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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마켓-101화 (101/277)

#101화

몸통 부분까지 철로 만들어진 화살이 있다면 꼭 사둬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오팔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뒤쪽에서 소음이 났다.

"왜 그래?"

범이 엉덩이만 보였다. 녀석이 등 돌리고 앞발로 바닥을 벅벅 긁고 있었다.

"뭔데?"

나는 몸을 돌려 그쪽으로 걸어갔다.

"음? 거기 뭐 있어?"

내가 접근했는데도 범이는 미친것처럼 바닥을 벅벅 긁어대고 있었는데 돌가루가 튀긴 해도 바위 자체가 부서지진 않았다.

"야, 너 그러다 발톱 다 부러진다. 비켜봐. 뭔데 그래."

녀석의 몸을 밀면서 바닥을 봤더니 작은 구멍이 나 있었다. 몸을 숙여 자세히 안쪽을 들여보았다.

'공간이 있네?'

망치를 잡았다. 그리곤 구멍 옆을 때렸다.

퍼억! 퍽! 퍽!

화살로 계단을 만들어서 오팔을 따겠다는 작전이 실패로 돌아갔으니 뭐라도 해봐야 할 때였다.

"크윽…."

단단해도 너무 단단했지만, 아래가 비어서 그런지 돌이 조금씩 깨져가는 걸 느꼈다.

킁킁킁!

범이는 바짝 다가와서 콧구멍을 벌름거렸는데 구멍 안에서 냄새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나는 맡지 못했지만 범이의 관심을 끌 정도라면 뭐가 있어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계속 때렸다.

빠악!

망치질이란 게 이렇게 힘든 것인지 처음 알았다. 한 대 때릴 때마다 내 온몸이 울리는 것 같았다. 팔 전체가 저릿저릿하고 머리까지 띵-했다.

근데 이것도 하다 보니까 또 적응이 된다. 사람이 이렇게 무서운 거다.

그렇게 10분쯤 때렸나?

【축하합니다!】

【스킬: 망치질을 얻었습니다. 이제 망치질할 때 반탄력을 느끼지 않습니다.】

"오오오오?"

스킬이 생기자마자 체감이 확 됐다. 한 대 한 대 때릴 때마다 고통스러웠었는데 그게 말끔히 사라진 거다.

나는 신이 나서 더 바닥을 때리기 시작했다. 힘+3은 보통 망치가 전달할 수 있는 파쇄력을 넘어섰는데 구멍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었고 이건 마치 바닷가 개펄에 가서 작은 낙지 구멍을 삽으로 퍼내는 기분이었다.

이윽고,

과드드드드득!

내서 선 바닥 자체가 균열 가고 흔들리더니 와르르 아래로 꺼졌다.

"오오!"

옆으로 물러섰다가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니 굴처럼 양쪽으로 이어진 통로가 보였다. 이건 인공적인 건 아닌 것 같았다. 아마도 물길이 아닐까 추측했다.

"죽으란 법은 없나?"

뭐가 있을 진 모르겠지만 밖엔 아무것도 없으니 답이 이 안에 있을 거라는 촉이 왔다. 그간의 경험을 보면 항상 그래왔지 않나?

이때 범이가 아래로 뛰어내렸다.

"야!"

말릴 새도 없이 구멍 속으로 뛰어 들어간 범이는 무척 신나 보였는데 녀석을 따라가던 나는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구멍이 다시 작아진 거다.

"…어휴."

가끔 저렇게 철부지처럼 굴면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다시 망치를 들었다. 위쪽을 때리다가 지붕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래쪽을 넓히려고 허릴 숙여 망치를 휘둘렀다.

퍽, 퍼억, 퍽!

스킬 덕분에 망치질이 한결 수월해져서 확실히 아까보다는 작업 속도가 빨랐다. 내 몸 하나 비집고 들어갈 만큼 구멍을 만들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렇게 계속 범이를 따라 구멍 속을 이동했는데 그러다가 또 좁아지면 망치질을 했다.

그러길 무려 3시간.

화르륵.

아까부터 켜둔 기름먹인 화살은 활활 타오르지만 내겐 영향을 주지 않았다. 뜨거워 보여도 그냥 플래시라고 보면 된다. 이게 없었다면 너무 어두워서 고생 좀 했을 거다.

가방에서 생수를 꺼내 몇 모금 마셨다.

"캬아."

피로가 싹 가시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며칠이나 버틸 수 있으려나.'

생수와 드링크, 먹을 것들을 최대한 아끼면 일주일은 어떻게 될까? 이것도 극단적으로 일일 일식을 염두에 둔 거다.

불화살을 들고 앞으로 기어가고 있었는데 돌 표면이 까칠해서 맨몸이었다면 여기저기 상처가 났었겠지만 내 코트는 매우 훌륭한 물건이었다.

'어? 빛이다!'

일순간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다.

좀 더 빨리 기었다. 생각 같아선 거치적거리는 가방을 벗어 던지고 싶은 마음까지 들 정도로 흥분됐다.

마침내 도착한 곳!

"와아…."

범이가 저쪽에서엎드려 있는 게 보였다.

설마…자는 거냐?

어이가 없었지만 범이보다 더 중요한 게 사방에 널려 있었다.

"이게 다 뭐야…."

알리바바가 보물창고를 발견했을 때가 이랬을까?

약 50평 정도 되는 공간엔 한쪽에 물이 흐르고 있었고 환한 빛을 내는 반짝이는 돌들이 사방에 박혀 있었다. 버섯 같은 것도 있었다. 아니지, 저런 걸 산호라고 하나? 아무튼 굉장히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나는 범이 쪽으로 천천히 걷다가 바닥에 있는 걸 하나 손으로 집어 들었다.

【오래된 장인의 가루를 얻었습니다.】

"이게 뭐지…."

일단 주머니에 넣었다. 전에 피라미드에 갔을 때 주워왔던 것들이 포인트로 환원되었던 게 생각났다.

더 걸어서 범이에게 갔는데 녀석 앞엔 깨끗한 물이 종종 흐르고 있었다. 범이의 턱을 보니까 촉촉하게 젖어 있다.

"어디…."

녀석이 먼저 마셨으니 나도 입을 가져가 보았다.

"괜찮네…."

쭙쭙.

물을 충분히 마신 뒤 일어났다. 그리곤 범이의 머리를 손으로 쓸었다.

"지쳤냐."

그르르르릉.

귀찮다는 듯 머릴 흔드는 녀석을 두고 나는 좀 더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내가 들어왔던 구멍 말고 3개가 더 있어.'

일단 한 곳을 들어가 보았다.

아까처럼 구멍이 엄청 작아져서 못 들어가거나 하는 곳은 없었다.

하지만 걷다 보니까 문득 이상한 위화감이 들었다.

'뭐지.'

내가 들어온 구멍에선 인공적인 흔적이 전혀 없었기에 물길이라고 단정했던 거였다. 그런데 여긴 묘하게도 자연적이지 않은 기분이었다.

'파낸 건 아닌 것 같은데….'

참 이상하게도 동굴 자체는 삐뚤빼뚤 단정하지 않았는데 자연이 만들었다면 삐죽한 부분이나 가로막는 것들이 있어야 하건만 저 끝까지 뻥 뚫려 있었다.

'가보면 알겠지.'

망치를 단단히 쥐고 앞으로 더 걸었다.

그렇게 10분쯤 이동했을 때였다.

"…아?"

흐드드득, 흐드득!

소리가 났다.

저쪽 벽에서 새빨간 빛이 나고 있었다.

그건 아주 이상했다.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멋진 벽난로를 가졌군!' 엄지를 치켜들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건 벽난로가 아니었다. 벽 안쪽을 팠는데 그 안에서 용암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라고 말하는 편이 옳을 거다.

"허어…."

위에서 뚝뚝 흘러내리는 용암에선 엄청난 열기가 뿜어지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벽 바깥으로 튀지 않고 아래로 깨끗하게 흘렀다.

나는 옆을 봤다.

아까 내가 놀란 건 용암이 아니었다.

"이게 뭐지…."

다림질할 때 깔아두는 판 있잖나? 그걸 엄청나게 크게 만들어둔 것 같았다.

"철로 만든 것 같은데…."

나는 이게 모루라는 걸 이때는 몰랐다. 살면서 본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겠나?

"설마 누가 있는 건가?"

오싹한 소름이 목을 스쳐 지나갈 때 나는 활을 뽑아 들고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긴장감을 올리며 다른 길로 걸어갔다. 여기까지 온 이상 확인하지 않고 돌아갈 순 없었다.

용암이 흐르는 벽이 있던 공간을 떠나 좁은 길로 들어섰다.

'오르막인가.'

길이 조금씩 경사가 있다는 걸 느끼면서 언제든 시위를 놓을 수 있도록 준비했는데 40분을 걷고 나니 조금씩 땀이 났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이 그 땀을 식혔다.

'바람?'

그렇다. 바람이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지상으로 올라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

그걸 보는 순간 화살을 겨냥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잘못 봤나 했다.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그냥 바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조금씩 내 쪽으로 움직이는 머리 아래엔 머리와 똑같은 굵기의 목이 있었고 사람처럼 팔다리가 있긴 한데 지나치게 길이가 짧았다. 그는 바위에 앉아 있었는데 그의 손엔 꼬챙이 같은 게 들려 있었다.

그의 돌같이 딱딱한 입술이 열렸다.

【재능마켓 언어능력을 사용합니다.】

"이십 년만의 손님이군."

그의 눈은 회색 진주 같았다. 눈동자가 없어서 나를 보고 있는 건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중요한 건 그가 말을 했다는 거다.

"여기는 어딥니까?"

"…이십 년 전에도 꼭 자네같이 팔다리가 긴 인간이 찾아와서 똑같은 질문을 했었지. 여기가 어디냐고."

나는 확인해야 했다.

"그는 어떻게 됐습니까?"

"나갔지. 세상을 지켜야 한다고."

"세상을 지켜…?"

"뭐라고 했더라. '철혈의 구울 사냥꾼'이었던가? 그런 이름이었네만.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기억이 가물가물해."

사냥꾼!

그 단어에 퍼뜩 떠오르는 게 있다.

내가 희생의 원숭이 사냥꾼 아닌가?

묘하게 나보다 멋진 이름이라 입안이 씁쓸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는 여기서 어떻게 나갔습니까?"

"오팔을 땄다네."

"…그 오팔. 어떻게 땁니까?"

"그거 치우고 이쪽으로 올라오게."

그의 몸은 마치 바위로 만든 것 같았다. 본능적으로 들고 있긴 해도 이 화살로 죽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

나는 천천히 그의 곁으로 올라갔다. 그리곤 봤다.

부글부글.

저 아래 구덩이에서 용암이 끓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아까 꼬챙이라고 생각했던 긴 막대엔 실 같은 게 매달려 있었다. 그 실의 끝부분은 용암에 들어가 있었고.

"…뭘 하고 계시는 겁니까?"

"보면 모르나. 먹고 살자고 낚시하잖나."

"저기에 뭐가 삽니까?"

"사니까 이러고 있지. 내가 바보로 보이나? 그리 섰지 말고 앉게. 한참 걸릴 일이야. 낚시라는 건 물고기를 이기고자 하는 게 아니라네. 세월과 시간을 견디는 거지."

물고기라니…. 내가 지금 뭘 들은 거냐.

"내가 오팔을 따줄 순 없네. 하지만 어떻게 따야 하는지 가르쳐줄 순 있겠지. 낚시도 마찬가지야. 물고기를 잡아 줄 순 없네만 낚시하는 법을 알려줄 순 있어. 배워보겠나?"

"아, 가르쳐주시면 뭐든 배우겠습니다."

"좋은 자세야. 이십 년 전의 그 친구와는 무척 다르군."

"그는 어땠습니까?"

"불같았지. 잠시도 가만히 있는 법이 없었어. 그래서 그는 끝내 낚시는 배우지 못하고 떠났다네. 하지만 자넨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받게."

그가 낚싯대를 내게 넘겨주었다.

"우웁…."

그런데 이거 어마어마하게 무겁다. 힘+3이 아니었다면 떨어뜨렸을 거다. 그냥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팔이 바들바들 흔들렸다.

그가 일어났다.

"끄응…."

허리를 움직이니 맷돌이 갈리는 것처럼 뿌드득! 소리가 났다.

"나는 물도 좀 마시고 볼일 보고 올 터이니 기다리고 있게나. 한 열흘 앉아 있었더니 삭신이 쑤셔."

"…열흘이요?"

"허허허! 말하지 않았나?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일어선 그는 130cm정도의 키였다. 머리칼은커녕 눈썹도 없었고 허리 대신 가슴이 곧장 하체와 이어진 것 같은 체형이었다. 그런데 팔다리는 굶었다.

"…."

그가 내려가 버리자 나는 낚싯대를 들고 이마를 구겼다.

지금 이거 나를 시험하는 걸까?

일단 필드에서 말이 통하는 상대를 만났다는 건 무척 반가웠다. 그간 원숭이, 지렁이, 병아리 같은 것들과 어울리면서 얼마나 지성에 목말랐던가.

'저 불구덩이에 뭐가 있을 리가 없잖아….'

라고 생각하며 아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어?"

용암 속에서 뭔가가 스르륵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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