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117화 (117/277)

#117화

서초경찰서.

학교에 나가 있던 팀장과 강나은 경위가 급히 돌아왔다.

"우진아! 야! 너…!"

조우진 형사가 취조실에 앉아있었다.

"팀장님…."

"몸은 괜찮냐?"

팀장은 그것부터 물어봤다.

"괜찮습니다. 근데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

팀장은 조우진 형사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강나은 경위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어떻게 된 걸까요?"

학교 옥상에서 김상식을 찾았다. 머리가 박살 난 상태였지만 김상식이 분명했다.

"분명히 조 형사님도 그 학교에 있었잖아요. 혹시 조 형사님이 김상식을…."

"속단하지 말자고."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인질범은 모두 죽었고, 하나같이 처참했다. 천만다행으로 학생들이나 교직원 중에선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역대급으로 끔찍한 사건이었다.

두 사람이 강력반으로 가자 팀원들이 다가와 말했다.

"조우진 형사, 만나보셨습니까?"

"팀장님! 외부 CCTV 중 일부는 확보했습니다!"

"서장님께서 올라오시랍니다!"

한꺼번에 일이 밀어닥쳤다.

팀장은 일단 자리에 앉았다.

그의 뒤에서 강나은 경위가 물었다.

"인질범들의 동기도 목적도 학교와의 연관성도 전혀 찾지 못했어요. 총 143명이었고, 사는 곳도 제각각에 91명은 실종신고가 된 상태였고요. 노숙자였거나 가출청소년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팀장은 강나은 경위를 보며 얼굴을 끄덕였다.

"얼마 전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얘기겠지."

번화가에서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던 그 사건에서도 대부분이 노숙자로 밝혀졌었다.

"불은 막 꺼졌다고 해요. 학생들도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고요."

사건의 규모에 비하면 피해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었다. 학교가 불타고 인질범들이 다 죽었지만 적어도 피해자들은 무사했다.

"단체로 미쳐버리기라도 했다는 거야…?"

강나은 경위에게 묻는 말은 아니었다.

"언론에서도 워낙 관심이 많은 사건이니까 서장님께서도 예민하실 거예요…."

"그렇겠지."

팀장은 씁쓸하게 웃으며 일어났다.

"다녀와서 보지."

그가 나가자 강나은 경위가 보드 판으로 걸어갔다. 실종자 김상식의 사진 아래 '사망'이라는 글자를 썼다.

'두 명째.'

김유선과 관련된 실종자 중에서 두 사람이 죽었다.

'김상식은 살릴 수 있었는데….'

기동대가 진입했을 때, 이미 수많은 인질범은 죽어 있는 상태였다. 개중 몇 명은 기동대의 총에 맞아 쓰러졌지만, 다수는 이미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은 것이다. 국과수에서 부검하면 더 자세한 단서가 나오겠지만, 현재로서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집단이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눈이 한 곳으로 향했다.

조우진.

실종되었던 그가 제 발로 들어와 있다.

'그때, 분명 상암에서 김상식을 봤어. 오늘 학교에서도 분명 조 형사가 있었고.'

그녀의 머릿속이 더 혼란스럽게 변해갔다.

.

.

.

하루는 쉬었다.

어머니마저 가게를 닫고 나와 함께했다. 학교는 휴교했고, 교육청에선 학생들을 전학시켜야 할지 검토 중이라고 했다. 불에 탄 학교를 복구하려면 시일이 꽤 걸린다고 했다.

"괜찮다니까."

"정말이지?"

어머니는 나를 위해 더 쉬려고 하셨지만, 내가 반대했다. 식당이란 게 오래 닫아두면 단골손님도 다 끊기는 거다.

"의사 선생님도 괜찮다고 했잖아."

"알았어. 그래도 무리하지 말고, 공부하다가 이상하면 바로 엄마한테 전화해야 한다?"

"응. 독서실에 있을게."

병원에 다녀오고 나서야 어머니는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리셨다.

나는 어머니를 뒤로하고, 강남역으로 향했다.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학교를 습격한 사람들을 두고 누군가는 종교 문제라고 했고 누군가는 경찰이 사건을 은폐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했다.

【재능마켓에 입장하셨습니다.】

하지만 나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 화가 치밀어올랐다.

【보상을 수령 할 수 있습니다.】

"보상이고 뭐고! 뭐였는데? 기생충이 나를 어떻게 찾았어?"

놈들이 나를 찾을 수 있다면 우리 어머니도 위험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지이이이이이잉.

오피스텔 중간쯤에 원형의 홀로그램이 생겼다.

"…."

나는 그곳으로 걸어갔다.

피피피핏.

빛으로 그려진 기생충이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메시지가 이어졌다.

【하층의 기생충은 성장할수록 모체로 진화합니다. 처음 암컷은 자신을 보호할 수컷을 낳습니다. 암컷과 수컷은 구분만 할 뿐 사실은 자웅동체로 볼 수 있습니다.】

"…."

계속된 설명은 우리네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모체는 특정 페로몬을 뿌려 수호자를 추적할 수 있지만, EMP로 무력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놈들이 나를 찾지 못했던 건가?'

홀로그램이 벌레들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었다.

【기생충은 숙주를 갈아타며 진화합니다. 동물과 식물에 기생하기도 하지만 본능적으로 생태계의 우세종에 이끌립니다. 하지만 모든 숙주를 감염시킬 수 없습니다. 마음의 병을 감지해 기생합니다. 긍정 에너지가 많으면 기생충은 자리 잡지 못합니다.】

'긍정 에너지?'

노숙자가 다른 노숙자를 덮쳤다.

【표본으로 수집한 기생충의 뇌에서 복원한 정보입니다.】

노숙자들이 인근 개인병원으로 숨어들었다. 그곳에서 환자와 간호사를 습격했다. 주방에서 일하던 아주머니도 당했다.

【하층의 기생충은 무척이나 다양합니다. 모든 기생충의 공통점은 마음속의 어둠에 이끌립니다. 어둠이 강하면 강할수록 기생충의 숙주가 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숫자가 점점 더 늘어났다.

기생충은 계속해서 알을 낳아 세를 불려갔다.

그러다가 돌변했다.

【기생충은 더 강한 페로몬의 명령을 받기도 합니다. 하층에서 종종 절대자들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기생충 무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얘기가 이어졌다. 지력+4의 네 머리로도 바로 납득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됐고, 놈들이 나를 어떻게 찾은 거야?"

【확인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의 정보는 줄 수 없다는 듯 홀로그램이 꺼졌다. 대신 미션이 날아들었다.

【메인 미션: 균열 3개를 닫아라.】

【서브 미션: 드링크 100개를 제작하라.】

"…."

정보는 더 안 준다 이거지? 나 할 거나 해라?

【중급 필라테스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누적포인트 121,300P】

그나마 미션 달성과 벌레 수집으로 포인트가 어마어마하게 쌓였다.

이때, 오피스텔 문이 열렸다.

"민준아! 하이!"

"왔어요? 어디 냄새나는 데 있어요?"

"나면 보면 냄새 타령이야! 넌 인사할 줄도 모르니?"

아, 내가 너무 예민했었나 보다.

"휴우, 미안해요."

"엄마는 뭐라셔?"

"놀라긴 하셨는데, 괜찮아지실 거예요."

사회에 불만을 가진 미친놈들이 벌인 일이란 게 어머니의 생각이었다. 장사하다 보면 온갖 이상한 사람들을 다 본다시던가?

"일단 뭐가 나왔나 확인부터 하죠."

"내가 열어볼게!"

도화지가 벽장 문을 당겼다.

"와아! 많다! 반짝반짝해!"

벌레도 엄청나게 수집했고, 메인 미션도 달성했으며 벌레 난입도 처리해서인지 돌이 아주 많았다.

그중엔 노란색도 보였다.

"유니크…."

도화지가 제일 앞에 돌을 잡았다. 그리곤 실망한 얼굴로 내게 불쑥 내밀었다.

"쳇, 병이네. 너 가져!"

그 뒤로도 빈 병들이 종류별로 쏟아졌다.

"뭐야? 이것도 병이야? 에잉!"

각종 드링크와 빈 병 32개, '기생충 진액' 340개를 얻었다.

"아주 병 파티네 병맛 파티야!"

그렇게 점점 썩어가던 도화지의 얼굴이 순간 확 펴졌다.

"오오오오! 가방이다! 가방! 내 전용 가방!"

도화지에게도 안에 아이템을 넣어두면 '소환'할 수 있는 개인 가방이 생겼다. 저걸 활용하는 방법은 조금 있다가 알려주기로 하고 우선.

"누나, 이 색은 아주 귀한 돌이에요."

"이거? 노란색?"

도화지가 덥석 돌을 잡았다.

【돼지코(유니크)

추적자 전용 아이템. 착용하면 기생충의 냄새도 맡을 수 있다. 워낙 정밀해서 알 상태의 기생충도 감별해낼 수 있다.】

"…."

도화지가 돌을 툭 던졌다.

"…."

나는 돌을 주워 도화지에게 스윽 밀었다.

"시, 싫어!"

도화지가 경기했다.

주먹만 한 돼지코는 코에 착용하는 물건이었다.

"누나가 좋아하는 분홍색이잖아요."

"이, 이건 아니라고! 분홍을 모욕하지 마!"

외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고생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이건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도화지가 모체 막타를 쳐서 그런가? 어쨌든 그녀의 전용 아이템이 나온 것임은 확실했다.

"커스텀하면 되잖아요. 남들 눈엔 안 보인다니까요?"

"히잉…."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물건이에요."

"알았어…."

도화지는 울상을 지었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나머지 하나의 돌을 잡았다.

【기생충 더듬이(유니크)】

확실히 미션 난이도가 올라서 그런지 유니크 아이템의 출현 빈도가 늘었다. 아니면 내 레벨이 올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킥, 더듬이! 그건 니가 써!"

쌤통이라는 듯 웃는 도화지를 보며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내겐 외형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기생충의 예민한 감각으로 주변의 위험을 미리 감지할 수 있다. 또한 미세한 바람으로 지형지물을 파악할 수 있다.】

심지어, 이건 상당히 좋은 아이템이다.

"나중에 달라고나 하지 마요."

"미쳤어! 줘도 안 가질 거야!"

도화지가 유리 벽으로 달려갔다. 그러더니 빛이 번쩍했다. 벌써 커스텀을 마쳤는지 돌아서서 내게 다가왔다.

"어때?"

그녀의 코에 작은 피어싱이 달려 있었다.

"꼭 해보고 싶었거든! 예뻐?"

"…."

나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수호자의 안경 때문인가?

여전히 내 눈엔 돼지코가 보였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소중한 아이템을 집어 던질 수도 있었기에 나는 신음하며 말했다.

"…잘 어울리네요…."

"그래? 히히히히!"

저팔계 같은 코로 거울을 향해 달려가는 도화지를 보면서 나는 더듬이를 찼다.

볼록, 이마에 손가락 길이만 한 더듬이가 한 쌍 자랐다. 손으로 만져보니 살아있는 생물처럼 움찔거렸다. 어색했지만, 어차피 커스텀 할 거라서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유리 벽으로 걸어갔다.

'균열 3개.'

메인 미션을 받았다.

이번에 기생충 모체와 싸우면서 나는 더 강해져야 할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드링크 100개.'

고민해봤자 소용없다.

어차피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나는 돌아서 유리 벽으로 갔다. 그리고 모은 포인트로 점찍어둔 물건을 샀다.

【스킬: 스크류 샷! 회전력이 더해진 화살을 쏠 수 있다. 가격:100,000p.】

'10만 포인트….'

막상 샀지만, 입술이 부들부들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이제 스크류 샷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남은 포인트로는 더듬이를 눈썹으로 커스텀하고, 빈 병과 재료를 사서 드링크를 만들었다. 이번에 얻은 기생충 진액도 적절하게 섞었다.

"끝났나?"

【중급 필라테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가장 중요한 게 남아 있었다.

도화지는 아직도 거울 앞에서 코의 피어싱을 만져보고 있었다.

"누나."

"응?"

"방어력 몇 부족했죠?"

"응, 왜?"

"포인트 얼마나 있어요?"

"이만 조금 안 돼."

"알겠어요. 너무 낭비하면 안 돼요. 누나도 어서 미션들 수행하고 강해져야 해요."

"난 이미 강하다고! 이번에도 내가 구해줬잖아!"

"…."

그건 그렇다. 부정할 수가 없네.

하지만 언제까지 기생충만 상대하리란 법이 없었다. 그녀의 뿅망치가 통하지 않는 상대도 분명히 나타날 거다.

"필라테스를 해야 해요. 아이템도 좋지만 진짜 강해지려면 계속 필라테스로 단련해야 한다고요."

"으으…. 필라테스 싫은데…."

그녀의 눈이 공포로 물들었다.

"누나가 초보라 그래요. 중급으로 오르면 좀 더 나아질 거예요."

"정말?"

아니….

"네, 전 지금부터 필라테스 할 거예요. 누나는요?"

"알바 가야지!"

"알겠어요. 그러면 나가서 전화할게요."

"응! 수고해! 그리고 민준아."

"네?"

그녀가 팔을 뻗었다.

내 이마를 손으로 만지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속상해하지 마. 너는 잘못한 거 없어."

나는 픽 웃었다.

"알아요."

슬퍼할 시간에 더 강해지는 게 그들을 위로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갈게! 전화해! 범이도 또 만나!"

그녀가 문을 닫을 때, 나는 말했다.

"시작해."

【중급 필라테스를 시작합니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운동이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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