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109화 (109/277)

#109화

"자세히 말해봐요. 어떻게 된 거예요?"

-원래는 약해서 긴가민가했는데, 더 집중하니까 하나가 아닌 것 같아. 여럿이 흩어져있다가 모인 것 같달까? 어떻게 할까? 만날래?

"아뇨. 마침 제가 근처에 있으니까 돌아다녀 볼게요. 누나는 위험하니까 혹시라도 냄새가 바뀌면 바로 전화해주세요."

-알겠어! 조심해!

강한 괴물이 나타날 수도 있어서 우선 내가 알아보는 게 안전했다. 나는 방청석을 둘러보았다. 안경 너머로 잡히는 괴물은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거지?'

괴물이 집단행동도 하나?

알 수 없었지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방청석에서 나와 밖으로 향했다. 그리곤 창가로 가서 거리를 바라보았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방송국이 밀집한 곳이 바로 여기였다. 직장인들도 많았고 연예인을 보려고 모여든 청소년도 많았다.

이런 곳에서 괴물이 출현하면?

'목적이 있을 거야. 놈들도 숨어 살려면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을 거니까.'

서큐버스도, 백작도 모두 사람 행세를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그렇게 강한 녀석들도 자신의 정체를 대놓고 드러내며 활동하기엔 거북하다는 뜻이었다.

나는 방송국을 완전히 빠져나왔다. 그리곤 다른 건물을 둘러보았다. 좀 더 높은 곳에서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

.

.

빠르게 달리는 차 안에서 팀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서 강나은 경위가 말했다.

"왜일까요?"

병원을 탈출했던 조우진 형사가 CCTV에 찍혔다.

강나은 경위가 다시 물었다.

"…저는 조 형사님을 잘 모르지만 이럴 분이 아니시라는 건 들었어요. 왜 가족에게까지 연락을 하지 않을까요?"

"사정이 있을 거야. 병원을 탈출할만한 이유도 있었을 거고."

그게 아니라면 우진이가 이렇게 막돼먹은 행동을 할 리가 없었다.

강나은 경위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프로파일러인 그녀의 분석으로도 조우진 형사가 갑자기 병원을 나선 덴 그럴만한 사정이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되니까.

'뇌물 같은 것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뒷돈을 받았다거나 그것 때문에 누군가에게 협박을 당하고 있다거나 하는 일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게 가장 설득력 있는 일이기도 해서 강나은 경위는 속이 좋질 않았다.

그러는 사이 차가 상암에 도착했다.

"이 근처였지?"

"네!"

두 사람이 차에서 내려 장비를 확인했다. 그럴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조우진 형사가 반항하면 수갑이라도 채울 생각이었다.

"집중하자고. 조 형사가 우릴 먼저 발견하면 도주할 거야. 우리가 먼저 찾아야 해."

"네!"

상암엔 월드컵 경기장이 있고, 방송국들이 있으며 그만큼 유동 인구도 많았다. 이 인파 속에서 우진이를 찾는 게 쉽지 않은 일이란 건 팀장도 알고 있었다.

'대체 여기서 뭘 하는 거냐. 우진아.'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우진이를 찾아야 했다.

"조우진 형사는 자네 얼굴을 모르니까 발견하면 자네가 먼저 접근하도록 해."

"그렇게 할게요."

팀장은 사방을 주시하며 빠르게 걸었다. 지나는 길에 들렀다면 이미 떠나고 없겠지만,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그렇게 일대를 헤매다가 팀장은 일순, 위화감을 느꼈다.

'노숙자가 여기에 이렇게 많았었나?'

서울역이나 청량리, 용산역이라면 모르겠는데, 방송국 근처에 노숙자가 왜 있지? 보통은 규모가 큰 지하철 환승역이나 기차역에 있지 않던가? 그래야 밤에 추위도 피할 수 있고 말이다.

"팀장님, 왜요?"

"아니야. 가지."

이 근처에 온 것도 참 오랜만이어서 이렇게 변했다고 한들 이상할 건 없다고 생각하면서 팀장은 계속 걸어갔다.

'여기도 많이 발전했네.'

서초 관할이다 보니 서초 지역은 빠삭하지만 다른 곳은 늘 낯설다. 몇 년 만에 와보면 산만한 빌딩들이 툭툭 서 있질 않나, 서울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다고 생각될 때가 바로 이런 걸 볼 때인 것 같다.

그렇게 두 사람이 지나갔을 때, 길에 누워있던 한 사내가 슬그머니 일어났다.

한데, 그의 눈빛은 이상했다.

몽롱한 것 같으면서도 술에 취했거나 아프다고 보이진 않았다. 그가 일어서자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웅크렸던 몸을 폈다. 구걸하거나 먹을 걸 찾아 떠나려는 움직임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를 보았다.

먼 곳에 있는 사람도 있었고 가까운 남자도 있었는데, 마치 멀리서 보면 한 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동작하고 있었다.

"으으…."

그들이 모두 일어났다. 그리곤 한 곳을 보았다.

느릿느릿 그들의 발걸음이 한 곳을 향했다. 뭔가에 이끌리듯 노숙자들은 일정 거리를 두고 움직이면서 조금씩 거리를 좁혀갔다.

그러다가 이윽고 한 건물 앞에 모였다. 주변은 조금씩 어둑해지고 주말 밤을 즐기려는 수많은 연인이 밖으로 쏟아져나왔지만, 그런 것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으으으으…."

사내 하나가 비틀거리다가 누군가와 어깨가 부딪혔다.

"이봐! 조심해!"

20대 청년이 짜증을 내며 외쳤다. 더러운 행색의 노숙자와 몸이 닿았다는 사실에 화가 난 거다.

"자기야. 그냥 가자."

옆에서 여자가 말려보았지만, 노숙자가 무시하자 청년은 더 울컥했다.

"야! 사과해야 할 거 아니야!"

그의 말이 더 거칠어졌다. 그런데 그때였다.

스윽.

슥….

언제 이렇게나 모였을까?

"…어?"

"자, 자기야…."

그들 주변에 모여든 노숙자가 다섯이 넘었다. 노숙자들은 청년을 빤히 바라보았는데, 그게 어찌나 섬뜩했던지 청년은 급히 여자의 손을 잡고 자릴 벗어났다.

"나 참! 재, 재수가 없으려니까! 너, 운 좋은 줄 알아!"

청년이 황급히 떠나자 노숙자들은 시선을 돌렸다. 그리곤 위를 보았다.

초고층 빌딩이 그들 앞에 서 있었다.

"죽여…."

"죽이자…."

"여기 있다…."

그들이 목소릴 내기 시작했다.

그리곤 꾸역꾸역 건물로 모여들었다.

.

.

.

"팀장님? 왜 그러세요?"

우연이었다.

"잠깐만. 저기, 이상하지 않아?"

"뭐가요?"

"저 아세안 빌딩 앞. 저 사람들, 뭐 하는 거지?"

"누구요?"

거리엔 인파가 많아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다.

"노숙자들 말이야!"

"노숙자요?"

"일단 가보지."

팀장이 건널목 앞에 섰다.

아까도 이상하게 여겼는데, 지금은 더 수상했다. 신호등 빨간불이 녹색으로 바뀌자 팀장이 급히 건넜다. 이러는 순간에도 건물 아래엔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고 있었다.

처음엔 노숙자만 이상하게 여겼지만, 실상은 달랐다. 여자도 있었고 노인도 있었으며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계속해서 건물 아래로 이끌려왔다. 그래서 오히려 평범해 보였다. 그렇지 않나?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었으니까.

하지만 팀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저 사람도, 저 남자도! 아까 길에서 누워있었던 사람이었어!'

팀장의 눈썰미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어느덧 100명이 넘었다.

이때쯤 건물 로비에 있던 보안요원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어?"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내들이 회전문을 통과해서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주말이라 상주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런 거지꼴을 한 사람들이라니?

"이봐요! 누구시냐고요!"

그가 윽박지르면서 사람들에게로 급히 뛰어갔다. 하지만 그건 큰 실수였다.

와락!

가까이에 있던 남자가 보안요원을 덮쳤다. 그러더니 입을 맞추려는 듯 입을 벌렸다.

데스크에서도 여직원이 이걸 봤다.

"어? 철수 씨?"

그녀는 노숙자의 입에서 벌레가 나와 보안요원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까진 못 봤다. 이미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커억, 컥…."

보안요원의 숨 막힐듯한 작은 비명이 터져 나올 때, 이미 데스크에도 사람들이 잔뜩 모여들고 있었다.

"꺄아아아아아아!"

그녀의 비명이 길게 울렸다.

-저 사람들 뭐야?

-몰라, 행사라도 하나 보지.

-그런가?

건물 밖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바라보는 두 사람은 무언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팀장이 말했다.

"어떻게 생각해?"

"수상해요…. 근데 왜 저러는 건진 모르겠어요."

정치적인 모임도 아닌 것 같았다. 저들의 손엔 그 어떤 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회사에 악감정을 품은 사람들이라고 하기엔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그 수가 점점 더 많아져서 200명이 넘었다. 그중 50여 명은 안으로 들어갔고, 나머지도 꾸역꾸역 회전문을 향해 움직였다.

"지원요청 할까요?"

"뭐라고 신고할 건데? 이상한 사람들이 저 건물로 들어가고 있다고?"

"혹시 모르잖아요. 종교적인 이유일 수도 있고요."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질 모른다는 게 답답했다. 그렇다고 저들에게 섞이기엔 묘하게 거부감이 들었다. 가까이 가선 안 될 것 같다는 직감이랄까?

"일단 관할서에 상황 보고는 하지."

"알겠어요."

자칫 유혈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기에 강나은 경위가 신고를 했다.

팀장은 계속해서 주시했다.

'다단계라도 하나?'

서민들 대상으로 무작위 다단계가 유행하고 있다. 한번 빠지면 아줌마도 아저씨도 가정까지 버릴 정도로 푹 빠진다고 들었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뭘까? 이 찝찝함은?

그렇게 입맛을 다시며 사람들을 지켜보던 팀장은 다시 이상한 걸 느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단 한 그룹도 대화를 나누는 이들이 없는 것이다.

'모르는 사이라서 라기엔….'

처음 보는 광경에 그의 궁금증이 더해갔다.

신고를 마친 강나은 경위가 말했다.

"곧 사람 보낸대요."

"그래, 우리가 나설 필욘 없으니까."

괜히 이쪽 경찰들과 마찰을 일으킬 이유는 없었다. 경찰이 곧 올 테니 지켜보면 되겠지, 생각한 팀장이 담배를 하나 꺼냈을 때였다.

강나은 경위가 물었다.

"이 근처에 방송국 있지 않아요?"

"있지."

"혹시 드라마 같은 거 찍는 걸까요?"

"…."

"아니면 유명한 연예인이라도 온 걸지도 모르잖아요."

상황이 너무도 평온해 우리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나? 그런 기분마저 들었다. 조우진 형사가 이 근처에서 CCTV에 찍혔다고 하지만, 그건 일반인들에겐 전혀 상관없는 일이 아닌가?

"음…. 뭐, 곧 알게 되겠지."

그가 담배 연기를 깊이 빨아들였다.

'바보 같긴.'

저 인파에 혹시 우진이가 있을까 봐 잠깐 흥분했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니 우진이는 없었다. 저런 사람들과 우진이가 어울리는 것도 말이 안 됐다.

'대체 어딜 간 거냐. 우진아….'

한숨과 함께 연기를 내뿜다가 다시 들이켰다. 답답함을 해소하려고 피우는 담배였지만, 어째 더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는 담배를 버렸다.

'쯧, 이것도 못 피우겠어.'

끊어야겠다고 생각은 했었는데, 지금 이런 기분이라면 가능할 것 같기도 했다. 그만큼 그는 심적으로 지쳐있었다.

'이 짓도 못 해 먹겠고.'

번 아웃이랄까?

나쁜 놈들 쫓아다니면서 정의 구현을 하는 건 모르겠는데, 실종된 우진이나 찾으러 다니니 묘하게 맥이 빠졌다.

그런데 이때, 이런 기분을 단박에 날려버릴 충격적인 얘기가 들려왔다.

"어?"

강나은 경위가 뭔가를 발견했다.

"티, 팀장님?"

"왜?"

"저기 저 남자! 저 사람이요!"

"누구?"

강나은이 팔을 들고 한 사람을 지목하며 소릴 질렀다.

"그 실종된 사람이요! 김유선의 남자! 그 사람이잖아요!"

오싹!

이 맛에 형사를 그만둘 수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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