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팀장이 급히 앞으로 나서며 강나은에게 물었다.
"김상기 씨? 맞아?"
"네! 그 사람이에요! 확실해요!"
강나은 경위는 늘 파일과 싸우는 사람이다. 같은 사진을 수백 수천 번씩 보면서 프로파일링하다 보면 그 얼굴들이 꿈에서도 나온다. 특히, 김유선의 세 남자 중 한 사람은 주검으로 발견되었지만 다른 두 사람은 아직도 실종상태였으니 몰라볼 수가 없었다.
"잠깐만요! 지나갑시다!"
팀장이 사람들을 해치며 김상기의 뒤를 따라갔다. 김상기는 이미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계단과 엘리베이터로 우르르 몰려가고 있었다.
'다들 어딜 가는 거야?'
무엇에 홀린 사람들처럼 표정 변화가 없었지만,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질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왜 아무도 없지?'
이 많은 사람들이 난입하는데도 로비를 지켜야 할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도 위로 올라갔다는 사실을 팀장은 아직 몰랐다.
"팀장님! 저쪽으로요!"
김상기가 계단으로 향하고 있었다.
"자네는 여기 있어! 나는 엘리베이터로 갈게! 사람들이 많아서 이대론 힘들어!"
차라리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잡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종교단체인 건가?'
그렇게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들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의 카테고리로 엮는다면 그게 가장 신빙성 있었다.
'김유선과 김상기…. 그리고 이 사람들까지.'
수상한 게 한둘이 아니었지만, 김상기를 잡으면 모든 의문이 풀릴 거로 생각한 팀장은 서둘러 이동했다.
한편, 강나은 경위도 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사람들이 엮인 굴비처럼 줄줄이 움직였는데, 고성을 지른다거나 서로 이야기를 한다거나 하는 모습이 전혀 없었다. 여기까지 단체로 왔다면 흥분할 법도 한데, 이들의 표정은 섬뜩하리만치 변화가 없었다.
강나은 경위가 서초 경찰서 팀원에게 전활 걸었다.
"강나은 경위입니다! 이쪽으로 지원요청 부탁합니다! 김상기 씨를 찾았어요!"
-알겠습니다! 외부의 요원들부터 먼저 그리로 가라고 할게요!
마른침을 삼키며 로비를 지키던 강나은 경위는 지금까지 사람들이 얼마나 건물로 들어왔나 가늠해보았다.
'이백 명쯤? 아니, 더 많았을 거야.'
이 많은 사람들을 통제하려면 더 많은 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기다리는데,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쿠웅-!
밖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강나은 경위는 무심코 그쪽을 바라보다가 소리를 들었다.
-어어엇? 뭐였지?
-사람이 떨어졌어!
-꺄아아아아아아아!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고층에서 누군가 아래로 떨어진 거다.
"허억…."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괜찮으세요?
-이봐요!
-허어어얼? 멀쩡하신데?
-아니야! 피가 나잖아!
-이봐요! 움직이면 안 됩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모여들어 웅성거렸지만 추락한 남자는 비틀거리며 일어나서 다시 회전문을 통과해 로비로 들어왔다.
"…."
강나은은 그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데도 움직일 수 없었다.
'어, 어떻게?'
그의 갈비뼈가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아프지도 않은지 무표정으로 그녀를 지나쳐서 계단으로 향했다. 그가 걸어온 길엔 피가 뚝뚝 떨어져 있었다.
'저게 말이 돼?'
휙 돌아선 강나은이 그를 향해서 뭐라고 말하려 했지만, 그는 이미 모습을 감췄다.
.
.
.
이런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것 같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서로를 향해 쫓고 쫓겼던 경험. 정글에서였던가?
'겁나게 많네. 끝이 없어.'
처음, 이 건물에 들어왔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높은 곳에서 주변을 살필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잠시 후 나는 깨달았다. 놈들이 내게 모여들고 있다는 걸.
그 수는 금세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고, 나는 어느 순간부터 불 꺼진 사무실을 소리 없이 이동하며, 녀석들을 피해 움직이고 있었다. 잠긴 문이 많았지만,
【마스터 키: 모든 문을 열고 닫을 수 있습니다.】
내겐 엄청난 아이템이 있었다.
'이놈들이 감염자인가?'
그때 그 인성고 3학년 애처럼 이 사람들도 정상이 아니었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얼굴은 혈관이 모조리 다 튀어나온 것처럼 무서웠고,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다.
게다가.
'힘이 쎄. 둘러싸이면 나도 위험할 수 있어.'
세 명 정도 부딪혀봤는데, 호리호리한 남자는 김우태보다도 완력이 강했고, 치마 입은 날씬한 여자는 벽에 머리가 처박혔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움직였다.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과 초점 없는 눈동자는 구울의 특징과 비슷했지만, 그것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걸 나는 느끼고 있었다.
'죽일 수는 없어.'
나는 고민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들은 결국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괴물이라면 싹 다 죽여버리겠는데, 그러기엔 찝찝했다. 나는 사냥꾼이지 살인마가 아니지 않나?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순 없어. 사람이 더 모이기 전에 이동해야 돼.'
놈들이 내 위치를 어떻게 알았는진 모르겠지만, 감염자가 앞으로 얼마나 더 있는지, 모여들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우르르르르.
저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저렇게 뛰어다니면 거친 숨소리나 작은 소리라도 내야 정상인데, 그것도 없으니 더 오싹했다.
나는 복도를 돌아서 엘리베이터 반대편으로 갔다가 움찔했다. 계단으로 가려고 했는데, 이미 이쪽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발걸음 소리가 올라오고 있었다.
'벌써?'
안 되겠다. 위로 계속 이동하다간 어느 순간 옥상까지 가게 되고, 그러면 더는 벗어날 길이 없었다. 계단도 막혔고 엘리베이터도 놈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제길!"
나는 창문으로 돌진했다.
"으으으으으…!"
이미 내게 바짝 접근한 감염자들이 손을 쭉쭉 뻗었다. 나는 그들의 손을 쳐내며 더 빠르게 움직였다.
퍼억-!
집어던진 망치가 창문에 구멍을 냈다. 나는 그 구멍으로 곧장 뛰어들며 어깨를 부딪쳤다.
와장창!
여기가 몇 층이었더라? 14층? 15층?
모르겠다.
하지만 저들을 죽이는 것보다 나으리라.
"흐읍!"
강심장을 가졌던들 안 무섭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제발 쓸모가 있길 바라는 그때!
화아아악.
뱀파이어의 날개가 펼쳐지는 걸 느꼈다.
【허공에서 일정 시간 머물 수 있다. 날개가 펼쳐지면 활강하면서 천천히 추락한다. 날개는 물리적 효과가 없으며 찢어지지 않는다. 바람을 탈 수도 없다.】
백작을 잡고 얻은 유니크 아이템!
후우우우우웅-!
기분 좋은 바람이 내 온몸을 쓸어 만질 때 나는 진정으로 하늘을 날고 있다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살았다!'
비행기를 타거나 하는 것은 탈것 안에 들어가는 것이지만 이건 진짜 내가 허공에 떠 있는 거였다.
이때였다.
"허억…."
내가 나온 창문에서 한 남자가 나를 향해 뛰어내렸다.
"…!"
그는 허우적거리며 손을 뻗었지만, 곧장 아래로 추락했다. 그리곤 바닥에 처박혔다.
'이런 무식한….'
-괜찮아요?
-이봐요!
-꺄아아아아!
-사람이 떨어졌다!
모두가 위를 보려고 하기에 방향을 비틀었다. 조금씩 내려가면서 도로 건너편 골목으로 내려왔는데, 나를 잡으려고 창문으로 뛰어내린 남자가 일어나서 다시 건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미친….'
저것들은 죽지도 않는 건가?
어떻게 저게 가능하지? 라는 생각은 집어치우자. 그런 걸 따지려면 상처 하나 없이 저 높은 곳에서 내려온 내가 더 이상한 거다.
일단 나는 자리를 벗어났다. 그러면서 뛰었다. 도화지에게 전활 걸어 상황을 설명해주면서 도로 이정표들을 보고 있었다.
"누나! 감염자가 엄청나게 많아요! 절대 이쪽으론 오지 마요! 이놈들, 뭔진 모르겠는데 내가 있는 곳을 알고 있었어요!"
-알았어! 조심해!
"네!"
방송국 쪽으로 갈까? 아니면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야 하나? 순간적으로 고민했다. 내가 저들과 싸워 이기려면 그로기 상태를 만들어서 권능을 써야 한다. 죽이긴 싫으니까 한 명씩 상대해야 수월하지만, 인원이 너무 많았다.
'그래, 차라리….'
나는 번화가를 향해 뛰었다.
'사람들 사이에 섞이는 게 나을 수도 있겠어.'
아까처럼 나 혼자서 수없이 몰려드는 놈들을 막으려면 한계가 있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에 섞여서 하나씩 공략한다면 쉬울지도 몰랐다.
'저놈들, 다른 사람들은 공격하지 않으니까.'
오직 나만 보고 쫓아오고 있었다.
한참을 달려가는데, 톡이 왔다.
『미안! 정신없어서 연락도 못 했어! 아직 보고 있니?』
『잠깐, 화장실이야.』
『그랬구나. 혹시 이따가 뒤풀이하는데 같이 밥 먹을래?』
『내가 가도 되는 자리야?』
『채린 언니가 아까 녹화하는데, 널 봤나 봐. 식당 주소 찍어둘게! 너무 부담스러우면 안 와도 돼!』
젠장, 그러고 보니 예원이 데뷔하는 것도 못 봤다.
휙!
뒤를 돌아봤다.
아직 누가 따라오는 기색은 없었다.
'반응이 빠르진 않은 것 같은데….'
내가 가만히 있으면 주변으로 우르르 몰려들지만, 이렇게 움직이면 위치를 정확히 포착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이걸 적절하게 이용해야 할 것 같은데….
"후우…."
일단 나는 달리기를 멈췄다.
인근에 방송국과 아파트들이 모여있어서 그런지 이쪽 번화가는 엄청나게 크게 형성되어 있었는데, 술집과 식당, 노래방 같은 것들이 즐비했다. 그만큼 많은 인파가 빼곡하게 거릴 채우고 있었다.
나는 한 건물의 계단을 이용해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곤 난간에 서서 저쪽을 바라보았다. 내가 아까 있었던 건물이 보였다.
'오고 있어….'
사람들 틈으로 괴물 얼굴을 한 감염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이봐! 조심해!
그들은 툭툭 사람들 몸에 부딪히면서도 나를 향해 조금씩 거릴 좁히고 있었다.
'지구 끝까지 따라올 기세네.'
어이가 없었지만, 저들을 떨쳐내지 않으면 편히 잠도 못 자겠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지도를 펴고 주변을 눈으로 익혔다. +4지력은 지도를 통째로 복사했다. 어디에 어떤 상점이 있고, 몇 층 건물이 있으며 어느 골목이 어디로 이어졌는지를 중점적으로 봤다. 중간중간 얼굴을 들어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면서 거리를 가늠했다.
'와라.'
한 사람이 내가 있는 건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이끌리듯 1층으로 들어오더니 곧장 계단을 향해 이동했고 머지않아 옥상까지 올라왔다.
그리곤 나를 봤다.
"…으으으으으!"
발견하자마자 뛰어온다. 좀비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기괴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달려드는 남자를 보면서 나는 상체를 낮추고 그의 팔을 잡았다. 그리곤 곧장 그의 몸을 뒤집었다.
퍼억-!
등부터 바닥으로 떨어진 그는 커억-! 침을 토해냈는데, 사람 침이 이렇게 많이 나올 수 있다는 것도 처음 봤다.
"일대일은 자신 있다고."
하지만 그는 아직 버텼다.
그래서 나는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후려쳤다.
퍼억!
한방.
"…으으으으으! 우왜애애애애액!"
명치를 맞은 남자는 누워서 침을 토했는데,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 한 대로 죽을 수도 있는 힘을 실었지만, 그는 아직도 버둥댔다.
"이거, 쉽지 않네. 정말."
차라리 죽이면 간단하겠지만, 아슬아슬하게 기절시킨다는 게 참 어려웠다. 그러나 나는 해내야만 했다.
퍼억!
이번엔 복부에 한방!
"…커헉! 컥! 컥!"
숨이 막히는지 기침을 해대던 그의 몸이 축 늘어졌을 때, 나는 그의 얼굴에 손바닥을 덮었다.
【수호자의 권능을 사용합니다.】
그의 몸에서 무언가가 내 안으로 빨려들어 온다고 느낄 때였다.
꼬물.
뭔가가 그의 입에서 기어 나왔다.
'이게…뭐야?'
태어나서 처음 보는 벌레의 모습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