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한 달이 지났다.
【스킬: 망치질을 얻었습니다. 이제 망치질할 때 체력을 소모하지 않습니다.】
나흘째 얻은 스킬 덕분에 나는 기계가 되었다.
【망치질이 숙련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래, 레벨이 오른 건 기쁜 일이다.
【스킬: 망치 타격을 얻었습니다. 이제 망치를 무기로 쓸 수 있습니다. 높은 확률로 추가 타격 효과를 얻습니다.】
스킬도 얻었다.
【코어가 성장했습니다!】
【축하합니다! 쉬지 않고 12시간 망치질에 성공했습니다! 대단한 도전에 5,000p를 획득했습니다!】
포인트도 받았고 대단한 도전이란 것도 달성했다.
【축하합니다!】
일주일이 더 지났다.
이제 나는 무념무상 망치질만 하는 사나이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그 누구도 나보다 망치질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 밖에서 낚시하는 저 양반은 사람이 아닌 것 같으니까 예외로 두자. 그는 일주일에서 열흘에 한 번씩 물고기를 잡아 왔는데 신기하게도 물고기를 먹으면 며칠은 거뜬했다. 그냥 에너지 말고도 다른 효과가 물고기에 들어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시간이 남아돌게 된 나는 망치질만 할 수밖에 없었다.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망치질만 했다.
솨아아아아아.
돌가루를 퍼서 안에 넣는다.
바닥엔 이제까지 내가 두드려 만든 주먹만 한 흑철덩어리가 있었다. 내가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돌가루 속 흑철이 내가 만든 덩어리에 달라붙어 몸집을 키웠다.
【축하합니다! 15시간 망치질에 성공했습니다!】
【8,000p를 획득했습니다!】
【스킬: 평정의 망치를 얻었습니다.】
【스킬: 평정의 망치
같은 지점을 연달아 때릴수록 파괴력이 증폭된다. 무생물을 타격할 때는 힘을 조정하여 원하는 성과를 낼 수 있다. 생물에 타격할 때는 상대의 방어력에 영향을 받는다.】
처음엔 퍽퍽퍽. 흙을 내려치는 소리만 났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깡깡!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더 커져만 갔다.
'여긴 어딘가. 나는 누군가.'
미쳐가는 게 아니었다. 왜 불멍이라는 게 유행처럼 번졌는지 알 것 같았다. 이런 단순한 반복 속에서 나는 평온을 찾아가고 있었다.
【축하합니다! 24시간 망치질에 성공했습니다!】
43일째.
이런 메시지를 들었을 때 나는 내 어깨를 잡아 오는 손길을 느꼈다.
"이제 됐네."
"아…."
"이만하면 됐어."
그가 내 손에서 망치를 받아들었다.
바르르르르르.
오른손이 덜덜 떨렸다. 계속된 작업 때문에 몸이 망치질에 완전히 적응해버렸다.
【10,000p를 획득했습니다.】
【망치질이 더욱 숙련되었습니다.】
"그걸 들고 따라오게."
나는 흑철 덩어리를 잡았다.
"으…."
낚싯대가 왜 그렇게 무거웠었는지 알 것 같다.
"조심하게. 허허! 발등에라도 떨어지면 뼈가 다 부러질 거야. 겉보기엔 별거 없어 보여도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물질 중의 하나일 거네."
시간이 무게를 쌓았다. 내 흑철은 43일간 나와 함께해온 분신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넣게나."
바구니 같은 곳에 흑철을 넣었다. 그는 그걸 저쪽 벽으로 옮겼는데 나를 보며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흑철이 녹아 이쪽으로 오면 내가 낚싯대와 망치의 크기로 잘라줄 거네. 그러면 이제 자네는 두드리는 거네. 원하는 모양이 나올 때까지! 이제 망치질은 제법 하지?"
그 단단한 흑철이 녹는 것을 보는 감상은 굉장히 낯설었다. 그게 물처럼 변했다가 식으면서 또 딱딱해지는 걸 보는 것도 생소했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은 역시 하나였다.
까앙! 깡!
"더 세게! 조금씩 돌려가면서 두드리는 거네! 힘이 한곳에 과하면 모양이 나질 않아!"
이 작업에만 또 3일이 걸렸다.
하지만 모든 것엔 끝이 있다고 불시에 찾아온 메시지는 그간의 인내를 보상해주었다.
【축하합니다! 아이템을 제작했습니다!】
【불의 수호자의 망치(유니크)
힘+1
물리적 타격으로 대상을 공격한다.
휘거나 부러지지 않는다.
장비하면 화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판매 불가, 제작 시 귀속.】
"아아아…. 아아아아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축하합니다! 첫 유니크 아이템 제작으로 20,000p를 획득했습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수호자의 낚싯대(레어)
근력+1
부러지지 않는다.
무겁다. 회초리로 사용할 수도 있다.】
"축하하네."
그가 내 옆에서 뒷짐을 지고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끝난 겁니까?"
"끝이 아니라 시작이지. 자네는 막 사냥에 필요한 도구를 만들었을 뿐 아닌가?"
그가 손짓했다.
"그것들은 내려놓고 이제 바늘을 만들게. 줄은 내가 주겠네."
바늘을 만드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물고기 뼈나 가시를 돌에 문지르면 된다. 그런데 이게 또 단순 반복 작업이었다. 가시가 얼마나 단단한지 돌이 갈려 나간다.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꾸준히 해야 되네. 한 방울 물이 협곡을 만드는 것처럼 갈다 보면 자네가 원하는 형태가 보일 걸세."
【수호자의 낚싯바늘을 제작했습니다!】
이게 또 일주일이었다.
그나마 내가 온전한 정실을 또렷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와의 대화가 가능했기 때문이리라.
"어르신."
나는 이제 그를 이렇게 부른다.
"이제 물고기를 잡으면 됩니까?"
"허허! 일전에 내가 하는 것 잘 봤지? 끌어올린 후에도 외피를 잘 부숴야 하는 거네! 물리면 다리가 잘릴 거야!"
"미끼는요?"
"그딴 게 무슨 필요가 있겠나? 그게 저 아래에서 흔들리기만 해도 덥석 물지."
"아! 다녀오겠습니다."
"자네라면 오래 걸리지 않을 거네."
나는 낚싯대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범이가 옆으로 따라오며 머리를 내 다리에 비볐다.
동굴에서 나오자 햇살이 내리쬈다. 눈이 부셨다.
절로 나오는 웃음에 나는 하늘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
.
.
껌뻑, 껌뻑.
도미가 눈알을 움직였다.
"허허…. 싱싱하기도 하지."
몸이 회 처져 있는데도 도미는 입을 뻐끔댔다. 초일류 요리사가 아니면 엄두도 못 내는 기술에 감탄하면서 두 사내가 젓가락을 들었다.
"내가 말입니다. 그간 많은 음식을 먹어봤지만, 날것을 이기는 건 없었습니다."
"육회도 무척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뿐입니까? 생간도 즐깁니다. 화기가 닿은 것들은 묘하게 자연스러움이 사라진다고 해야 하나요?"
그 말에 안경 쓴 사내가 술잔을 들었다. 일반 소주가 아닌 최고급 소주였다.
"한 잔 올리겠습니다."
"좋지요."
안경 쓴 사내가 술을 따르며 말했다.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장말 감사합니다. 대표님."
"허허! 저야말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전도유망한 정치인을 만나서 무척이나 기분이 좋습니다."
"과찬이십니다."
"과찬이라니요. 최연소 대통령 후보가 되실 분이신데요."
"아직 먼일이겠지요."
"저와 함께라면 그 시기를 앞당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두 사람이 만났다.
한쪽은 신진재벌로 급부상한 태창 바이오의 대표.
다른 한쪽은 젊은 층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청년 정치가였다.
"누가 들을까 두렵습니다. 하하!"
"들으면 또 어떻습니까? 틀린 말도 아닌데요. 이번 선거만 잘 치르면 국무총리가 되시지 않겠습니까?"
"제 경험이 부족해서 반대하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경험은 쌓으면 되는 거죠. 나랏일 하는데 인물이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술이 다시 오갔다.
태창 대표의 젓가락이 도미의 눈을 찔렀다. 그러다니 익숙하게 눈알을 파내 입으로 가져갔다.
움찔!
정치인이 그걸 보며 안색을 잠시 굳혔지만, 곧 평범하게 돌아왔다.
"이번 법안이 잘 통과하면 우리 대한민국은 신약의 강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겁니다. 언제까지 다른 나라에 기대고 살아야 합니까? 우리도 할 수 있는데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의 입에 들어간 눈알이 오도독 터졌다.
"선거 자금은 제가 얼마든지 대겠습니다."
참으로 직설적인 남자라고 생각하면서 정치가는 빙긋 웃었다.
"이렇게 화끈하시니 저도 얘기하기 편하겠네요. 태창이 뭘 원하는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혹시 아십니까? 태창을 주시하는 눈이 꽤 많습니다."
"잘나면 시기 질투하는 인간들이 많아집니다. 일일이 다 상대하다간 골치 아파 병납니다."
"하하! 그래도 조심하시라 알려드리는 겁니다. 소문에 광수대가 움직이고 있다고 하는데 불미스러운 소문이 많아서 좋을 건 없죠. 주가에도 악영향을 끼칠 거고요."
"감사한 조언, 명심하겠습니다."
두 사람의 화법은 굉장히 특이했다. 어떤 일을 진행하는 것 같은데 그걸 특정해서 말하지 않았다. 돈이 오가지도 않았다. 그저 서로 확인하면 되는 자리였다.
"오늘 뜻깊은 만남, 매우 유익했습니다."
정치가가 일어났다.
"저 또한 다시 뵙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하하! 그런 날이 올까요? 이제 안 만나면 안말수록 좋을 것 같은데요."
"원하신다면 그렇게 될 겁니다."
악수를 끝으로 정치가가 나갔다.
태창 대표는 홀로 앉아 술을 마셨다.
5분쯤 지났을까?
방으로 한 사람이 들어왔다.
"가셨나?"
"네, 대표님."
이좌진 이사는 극도로 공손한 모습으로 들어와 무릎 꿇고 앉았다. 사람들은 태창을 엄청나게 크고 대단한 사람들이 움직이는 기업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다.
태창은 대표의 일인기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걸 알기에 김좌진 이사는 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광수대가…."
"곧 처리하겠습니다."
"처리하라는 게 아니야. 놈들이 갑자기 없어지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아질 거 아닌가?"
"아…."
대표님은 참으로 신비로운 사람이었다. 겉으론 차분해도 말투나 표정은 굉장히 폭력적일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가 화를 내는 모습을 누구도 본 적이 없다.
지금처럼 아주 명석한 답을 항상 내놓기도 했다.
"원하는 걸 던져줘. 그게 우리만 아니면 되는 거잖나?"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면 어디가 좋을까요? 생각하시는 인물이라도 있으십니까?"
"노숙자 몇 잡아다가 하면 될 일이야. 우리완 전혀 관련이 없을수록 좋겠지."
"네."
대표가 술병을 들자 이좌진 이사가 급히 잔을 두 손으로 들었다.
"자네가 고생이 많아."
"아, 아닙니다! 저는 대표님을 모시는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이건 진심이었다. 그가 볼 때 대표는 인간이 맞나 싶을 정도로 천재였다. 8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인문, 사회도 모르는 게 없다. 듣기론 대한민국을 넘어 미국이나 중국, 일본의 유력 정치가나 기업인들도 다 외운다고 한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조금만 더 고생하자고. 이제 거의 다 왔으니까."
"네! 죽을 힘을 다하겠습니다!"
훌쩍 술을 마시는 이좌진 이사를 보며 대표의 눈동자가 뱀처럼 변했다.
.
.
.
촤악-!
그물처럼 펼쳐진 재료 수집망이 물고기를 덮쳤다.
그걸 보며 어르신이 말했다.
"이제 가는가?"
"네."
생각 같아선 이 물고기가 씨가 마를 때까지 잡고 싶었지만 빠르면 일주일, 길면 보름에 한 마리씩 걸리는 희귀한 놈이다. 서너 마리 잡겠다고 한 달을 낭비할 순 없었다.
"자네가 그리울 거네."
그 말에 나는 그에게 다가가서 그의 몸을 안아주었다. 앞으로 이십 년 후에 다른 누가 찾아올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고독함마저 초월해버린 그가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나는 가방에서 남은 초코바를 모조리 꺼내서 그에게 줬다.
"허허허…. 뭘 이런 걸 다."
"혹시라도 제가 다시 올 수 있게 된다면 그땐 라면도 가져올게요."
그에겐 참으로 많은 걸 배웠다.
하지만 이제 나는 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