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야, 놀랐잖아! 어딜 쏘다니다가 이제 오는 거야?"
범이였다.
규우우!
이제 범이는 나 없이도 우리 동네쯤은 잘도 다닌다. 하긴, 여기서 녀석을 위협할만한 게 뭐가 있을까? 오토바이로 변하고 다녀서 그런지 도로교통법도 슬슬 익혀가는 눈치다.
녀석이 훌쩍 뛰어서 내게 안겨 오자 나는 웃으며 범이를 품에 안고 집으로 향했다.
"심심했냐?"
규우?
나는 녀석의 머리를 손으로 쓸어주며 집으로 들어갔다.
"후우…."
씻고 누웠다.
이렇게 침대에 누워있으니까 아까의 일들이 다 꿈같다.
그래도 고생한 만큼 소득은 꽤 쏠쏠했다. 기생충을 포획하면서 2만 포인트 가까이 모았는데, 이제 조금만 하면 무려 10만 포인트를 누적한다.
10만 포인트.
재능마켓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말도 안 되는 숫자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이렇게나 모아버렸다.
'힘든 하루였어.'
적을 죽이지 않고 상대하는 일.
그래도 이번 일을 계기로 어느 정돈 감을 잡았다고 생각하면서 눈을 깊이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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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45분.
병원이 북새통이었다. 실려 온 환자를 다 처리하지 못해서 인근 병원에까지 보내고 있었다. 팀장과 강나은 경위는 707호 병실 앞에서 심각한 얼굴로 얘기 중이었다.
"조 형사님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애초에 조우진 형사가 목적이었는데, 그의 행방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대신 김상식을 찾았다.
두 사람은 병실 앞을 지키면서 고민했다.
"이미 떴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김상식 씨에 집중하자고. 그가 깨어나면 많은 얘길 들려줄 수 있잖아?"
몇 달이나 실종되었다가 오늘에야 나타난 김상식. 지금은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하고 정신이 돌아오지 않아서 대화할 수 없었지만, 의사 소견으론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하니 희망적이었다.
"그보다 파악했어? 얼마나 돼?"
"103명이요."
"다른 사람들은 다 떠났고?"
"그런 것 같아요. 빌딩 경비원은 아까 깨어났는데,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14층에서 떨어진 사람은 아직 수술 중이고요. 다행히 죽진 않을 것 같다고 해요."
"허, 기적이네. 기적이야."
나머지는 타박상이나 가벼운 출혈이 전부였다. 의사의 말로는 이들 대다수가 쇼크에 의해 정신을 잃은 것 같다고 하는데, 정확한 것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사망자가 없어서 다행이긴 한데…."
이 집단 폭행이 왜 일어났는지는 지금도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다. 관할 형사들도 계속해서 찾아오고 있었지만, 그들 역시 오리무중이었다.
이러나저러나 김상식이 깨어나야 궁금증이 풀릴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강나은이 물었다.
"퇴근 안 하실 거예요?"
"자네 먼저 들어가."
"어제도 못 들어가셨잖아요."
"씻곤 왔잖아."
"아휴…."
강나은 경위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의자에 앉았다.
팀장은 지독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게 나쁘다는 표현은 아니었다. 우직하고 끈질기며 미련하리만치 한길을 파는 사람이었다.
"들어가라니까."
"조금만 더 있다가요."
"그러던지."
팀장이 피식 웃으며 일어났다. 담배 하나 태우고 올 요량이었다.
"뭐 사다 줘?"
"아니요. 괜찮아요. 커피 많이 마셨어요."
그가 1층으로 내려왔다.
병원 전체가 금연이라서 완전히 외부로 나와야 했다.
"후우…."
이상한 하루였다.
잡힐 듯 말 듯 찝찝하고, 우여곡절 끝에 김상식을 찾았는데, 속이 시원하질 않았다. 그건 아마도 조우진 형사를 발견하지 못해서 그럴 것이다.
병원을 바라보면서 그는 한참을 서성이다가 발길을 돌렸다.
이때였다.
쨍!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
그의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다리가 점차 빨라지고, 황급히 들어간 병원에서 엘리베이터를 잡아탔다.
지이이이잉!
강나은 경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미 7층에 도착하고 있기에 전활 받는 대신 전력으로 뛰었다.
그리곤 보았다.
"티, 팀장님…."
김상식이 있던 병실.
"어떻게 된 거야?"
"모르겠어요. 갑자기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서 들어왔는데…."
또 사라졌다.
조우진 형사처럼 김상식도 병원에서 탈출한 것이다.
"어떻게…."
팀장이 창문 밖을 내려보았다. 여긴 7층이다. 하지만 이미 김상식은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죄송해요. 또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걸 알았어야 했는데…!"
이건 강나은 경위의 잘못이 아니다. 병실 앞에서 지키고 있었지 않나? 그거면 최선을 다한 거다. 7층 창문에서 환자가 뛰어내릴 거로 생각하는 사람이 오히려 과대망상일 테니까.
"어서…. 수배하고. 멀리 가진 못했을 거야. 나는 따라갈 테니까 자넨 여기서 다른 환자들 동태를 살펴줘."
"네! 조심하세요!"
이들의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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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은 어디에도 가지 않고, 집에서 주변을 지켜보았다. 어제 1시간 동안 놀이터에 있었던 거론 안심이 안 된 거다. 계속 이상하게 찝찝했는데, 누군가 나를 추적하고 있다는 생각에 불안감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슬쩍 편의점에도 가보고, 놀이터에도 다시 가보았지만 내 기우였는지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월요일이 되었다.
【재능마켓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아침 6시. 메시지가 울렸다.
알람처럼 들려오는 메시지에 눈을 뜨며, '갈까? 말까?'를 고민했다.
'학교 끝나고 가자.'
결정은 길지 않았다.
나는 누운 채 안경을 쓰고, 핸드폰을 들어 뉴스 사회면부터 훑었다. 사진도 꼼꼼하게 확인했다. 수호자의 안경을 쓰고 보면 괴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니 계속 주시해야 했다.
'특별한 기사는 없네.'
토요일에 그 난리가 났는데, 생각보다 잠잠했다. 하긴, 따지고 보면 그리 큰일이 아니라고 여길 수도 있겠다. 몇 사람 다치고, 몇 명은 높은 곳에서 떨어졌지만, 큰 부상은 없었다. 물론, 내가 그들 몸에서 잡아낸 벌레가 무려 103마리나 되지만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으차!"
누워서 스트레칭을 하면서 기사를 모두 확인하고, 일어나 등교 준비를 했다.
'오늘…. 재능마켓에 가면 메인 미션이 갱신될 거야.'
그래봐야 몇 달 되진 않았지만, 가장 떨리는 순간이 메인 미션이 나올 때다. 이번 기생충 미션은 시간적으론 그리 오래 걸렸다고 할 순 없었지만, 무척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내가 가진 모든 힘을 쓸 수도 없었고, 감염자가 죽지 않도록 신경 써야 했었다.
'뭐가 나올까….'
예측할 수 없는 미션.
기대와 우려를 담은 채 나는 우선 학교로 향했다.
-민준아 안녕!
-하이! 민준!
애들이 인사를 해왔다.
하지만 오늘의 관심은 내가 아니었다.
-토요일 방송 봤지?
-그럼! 예원이 진짜 예뻤어!
-오늘 학교 올까?
-아마 못 올걸? 엄청 바쁘지 않을까?
-난 오늘부터 '투 아이즈' 팬클럽 할 거야!
-나도! 나도!
유닛 그룹이긴 하지만 '투 아이즈'란 정식 그룹명도 있었고, 주말의 데뷔무대는 성공적으로 했다는 평가에 학교가 난리가 났다.
'잘됐네.'
예원이가 잘 되면 내가 다 뿌듯하다. 아쉽게도 직관하진 못했지만, 어쨌든 나도 열심히 이 사회를 위해 노력한 거 아니겠나? 그걸 아무도 모른다고 해서 서운하진 않다. 누가 알아주길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생각난 김에 톡을 보냈다.
『그때는 미안. 데뷔 축하해!』
답장이 바로 왔다.
『뭐가 미안해! 아니야!』
『학교는 못 오지?』
『응. 이번 주는 힘들어.』
이제 막 데뷔한 그룹이 어떤 일정으로 움직이는진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야 할 때라는 건 안다.
'인기가 많은가?'
본래 연예 쪽 기사는 보지 않는데, 오늘은 스윽 탭을 넘겼다. 하지만 투 아이즈에 관한 기사는 하나도 없었다. 직접 검색해야 몇 줄 나오는 게 전부였고, 그마저도 사람들 눈에 안 띄는 것 같았다.
'쉽지 않구나. 이것도.'
우리 학교에선 우주 대스타라지만, 이제 갓 데뷔한 햇병아리들이나 다름없는 모양이었다.
-수업 시작한 지 언젠데, 이러고 있어! 중간고사 끝났다고 해이해지면 안 돼! 어서 자리에 앉아!
선생님이 들어오면서 아이들에게 외쳤다. 금세 교실은 쥐 죽은 듯 변했고, 나는 턱을 괴고 교과서에 빠져들었다.
평범한 일상.
그래, 어쩌면 나는 이걸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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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은 경비원들도 바빴다.
주말 내 학교 담장 안으로 버린 각종 쓰레기나 담배꽁초도 주워야 했고, 기물이 파손된 건 없는지 확인도 해야 했다. 사실 이런 일들이 누군가가 보기엔 너무나 사소하지만 챙겨야 하는 일들이었고, 학교다 보니 이 이상의 일은 딱히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 4교시가 막 시작되었을 때였다.
"어…?"
한 남자가 반쯤 열린 교문을 밀고 있었다.
"뭐야?"
경비원 최구삼은 8년째 이 학교에서 재직 중이었다. 한때 직업군인이었던 그의 사명감은 대단했다. 실제로도 그가 이 학교로 오고 나서 불량 학생들도 그를 보면 자릴 피했다.
그런 그 인만큼 호기롭게 외치며 남자에게 다가갔다.
"이봐요! 거기! 뭐 하는 겁니까?"
하지만 남자는 어느새 철문을 다 밀어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관광버스와 화물차, 택시부터 일반 승용차까지 줄줄이 학교로 들어왔다.
"무슨…?"
오늘 행사가 있었던가?
생각해봐도 들은 게 없었다.
한데, 버스는 주차장이 아니라 운동장을 가로질러 본관으로 향했다. 마지막에 들어온 트럭이 교문마저 가로로 막아버렸다. 뒤에 컨테이너까지 실은 대형 화물차였다.
"뭡니까! 이봐요!"
최구삼이 트럭 운전석으로 뛰어가며 버럭버럭 소릴 질렀을 때, 운전석에서 한 남자가 뛰어내렸다. 그리곤 곧장 최구삼에게 야구방망이를 휘둘렀다.
"어어엇?"
최구삼은 뒷걸음질 치며 물러섰다. 늘 위풍당당한 그였지만, 운전자의 눈빛이 너무도 괴상했다.
"…으으으으! 으으으…!"
끙끙 앓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면서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운전자를 보며 최구삼은 몸을 돌려 뛰었다.
교문을 막은 트럭과 야구방망이?
'애들이 위험해!'
이미 버스와 수많은 차들이 본관으로 향했기에 최구삼은 미친 듯이 뛰었는데, 그러면서 경찰에 전활 걸었다. 하지만 이땐 이미 학교는 버스에서 내린 수많은 사람으로 봉쇄되고 있었다.
-따르르르르르르르릉!
소방 벨이 울렸다.
방화셔터가 내려오고, 쇠 파이프나 방망이를 든 사람들이 1층 창문가에 섰다. 어떤 사람은 손에 칼까지 들고 있었다.
"이, 이게 뭔 날벼락이야…."
최구삼은 나무 뒤에 숨어서 경찰에 전활 걸었다.
-빨리 와주세요! 폭력배들이 난동을 부리고 있다고요!
폭력배라고 말했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저기 저 아줌마는 앞치마까지 멘 상태다. 저쪽 애는 교복을 입었다. 버스가 무려 6대, 거기서 내린 사람만 100명이 넘었다.
"으으으!"
"으으으으!"
그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소릴 내면서 신음했는데, 혹시라도 창문에서 누가 나오면 바로 공격하려는 듯 포위하고 있었다.
이게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뭐야? 저 사람들?
-허억, 칼을 들고 있어!
-미친…. 영화 찍나?
아이들도 웅성거렸다.
2층과 3층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고 밖을 보며 말했는데, 선생님들도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한 남자가 교무실로 갔다.
그리고 다른 한 남자는 방송실로 갔다.
"으으으! 으으으으으!"
방송실로 간 남자는 손에 든 망치로 이것저것 때려 부수기 시작했는데, 그는 병원복을 입고 있었다. 맨발이었고, 머리는 산발이었다.
"…으으!"
학교 밖에 100여 명.
내부로 33명이 들어왔다.
곳곳을 돌며 닥치는 대로 부수던 그들은 불까지 질렀다.
-지지직, 지지지직!
그렇게 시작된 습격.
교실마다 붙은 스피커에서 괴이한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