 첫 번째 꼭대기가 나타났다.

그 완만한 봉우리에 서서 주변을 보았다.

'개들은 다 도망친 건가.'

순식간에 50마리가 죽어버렸으니까 놀라서 흩어진 것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언제 불쑥 튀어나와 물지도 모르니까 경계는 해야 했다.

나는 주변 지형을 확인하면서 한 방향으로 내려갔다.

"흐음."

뭐 없는데…? 라고 생각했을 때, 저쪽에서 개 짖는 소리가 났다. 그런데 다른 하나의 소리가 그것관 좀 달랐다. 내겐 더 익숙한 울음이었다.

"…어?"

나는 급히 뛰어서 봉우리로 올라갔다. 그러자 저 멀리에서 범이와 뭔가가 싸우고 있는 게 보였다. 엎치락뒤치락하다가 범이의 몸이 은색으로 뒤덮였다.

커엉!

그러자 전세가 바로 역전됐다.

캥!

범이가 싸우고 있는 차우는 다른 차우보다도 훨씬 컸다. 더 빨랐고, 몸에 상처도 많았다.

'저놈이 대장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범이를 이기기엔 한참 부족해 보였다.

'안 도와도 되겠네.'

나는 활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거리도 너무 멀었고, 큰 차우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뒤를 범이가 따라가고 있으니 놔두는 것도 좋겠다.

'나 때문에 강제로 재능마켓에 오래 갇혀 있었으니까.'

범이는 맹수다. 본능을 잃지 않으려면 이런 사냥은 필수일 지도 모른다.

나는 몸을 돌려 반대로 걸었다.

저쪽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근처를 다 수색해야 할 것 같았다.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가 봤다.

"…?"

저 멀리,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까 꼬마들이 있던 마을과 다른 마을이 보이는 것이다.

나는 문득 뒤를 돌아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웃기는 녀석들이네?'

차우가 그렇게 무섭다면서 이놈들은 왜 차우산 주변에 모여서 마을까지 이루고 사는 걸까?

어차피 해결책을 찾지 못했기에 나는 그쪽으로 걸어갔다. 3km쯤 걸었을까?

-거인이다!

-전설의 거인이 나타났어!

-으악! 우리를 잡아먹을 거야!

-무기를 가져와! 싸워야 해!

"…."

틀린 그림 찾기 같은 걸 하다 보면 바로 눈에 딱! 보이는 것들이 있다. 지금이 그랬다.

'얘네는 괜찮잖아?'

내가 나타나자 온 마을 사람들이 다 야단법석을 떨었다. 아이들을 집 안으로 숨기고, 어른들이 이쑤시개 같은 걸 들고나왔다.

병이 퍼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때였다.

-허억! 저기를 봐!

-차우산에 괴물이 나타났다!

산 중턱에서 범이가 큰 차우를 계속 따라가고 있는 게 보였다.

'그 녀석 떨쳐내기 쉽지 않을걸?'

육식 토끼를 따라다니던 범이의 집착을 잘 알기에 나는 쓰게 웃으면서 마을 초입으로 걸어갔다.

-히익!

-도망쳐!

-으아아아아앙! 무서워!

울음을 터뜨리는 젊은 여자를 보면서 나는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그리곤 아까처럼 초코바를 하나 꺼내서 반쯤 깐 뒤 녀석들의 광장에 내려놓았다.

이런저런 설명을 하는 것도 귀찮다.

"선물이야. 먹어."

거인이 찾아와서 갑자기 시커먼 걸 먹으라고 하면 누가 먹나 싶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할 일이 있었다.

"저쪽 마을에서 오는 길이야. 그곳 어른들이 전부 병에 걸렸어. 벌써 죽는 사람들도 나오고 있어. 내가 어떻게 그들을 치료할 수 있는지 알려줘."

"벼, 병이라고?"

노인 하나가 지팡이로 땅을 짚으며 광장으로 걸어 나왔다.

"지금 뭐라고 했나? 병이 퍼졌다고?"

"그래, 어른들만 죽는 병."

"허어…. 어찌 그 저주가 또 일어났단 말인가!"

"시간이 없어. 그 병이 여기로 퍼지지 않으리란 법도 없고. 도와줄 테니까 얘기해달라고. 내가 뭘 하면 좋을지."

노인은 이 마을의 지도자쯤 되는 것 같았다. 그가 입을 열자 시끄럽게 꽥꽥 지르던 소리들이 뚝 멎었다.

"전설이 사실이었다니…."

"무슨 전설?"

"저 차우산에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네."

노인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해나갔다.

"…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 오래전에 마법사를 만났다고 하네. 그분의 존함은 이더리엘이신데…. 자네도 이 이야기를 들어본다면 그분의 용기와 지혜를 감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이거… 오늘 내로 안 끝나겠는데?

"요약 좀 해줘. 아주 간단하게. 이왕이면 극도로 줄여서."

"크흠, 성질이 급한 거인이구먼. 몸집은 그렇게 크면서 기다릴 줄을 모르니…. 쯧."

거인 아니라니까…. 하아….

"사람들이 죽고 있다니까?"

"알겠네. 크흠. 어쨌든…그분이 말일세. 한번은 산으로 올라가셨다가 내려오셔서는 이야기를 해주셨지. 그 얘기가 뭐냐하면…."

아놔. 시간 없다니까.

나는 단호히 소리쳤다.

"그만!"

-히이이이이익!

-깜짝이야!

-어이쿠야!

노인이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이들에겐 천둥이 친 것 같이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요약해달라고! 사람이 죽어간다니까?"

"허어…. 소갈머리하고는. 알았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해주기로 하지. 일단 그 병을 치료 할 수 있는 방법은 저 차우산에 있네!"

없던데…?

"달이 뜨면 차우산에 꽃이 피는데, 그 꽃은 한 달에 한 번 열매를 맺는다네! 전설에 의하면 그 열매가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했어!"

아, 낮이라 아무것도 없었던 건가?

"잠깐, 한 달에 한 번이라고? 그러면 늦잖아?"

"차우산에 접근할 수 없어서 이 무렵 그 꽃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 순 없지만, 별수 있나? 열매가 열리길 기다려야지."

대책 없는 말에 나는 허, 혀를 찼다.

그러다 문득 아까 궁금했던 게 떠올랐다.

"근데 너희는 왜 여기 살아? 저 무서운 차우들이 지척에 있는데."

노인이 저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자네는 모르나? 이곳을 벗어나면 끝없는 사막이 펼쳐져 있다네. 우리는 갈 곳이 없어. 그건 저 차우들도 마찬가지겠지."

그래?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사막이 보이진 않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여긴 사막 한가운데 있는 오아시스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일엔 때와 순리가 있는 거라네. 자네가 저 산을 넘어온 걸 보니 차우보다 강하다는 증거겠군. 그러면 밤을 기다리게. 꽃이 필 거네."

노인이 지팡이를 짚으며 광장 중앙으로 걸어갔다. 그러더니 내가 둔 초코바를 손으로 조금 뜯어서 입에 넣었다.

-촌장님!

-그게 뭔지 알고 드세요?

-안 돼요!

사람들이 말렸지만, 촌장은 웃었다.

"저 거인이 마음만 먹으면 우릴 다 밟아 죽일 수 있는데, 이게 선물이 아닐 리 없잖은가."

촌장은 태평히 우물우물 초코바를 씹었다.

그러다,

"커헉-!"

두 손으로 목을 잡고 비틀거렸다.

-촌장님!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역시 함정이었다고!

녀석들은 다시 꼬챙이를 들며 날뛰고 있었다.

"…."

노인네, 장난이 과하네.

내가 기가 막혀 보는데, 촌장이 처억 허리를 펴고 말했다.

"이런 맛이!"

알았다고. 이제 그만 해. 아까도 봤단 말이야.

나는 쯧, 입맛을 다시며 일어났다. 달이 뜨면 꽃이 핀다고 했으니까 산에 가서 기다려야겠다.

"아, 그런데 그 열매는 어떻게 쓰면 돼?"

촌장은 두 손으로 초코바 덩어리를 뜯어내며 말했다.

"우리가 만든 특별한 항아리에서 정제하면 약으로 만들 수 있지!"

"특별한 항아리?"

내가 의아한 눈으로 묻자 촌장이 마을 뒤편을 손으로 가리켰다.

"세상을 정화하는 마법의 항아리지! 우리 종족만 만들 수 있는 귀한 물건이야!"

나는 몸을 숙이고 팔을 뻗어서 그 항아리라는 걸 손으로 집었다. 한 뼘 정도 되는 길쭉한 모양이었다. 쏘옥 들었더니 땅에서 나왔다.

【빈 병(레어)를 얻었습니다.】

"허억?"

그냥 병이 무려 1,000포인트다.

당연히 레어 병은 훨씬 구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 여기엔 이런 빈 병이 장독처럼 땅에 묻혀 있지 않나?

'이 녀석들….'

보물이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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