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성에서 나온 괴물들은 창과 방패를 들고 있었다. 그것들은 갑옷도 입고 있었는데, 투구 속으로 보이는 눈엔 새빨간 빛이 줄기줄기 흘러나왔다.
슈슈슈슈슈슉!
화살들이 놈들에게 날아갔다. 하지만 놈들은 방패를 들지도 않았다.
팅팅팅!
갑옷에 모조리 맞아 튕겨난다.
저벅, 저벅, 저벅!
놈들은 줄을 맞춰서 계속 나왔다. 그 수가 무려 300에 달했다.
-로드 친위대야! 흩어져! 절대 맞붙지 말고, 시간을 끌어!
-실비아! 너는 어떻게 하려고!
-기회 봐서 잠입할게! 친위대는 우리 활로 죽일 수 없어! 놈들의 영혼이 담긴 마법 그릇을 파괴해야 해! 그게 성 어딘가에 있을 거야!
-알겠어! 시간을 끌어볼게! 죽지 마!
친위대는 키가 2m나 됐다.
그들이 든 창은 훨씬 더 컸다.
줄지어 성에서 나온 친위대는 한참을 나오더니, 멈춰 섰다. 그리곤 창을 던졌다.
파파파파파파파파팍!
-헉! 도망쳐!
-흩어져!
-꺄아아아아아아!
엄청난 힘이었다.
창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도화지도 비명을 지르며 뛰었다. 실비아가 저쪽 멀리 돌아가는 게 보였다.
푸푸푸푸푸푹!
창이 바닥에 내리꽂혔다. 그리고 이때, 친위대가 대열을 풀고 각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잡아!
-알았어!
여전사 중 몇 명이 두 손을 가슴으로 끌어왔다. 그러자 땅에서 우두둑! 우둑! 나무뿌리가 튀어나왔다. 그게 친위대의 발목을 감았다.
-됐어!
-오래 버틸 순 없어!
-힘을 내!
참으로 신비한 광경이었지만, 도화지는 그걸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저기 보이는 실비아의 뒤를 따라서 뛰고 또 뛰었다.
.
.
.
실비아는 순식간에 다리를 건넜다.
'로드가 정말 사라진 건가?'
이 난리가 났는데도 로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저 친위대 모두를 합친 것보다 로드는 강했다. 사실 친위대 따위가 어떻게 되든 신경도 안 쓸 거다. 하지만 성이 함락되는 건 얘기가 달랐다. 이건 그의 이름이자 명예였다.
그녀가 열린 성문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
안에서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조심해야 했기에 그녀는 조심조심 안쪽으로 이동했다. 자매들이 친위대를 붙잡아두고 있다곤 해도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친위대는 영혼을 저당 잡힌 마물이었다. 일반적인 무기로는 절대 죽일 수 없었다.
꿀꺽.
그녀가 어둠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휘이이이이잉.
무너진 천장에서 바람이 들이쳤다. 곳곳이 파괴되고 망가졌지만, 어딘가 온전한 곳이 있을 것이다. 거길 찾아야 친위대의 비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바람에 살랑거리던 거미줄이 그녀의 어깨에 닿았다. 오싹한 기분이었지만 그녀는 계속 나아갔다.
그런데 이때였다.
"으아아아아아아! 기분 나빠아아아아!"
뒤에서 들린 소리에 돌아봤다. 도화지가 그녀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헉, 헉! 언니! 같이 가요!"
조심해야 하는데, 이렇게 큰 소리로 떠들다니! 그녀가 급히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말했다.
"쉿! 조용히 해야 해! 악마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고!"
"아니에요."
도화지의 코가 벌름댔다.
"여긴 아무것도 없어요."
"그걸…. 어떻게 알아?"
"냄새가 안 나요."
"냄새?"
여기까지 오면서 도화지는 많은 풀을 먹었다. 배도 고팠지만 먹을 때마다 새로운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걸 안 이상 피하지 않았다. 100종류의 버섯도 먹어봤던 그녀였기에 이번에도 노력했다.
"까만 냄새, 회색 냄새, 구름 냄새, 생선 썩은 내까지. 여기저기 있긴 한데, 이 근처엔 없어요! 아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진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래요!"
"너도 마법을 쓰니?"
"몰라요! 근데, 일단 믿어봐요! 냄새 안 나니까!"
도화지가 실비아의 손을 잡았다.
그리곤 뛰었다.
친위대도 까만 냄새가 나는데, 성안에선 없었다.
"언니! 어디로 가요?"
"일단 저 위로!"
두 사람의 속도가 더 빨라졌다. 실비아는 반신반의했지만 이렇게 소란을 떠는데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걸 보면서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2층으로 올라갔다.
"방이 너무 많은데. 흩어질까?"
실비아의 말에 도화지가 냉큼 대답했다.
"싫어요!"
"왜?"
"무서워요! 그냥 저는 없는 사람 취급해 주세요! 이럴 때 흩어지면 꼭 한 사람은 죽는단 말이에요!"
"…."
저 확신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진 모르겠지만 싫다는 데 강요할 성격은 아니었던 실비아가 복도를 뛰어갔다.
벌컥!
방문이 열렸다.
인기척은 없었지만, 특별한 것도 없어 보였다.
다시 복도를 뛰었다.
벌컥!
다른 방문도 열어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눈에 걸리는 건 없었다.
'로드의 방은 어디지?'
중요한 물건은 거기에 있을 거로 생각한 실비아가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없어. 지금부터는 감을 믿어봐야 할 것 같아."
"언니가 알아서 하세요! 나는 없는 사람이라니까요!"
"…."
실비아가 3층 계단을 향해 뛰었다. 로드라면 가장 높은 곳에 거처를 마련했을 거로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올라선 3층에서 복도 끝의 거대한 문을 보았다.
"아?"
피처럼 빨간 문엔 알 수 없는 도형이 가득 그려져 있었다.
"저기인 것 같아!"
실비아가 전력으로 뛰었다. 그러다가 창문 밖을 보았다.
-꺄아아아아아!
-잡히면 안 돼! 뛰어!
-흐윽! 나는 틀렸어! 어서 가!
구속마법이 풀렸는지 자매들이 친위대에게 죽임을 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매들은 계속해서 친위대와 싸웠다. 그녀가 궁에서 무언가를 찾아내길 바라면서 친위대의 이목을 끌려는 것이었다.
꽈악.
그녀의 이가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그리곤 더 빨리 문을 향해 뛰어갔다.
도화지도 그녀의 곁에 바짝 붙었다.
'이 애, 빨라.'
실비아는 도화지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자매들 사이에서도 그녀는 꽤 날랜 편인데도 도화지는 잘 따라왔다.
-꺄아아아아아아아….
저 멀리서 들려오는 자매의 비명에 그녀의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문을 힘껏 밀었다.
화악!
젖혀진 문틈으로 뭔가 반짝이는 게 보였다.
"흐으으으으읍…?"
송곳 같은 게 그녀의 배를 노리고, 곧장 찔러오고 있었다.
'느, 늦었어….'
문을 열기 전에 생각했어야 했다. 함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미안해. 자매들아….'
찰나였지만 그녀의 눈에 송글 눈물이 맺혔다. 믿고 따라와 준 자매들에게 미안해서 벅차오른 거다.
그런데 그때였다.
실비아는 자신을 끌어안는 따듯한 품을 느꼈다.
'…왜?'
도화지가 그녀를 안고 눈을 질끈 감았다.
'왜? 왜…!'
실비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둘 다 저 창 같은 송곳에 꿰뚫려 죽는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퍼억-!
두 사람의 몸이 충격으로 나가떨어져서 데굴데굴 굴렀다. 강철 송곳은 길이가 무려 4미터가 넘었다. 어디서 발사된 건진 모르겠지만, 분명 사람 몇 명 정도는 뚫고 지날 만큼의 힘이 실려있었다.
"아야야. 아파라."
여기, 한 여자만 빼고.
실비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손으로 도화지의 등을 더듬었다.
"…어, 어떻게?"
도화지의 등은 상처도 없었다.
"이게 되네. 헤헤."
도화지가 앉으며 웃었다. 실비아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도화지 앞에 앉으며 말했다.
"어떻게 된 거야? 아니, 왜 그런 거야?"
"뭐가요?"
"왜 뛰어들었냐고!"
도화지가 일어나며 실비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냥…."
실비아는 자기도 모르게 도화지의 손을 잡았다.
"우리 할머니가 그랬거든요."
"…?"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고."
"둘 다 죽을 수도 있었어!"
"근데 안 죽었잖아요? 불행만 생각하면서 살면 끝도 없어요. 좋은 생각 하고 살아야 좋은 일이 일어나죠. 가요! 내가 튼튼하니까 언니, 지켜줄게요!"
쩌저적.
실비아의 가슴 속에서 무언가 금이 갔다.
.
.
.
꼬마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차우는 무섭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숫자가 꽤 많았다.
'개네. 개야….'
우리가 아는 개보다는 하이에나에 가깝게 생겼지만, 크기는 중형견 만했다. 어깨가 지면 쪽으로 축 늘어져 있었고 앞다리는 짧았지만, 턱은 더 발달해 보였다. 딱 보니 이곳에 무리를 지어 살며 산 전체를 사용하고 있었다.
'아주 많은 개들이야….'
산을 바라보면서 나는 고민했다. 저 많은 개들이 한 번에 달려들면 답이 없다. 얼추 100마리는 넘을 것 같은데, 어떤 놈이 우두머리인지도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흠. 어쩔까?"
범이를 보며 말했지만, 녀석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딱히 긴장감이라곤 없는 것 같았다. 범이가 녀석들보다 2~3배는 몸집이 컸는데, 이런 맹수들에겐 피치컬이 무엇보다 중요했으니 범이가 나른하게 늘어져 있는 것도 이해는 갔다.
"저 녀석들이 열쇠인 것 같은데."
예전이었다면 저런 맹수 무리를 앞에 두고 이렇게 태연할 순 없었겠지만 하도 이런저런 일을 겪다 보니까 무뎌졌다.
"어쩐다."
객관적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면 무척 재미있겠지만 직접 해야 한다면 선택이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차우들을 보면서 생각하다가 일어났다.
'뭐, 별수 있나.'
까라면 까야지.
"따로 움직이자. 내가 저 위로 올라갈 테니까 너는 나중에 와."
높이 솟은 나무를 목표로 이동하려고 한다. 놈들이 범이처럼 나무를 잘 탈것 같진 않았다.
"저기 보이지? 저 나무말이야."
규웃?
그래, 이해 못 했지?
어차피 더 설명해봐야 입만 아프다. 나는 활을 둘러메고 전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킁킁.
차우들은 아직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저놈들이 생긴 것처럼 개라면 곧 발달한 후각으로 나를 감지할 거다. 수호자의 코트가 최대한 기척을 숨겨주길 바라는 수밖에.
타다다다닥!
나무에 도착하자마자 훅! 뛰어올랐다. 등반 10,000회를 해낸 경험 덕분에 이제 이런 나무 오르기는 눈 감고도 하겠다.
이 무렵 차우들도 나를 발견했다.
컹컹!
컹!
짖는 소리가 개 맞네.
"…오라고."
나는 굵은 가지에 앉아 활을 꺼냈다. 그리곤 강철 촉 화살 하나를 시위에 걸고 기다렸다.
【인내가 발동합니다. 추가 타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스크류 샷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인내와 함께 사용하면 관통력과 파괴력이 높아집니다.】
저 개들한테 악감정은 없었지만, 꼬마 놈들에게 더 마음이 가는 것도 사실이었다. 칭얼대는 게 거슬리긴 하지만, 나 역시 그런 아픔을 한번 겪어봐서 그런지 가슴이 찡했다.
커엉! 컹컹!
사방에서 차우들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놈들의 수가 순식간에 불어났다. 이쪽을 향해 혀를 길게 빼물고 달려오는데, 도화지가 같이 있었다면 무섭다고 소리를 빽빽 질렀을 거다.
하지만 나는 입가에 미소를 걸고 기다렸다.
20미터.
놈들이 우르르 달려오며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10미터.
이제 첫 번째 화살을 쏘기에 가장 좋은 거리다.
티잉.
호흡을 멈추고, 시위를 잡은 손을 놓았다.
그리고 그 즉시 화살이 활을 떠나면서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휘리리리리리리리릭!
화살이 돌고 있었다.
【바람을 무시합니다.】
【명중률이 올라갑니다.】
회전이 얼마나 빠른지 솨아아아악, 소리까지 들려왔다. 그리고 그 화살이 가장 먼저 달려오던 녀석의 등에 맞았다.
그 순간! 콰곽!
개의 등을 뚫고 관통해서 바닥에 깊이 꽂혀버린 화살은 아직도 힘이 남았는지 드릴처럼 땅을 차고 들다가 멈췄다.
"워…."
나는 그걸 보면서 가볍게 소름이 돋았다.
'이거…. 죽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