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까앙!
도민준이 인질범에게 달려들며 돌연 망치를 집어 던졌다. 망치는 정확히 칼에 맞아 튕겨 나갔지만, 그새 뛰어오른 도민준은 무릎을 인질범의 가슴에 찍어버렸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대로 인질범의 가슴에 올라탄 도민준은 무릎으로 그의 가슴을 찍어누르며 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싸 쥐었는데, 그제야 그의 몸이 축 늘어졌다.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강남석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저 민준의 등이 거대해 보였다.
"으으으!"
남은 인질범 하나가 처리되는 것도 금방이었다.
"야! 도민준! 괜찮냐?"
두 남자가 쓰러진 걸 보며 강남석은 도민준에게 뛰어갔다.
'그렇게 쓰러지지 않던 사람들이….'
대체 이 녀석을 얼마나 강한 거지? 라며 새삼스러운 눈으로 도민준에게 달려갔다.
"괜찮아?"
도민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직까지는."
다른 애들도 우르르 모여들었다.
도민준이 저쪽 복도 끝을 보며 말했다.
"먼저 간다."
그러더니 미친 듯한 속도로 뛰어갔다.
"허억, 야! 야! 같이 가!"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달리나? 강남석이 따라가려고 해보았지만, 도민준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겁나 빨라…."
애들이 멍하니 서서 복도를 바라볼 때, 강남석이 말했다.
"우리도 가자. 민준이가 했으면 우리도 할 수 있어. 쫄지 말고!"
"그래! 다시 해보자!"
"가자!"
강남석 패거리가 다시 전의를 불태울 때, 각 교실의 사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전화기가 전부 먹통이었기 때문이다.
"히잉, 무서워…."
"싫다, 정말."
여자애들이 한마디씩 할 때, 인질범이 으으으! 신음하며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김유진 선생은 그런 인질범을 보면서 침을 꼴깍 삼켰다. 이상한 사람들이긴 하지만, 다행히 아직 아이들에게 해코지를 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들은 대체 왜 이러는 걸까?
'학부모는 아닌 것 같은데.'
가끔 학폭 때문에 피해자 학생 부모가 학교에 와서 들쑤시는 걸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그 마음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혹 그런 일이라면 이번 일은 가도 너무 갔다.
'도망칠 수도 없고.'
아이들을 두고 혼자 나간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게다가 창밖엔 더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의 손에 든 연장을 보면 가슴이 찌릿할 정도로 무서웠다.
이때, 학생 하나가 손을 들었다.
"선생님! 오줌마려워요!"
"저도요!"
"화장실 가게 해주세요!"
괜히 자극하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아이들을 달랬다.
"조금만 참아보자. 얘들아. 응?"
밖에 경찰들이 와있으니 이 상황도 곧 끝날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20분이 더 흘러도 변화는 없었다.
그런데 운동장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안녕하십니까! 경찰입니다! 보시다시피 무기는 없습니다! 당신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들어온 남자가 크게 외쳤다.
"와! 경찰 아저씨다!"
"이제 끝나려나 봐!"
아이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경찰은 두 손을 보이도록 들고 걸어왔는데, 인질범들은 그걸 가만히 지켜보면서 으으으! 신음만 했다.
-당신들이 원하는 걸 듣기 위해 왔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싶습니다! 대화합시다!
그는 긴장한 채 생각했다.
이들이 학교와 아이들을 볼모로 잡고 이러는 이유가 반드시 있을 것이고, 그것만 알아내면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인 이유나 들어보자고!'
광수대와 서초서에서도 사람들이 왔을 정도로 뭔가 이상한 일에 연루된 것 같긴 해도 여긴 그의 관할이었다.
"나는 무장하지 않았습니다! 대화로 풀고 싶어 왔습니다!"
그가 정문 앞에까지 도착했다.
늘어선 버스들을 보며 그는 기이하다고 생각했다. 바리케이드처럼 세워둔 게 아니라 그냥 아무렇게나 방치한 것 같다.
'뭘 하는 거지.'
그런데 인질범들은 질서정연하게 서서 학교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지키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러 왔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가 조금 더 정문 쪽으로 움직였을 때였다.
흠칫!
주변의 세 사람이 움직였다.
그는 두 손을 앞으로 뻗어서 맨손이라는 걸 보여주며 외쳤다.
"나는 경찰을 대표해서 왔습니다. 이런 식으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대화를 나누며 해결합시다!"
그는 당당하게 서서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했다.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힘내주었으면 했다.
그래서 더 크게 목소리를 높였다.
"하나씩 풀어보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여러분이 다치지 않게 최선을 다할…."
하지만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엇?! 자, 잠깐만!"
다가오던 세 사람이 그에게 바짝 접근하더니 손에 든 무기를 휘두른 거다. 이렇게 갑자기 공격받을 줄 몰랐던 그가 양팔을 방패처럼 들고 뒤로 물러나려고 했으나 이미 방망이 하나가 그의 어깨를 때리고 있었다.
"허, 허억!"
버버버버벅!
집단으로 가해지는 폭력에 그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무기도 들지 않은 사람을 이렇게 무식하게 다룰 줄은 꿈에도 몰랐다. 쉽지 않을 거라 각오는 하고 나선 길이었지만, 이 정도로 대화를 거부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커억…."
머리를 맞은 그가 쓰러졌다.
그제야 노인과 여자 둘은 몸을 돌려 제자리로 걸어갔다. 그러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학교를 보며 섰다.
-꺄아아악! 경찰 아저씨가 다쳤어!
-왜 저러는 건데!
-죽은 거 아니지?
-무서워!
아이들이 패닉에 빠지자 김유진 선생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인질범들이 폭력적이진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얘, 얘들아. 쉿!"
경찰도 때렸는데, 아이들이라도 가만둘까?
이때, 인질범 하나가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흡…."
"…싫어."
"집에 가고 싶어요…."
아이들이 그를 보며 숨죽였다.
그는 으으으 소리를 내며 김유진에게 걸어왔다. 김유진이 용기를 내서 말했다.
"화장실에 가야 하는 아이들이 있어요. 허락해주시겠어요? 잠깐이면 돼요."
최대한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대답 대신 우악스러운 손아귀였다. 그 손이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꺄아!"
"서, 선생님!"
"놔줘요! 그러지 마세요!"
이제까지 선생이나 아이들을 건드린 적은 없었다. 강남석 패거리처럼 먼저 공격하면 몰라도 가만히 있는 사람을 건들진 않았었다.
그런데 무언가 달라졌다.
"하, 하지 마세요! 왜 이러시는 거예요!"
머리가 통째로 뽑힐 것 같은 고통에 그녀가 몸부림쳤다. 하지만 남자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복도로 끌려갈 때, 아이들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빽빽 소릴 질렀다.
"선생님을 놔줘!"
"왜 그래! 하지 말라고!"
"으아아아앙! 선생님!"
무언가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 같다고 여긴 아이가 울기 시작했을 때였다.
와장창!
교실과 복도 사이에 있던 유리가 깨지면서 뭔가가 날아와 인질범의 얼굴을 때렸다. 그게 망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어 깨진 창문으로 날아든 한 학생이 비틀거리는 인질범을 향해 뛰어들었다.
-아앗? 쟤 도민준이다!
민준을 알아본 여학생이 손가락질할 때, 도민준은 이미 인질범의 가슴에 킥을 날리고 있었다.
퍼억-!
사내의 몸이 반으로 접혔다. 엄청난 각력에 허리가 절로 휘었다. 이어 민준의 주먹이 그의 턱에 작렬했다.
퍼억!
허공으로 붕 뜬 몸이 바닥에 처박혔을 때, 그가 축 늘어졌다.
"…."
김유진 선생은 방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민준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괜찮으세요?"
"아, 으, 으으응."
머리가 산발이 된 채 김유진이 끄덕거리자 도민준은 인질범의 몸을 잡고 질질 끌어 복도로 나갔다. 그러더니 그의 얼굴에 손을 올려 뭔가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등지고 있어서 뭘 하는진 모르겠다.
애들이 웅성거렸다.
"죽었어?"
"서, 설마!"
그리고 이때, 민준이 일어났다.
민준이 몸을 돌려 김유진에게 말했다.
"조금만 더 참아주세요. 괜히 움직이진 마시고요. 돌아다녀봤자 나갈 순 없어요."
"으, 으응…. 너는…."
어쩌려고 그러니? 라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이미 도민준은 복도 저 끝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그걸 본 아이들 몇 명이 중얼거렸다.
"멋있다…."
"설마, 쟤 혼자 싸우고 있는 거야?"
그건 아닐 거로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민준이가 모두를 구해줬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
.
.
"무력 진압해야 합니다."
들어갔던 경찰이 당했다.
평화적인 협상은 결렬됐다고 봐야 했다.
"200명 넘는 아이들과 58명의 교직원이 있어요. 그들을 담보로 작전을 수행할 순 없습니다."
의견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고, 이제 교문 밖은 기자들과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아아아아아악! 우리 선애! 어떻게! 제발 뭐라도 해봐요!
학생들의 가족들도 속속 도착해서 울부짖고 있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외부에 있는 인질범들은 저격할 수 있다고 해도 학교 안에 있는 인질범들까지 동시에 사살할 순 없습니다. 만약 저격을 시도했다가 저들이 아이들을 공격한다면…. 불이라도 지른다면 그 후엔 어떻게 대처하실 겁니까?"
"소방차들을 대기시키죠. 불길이 번지려면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 전에 소화할 수 있다면…."
그 말에 대기해있던 소방전문가가 머리를 흔들었다.
"5분입니다."
"네?"
"저렇게 기름통이 사방에 널려 있을 때, 학교 전체로 불길이 번지는 시간은 길어야 5분밖에 소요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짧습니까?"
"그것도 길게 잡은 겁니다. 불이 붙으면 학교 내부의 아이들은 연기에 모두 질식할 겁니다."
"으음…."
전문가들은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임시 상황본부를 구성했지만, 경찰청장이 오기 전엔 무엇도 선택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오 팀장님은 괜찮겠죠? 저대로 둘 순 없습니다. 모셔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군가의 말에 기동대장이 대답했다.
"그랬다가 또 공격하면요? 지금은 잠시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죽진 않았을 겁니다."
"그러길 바라야죠…."
"어째서 이런 일을 벌이는 거야…."
"미친 X끼들…. 애들을 인질로 잡아? 짐승도 그런 짓은 안 해!"
화가 치밀었다.
"진정들 하시죠. 이럴수록 냉정해야 합니다."
광수대 대장이 나섰다.
"저들의 요구 조건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때, 한 여자가 나서서 말했다.
"서초서 프로파일러 강나은 경위입니다."
그녀가 사람들에게 능숙하게 설명했다.
"인질범들은 여성, 남성, 연령을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노인도 있고, 청소년도 있습니다. 이런 패턴으로 집단 움직임을 보인 사례는 역사적으로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종교적이거나 사상 충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게 아니라면 범죄자들로 보기엔 너무도 이상한 조합이었다.
"돈을 요구할 것 같진 않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돈이었다면 이렇게 멍청하게 일을 벌이진 않았을 테죠. 전 국민 앞에 얼굴을 보였지 않습니까?"
방송국 헬기가 위에서 인질범들을 찍고 있었다.
이때, 한 사내가 강나은 경위의 말을 잘랐다.
"제가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 팀장님 생사도 확인하고, 저들과 얘기를 해보죠."
"조금 전에 못 봤습니까? 그쪽이 간다고 뭐가 다른데요? 괜히 저들을 자극하지 맙시다!"
하지만 그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인질범 중 하나가 제 밑에 있던 팀원이었습니다…. 제가 간다면 그와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