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젠장.'
운동장을 가로질러 또 한 사람이 오고 있었다. 나는 그걸 보면서 숨을 푹푹 내쉬었다. 감염자들과 대화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게 통할 상대들이 아니었다. 이걸 나만 안다는 게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어디 숨어있는 거지?'
모체를 찾아야 했다. 그래야 끝난다는 걸 나만 알고 있었다. 처음엔 나도 당황해서 뭘 해야 할지 몰랐지만, 감염자들을 하나씩 처리해나가면서 확실해졌다. 모체를 잡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거다.
나는 지금 3층 독서실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어디 있을까….'
사실 여기서 내가 조심해야 할 일은 바깥 카메라뿐이었다. 감염자들은 일반인에 비해선 강하지만, 내겐 쉽게 처리된다. 움직임도 굼떴고, 머리도 썩 좋은 것 같지 않았는데, 내 기준에선 허약했다.
이때, 밖에서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진아! 얘기 좀 하자! 거기 있는 거 안다! 조우진 형사!
'어? 저 아저씨?'
그런데 그때였다.
화르르르르륵!
-불이다!
-불이야! 꺄아아아아아!
-선생님! 어떡해요!
느닷없이 학교 외부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이런, 미친!"
펑! 펑펑!
연이어 기름통들이 폭탄처럼 터지면서 불길을 더욱 강하게 하고 있었다.
-왜애애애애애애애앵!
화재경보가 시끄럽게 울리고, 놀란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나는 급히 독서실에서 나갔다.
-꺄아아아아아아!
-살려줘!
-얘들아! 가만히 있어야 해! 무턱대고 나가면 안 된다고!
지금까지 참았던 혼돈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교실에서 쏟아져나오기 시작한 학생들은 출구를 찾아 뛰었다. 이 변화에 운동장에 있던 경찰이 외쳤다.
-소방차! 어서 소방차 투입해!
한데, 변화는 또 있었다.
'어?'
창밖으로 보이는 감염자들이 한눈에 보기에도 수상했다.
"으으으으으으!"
"으으으!"
목이 우둑, 우두둑! 뒤틀리고, 얼굴은 더 무시무시하게 변해갔으며 눈에서 더듬이 같은 게 삐죽삐죽 솟아났다.
【기생충이 숙주를 완전히 잠식했습니다.】
저 변화는 내 안경 너머로만 보이는 것이었다.
【이제 숙주는 모든 생명력을 태울 때까지 잠들지 않습니다.】
"뭐어?"
들려오는 메시지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진화한 기생충은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습니다. 숙주가 죽으면 기생충은 새로운 몸을 찾아 기어 나옵니다. 모체 역시 진화를 겪으면 이전보다 성장합니다. 모체가 성장하면 감염시킬 수 있는 성체를 낳습니다.】
이제 얼굴 전체가 벌레처럼 변한 감염자들이 학교 내부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높은 창문도 거리낌 없이 한 번에 풀쩍 풀쩍 넘어 들어왔다.
-꺄아아아아아아!
그나마 다행인 건 감염자들의 목표가 학생들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목표는 오직 나인 건가?'
밖을 지키던 모든 감염자들이 학교 안으로 들어와서 뛰어다녔다.
'하지만 놈들도 나를 특정하진 못하는 거야.'
학교엔 수많은 학생이 있었고, 같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 그 모체라는 기생충도 누가 수호자인지 가려내지 못하는 것 같다. 아니면 어떤 이유라도 있나?
'그래서 상황을 더 극단적으로 몰아가는 건가?'
나는 독서실을 나오면서 복도를 뛰었다.
우르르르르!
학생들이 사방으로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꺄악! 아파!
-허억! 도망쳐!
-으아아앙! 때리지 마세요!
-이러지 말라고요!
감염자들은 거치적거리는 애들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냥 몸으로 밀치기만 해도 애들은 볼링핀처럼 나가떨어졌다.
'젠장….'
밖에서 번진 불 때문에 연기가 점차 복도에도 차올랐다.
"민준아! 도민준!"
저쪽에서 강남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다급히 그쪽으로 뛰며 외쳤다.
"떨어져!"
강남석 패거리가 감염자 하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아까까진 다섯 명 정도가 모여 한 명 정돈 막을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도망쳐!"
말하는 순간, 패거리 중 하나의 몸이 날아올랐다.
"허억?"
창문으로 던져진 남자애는 그대로 유리를 뚫고 나가 추락했다.
-으아아아아아악! 살려줘어어어!
놈들은 확실히 힘도 몇 배 강해졌고, 속도도 빨랐다. 또 한 녀석이 놈의 주먹에 맞아 나가떨어졌다.
"싸우지 마! 피하라고!"
감염자들이 괴물로 완전히 진화한 것이다. 저것들은 이미 사람이 상대할 수준을 아득히 넘어버렸다.
"씨, 씨X!"
강남석이 욕을 하며 쓰러진 애를 부축하곤 도망쳤다.
'소환.'
나는 망치를 들었다.
이제 힘을 조절할 필요가 없어졌다. 저들은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최대한 빨리 끝낸다.'
그게 저들을 위로하는 길일 것이다.
"하아압!"
나는 앞으로 뛰어들면서 놈의 손아귀를 피했다. 그리곤 망치를 올려 쳤다.
퍼억!
감염자의 몸이 붕 떴을 때, 팔꿈치로 그의 옆구리를 찍었다. 벽으로 날아가는 그를 따라 날아오르면서 발로 그의 허리를 강하게 걷어찼다.
"으으으으!"
하지만 이렇게 해도 죽질 않는다.
"제길…."
척추가 부러졌을 건데도 버둥대며 일어서는 그를 보면서 나는 망치를 더 강하게 쥐었다.
'미안합니다.'
이젠 내 안의 무언가를 끊어야 할 것 같다. 이들에 대한 연민을 가질수록 다른 애들이 위험했다.
손에서 망치가 날았다.
그게 정확히 감염자의 뒤통수에 닿았고, 와작! 머리가 박살이 났을 때, 벌레가 나를 보면서 더듬이를 움직였다.
그 순간 알았다.
'아!'
벌레가 나를 특정했다.
'차라리 잘 됐어!'
나는 감염자에게 뛰어들며 다시 망치를 소환해 벌레의 얼굴을 때렸다.
'내가 미끼가 되는 편이 나아!'
축 늘어진 벌레를 향해 재료 수집망을 썼다.
【진화한 기생충을 수집했습니다.】
【400P를 획득했습니다.】
-얘들아! 밖으로 나가!
-빨리 나가자!
밖을 지키고 있던 감염자들이 모조리 안으로 들어오면서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교실 1층 창문을 이용하면 뛰어내릴 수 있다. 불길이 없는 곳을 이용해서 나간다면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통제되는 건 아니었다. 이미 흩어져서 도망치거나 화장실 같은 곳에 숨어버린 애들도 있었다. 감염자한테 맞아서 기절한 애들도 있었다.
솨아아아아아.
스프링클러가 작동해서 물이 쏟아져 내렸다.
"나가! 빨리!"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길목에서 쪼그려 앉아 웅크리고 있는 여자애한테 버럭 소리쳤다.
"죽는다고!"
"히이이이익!"
겁에 질린 여자애가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나도 그 뒤를 따라가려고 했는데, 우뚝 멈출 수밖에 없었다.
"…으으으…! 찾았다. 으으으…."
병원복을 입은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다른 사람들 눈엔 그냥 아저씨로 보이겠지만, 내겐 다른 감염자보다 2배는 큰 벌레가 보였다.
"죽인다…."
그가 뛰어올랐다.
"흡…."
그 많은 계단을 단박에 뛰었다는 거다.
슉슉!
날아온 더듬이가 송곳처럼 찔러 들었다. 나는 뒤로 훌쩍훌쩍 뛰면서 피해냈는데, 모체는 머리 전체가 벌레였고 말까지 했다.
"죽어…. 으으으…."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이미 3층엔 사람이 없었다.
"벌레 주제에…."
나는 활을 빼 들었다.
거대 원숭이와도 싸운 나다. 이 학교만 한 병아리와 함께했던 나다. 그런 내가 고작 이따위 벌레한테 기죽을까?
"으으으!"
내가 활을 겨냥하자 모체가 열려있던 문으로 몸을 날려 교실로 들어갔다.
이때, 나는 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쌔애애애애애액!
【'인내'가 발동했습니다.】
뒤에서 감염자가 달려든 거다.
퍼억-!
벌레 얼굴을 관통해 날아간 화살이 저 뒤로 떨어졌다.
"으으으…."
얼굴이 뚫린 감염자가 풀썩 주저앉았다. 이 녀석들의 약점은 벌레로 변한 머리가 확실하다. 허리가 부러져도 움직이지만, 벌레가 죽으면 끝난다.
'너무 좁아!'
나는 급히 활을 소환 해제했다.
여기선 다른 무기가 더 편할 것 같다.
'소환!'
【철 삽을 소환했습니다.】
망치는 너무 가까이 붙어야 해서 내가 가진 가장 큰 무기를 꺼냈다.
이때, 교실 복도 창으로 또 다른 감염자가 뛰어내렸다. 그리곤 놈이 두 손으로 내 삽을 잡았다.
"큽!"
내 힘이 +3이나 되었지만, 놈도 지지 않았다.
퍼억!
놈의 발이 내 배를 찼다.
"윽…."
기습에 뒤로 밀려났는데, 놈이 더듬이를 흔들며 내게 들이닥쳤다.
'이 싸움….'
놈의 주먹을 받아내면서 느꼈다.
'쉽지 않겠는데?'
.
.
.
"팀장님!"
강나은 경위가 기동대와 함께 나타났다. 팀장은 창문으로 튀어나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외쳤다.
"침착하게 나와! 넘어지지 말고!"
불이 학교 전체에 옮겨붙진 않아서 아직 여유가 있었다.
"팀장님! 조우진 형사는요?"
"못 찾았어! 일단은 아이들을 대피시키는 게 우선이니까!"
학교 전체를 경찰이 포위하고 있으니 누구도 도망치진 못할 거다. 소방차들이 속속 운동장에 도착했고, 경찰들은 탈출에 성공한 아이들을 구급대원들에게 안내해주었다.
기동대장이 말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소방대장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불길을 잡는 게 우선인지, 인질범을 제압하는 게 우선인지 정하질 못하고 있었다. 괜히 두 집단이 동시에 작전을 수행하다가 더 큰 화를 불러올 수도 있었다. 기동대원들도 사람을 상대할 때나 강하지 불붙은 학교에 들어갔다가 몰살될 수도 있었다.
"이게 무슨 난리야…."
기동대장이 저격수들을 배치하며 머리를 흔들었다. 인질범들은 목적도 없었다. 도주로를 마련하지도 않았다. 아이들이 도망치고 있지만, 막지도 않는다. 이런 테러는 처음 봤다.
와장창!
3층에서 창문이 깨졌다.
기동대장이 말했다.
"우선 선별한 정예 요원들만이라도 투입하겠습니다."
그의 손짓에 기동대 12명이 총을 들고 빠르게 움직였다. 아이들을 지키고, 인질범들을 무력화해야 했다.
속속 도착한 소방대원들이 학교 외벽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하지만 안에도 불이 붙었는지 아니면 인질범이 불을 지른 건지 새까만 연기가 뭉게뭉게 구름처럼 나왔다.
장비를 갖춰 입은 소방관들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운동장엔 수많은 경찰 병력이 도착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선 기동대나 소방관 말곤 안으로 진입할 수 없었다.
이때,
퍼어어엉-!
뭐에 불이 붙었는지 학교 안에서 큭 폭발음이 들렸다.
"허억…!"
-물러나세요!
소방관들이 경찰들에게 말했다.
-위험합니다! 더 뒤로 가세요!
기자들과 학부모들은 교문 밖에서 통제하고 있었지만, 경찰도 사람이었다. 이런 불길 앞에선 순식간에 인명피해가 난다.
팀장은 뒤로 피하면서 위화감에 몸을 떨었다.
'이 지경인데도….'
인질범들은 단 한 명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사람이라면 두려워서, 무서워서 도망칠 만도 하건만 이게 말이 되나?
그가 외쳤다.
"아이들은 얼마나 나왔습니까? 교직원들은요?"
소방대장이 대답했다.
"절반쯤 나왔습니다!"
"아직도…."
절반이나 남아 있다는 건가?
현기증이 났다.
교문 밖에서 울부짖는 학부모들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지는지 공감할 수 있었다.
이때, 3층에서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또 들렸다.
그리곤 뭔가가 밖으로 떨어졌다.
-꺄아아아아아!
강나은 경위가 비명을 질렀다.
-사, 사람이다!
-구급대! 어서!
하지만 구급대원들은 더 다가서지 못했다. 머리부터 떨어진 원피스 차림의 여자가 비틀거리며 일어났고,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표정이 없는 그 모습이 너무도 섬뜩했기 때문이다.
"으으으으…!"
여자는 일어나자마자 다시 학교를 향해 뛰었다.
"허, 허엇?"
"잡아!"
팀장이 놀라 외칠 때,
타앙-!
총소리가 울렸다.
조준하고 있던 기동대가 사격한 거다. 하지만 여자는 등에 총을 맞고도 훌쩍 뛰어 교실 창문을 넘었다.
"어, 어떻게…."
"…."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은 입을 떡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