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108화 (108/277)

#108화

체육관에 도착했다.

오늘 김우태는 강남점으로 출근해서 보이지 않았다. 대신 관장님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너, 공부도 잘한다면서?"

"열심히 하는 거죠."

"하하, 요즘 애들 같지 않아서 참 좋아. 눈빛도 그렇고. 꼭 한 사십 년 산 애늙은이 같다니까? 하하!"

허얼, 예리하기도 하셔라.

"본래 줄넘기만 한 달 정도 시키는데, 넌 워낙 잘하니까 기술부터 익히면서 해도 좋을 것 같다. 벨런스가 워낙 좋아서 너한텐 시간 낭비거든."

"감사합니다."

"네가 파괴력이 강하니까 인파이터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 될 것 같긴 한데. 어떻게 생각해?"

"저는 뭐든지 좋습니다."

"좋아. 일단 해보고 안되면 스타일을 바꿔보자."

관장님은 내 몸을 보면서 또 감탄했다. 몇 번이나 봤지만 질리지 않는 것 같았다.

"햐, 너를 왜 이제야 만났을까? 아니야. 지금이라도 어디냐. 2년, 아니! 1년 만에 너를 프로로 만들어주마!"

"딱히 프로가 되려는 건 아닌데요…."

"하하! 하다 보면 욕심나게 되어 있어! 나중에 시합 잡아달라고 징징거리지나 마라!"

종합격투기의 기술 양은 엄청나게 많았다. 물어뜯거나 몇 가지 반칙을 제외하면 조르기도 가능했고, 타격도 할 수 있었으며 레슬링이나 주짓수 기술까지 익혀둬야 반격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시합을 하려는 게 아니라 생존 기술이 필요했다. 먼 거리에서 활을 쏘다가 근접했을 때 싸울 수 있어야 했다. 망치가 있긴 하지만, 그것마저 없으면?

"오늘도 감사했습니다!"

모든 훈련이 끝나고 내가 경쾌하게 인사하자 관장님은 또 혀를 내둘렀다.

"너는 지치지도 않냐?"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보면 볼수록 타고난 놈이라니까. 넌 어쩌면 우리나라 격투계의 판도를 바꿔버릴지도 모르겠다."

괜한 말이 아니었다. 실제로도 관장님 말고도 다른 선수들이 나를 계속 주시했는데, 나처럼 파괴력과 순발력, 체력을 모두 갖춘 초심자는 처음 봤다고 입을 모았다.

뭐,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나는 생사를 몇 번이나 건너야 하는 전투에서 이겨왔고, 그건 지금도 그건 진행 중 아니던가.

"일찍 다녀! 하나라도 더 배워야 할 때야!"

"네! 내일 뵙겠습니다!"

체육관을 나섰다.

적당히 땀을 흘렸더니 기분이 좋았다. 일과 운동은 다르다더니, 확실히 기분전환이 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전엔 미션 하느라 매일 뛰어다녔었는데, 요즘엔 뜸하다 보니까 몸이 무거워진 기분이었는데 그마저도 싹 날아갔다.

지하철역으로 가는데 전화가 왔다.

-도민준!

"네."

도화지였다.

-기생충 잡으러 언제 갈 거야?

"어디 있는지 알아야 잡죠."

-찾아봐야지!

"갑자기 왜 이렇게 열성적이실까요?"

-러브러브 뿅망치 써보게!

"…아예. 냄새나면 알려주세요. 무작정 찾아다니긴 어렵잖아요."

-알겠어! 항시 대기하고 있어야 해!

"네네."

피식 웃음이 났다.

나 혼자 할 때는 심각하게만 받아들였었는데, 도화지와 함께하면서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물론, 너무 장난처럼 받아들이면 위험하지 않을까? 싶다가도 무서워서 거부감을 보이는 것보단 차라리 낫겠단 생각도 들었는데, 사실 괴물들과 싸우면서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은 도망치지 않는 거다. 지레 겁을 먹으면 언제나 쫓겨 다닐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내 실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당해버릴 거다.

"러브러브 뿅망치라니…."

전화를 끊고 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망치에 맞아 죽을 괴물도 참…. 기분이 썩 좋진 않겠다.

어쨌든 도화지 덕분에 이젠 혼자 끙끙 앓지도, 괴물을 감지할 수 있게 되어 막연하지도 않으니 다행이었다.

밤 10시 11분.

영업 끝난 식당으로 갔다.

"엄마?"

그런데 손님이 와 있었다. 카밀라 왕 사람들은 아니었다.

"어? 누구…."

"아! 왔니? 밥은?"

"먹어야죠. 그런데…."

네 사람이 밥을 먹고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일어나서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아드님이신가 봐요."

"네. 안녕하세요."

"저희는 방송국에서 나왔습니다."

"네?"

"하하! 놀라셨다면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식사 맛있게 하세요."

그렇게 말하고 주방으로 가니까 어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왜 매일 저녁에 하는 방송 있잖아?"

"응?"

"6시에."

"아…."

"거기 맛집 소개하는 곳에서 오셨대."

"아…."

근데, 그걸 꼭 해야 할까? 지금도 손님 다 못 받는데…. 다음 주부터 카밀라 왕에 매일 100인분씩 납품까지 하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바빠질 게 분명했다.

"힘들지 않아?"

"힘들긴. 요즘처럼 힘들 때 장사 잘되는 게 얼마나 복인데!"

엄마는 사람들에게 반찬을 더 내주러 가시며 밝게 웃으셨다.

"…."

아, 어머니는 방송 타고 싶으신 거구나…. 눈치를 보니 딱 알겠다. 하긴 식당 하는 사람 중에 TV에 내보내 준다는 데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와…. PD님, 여기 찐이예요. 저, 살면서 이런 밥 처음 먹어봐요.

-진짜….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저, 여기 팔 보세요. 뭐 먹으면서 소름 돋는 거 처음이에요.

이미 밥은 두세 공기씩 비운 사람들이었지만 숟가락을 놓을 생각을 안 했다.

'너무 유명해지는 거 아니야?'

그래서 나쁠 건 없겠지만 어머니 혼자 감당할 수 있는 한계란 게 분명히 존재했다.

-잘 먹었습니다! 어머니! 그러면 촬영 날 뵙겠습니다!

-또 올게요! 맛있는 밥 잘 먹었어요!

그들이 나가자 어머니는 나를 식탁에 앉혔다. 그리곤 밥을 차려주셨는데, 내가 먹기 시작하자 흐뭇하게 바라보시며 물었다.

"아들."

"응?"

"엄마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오늘도 8명 정도가 기다리시다가 그냥 가셨거든."

이제 웨이팅 1시간은 기본이 되어버렸다. 심할 때는 2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예약도 불가능하고, 점심시간이나 저녁 한창때는 긴 줄을 보고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태반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옆에 생선 구이집 있잖니."

"그게 생선 구이집이었어?"

닫아놓은 지 오래돼서 뭐였는지도 모르겠다.

"아까 사모님이 오셨었거든. 생각 있으면 싸게 줄 테니까 그것도 인수해서 확장하면 어떻겠냐고. 권리금도 없이 주신대. 다 낡긴 했지만, 그래도 사려면 다 돈이잖니."

"확장…한다고?"

"왜? 좀 그래?"

"아니, 엄마가 너무 힘들까 봐서 그렇지."

"사람 더 쓰면 되지. 그냥…. 엄만 요즘 사람들이 엄마가 해준 밥 먹고 행복해하니 너무 좋은데, 다 못 받아 주니까 안타까워서…."

어머니는 꼭 돈을 벌 목적보다는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그런 것 같다.

"흐음…. 같은 메뉴로?"

"그게 좋지 않을까?"

잠시 먹는 데 집중하면서 머리를 굴려보았다. 지력+4는 합리적인 방안을 내놓으려고 필사적으로 돌아갔다. 전투상황은 아니었지만 이런 결정과 선택 하나가 삶을 바꾼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만두를 팔아?'

아니다. 그걸 하나에 10만 원에 팔아도 가성비가 나올지 모르겠다. 만두는 포인트로 사려면 생각보다 매우 비싼 음식이었다.

'용암어 요리를?'

그것도 나름 대박 나겠지만, 일단 그 물고기가 그렇게 흔한 것도 아니었고, 어르신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100%의 확신은 아직 없는 상태였다.

'여기선 모두가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음식이 좋아.'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우선 기존대로 가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무슨 일이 닥치면 그때 내가 도와주면 되는 거니까.

"알았어. 내가 강남 사모님께 비밀 육수 같은 거 우리가 직접 계약해서 구할 수 있는지 알아볼게."

"정말? 그래 줄래?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결정을 못 하고 있었거든!"

거짓말이 점점 더 불어나는 것 같지만 다른 길로 설명할 수도 없었다. 이래서 처음 한 거짓말이 가장 무서운 거다. 돌이키려면 다 엎어야 했으니까.

"천천히 먹어."

"응."

"근데 오늘은 여자친구 안 만나니?"

"…여자친구 아니야…."

"싹싹하고 예쁘더라. 여자는 그거면 돼."

"아니라니까?"

어머니가 웃으며 주방으로 갔다. 그러더니 보자기로 싼 뭔가를 들고나왔다.

그걸 식탁에 올리며 말했다.

"할머니랑 둘이 산다면서. 내일 학교 끝나면 이거, 갖다주고 와."

김치와 밑반찬이었다.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라고 말하려다가 문득 내 지난 인생이 떠올랐다. 고독과 외로움에 너무도 익숙해져서 누군가 해주는 집밥을 잊고 산지 얼마였던가.

"알았어…."

"호호호! 시간 내서 또 같이 놀러 오고. 화지, 걔 얼굴이 선해서 생각이 나더라. 싸우고 그러진 않지?"

"진짜 아니라니까…."

어머니는 웃으며 내 어깨를 손으로 탁, 쳤다.

"아니면 되게 해. 그런 애 요즘 별로 없어."

없겠지…. 어떤 여고생이 러브러브 뿅망치 들고 괴물 잡겠다고 설치고 다니겠나.

"아후…."

설명하길 포기하고, 나는 빈 그릇을 치웠다. 그리곤 어머니와 함께 가게를 나와 집 쪽으로 향했다.

전철로는 두 정거장이 조금 못 되는 거리. 어머니는 이 길을 걸어 다니셨다. 자전거를 타시기엔 우리 집이 너무 오르막이었고, 차는 주차 할 대도 없었다.

밤길을 나란히 걸으면서 나는 어머니의 작은 어깨를 보았다.

"엄마."

"응?"

"요즘 괜찮아? 진짜 안 힘들어?"

어머니가 내 팔짱을 끼며 웃었다.

"그럼! 이렇게 멋진 우리 아들이 있는데, 뭐가 힘드니? 호호호!"

유독 웃음이 많아진 것 같긴 하다. 그게 거짓도 아니었고.

'이번엔 원 없이 사세요.'

제가 지켜 드릴 테니까.

.

.

.

토요일.

오랜만에 방송국에 왔다.

실상 몇 달 안 됐는데, 몇 년은 지난 것 같았다.

『도착했어.』

방청석에 앉아 예원이에게 톡을 보냈다. 오늘은 예원이의 첫 데뷔무대였다. 신인이라 녹화로 진행하는데, 그래서인지 방청석에 빈 곳이 군데군데 보였다.

『고마워! 근데 미안! 채린 언니랑 같이 있어서 대기실로 못 부르겠어!』

『나도 여기가 편해. 긴장하지 말고 열심히 해.』

『응!』

'나도 그 여자랑 같은 공간에 있는 건 싫거든.'

박채린을 생각하니 으으으. 오싹했다.

30분쯤 지났을까?

예원이와 박채린이 무대로 올라왔다. 아침 일찍 와서 리허설을 했다고 했으니까 이제 녹화를 시작할 모양이었다.

'파운데이션을 썼나?'

오늘도 예원이는 예뻤다. 하지만 그냥 이목구비가 예쁜 게 아니라 불가사의한 매력이 철철 흘러넘쳤다. 옆에 있는 박채린의 존재감이 거의 없을 지경이었다. 박채린도 그걸 아는지 예원이를 힐끔힐끔 봤는데, 표정이 마치 시한폭탄 같았다.

사실 나는 이전의 삶에서 아이돌엔 관심이 없었다. 나 하나 먹고 살기도 빠듯했고, 예쁜 여자들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생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랬던 내가 이제 이렇게 방송국에 와서 아이돌 데뷔무대를 지켜보고 있다니….

'적응이 참 무섭다니까.'

더 어이없는 건 이제 이걸 내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거다.

예원이에게 꿀물이라도 한 병 주고 올까 하다가 표정을 보니 없어도 잘할 것 같았다. 파운데이션의 효과는 무려 매력+3이었고, 그 힘은 무한한 자신감과 높은 자존감을 선물할 것이었다.

조명이 세팅되고 마이크 테스트가 이어졌다.

그런데 이때 전화가 걸려왔다.

-민준아!

"네?"

-어디야?

"볼일이 있어서요. 왜요?"

-냄새가 나!

"어디서요?"

-거기가 어디냐면 한강 위인데…!

"어디쯤인데요?"

-잠깐만. 지도 좀 볼게.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아마….

핸드폰으로 지도를 보는지 목소리가 점차 멀어졌다가 가까워지곤 했다.

-상암동? 망원동? 근처인 것 같은데?

나는 움찔했다.

상암동이면….

'여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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