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102화 (102/277)

#102화

하지만 그건 돌 더미가 위로 불쑥 치솟은 거였다. 그러더니 다시 가라앉았다. 마치 내게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돌도 저러는데 생물이 저 안에서 살 수 있을 리 없었다.

'이건 일종의 수련인가?'

이렇게 무거운 낚싯대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럴 수도 있겠어. 내 인내력 같은 걸 시험하는 거겠지.'

이십 년 전에도 누가 왔었다는 걸 보면 여긴 일종의 재능마켓 시험장일지도 모른다는 기분이 들었다.

근데 불현듯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왜 하필 이십 년일까? 내가 과거로 돌아온 것과 비슷한 시간대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십 년에 대한 건 도통 짐작할 수 없었기에 나는 머리를 흔들며 다른 일을 떠올렸다.

'이 줄은 단단한가?'

이 낚싯줄을 어떻게 잘 이용하면 오팔을 딸 수 있으려나? 아까 그는 내게 오팔 따는 법을 알려준다고 했었다.

'설마 이렇게 방심시켜놓고 날 잡아먹을 생각은 아니겠지?'

이십 년 전의 그 철혈 사냥꾼도 그의 뱃속에 들어있는 건?

하지만 잠시 후 나타난 그의 모습에 나는 마음을 조금 더 열 수밖에 없었다.

그르르릉.

범이가 그의 옆에 있었는데 그가 만지자 기분 좋다는 듯 울었다.

"꽤 힘이 좋군?"

"저는 뭘 해야 합니까?"

"낚시하고 있지 않나?"

그가 웃으며 내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하지만 낚싯대를 돌려받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뭐가 있긴 합니까…?"

"믿게. 내가 허송세월하려고 이러고 있겠나? 여긴 다른 먹거리도 없다네. 동서남북으로 일 년을 가도 벗어날 수 없어."

나도 있고 범이도 있지….

"이십 년 전에 대충 듣긴 했다만 자네가 사는 세상엔 참으로 먹을 게 많다던데."

그의 눈꺼풀이 깜빡거렸다.

"혹시 자네, 라면이 있다면 내게 하나만 줄 수 없겠나?"

"…라면이요?"

"이십 년 전에 먹어 본 그 맛을 나는 평생 못 잊을 것 같다네."

"그 철혈 사냥꾼은 라면을 들고 다녔어요?"

"많진 않았지만 나와 만났을 때 하나가 남아 있었다고 했네."

기호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라면은 혹독한 환경에서 비상식량으로 쓰기에 그리 좋은 음식은 아니었다.

"…라면은 없지만 다른 건 좀 있습니다."

나는 가방에서 초코바를 꺼냈다. 이거 하나면 하루를 버틸 수 있다.

"호오, 이건 또 처음 보는군! 내게 줄 수 있겠나?"

아직 더 남아 있었으니까 하나 정돈 뭐.

비닐을 까서 넘겨줬다.

그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초코바를 보다가 한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허! …하아. 허허허…!"

내가 보낸 만두를 이든이 먹었다면 아마 저런 반응이겠지?

"이건 이름이 뭔가?"

"초코바요."

자유로운 것과 신발 같은 것을 섞어서 가져왔지만 상표를 말해봐야 모를 거니까.

"대단히 위험한 맛이구먼. 고맙네. 또 새로운 경험을 했어. 보시다시피 여기엔 먹을 게 하나밖에 없거든."

그러니까 그 하나가 어디 있는데?

그가 흐뭇하게 웃더니 내게 물었다.

"자네 이야기를 좀 들려줄 수 있겠나? 평생 혼자 살았더니 남의 얘길 들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충 설명했다. 왜 여기로 오게 되었고 무엇과 싸우고 있는지.

"그랬구먼. 철혈의 구울 사냥꾼과 비슷한 얘길 하는 걸 보니 나와 어떤 운명의 끈이 이어져 있는가 보네."

이번엔 내가 물었다.

"왜 여기에 혼자 있는 겁니까?"

"나도 모르겠네. 그냥 언제부터인가 쭉 여기서 살았다는 것 외엔 기억이 나질 않아."

"얼마나요?"

"오백 년쯤 됐네. 더 됐을 수도 있고."

"…아네."

용암에서 낚시하는 양반한테 뭘 따지겠나.

해가 지고 있었다.

주변이 어둑해지고 있었지만, 불구덩이가 있어서 기분이 묘했다. 세상이 어둠에 잠겨도 저 불구덩이는 영원할 것 같았다.

"…나는 자네들이 말하는 선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네. 무언가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나 그 이유도 그래. 배고프면 잡아먹고 약하면 죽지.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어."

"제가 사는 세상엔 법이 있습니다."

"그래, 그런 게 있다고 했지. 그런데 말이네. 자네들이 말하는 그 괴물이란 것들도 그들만의 법이 있지 않겠나?"

"모르겠습니다. 그저 제가 하지 않으면 누군가 죽어요. 저는 그게 싫습니다."

"참 다르구먼. 철혈의 사냥꾼은 최강이 되고 싶다고 했었다네. 누구보다 강해지고 싶다고 했었지. 자네는 아닌가?"

"강해야 죽지 않을 수 있다는 건 알죠."

"강함이란 상대적인 거라네. 어디까지 가고 싶은 건가?"

"모두를 지킬 수 있을 만큼요."

"그러기 위해서 무언가를 잃어야 한다고 해도 할 건가?"

이런 철학적인 얘기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다시 살게 된 삶, 무기력하게 살긴 싫다. 내가 과거로 돌아온 이유가 있고 짊어져야 하는 어떤 것이 있다면 해내고 싶었다.

"잃지 않고 지킬 겁니다."

내 말에 그가 나를 보며 미소 짓다가 아래로 눈짓했다.

"왔네."

"…네?"

묻는 순간 낚싯대에서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

"크윽?"

"놓아선 안 되네! 버텨야 해!"

그으으으윽!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같이 팽팽해진 낚싯줄과 2배는 무거워진 낚싯대를 놓지 않으려고 본능적으로 스킬을 썼다.

【힘이 증폭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낚싯대와 함께 불구덩이로 떨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 역시 힘이 좋구먼! 당기게!"

잠깐이지만 두 배로 늘어난 힘이 낚싯대가 가벼워졌다.

"놈이 단단히 물었어! 자네라면 끌어올릴 수 있을 거야! 지지 말게! 자네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해야 하네!"

나는 점차 뒤로 걸어갔다.

그으으으윽! 그윽!

줄이 흔들리며 바닥을 쓸었다.

"크읍!"

힘이 늘었는데도 이렇게 힘들다니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만, 뭔가가 딸려 올라오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거의 다 됐어! 조금만 더!"

그의 말에 나는 양말의 스킬까지 꺼냈다.

【주력이 상승합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낚싯대를 들고 10미터 정도 달려갔다. 그러면서 봤다. 오백 년 산 남자는 망치 같은 걸 꺼내 들고 뭔가를 기다렸는데 낚싯줄이 구덩이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자 그 끝에 1미터는 훌쩍 넘는 시커먼 게 매달려 있었다.

'저게 뭐야? 뭔데?'

돌덩이처럼 보였다. 그게 땅으로 올라오자 마친 듯이 퍼덕거렸는데 쩍 벌어진 아가리는 어떤 맹수보다도 무서웠고 이빨은 진짜 돌로 만든 것 같았다.

그놈의 몸에 괴인의 망치가 떨어졌다.

까앙! 깡!

물고기를 때리는데 왜 쇳소리가 난다냐….

망치가 닿을 때마다 물고기가 퍼덕거렸다. 남자의 짧은다리를 덥석 물려고 했는데 그는 능숙하게 피하며 계속해서 망치질을 했다.

이윽고 으지지지직! 어느 순간 물고기의 피부가 갈라졌다. 그러더니 외피가 산산이 부서져 나가며 붉은 속살이 나타났다.

남자의 망치가 물고기의 머리를 강타했다.

퍼억-!

이제까지 버티던 물고기는 단단한 외피가 사라지자 망치 한 방에 혼절했다.

【용암어를 사냥했습니다.】

【7,000p를 획득했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축 늘어진 물고기를 남자가 껄껄 웃으며 손으로 잡아 올렸다.

"대물이로구먼."

아가미에 손을 넣고 들어 올린 물고기는 130cm는 되어 보였는데 딱 남자의 키와 비슷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더 커 보였다.

'진짜 있었어. 물고기가….'

기막혀서 멍한 얼굴로 보고 있는데 그가 오더니 내 어깨를 두드렸다.

"가세! 초코바의 답례를 해야지!"

.

.

.

아까 그 용암이 흐르는 벽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가 구석에서 이것저것 꺼내왔는데 요릴 할 생각인 것 같았다.

"라면이나 초코바만큼은 아니더라고 이놈 역시 맛있을 거네. 큰 놈이 잡혔어!"

그는 웃으며 칼을 잡더니 생선의 머리를 한 방에 날렸다. 그리곤 그걸 범이에게 던져주었다.

규우우웃!

범이는 좋다고 앞발로 그걸 움켜쥐더니 사정없이 깨물었다.

"이 모루는 내가 특별히 만든 것이라네. 날붙이를 만들 수도 있지만 이렇게 요리하기에도 안성맞춤이지."

모루의 가운데엔 홈이 나 있었는데 남자가 커다란 국자로 벽에 흐르는 용암을 크게 퍼서 홈에 흘렸다. 쪼로로록. 용암이 흘러온다. 홈 옆이 순식간에 달궈지면서 그 위에 올린 생선이 지글지글 통째로 익기 시작했다.

의자도 없고 식기도 없었지만, 식탁은 훌륭했다.

그가 생선을 뒤집었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생선은 비늘이 바싹하게 구워져서 먹음직했다.

"먹게나."

그가 맨손으로 생선 살을 뜯으며 말했다.

나도 한 조각 떼어서 입에 넣었다.

"…아…."

"허허허! 어떤가? 먹을만하지?"

그 정도가 아니었다. 이건 아무리 내가 저세상 맛을 많이 봤다고 해도 단연코 원탑이었다.

어떻게 생선에서 고기 맛이 나지? 심지어 상큼한 과일 향까지 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놈이 돌 껍질만 벗기면 잡기 쉬운데 평소엔 용암 속에서 사니까 잡기가 참 어렵다네. 낚시에 능숙해지거든 몇 마리 잡아가게나."

"감사합니다…."

진짜 이건 우리 어머니께도 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반대로 두렵기까지 하다. 이걸 먹어보면 죽을 때까지 다른 생선은 못 먹을 것 같다.

내가 식탐이 많은 편도 아니었는데 사람만 한 물고기를 다 먹었다.

"이놈 뼈와 가시로 낚싯바늘을 만든다네. 이래 보여도 용암 속에서 버틸 수 있는 몇 안 되는 물건이거든. 그래서 먹을 때 조심해야 하네. 목에 걸리면 난감하거든."

아, 그건 진작 말을 해줘야….

"그 뼈를 들고 이리 와 보게. 내가 낚시하는 법을 알려준다고 했지?"

"네."

"낚시를 하려면 낚싯대부터 만들어야지."

구석으로 가자, 수북하게 쌓인 돌가루가 보였다. 어? 저거 아까 내가 챙겼던 장인의 부스러긴가?

"이 지역엔 아주 특수한 흑철이 있지. 내 망치와 낚싯대도 이걸로 만든 거라네."

"아…."

"자, 먹었으니까 기운 있을 때 움직여야지? 나를 따라 하게."

그가 돌가루를 퍼서 모루 옆 푹 꺼진 곳에 부었다.

그리곤 망치로 그걸 두드리는 자세를 취했는데 몇 번 하더니 내게 말했다.

"때리면 때릴수록 단단한 원석들만 남아 뭉칠 거라네. 불순물은 그 과정에서 다 걸러지지. 얼마나 많은 불순물을 걸러내느냐에 따라 흑철의 강도가 결정되네."

이제 내가 슬슬 뭘 해야하는지 감이 왔다.

"혹시 그 사람은 얼마나 걸렸습니까?"

"이십 년 전에?"

"네."

"두 달쯤 걸렸던 것 같네."

"여기서 나가는데요?"

"허허허! 아니! 흑철에서 불순물을 걸러내는 것까지가 두 달이었네!"

"허억…."

중급 필라테스 미션을 받은 기분이었다.

"저…오팔 따는 법부터 배우면 안 됩니까?"

초코바라도 하나 더 줘볼까?

하지만 그는 단호했다.

"모든 일엔 순서가 있는 법이라네. 불순물을 걸러내지 않고선 훌륭한 장비가 완성될 수 없지. 두드리게. 그러면 답이 보일 것이네."

두 달….

그래, 뭐 까짓거 정글에서도 버텼는데 망치질 하나 못하겠냐?

퍼억!

망치를 내려쳤다. 마치 쌀가마니 안에 주먹을 내려친 것같이 허무하다.

"일정한 힘으로 반복해서 두드리는 게 좋을 거야. 처음부터 조급해하면 못 견딜 거라네."

이제 알았다.

보급품으로 망치를 준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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