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벌레는 나를 보자마자 기겁하며 달아나려 했다.
"어딜!"
하지만 나는 그걸 덥석 잡았다. 그리곤 재료 수집망을 꺼냈다.
키에에에엑?!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듯 버둥대는 놈. 하지만 이미 내 손아귀였다.
【기생충을 포획했습니다.】
【200p를 획득했습니다.】
"오…."
요거 생각보다 쏠쏠한데?
별것도 아닌 놈이 200포인트나 주지 않나?
축 늘어진 남자를 보았다.
'설마 죽진 않았겠지?'
그러다 문득 섬뜩함에 문을 보았다.
우르르르.
언제 저렇게 많이 모였을까? 네 사람이 나를 향해 뛰어오고 있다.
"…이크!"
나는 뒤로 돌아서 전력으로 뛰다가 난간을 밟고 뛰었다.
후욱-!
내 몸은 살짝 위로 떠 오르다가 확! 추락하려고 할 때, 뱀파이어 날개가 펼쳐졌고, 나는 무사히 옆 건물 옥상으로 안착했다.
"으으으으…!"
"으으으…!"
감염자들이 아까 내가 밟았던 난관에 기대 나를 보며 부들부들 떨어댔다.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
나는 픽 웃었다.
5m는 훌쩍 넘었기에 뛰어올 순 없을 것이다. 놈들도 그걸 깨달았는지 두 사람이 몸을 돌려 문으로 뛰었다. 나는 그걸 보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와봐야 소용없을걸.'
나는 다시 다른 건물로 뛰려 자세를 잡았다.
'너희가 나를 사냥하는 게 아니야.'
전력으로 뛰어 난간을 밟고 날아올랐다. 그렇게 순식간에 건물 몇 개를 이동하다가 바닥으로 내려섰다.
골목 안쪽.
나는 두 손을 뻗어 한 여자의 목을 끌어안았다.
"으으으으!"
사냥꾼이 누구?
"으으으으으으…!"
미친 듯이 버둥거리던 여자의 목이 축 늘어질 때, 나는 아까처럼 여자의 입에서 기어 나온 벌레를 손으로 덥석 잡고 말했다.
"네가 문제구나. 그렇지?"
.
.
.
곳곳에 사람이 쓰러져있다는 신고가 접수되었다.
"…."
"…."
팀장과 강나은 경위는 번화가를 보면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해도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다 꿈이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저기 보이는 포차에 들어가서 소주라도 훌쩍훌쩍 마시다 푹 잠들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경찰에선 단순 취객의 난동 사건으로 보고 있어요. 이 많은 사람들을 대피시킬 수도 없으니까요."
토요일 저녁이다. 가족, 친구, 연인, 동료와 쏟아져나온 인파는 번화가를 꽉 채웠고, 실종자 김상식도 여기 어딘가에 있을 거였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놓친 것 같아요."
건물에 경찰이 도착했지만, 경비원들과 직원들까지 무표정으로 나가버려서 사람들을 잡아둘 명분조차 없었다. 게다가 좀 전만 해도 건물을 점거하던 이상야릇한 인파는 어느 순간 거리로 쏟아져나왔는데, 하필 그들이 향한 곳이 이 번화가였다. 이들은 무언가를 찾는지 뿔뿔이 흩어졌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차마저 속속 도착하며 인파를 늘려버렸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아까 건물 앞에서도 같은 말을 들은 것 같은데….
팀장은 씁쓸하게 웃었다.
"나도 몰라. 실종자나 찾자고."
팀장이 주변을 살피다 물었다.
"몇 건이라고 했지?"
"정확하진 않지만, 30건은 넘어요."
취객들이야 언제 어디서 쓰러져 잠들어도 이상할 게 없는 번화가의 흔한 풍경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기절한 사람들은 술에 취하지도 않았다. 소지품이 없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정신을 잃었을 뿐이었다.
"일괄적으로 인적이 드문 곳에서 계속 발견되고 있어요. 골목, 옥상, 전봇대 옆, 흡연 장소들…."
"누군가 저들과 대립하고 있다고 봐야 하나?"
혹시 그 괴물인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녀가 나타났다면 피해자들은 기절이 아니라 사지가 다 잘렸을 거다.
"이쪽 관할 강력반 형사들이 움직이고 있으니까 잠깐 기다려보면 정리가 되지 않을까요?"
"그래, 그들이 먼저 김상식을 찾기 전에 서두르자고."
두 사람은 인파 속을 뒤지면서 계속 움직였다. 이 번화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두 사람에겐 김상식이 먼저였다. 그가 모든 열쇠를 쥐고 있을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30여 분이 흘렀다.
아까 지나쳤던 골목을 다시 들어섰지만, 이번에도 허탕이었다. 김상식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에서 사이렌이 계속 들려왔다.
"우리가 잘못 본 걸까요?"
강나은 경위가 자신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야. 나는 자넬 믿어. 김상식은 어떻게든 이 집단과 연관이 있을 거야."
"진짜 수상하죠?"
"누가 봐도."
그렇게 말하며 그가 막 골목을 돌아섰을 때였다.
"엇?"
직감적으로 올려본 4층 건물 옥상.
"저, 저기!"
강나은 경위도 봤다.
"김상식!"
건물 위에선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는데, 얼핏 보면 파티를 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은 걸 느낄 수 있었다.
"가자고!"
두 사람은 전력으로 뛰었다.
어떻게 찾은 김상식인가! 무조건 잡아야 한다고 여겼다.
"지원요청하고, 도주로 차단할게요!"
건물 입구에서 강나은 경위가 말했고, 팀장은 오케이! 외치며 계단으로 올라갔다.
그러면서 봤다.
'뭐야….'
계단엔 의식을 잃은 사람들이 마른오징어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1층과 2층 사이에만 다섯이 넘었다. 2층과 3층을 올라가는 동안에도 8명을 더 봤다.
'이게 다 무슨….'
이 건물은 사무실들이 입주해 있는 것 같았다. 휴일이라 화장실 문을 굳게 잠겨 있었고, 이동할 수 있는 통로라곤 계단밖에 없었다.
"세상에…."
3층과 4층 사이.
팀장은 침을 꿀꺽 삼켰다.
20여 명의 사람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남자, 여자, 노인, 교복 입은 학생까지. 창백한 얼굴로 쓰러져있는 모습들이 기괴하기까지 했다.
"…."
팀장은 가까이에 있던 사람의 코에 손가락을 대보았다. 숨은 쉰다. 모두 생명엔 지장이 없는 것 같다. 그는 사람들을 밟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더 위로 올라갔다.
마침내 옥상 문을 열었을 때,
"…허어…."
30여 명의 사람이 더 쓰러져 있는 걸 보았고, 저 끝 난간 즈음에 누군가 웅크리고 있는 걸 보았다.
"…?"
팀장이 급히 외쳤다.
"멈추세요! 경찰입니다!"
모두가 의식이 없는데, 단 한 사람만 어떤 사람의 몸에 올라타 있다? 수상해도 너무 수상하다!
하지만 팀장이 버럭 외쳤을 때, 그는 이미 벌떡 일어나서 난간으로 뛰었다.
"허, 허억?"
아무리 4층이라지만 뛰어내리면 다리가 부러지고, 머리로 떨어지면 즉사다. 팀장은 허겁지겁 난간으로 뛰어가 아래를 내려보았다.
"…!"
내가 잘못 봤나?
팀장은 자신의 눈을 비볐다. 분명 아래로 추락한 남자가 사뿐히 내려서고 있는 게 아닌가?
"강 경위!"
팀장이 외치자 강나은 경위가 돌아서며 남자를 봤다.
"그 사람 잡아!"
그 목소리에 남자가 급히 뛰었다. 강나은 경위가 그 뒤를 쫓는 걸 보면서 팀장이 돌아섰다.
그러다가 멈췄다.
"…이 사람?"
난간 옆에 있는 사내의 얼굴은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사람이었다.
"김상식 씨! 괜찮습니까…? 이봐요!"
그가 급히 맥을 확인했다.
.
.
.
"하악! 하악! 학학!"
강나은 경위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인파 사이로 삭삭 뛰어가는 용의자가 얼마나 빠른지 거리를 좁힐 수가 없었다.
"거기 서!"
놈이 골목을 돌았다.
그녀도 몇 초 후에 같은 골목을 돌았다.
"…?"
그러나 없었다.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후였다.
'어디 갔지?'
이상했다.
오른쪽엔 큰 담장이 있어서 절대 넘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앞은 저 끝까지 작은 점포들로 이어져 있어서 다른 길도 없었다.
'가게로 들어갔나?'
강나은 경위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실내포장마차와 고깃집을 하나씩 열어보았다.
변화가 중심에서 벗어난 곳이라 그런지 손님은 많지 않았다. 실내포차에선 이미 고주망태가 된 아저씨 두 사람이 웃고 떠들고 있었고, 그 옆 술집에선 파리를 날리고 있었다.
강나은 경위는 그다음 가게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후덕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그녀를 반겼다.
"일행이세요?"
그녀가 저쪽을 바라보았다.
20여 명의 사람이 테이블을 붙인 채 모여서 왁자지껄하다.
-자! 잔 들자고! 음원 올킬을 위하여!
-위하여!
-축하해! 채린 씨!
-예원이도 고생 많았다!
방송가의 흔한 회식이었다.
"아니에요. 여기가 아닌가 봐요. 죄송합니다."
절로 예원이를 본 강나은 경위는 참 예쁜 아이라고 생각하면서 몸을 돌렸다.
.
.
.
쭉쭉!
술과 콜라가 목을 적셨다.
"민준이라고?"
"네."
"마스크 좋네. 채린이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라고 했지?"
대답은 박채린이 했다.
"저랑 예능 하나 했었어요!"
회사 실장이자 매니저인 강건은 민준을 보며 웃었다.
"계속 방송해볼 생각은 없고?"
"지금은 공부가 우선이라서요. 저, 잠시 화장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참, 채린아. 오늘 무대에서 말이야…."
화장실은 외부에 있었다.
민준이가 밖으로 나가자 예원이도 슬쩍 일어났다. 어차피 예원이는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이런 자리가 어색했다.
고기 굽는 후끈한 열기 대신 바람이 불자 그녀는 이제야 살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민준을 기다렸다.
그런데 5분이 지나도 나오질 않았다.
'배가 아팠던 걸까?'
괜히 따라 나왔나? 생각하면서 화장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래된 건물이라서 그런지 화장실은 남녀공용에 더럽고 허름했다.
그런데….
"아앗? 이보세요! 괜찮으세요?"
누군가 화장실 앞에 쓰러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까 40대 후반쯤 보이는 아줌마였다.
"아주머니!"
예원이가 깜짝 놀라서 쪼그려 앉아 아줌마의 몸을 흔들었을 때, 그녀에게 톡이 왔다.
『미안! 오늘은 이만 갈게! 학교에서 만나!』
민준이가 많이 불편했나? 생각이 들었지만 쓰러진 아줌마가 우선이었기에 예원이는 급히 가게로 돌아갔다. 그리고 외쳤다.
"119 불러주세요! 밖에 사람이 쓰러져 있어요!"
.
.
.
참 긴 밤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옥상에서 어떤 남자를 정화하고 벌레를 잡고 나니까 실 끊어진 연처럼 감염자들이 맥없이 흩어지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리곤 절로 메인 미션이 완료되었다.
【축하합니다! 재능마켓에서 보상을 수령하세요!】
집으로 향하는 길.
도화지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끝났어?
"네. 어떤 벌레를 잡으니까 다들 가더라고요."
-널 어떻게 알았을까?
"어쩌면 그 인성고 애들이랑 싸웠을 때 그때 뭔가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요."
【단, 감염자가 정화되면 숙주가 눈치챌 수 있습니다.】
그때, 이런 문구를 들었던 것 같다.
-다친 덴, 없는 거지?
"그렇다니까요. 이제 다 끝났어요. 내일 또 전화할게요."
나는 집으로 곧장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머니 가게로 향하지도 않았다. 인성고 애들과 만났었던 우리 동네 놀이터 그네에 앉아 혹시 모를 일을 대비했다. 반나절 동안 누군가 계속 따라오던 경험을 해서 그런지 당장에라도 뭔가 여기저기서 불쑥 튀어나올 것 같았다.
"…진짜 끝났나?"
1시간쯤 앉아 있자 그제야 안심이 됐다. 큰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기생충….'
살면서 그렇게 끔찍하게 생긴 벌레는 처음 봤다. 그런데 참 웃긴 게 요즘 괴물들을 자주 봐서 그런지 손으로 덥석 잡을 만큼 거부감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기에 몸을 부르르 떨고 일어났다.
그런데 이때.
"…?"
저쪽에서 그림자가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