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나는 빠르게 쟁반에 음식을 세팅했다. 그리곤 냉큼 식탁으로 가지고 나갔다. 어떻게든 둘의 얘길 끊어놔야겠다고 생각했다.
"식. 사. 하. 세. 요."
그러면서 도화지를 노려봤다.
'뭐어? 왜에?'
분명 아까 통화할 때 내일 만나자고 하지 않았나?
"와아, 이게 다 뭐니? 진수성찬이네!"
어머니가 함박웃음을 보였다. 하지만 사실 내가 치린 건 별로 없었다. 가게에서 늘 보던 김치와 된장찌개, 거기에 생신 하나 올라간 거다.
근데 이 생선이 백미지.
암….
나도 앉으며 어머니께 소주를 따라드렸다.
"참 좋네…."
어머니가 나란히 앉은 우릴 보며 푸근하게 웃었다. 나는 생선 살을 발라서 어머니 밥 위에 얹었다.
"식기 전에 먹어."
이렇게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우왕! 이게 뭐야? 이게 설마 그 옥돔인가 뭔가 하는 그거야?"
아니거든.
"호호! 어서 들어요."
"네! 어머니! 잘 먹겠습니다!"
밥을 크게 떠서 입에 넣었을 때 1차로 표정이 변했다. 그러더니 생선을 젓가락으로 집어 먹었을 때는….
"허업…."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볼 수밖에 없을 거다. 도화지는 만두와 생수 맛을 안다.
"이, 이거…. 너…. 이거?"
나는 피식 웃으며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나?"
마침 어머니도 생선을 드셨다.
"이게 뭐니? 진짜 맛있네?"
만두가 만두계의 깡패라면 이놈은 생선 중의 원탑이었다. 아마 아까 만났던 이든이 이걸 먹어보았다면 기절할 수도 있었다.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 가시는 없을 건데, 혹시 모르니까 조심하고. 엄청나게 단단한 가시거든."
이번 미션을 끝내면서 두툼한 용암어 고기 50개를 얻었다. 이걸 재료로 쓸 수도 있었지만, 그냥 가끔 이렇게 어머니와 즐길 생각이었다. 용암어가 워낙 커서 하나만 구워도 이렇게 세 사람이 먹는다.
"어쩌면 이렇게 살살 녹지? 비린 맛이 하나도 안 나네?"
어머니의 저 표정을 보려고 얼마간 더 고생하면서 낚시를 했더랬다.
"메로도 아니고? 참치도 아닌데? 어쩌면 이렇지?"
"나도 잘 몰라. 사장님이 시험 잘 보라고 보내주신 거라."
"아…. 매번 이렇게 신세만 져서 어쩌니."
"성공해서 갚아드리면 되지."
"우리 아들, 공부 더 열심히 해야겠네."
어머니가 소주를 한잔 드셨다. 젓가락을 놓으면서 손으로 턱을 괬다.
"부자들은 매일 이런 거 먹고사는 걸까? 카밀라 왕에서도 그렇고. 별천지가 따로 있나 봐."
"에이. 다 똑같은데. 뭘. 그리고 우리 식당 밥이 얼마나 맛있는데. 그 이든 씨도 밥먹으로 오잖아."
"엄마가 미안해서 그래. 우리 아들한테 충분히 못 해줘서."
"지금도 넘치게 받고 있어. 그러니까 아프지나 마."
내 속에 꺼낼 말은 많은데 막상 판이 깔리면 이런 말들만 하게 되는 것 같다. 엄마는 자식에게 공부해라, 자식은 엄마에게 아프지 마라. 돌아봐야만 깨닫게 되는 인생의 후회가 함축된 말들이긴 하겠지만 참 쌀쌀맞기도 하다.
-호호호! 만나서 반가웠어요! 자주 놀러 와요! 너무 늦게 다니지 말고!
"네! 어머니!"
식사를 마친 우리가 먼저 가게에서 나왔다.
"그 어머니 소리 좀 그만하죠."
"왜? 너네 엄마면 나한테도 엄마지. 그럼 아빠라고 부르냐? 넌 우리 할머니한테 할아버지라고 부를 거야?"
"…그게 왜 그렇게 되는진 모르겠지만…. 무슨 일이에요?"
도화지가 그냥 왔을 것 같진 않았다.
"아!"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도화지가 급히 말했다.
"나도 내일 만나서 얘기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냄새가 이상해지는 거야."
"어떻게요?"
"아니야.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그 이상한 냄새가 너희 동네에서 나고 있어."
"여기요?"
"더 동쪽!"
"…구체적으로 말해봐요. 어떻게 이상해요?"
"아까까진 그냥 지나가는 냄새겠거니 했는데 아니더라고. 지금도 나고 있어!"
"그래요?"
나는 안경을 고쳐 쓰고 그녀의 손목을 잡아 이끌었다.
"범아!"
가방에서 뛰어내린 범이가 오토바이로 모습을 바꿨다.
"타요! 천천히 갈 테니까 찾으면 바로 말해줘야 해요!"
"응!"
현실에선 장비들을 바로바로 소환할 수 있었기에 한결 부담은 덜했지만 반대로 누군가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 조심하게 된다.
'정말 우리 집 쪽으로 가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때 도화지가 말했다.
"저기야!"
범이가 멈춰 서며 나는 급히 말했다.
"누나, 여기서 범이랑 기다리세요. 제가 알아보고 올 테니까. 여럿이 움직이면 괜히 의심 살 수도 있어요."
"응, 조심해."
"그럼요."
나는 헬멧을 벗어두고 골목 위로 걸어갔다.
'이쪽으로 가면 놀이터인데….'
뭐가 있다는 걸까?
알 수 없었지만 직접 보는 수밖에 없었다.
"후우…."
침착하자. 한 달여의 망치질에서 배운 교훈은 급해서 될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거였다.
'여차하면 활 보단 망치가 낫겠지.'
주변이 온통 주택가라서 대놓고 활을 뽑아 쓰기엔 너무 눈에 띌 것이다. 선택지가 없다면 모르겠지만 이제 나도 망치질 좀 하는 남자다.
그런 생각을 하며 놀이터 근처로 가서 차 뒤에 숨었다.
-이쪽으로 지나가는 거 확실해?
-네, 여기가 독서실에서 오는 길이에요.
우리 학교 학생 하나가 잡혀 있었다. 쟤는 옆 반 애던가?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어떻게…?'
인성고 애들이었다. 나한테 몇 번 깨진 영준이도 있었다. 문제는 걔가 아니었다.
'저 괴물과 함께 있는 거지?'
나는 안경을 벗어보았다. 같은 인성고 교복을 입고 있으니 어른은 아니란 얘기다. 다시 안경을 써보자.
'구울?'
내가 모든 괴물을 다 본건 아니었지만 뱀파이어나 서큐버스와는 모습이 달랐다. 거무튀튀한 피부는 같고 썩어버린 누런 이빨도 비슷하지만, 송곳니가 없고 손톱도 상대적으로 짧았다.
-형님, 그놈 진짜 잘 쳐요. 방심하면 순식간이더라고요.
영준의 말에 구울이 피식 웃었다.
-야, 내가 지는 거 본 적 있냐? 아무리 잘 치는 새X라도 내 맷집엔 못 당해.
-그렇죠! 형님은 무적이십니다!
그런데 보고 있자니 뭔가 이상하다.
'어째서 다르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메시지가 떴다.
【감염자를 발견했습니다.】
【감염자는 그로기 상태때 수호자의 권능으로 정화할 수 있습니다.】
【단, 감염자가 정화되면 숙주가 눈치챌 수 있습니다.】
'감염자? 그래서 저런 건가?'
어느 괴물과 가장 닮았느냐고 묻는다면 구울이라고 할 것인데 그렇다고 미묘하게 괴물보단 사람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다.
-그놈, 독서실 간 거 확실해? 집에 간 거 아니야?
-시험시간이잖아요. 그리고 아까 걔네 집 가봤는데 불 꺼져있었어요.
-그래. 날을 잡으려면 딱 오늘 같은 날이 좋지. 세상 무서운 것도 알려주고 시험도 망치고. 흐흐흐.
영준이가 어떻게 감염자와 어울리는진 모르겠지만 이거 생각보다 일이 쉽겠는데?
'숙주'란 단어가 마음에 걸리긴 해도 괴물에 감염된 녀석을 그냥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차 뒤에서 슬쩍 놀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이제 딱히 숨을 생각도 없었다.
"아앗! 형님! 저기 저놈입니다!"
"쟤가 확실해?"
"네! 저놈이 도민준이란 놈입니다!"
강남석이 전에 얘기했던 조심하란 말이 쟤들을 두고 한 말이었나?
나는 피식 웃으면서 영준이 패거리를 보았다.
"이젠 하다 하다 여기까지 왔네?"
놈들이 기고만장해서 외쳤다.
"너 오늘 죽었어!"
"뭐 하나 부러지고도 그렇게 웃나 보자!"
"하하하!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냐? 너 딱 걸렸어!"
영준이가 한껏 거드름 피우며 말했다.
"도망쳐도 소용없다. 집까지 따라갈 거니까."
"…하아."
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희 이러는 거 부모님이 아시니?"
"이게 미쳤나?"
"형님, 저거 진짜 또라이에요."
구울 형님이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별명이 독종이었다면서?"
"…그런데?"
"나도 별명이 독사거든. 비슷하다? 우리?"
녀석이 목을 우드득, 우드득 꺾으며 내게 걸어왔다.
"맷집 센 놈들은 공통점이 있거든. 악으로 깡으로 버틴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치명타를 피해서 처맞는 거야. 사실 급소 맞으면 답이 없거든."
"…그래서?"
"아쉽게도 나는 배운 놈이란 말이지."
녀석이 손가락으로 자기 머릴 톡톡 두드렸다.
"나한테서 1분 버티면 내가 졌다고 해준다."
1분….
"하…."
나는 저쪽을 주욱 보았다. 구울 형님, 영준이, 패거리 다섯. 총 일곱인가.
"너넨 참 학습이 안 된다. 학습이."
망치까진 꺼낼 일도 없겠다. 자칫 놈들 중 하나라도 죽어버리면 곤란하니까. 내가 이렇게 사려 깊다는 걸 녀석들이 알까?
"그렇게 눈에 띄지 말고 살라 했는데."
내가 천천히 걸어갔다.
권능으로 어떻게 감염을 없애란 건진 모르겠지만 일단 '그로기' 상태를 만들면 된다는 건가?
구울 형님이 상체를 숙이며 두 팔을 앞으로 올려 가드했다. 확실히 뭘 배우긴 했나 보다.
"형님! 죽여버리십시오!"
"너도 이제 끝이다! 하하하!"
"각오해라! 우리 형님이 서초구 통이시거든! 소년원도 다녀오셨다고!"
그걸 자랑이라고 떠드냐….
아무래도 얘들은 오늘 그냥은 못 보내겠다.
걷던 내가 상체를 숙였다.
【주력이 상승했습니다.】
그냥 달려든 게 아니다. 스킬이 터지면서 2배 빨라진 속도는 순발력과 코어, '희생의' 이름값까지 더해져서 놈의 눈앞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헙?"
그래, 당연한 반응이다. 네가 아니었다고 해도 다들 비슷할 거다.
나는 아래로 축 늘어뜨렸던 오른손을 위로 올렸다. 놈이 급히 가드를 내렸지만 소용없다. 이거, 막으면 부러진다.
빠악!
가드를 뚫고 턱에 정확히 꽂힌 주먹에 녀석의 몸이 붕 떠올랐다.
힘 증폭까진 쓸 필요도 없었다. 그랬다간 턱이 아니라 얼굴 전체가 날아가 버릴 수도 있었다.
"…!?"
"…허억…."
"…뭐였어?"
"모, 몰라, 너무 빨라서 못 봤어!"
녀석들이 당황할 때 나는 구울 형님을 내려보았다.
【대상의 이마나 심장에 권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축 늘어진 녀석의 가슴에 손을 대 보았다. 그러자 뭔가 내 안으로 쑤욱 빨려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안경 너머로 녀석의 몸이 점차 제 색을 찾아가는 것도 보였다.
'어렵진 않네.'
나는 일어서서 녀석들을 봤다.
그리고 말했다.
"아직 1분 안 지났다."
멀리까지 오느라 고생했는데 딱 한 대씩만 맞자.
.
.
.
"괜찮아?"
놀이터에서 나오며 도화지가 합류했다.
"당연하죠."
"아니, 너 말고 쟤들! 죽은 거 아니야?"
"…안 죽게 잘 쳤어요."
"휴우. 그래. 근데 뭐였어?"
"감염자라는데 이건 더 조사해봐야 알 것 같아요. 어쩌면 제가 찾아야 하는 기생충이란 것도 비슷한 종류일지도 모르겠고요."
"그런 종류의 냄새는 안 나는 거죠?"
"응, 잘 모르겠어. 미안."
"아니에요. 오늘 고마웠어요. 누나 아니었으면 저놈들이 여기서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랐겠네요."
"나 잘한 거 맞지?"
"네."
"타세요. 데려다줄게요."
"늦었는데?"
"독서실에서 공부했다고 하죠, 뭐."
"그러면 나는 좋지! 헤헤!"
놀이터 쪽을 힐끔 보니 영준이 애들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저렇게 깨졌으니 한동안 덤비진 못할 거다. 저런 녀석들은 10명이 아니라 100명이 와도 안 무섭다.
'좀 더 효과적으로 칠 수 있는 방법도 배워두는 게 좋겠어.'
괴물은 몰라도 사람은 활이나 망치로 때릴 수 없을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