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9화
【변신 드링크(유니크): 접촉한 적 있는 대상의 모습으로 바꿀 수 있다. 최대 지속 시간 1시간. 외형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고유 능력도 똑같이 사용할 수 있다. 사망 시 효과는 사라진다.】
"헛! 유니크!"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서브 미션을 완료했습니다.】
【8,800p를 획득했습니다.】
"허얼, 대박…."
유니크 드링크라니! 유니크 드링크라니! 게다가 서브 미션도 얼결에 완료됐다.
"뭐든 다 변할 수 있다고?"
그러면 내가 백작으로도 그 인어로도 혹은 도화지로도 변할 수 있다는 건가?
규웃?
범이가 다가왔다.
이 녀석으로도 바뀔 수 있다고?
"쩐다…."
커스텀이 있긴 하지만, 그건 순전히 외형만 바꾸는 거다. 이렇게 능력까지 고스란히 카피할 순 없다는 것이다.
레시피를 얻었으니 이제 고급 뱀파이어 피 5개랑 그 빈 병만 있으면 언제든 더 만들 수도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게 뚝딱뚝딱 만들기엔 너무도 값비싼 드링크이기에 함부로 쓸 순 없다.
'말도 안 되지만, 여긴 애초에 그래.'
드링크만이 아니었다. 재능마켓은 시간을 자기 멋대로 주무른다. 물론 전에도 그랬지만, 도화지가 들어오고부터는 더 이상했다.
내가 재능마켓에 들어오면 밖의 시간과 다르게 흘러간다. 그러면 과학적으로 내가 여기서 나갈 때까지는 도화지가 안으로 들어올 수 없어야 한다. 밖은 멈춰 있어야 하는 거니까.
따져 보면 이상하지 않나?
지력+4가 되어 똑똑해졌다 여겼지만, 여전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생각하면 내 머리만 아프지.'
이 부분은 우리가 파티원이라 무언가 다르게 적용되지 않을까? 유추하고 있지만 확실한 건 없었다. 언젠간 밝혀질 일. 더 고민할 시간에 나아갈 길을 찾는 게 더 낫다.
"범아, 아무래도 우린 또 모험을 떠나야 할 것 같다."
규우?
나는 남은 시간 동안 공부하면서 체류 미션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최근 이런저런 일로 공부할 짬이 나지 않았던 것도 있고, 한 번의 성적이 확실한 건 아니었기에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몇 번이고 고심했지만, 공부는 필수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것도 있고, 공부할 핑계라도 있어야 더 자유롭게 나다닐 수도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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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유능한 영업 사원이었다. 10대부터 그는 1등을 놓쳐 본 적이 없었다. 대학도 수석이었고, 뭘 하든 이겨 냈다. 그러던 그가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다. 그건 마치 마법처럼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사랑은 짧았다.
둘 사이에 이어져 있던 끈이 어느 순간 투욱 끊어졌는데, 그 순간 그는 세상을 잃은 슬픔과 허무함에 서울역 노숙자로 전락했다.
돈도 필요 없었다.
과거의 영광도 찬사도 의미 없었다. 이 생활이 몇 달이나 지속됐는지도 이젠 모른다. 유선, 그녀를 다시 한번 볼 수 있다면 이대로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도 이제 안다.
그녀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으으으…."
그는 오늘도 벌레처럼 누워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지만 누구도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 역시 마찬가지다. 유선이 아니면 보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
그렇게 하염없이 누워 있을 것만 같던 그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더니 등이 굽고 버둥거리다가 무릎을 꿇었다.
"으으으…."
언제부터였을까? 그의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참으로 보잘것없구나. 나를 느끼지도 못하다니."
"으으으으….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는 소녀를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네가 오지 않아서 내가 몸소 왔다. 뭐, 사실 지나가는 길에 들른 거지만."
소녀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그는 감히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했다.
"마음이 부서졌구나. 그 매혹은 내가 거둬 주마."
소녀의 손이 그의 정수리에 닿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유선에 대한 기억과 사랑이 한 번에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아… 아아."
해방되었다. 그토록 못살게 굴던 갈망이 다 날아가고, 그 자리에 소녀에 대한 존경과 무한한 충성이 대체됐다.
"피를 탐하는 것들이 넘어와 있더구나. 곧 그가 올지도 모른다. 우리도 준비를 해 둬야겠지. 네가 나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이놈, 죽을 각오로 뛰겠습니다."
"그래, 그래야 착한 아이지."
그 말을 끝으로 소녀는 사라졌다.
"…퀸이시여…."
그가 다시 드러누웠다.
그의 등이 들썩거리는 걸 보면 그는 감정이 너무 격해서 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한동안 계속 그러고 있었다. 어느덧 밤이 오고 사람들의 인적이 뜸해지는 시간이 찾아왔을 때 그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옆의 노숙자에게 개처럼 기어갔다.
옆의 노숙자는 낮부터 마신 술에 잔뜩 취해 있어서 그가 접근해도 쿨쿨 자고 있었다. 그가 노숙자 몸 위로 올라탔다. 그러더니 노숙자의 입을 손으로 벌렸다.
"…헤에엑?"
잠에서 깬 노숙자가 놀라서 버둥댔지만, 그의 힘을 이길 수 없었다. 그리고 그때 그의 벌어진 입에서 뭔가가 꾸물거리며 튀어나와 노숙자의 입으로 들어갔다.
"…커헉. 컥."
벌레는 노숙자의 목구멍으로 깊이 들어가더니 그의 몸속에 똬리를 틀었다. 그리곤 곧장 알을 낳기 시작했다.
"씨를 온 세상에 퍼뜨려라."
"…으으으…."
그는 다른 노숙자를 향해 걸어갔다. 그에게 당한 노숙자들은 배를 움켜쥐고 괴로워하는 것 같다가 축 늘어졌는데, 죽은 건 아니었다.
그는 이날 밤 근처의 모든 노숙자를 습격했다. 그리고 다음 날 서울역엔 모든 노숙자가 자취를 감췄다. 다른 노숙자들을 찾아 모두가 사방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을 신경 쓰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어차피 이들은 있어도 없는 사람, 없어도 상관없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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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못 찾은 건가?"
팀장은 아침부터 상사에게 깨지고 있었다.
"최선을 다해 수색 중입니다."
"최선을 다하면 뭐 하나? 최고가 돼야지! 지금 언론에서 얼마나 혈안이 되어 있는지 자네도 알잖아? 잘못하면 옷 벗는 거 한순간이라고! 내가 말년에 그 꼴을 당해야겠어?"
"찾겠습니다. 꼭 찾아내겠습니다."
"그래, 진작 그렇게 말하면 얼마나 좋나? 나는 자네만 믿고 있을 거야. 믿음엔 책임이 따른다는 거 자네도 알 거고."
"네…."
"나가 봐."
밖으로 나온 팀장은 한숨을 푹 쉬었다.
김유선과 관련된 실종자들을 찾아야 하는데 종적을 모르겠다. 선부용역을 친 그 괴물도 추적해 봤지만 걸리는 게 없었다.
40명에 가까운 사상자를 낸 선부용역 사건은 서울 전체의 경찰을 발칵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다. 일단 경찰이 하나 죽었다. 조폭들이야 몇이 죽어 나가도 사람들이 동정하지 않지만, 경찰은 얘기가 달랐다. 그 유가족들이 매일같이 경찰서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었고, 그걸 기자들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있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
유가족의 마음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15세 정도로 되어 보이는 신원 미상의 소녀가 혼자 선부용역에 쳐들어가서 모조리 맨손으로 죽였습니다라고 말해 주면 그걸 믿을까? 오히려 지금처럼 조폭 간의 세력 다툼이 더 신빙성 있었다.
사무실로 들어가자 팀원들도 이미 만신창이었다. 요즘 집에 들어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다들 실종자와 괴물을 추적하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있었다.
강나은 경위가 팀장에게 물었다.
"뭐라… 세요?"
"뭐라긴, 찾으라 하시지."
"고생하셨네요."
윗사람을 상대하는 건 언제나 피곤한 일이다. 현장이 얼마나 힘든지 알 만한 사람들이 꼭 더 갈군다.
팀장이 보드 판 앞에 서며 그녀에게 물었다.
"경위님, 내가 말이야. 계속 생각해 봤는데."
이제 조금 친해져서 반쯤 말을 놓고 있는 팀장이었다.
"네."
"이런 방식이면 우린 죽었다 깨어나도 괴물을 못 찾을 것 같단 말이지."
이제 팀장은 소녀를 아예 괴물이라고 했다.
"CCTV나 블박만 뒤져선 안 된다는 거 다들 알 때가 됐잖아."
보통은 그렇게 수사하는 게 맞다. 그런데 괴물은 사람이 다닐 수 있는 동선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CCTV에 뭐라도 찍혔어야 했다.
"그러면요? 어떻게 하시는 게 좋겠어요?"
"일단 내 의견은 이래. 서울 전체를 보는 거야. 도로교통공사나 공적 CCTV를 관장하는 곳들 있잖아."
"네."
"그런 곳에서 모니터해 보는 거지."
괴물의 외형은 평범하면서도 특이했다. 얼핏 보면 중학생 같지만, 작고 하얬다. 그렇기에 눈에 더 띌 것이다.
"서울을 벗어나진 않았을 거야. 내 직감이긴 한데 앞으로도 그럴 것 같고."
팀장은 괴물을 찾으면 나머지 실종자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팀장이 저쪽 사내에게 물었다.
"광수대 연락 왔어?"
-아직입니다!
선부용역 대표를 찾으면 바로 연락을 준다고 했었는데, 그쪽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인가 보다.
팀장이 강나은에게 말했다.
"사람을 심어 둬야겠어."
"나쁘지 않은 접근이긴 해요. 하지만 우리 인력이 그렇게 여유로운 편이 아니잖아요."
"일단 둘만 차출하자고. 도로교통공사랑 지하철공사. 서울에서 여기 안 걸리고 어딜 가겠어?"
이 일은 팀장의 의견에 따르기로 하고 강나은은 자기 생각을 밝혔다.
"팀장님."
"어."
"태창 바이오에 대해 조사해 봤는데요, 아무것도 없어요. 선부용역과의 접점도 그렇고 그냥 건실한 기업이에요."
"세상에 깨끗한 대기업이 있겠어?"
팀장의 말에 강나은도 씩 웃었다.
"그러니까요. 저도 그게 이상해서 더 파 볼 생각이에요. 재미있는 건요. 몇 년 전에 태창에서 사람이 몇 명 죽었었는데 그게 기사화조차 되지 않았어요."
"왜 죽었는데?"
"산재라곤 하는데 정확한 건 알려지지도 않았고요. 가족들이 거액의 합의금도 받았더라고요."
"그냥 그렇게 묻었다?"
"만약 우리가 생각한 게 마약이 아니라 신체에 어떤 작용을 하는 특수한 약물이라면 김유선도…."
"시체가 그렇게 썩어 버릴 만하겠지."
장안동 오피스텔에서 발견한 실종자도 사인은 그저 자연사에 이은 부패였다. 어떻게 몸의 수분이 다 빠졌는지 어디로 흘렀는지는 부검의조차 몰랐다. 심장 마비로 욕조에서 죽었다면 그 욕조 상태가 그렇게 깨끗한 게 말이 안 되는데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조심해. 조폭하고 기업은 달라. 만약 우리가 캐고 있다는 걸 알면 변호사들부터 우르르 보낼 거야. 그러면 우린 발이 묶인다고."
"네, 알고 있어요."
팀장은 아직도 선부용역 대표가 여길 찾아왔을 때를 떠올린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고 거물의 분위기를 풍기던 양반이 개처럼 쫓겨 숨어 버렸다. 현장에서 발견된 금고 속에 현금만 10억 원에 금괴까지 있었다는데, 그걸 다 버리고 도주할 만큼 무서운 게 뭐였을까?
'태창이 비밀을 쥐고 있을 거야.'
태창도 선부용역 만큼이나 대표가 베일에 싸인 곳이었다. 이런 곳들은 반드시 뒤가 구리다는 게 팀장 생각이었다. 떳떳하면 왜 세상에 못 나오겠는가?
영장이라도 받아서 탈탈 털고 싶지만, 물증도 없는데 그게 가능할 리도 없었다.
'증거가 필요해, 증거가.'
그가 그렇게 보드 판을 보면서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팀원이 벌떡 일어났다.
"팀장님! 큰일 났습니다!"
"야, 무섭게 왜 이래."
큰일이 났다라. 더 큰 일이 있긴 하나?
하지만 있었다.
그것도 대형 핵폭탄이!
"우진이가! 조우진 형사가…! 병원에서 사라졌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