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다음날.
학교가 끝나자마자 김우태에게 전활 걸었다. 그리곤 그의 아버지께서 운영하신다던 체육관 중의 한 곳으로 찾아갔다.
내 연락을 받고 온 김우태가 마중을 나와 있었는데, 나를 보자마자 대뜸 물었다.
"야! 너 그 소식 들었냐?"
"뭐요?"
"그때 걔! 유선이! 죽었대! 몇 번이나 경찰이 찾아왔었어!"
"아…."
"반응이 왜 그래? 너, 걔한테 관심 있었잖아."
"없었거든요."
다른 쪽으론 관심이 있었지만….
"짜식, 발뺌은. 근데, 여긴 왜 왔어? 예쁜 여자들 많은 짐으로 와야지! 여긴 사내새끼들밖에 없어!"
"여자 보러 온 거 아니거든요."
"궁극적으론 싸움 잘해서 여자들한테 인기 끄려고 하는 거잖아."
"아니라고요…."
"그래그래, 니 맘 다 알아. 어쨌든, 구경해. 니가 진짜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나를 이끌었다.
"제가 왜 안 할 거로 생각해요?"
"빡세. 엄청. 프로도 다니는 체육관이기도 하고, 우리 아버지가 한다면 하시는 분이라 일반인은 훈련 못 따라가. 한다고 해놓고 여기 와서 등록한 놈 한 번도 못 봤다. 야."
"아…."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럼, 여기도 비싸요?"
"아니. 여긴 배우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싸. 우리 회사 매출은 다 강남 짐들에서 나오지."
"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뭐, 너 한다고 하면 더 싸게 해줄게. 당연히 안 한다고 하겠지만."
그건 두고 보면 알 거고.
우린 허름한 건물의 4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며 이곳이 왜 싼지 단박에 느꼈다. 엘리베이터도 없다. 전에 갔던 짐과는 입구부터 연식이 달랐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니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생각보다 좋은데?'
나는 살면서 그 어느 곳에서도 이렇게 진지하게 '싸움 기술'을 연습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었다. 링에서는 마침 두 사람이 치열하게 서로를 향해 손발을 날리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모여서 그걸 심각하게 보며 합평하고 있었다.
"야! 가드 더 올려야지!"
"다리를 써! 다리를!"
"지금! 빠지란 말이야!"
나는 김우태와 함께 링 코너 쪽에 있는 중년인에게 다가갔다.
김우태가 말했다.
"아버지. 전에 제가 말했던 걔예요."
"아!"
나를 힐끔 보는 아저씨는 피식 웃었다.
"너 한 방에 날려버렸다던 걔?"
"그건 제가 방심해서 그랬다니까요. 그리고 예능이었잖아요! 예능! 다 짜고 치는 거였어요!"
아닌데….
"스파링 중이니까 잠깐 기다려."
'생각보다 젊으시네.'
나는 꾸벅 인사를 하고, 링 위를 보며 멍하니 섰다.
이게 바로 종합격투기인가?
권투나 유도, 레슬링 같은 건 올림픽 할 때 많이 봤지만 저렇게 온몸으로 싸우는 운동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우선, 글러브가 얇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생기는 유혈사태였지만, 피가 튀어도 누구 하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굉장해!'
막고 차고 주먹으로 때린다. 땀과 피가 뒤섞여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지고 서로의 숨결이 쉴 새 없이 맞닿았다.
30초쯤 지나자 홍코너 선수가 이겼다.
애초에 이 운동은 오래 할 수 없는 방식이었다. 두툼한 권투용 글러브가 아니라 저거에 제대로 맞으면 한방에 기절이다.
선수들에게 코칭 해주던 아저씨가 내게 다가왔다.
"고1이라면서?"
"네."
아저씨는 대뜸 내 팔과 어깨를 손으로 만져보았다.
"흐음. 벗어봐."
"네?"
"웃통 까보라고."
나는 멋쩍게 웃으며 상의를 벗었다.
"…너 무슨 짓을 하면서 살아온 거야?"
"이런저런 운동 했어요."
옆에서 김우태도 혀를 내둘렀다.
"햐, 전엔 이 정돈 아니었는데? 체지방이 조금이라도 있는 거냐?"
"글쎄요, 그런 건 잘 모르는데…."
따로 측정해 본 적은 없으니 정말 모르겠다. 하지만 대충 짐작은 간다. 가혹했던 망치질 덕분에 오른쪽 팔과 어깨, 등이 훨씬 발달했을 테니까. 망치질을 하면 팔부터 어깨, 등과 옆구리까지 전체가 울리는데, 그걸 온종일 해댔으니 지방이 남아날 리 없었다.
"뭐 이런 자식이 다 있어?"
아저씨는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보다가 손짓했다.
"이리 와봐. 우태 너는 글로브 채워주고."
커다란 샌드백(천장 거치형 모래주머니)으로 나를 데려간 아저씨는 김우태가 내게 글로브를 끼워주자 그걸 보면서 말했다.
"손목 조심하면서 처음엔 살살 쳐보는 거다."
"그냥 쳐요?"
"여기, 중심을 때린다고 생각하고 팔을 쭉 뻗는 거야."
김우태가 알려주었다.
"네."
어려워 보이진 않았다. 이런 고정형 타겟은 몇 번이고 같은 곳을 칠 수 있지 않을까?
퍼억-!
샌드백이 들썩거렸다.
"흐음. 몸에 비해 힘이 안 실리는데? 너, 정말 처음이구나."
"네."
"허어…. 거, 참. 웃기는 놈이네. 근육만 보면 10년 이상 구른 몸인데, 치는 폼은 애송이야. 다시 쳐봐."
"…네."
나는 다시 주먹을 뻗었다.
퍼억!
아까보다 샌드백이 좀 더 들썩거렸지만, 역시 뭔가 부족한 듯 보였다. 아저씨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내게 툭 물었다.
"그게 다야?"
"…."
"왜 진심으로 안 쳐?"
아저씨가 나를 무섭게 노려보며 물었다.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거…터질까 봐요. 그럼 물어드려야 하잖아요."
"뭐?"
"하하하하하!"
옆에서 김우태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배꼽 잡고 깔깔댔다.
"하하…핡! 이 새끼! 은근 사람 웃기는 재주가 있다니까?"
아저씨는 웃다가 샌드백 뒤로 가서 잡으며 말했다.
"절대 안 터지니까 네가 할 수 있는 가장 센 펀치를 쳐봐. 오락실에서 안 해봤어?"
"해봤긴 한데…."
"그래, 딱 그렇게 치면 돼. 쳐봐!"
내가 가만히 고민하자 김우태가 말했다.
"야, 이거 터지면 내가 물어줄게. 걱정말고 쳐! 하하, 진짜 어이가 없어서."
"…진짜 칩니다?"
"속고만 살았나? 네까짓 주먹으로는 흠집도 안 나니까 그런 걱정일랑 집어치우고 때려!"
아저씨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힘 증폭은 쓰지 않는다.
나는 힘자랑 하러 온 게 아니라 기술을 배우러 온 거니까. 하지만 내 힘을 정확히 측정하고 싶긴 했다.
'이 주먹에.'
+3의 힘과 근력, 순발력, 그걸 받쳐주는 체력을 모두 담아본다. 그러며 스쿼트와 망치질로 다져진 하체가 딱 버텼다. 자연스레 코어를 내장한 복부와 허리는 유연하게 돌아갔고, 오른쪽으로 비틀어졌다가 앞으로 훅 돌아가는 어깨는 체중을 모두 팔에 보냈다.
그리고 주먹은 아까 김우태가 알려준 중심을 정확하게 때렸다.
퍼어어억!
"…흐…흐으…어어어억!"
"아…아버지!"
샌드백이 90도 가까이 출렁이면서 그걸 잡고 있던 아저씨가 뒤로 날아가 데굴데굴 굴렀다.
-뭐야?
-저게 말이 돼?
-진짜냐?
-방금 주먹으로 친 거야? 발로 찬 게 아니라?
통상적으로 발은 주먹의 3배 파괴력을 지닌다. 그래서 킥이 좋은 사람은 이와 비슷하게 샌드백이 흔들리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주먹질론 절대 불가능했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쓰러진 아저씨를 김우태가 부축했다. 그런데 아저씨는 김우태를 확 밀치더니 내게 태클하듯이 뛰어왔다.
"…너!"
그가 내 오른팔을 두 손으로 잡았다.
"내게 배워보지 않겠냐? 아니, 넌 타고났어! 무조건 운동 해야 할 몸이야!"
"…."
아닙니다. 저는 재능마켓에서 만들어진 몸입니다.
이걸 설명할 필욘 없겠지?
"가르쳐주시면 최선을 다해 배우겠습니다."
"좋아! 그래야지! 당연히 그래야지!"
"근데…. 제가 학생이라 돈이 없어요."
통장에 한 천만 원 있던가. 흠흠, 그건 최대한 아낄 거다. 또 무슨 미션이 나올지 모르는 거니까.
"돈은 무슨! 성실하게만 나와!"
"정말요? 네! 감사합니다! 시험만 끝나면 매일 올게요."
아저씨는 김우태에게 말했다.
"우태야! 샌드백 잡아봐라."
"왜요?"
"잔말 말고!"
우태가 샌드백을 잡자 아저씨는 내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엔 차보는 거다. 중심 잡기 힘들겠지만, 다리 너무 올리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힘줘서. 알겠지?"
"저기…."
나는 샌드백을 보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왜? 차는 건 좀 어색하지?"
"아뇨…. 우태 형, 저렇게 계시면 안 될 것 같아서요."
내가 전력으로 후려 차면 김우태도 아까 아저씨처럼 될 게 뻔하지 않겠나?
.
.
.
중간고사가 끝났다.
그리고 결과는 바로 다음 날 나왔다.
"도민준, 축하한다. 자! 다들 박수!"
-와!
-민준이가 또 일등 했어!
-못하는 게 뭐야?
-민준이 멋있다!
전교 석차는 4등이지만, 반에선 1등이었다. 망치질하며 따낸 체류 시간을 참 값지게 썼던 것 같다.
"기말도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
"네, 선생님."
시험도 끝났겠다, 오늘부턴 곧장 체육관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이번에 해보니까 공부는 시험 직전에 몰아서 하면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미친 방법이겠지만 내겐 이게 가장 효율이 좋았다.
수업이 끝나고 막 학교에서 나오는데, 교문 밖에서 강남석 패거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어."
"웬일?"
"소식 들었다. 인성고 애들 또 깼다면서? 3학년 대가리까지 한 방에 날렸다던데?"
"아,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더라고."
"큭큭, 덕분에 그놈들 이제 얼굴도 못 들고 다니겠다."
강남석은 기분 좋다는 듯 웃다가 말했다.
"네가 잘 치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혼자 할 순 없어.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너도, 나도 우리 학교 학생이잖냐."
또 그 소리냐….
"…간다."
"어디 가는데?"
"체육관."
"허얼, 체육관도 다니냐? 너 오늘 반에서 일등 했다며? 무슨 체육관인데?"
나는 대답 대신 주먹을 들어 보였다. 그리곤 가볍게 웃으며 몸을 돌려 걸어갔다.
내가 애들하고 놀 때던가?
공부도 해야 하고, 체육관도 가야 했으며 재능마켓 미션도 계속 나왔다. 요즘처럼 메인 미션에 막혀 있는 기간이야 운동할 시간이라도 있지만, 저번처럼 돈을 벌거나 1,000km 달리기 같은 미션이 나오면 잠잘 시간조차 부족할 거다.
막 체육관으로 가려는데, 톡이 왔다.
『어디야?』
『운동가요.』
『잠깐 들렀다 가.』
『재능마켓에요?』
『응.』
『왜요?』
묘하게 불길하다.
『미션 해야 하는데, 혼잔 무서워서!』
『미션이요? 아직 서브 미션 못 했잖아요?』
『체류 시간이 조금밖에 안 남았어….』
에엑? 뭐 하느라 그걸 다 써?
아니, 잠깐.
그 미션을 둘이 같이 할 수도 있는 건가?
『몇 시간 남았는데요.』
『1시간!』
『알았어요.』
체육관에 늦는다고 전화해두고 강남역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발걸음이 빨랐다. 그러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진 않았다. 혹시 몰라서 마트에 들러 이것저것 잔뜩 샀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그 시간을 다 쓸 수가 있는 거지? 필라테스를 하고도 300시간 가까이 남았다고 하지 않았었나?
"누나!"
"어, 왔어?"
오피스텔 앞에서 도화지가 손을 흔들었다. 그 태평한 모습에 나는 기가 막혔다. 체류 시간 획득 미션이 뭔지나 알고 저러는 건가?
"어떻게 된 거예요?"
"시험 기간이었잖아. 나도 공부했어. 잠도 자고…."
…잤구나.
"시험은요? 잘 봤어요?"
"아니! 더 떨어졌어!"
…잤어….
"어떡하지? 혼잔 무서운데."
"일단 기다려보세요."
우린 오피스텔로 함께 들어갔다. 그리곤 대뜸 말했다.
"미션을 같이 할 수도 있어?"
역시 우리 얘길 듣고 있었다는 것처럼 즉각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가능한 미션도 있고, 혼자 수행하는 개인 미션도 있습니다.】
"체류 시간 획득 미션은?"
【파티 플레이로 가능합니다.】
"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도화지 혼자 망치질이나 정글에서 살아남기 같은 걸 할 수나 있을까?
그러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난이도가 올라가거나 하진 않아?"
【해당 미션의 난이도는 고정됩니다.】
"휴…."
그나마 다행이었다.
"누나, 우리 준비해야 해요. 가방 가져왔죠?"
"응."
"안에 있는 거 다 꺼내요."
책이나 필기구 같은 것 대신 마트에서 사 온 것들로 그녀의 가방을 채웠다.
"잘 들어요. 누나."
"응!"
"이거 진짜 힘든 미션이거든요. 몇 달이 걸릴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각오 단단히 하고 들어가야 해요. 아시겠어요?"
가장 큰 문제는 어디로 내던져질지 모른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