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98화 (98/277)

#098화

"아이고, 얘가 다음 주부터 중간고사라 그래요. 어찌나 열심히 하는지 보는 제가 안쓰러울 지경이에요."

"아…."

그가 수긍하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의아했다. 공부해서 이렇게까지 핼쑥해지나? 민준의 얼굴은 마치 전쟁터라도 몇 년 다녀온 사람 같지 않나?

"아들, 여기 진짜 좋다. 그치?"

"응, 진짜 좋다. 내가 검색해 봤더니 여기서 두 사람이 밥 먹고 와인 마시고 하면 100만 원이 넘는대."

"백만 원?!"

"그것도 기본 와인 마셨을 때 그렇고 더 비싼 와인 마시면 장난 아닐걸?"

"후와…. 대체 누가 이런 데서 밥을 먹는 거니?"

어머니는 놀란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여긴 이미 오늘 예약도 꽉 차 있었다. 다음 주도, 그다음 주도 금요일 디너는 노쇼가 발생하지 않는 한 예약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냥 와서 밥을 먹는 사람도 있겠지만 주로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이벤트를 이곳에서 하는 연인들과 가족들이 주류였다. 와서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자랑이 되는 레스토랑! 바로 이것이 이든의 자부심이었고, 첫 번째 요리 접시를 능숙하게 들고 오는 그의 표정에도 뿌듯함이 가득했다.

"애피타이저입니다. 송이버섯과 랍스터 살을 찢어 넣어 만든 수프입니다. 본요리에 앞서 위장을 따듯하게 보호해 주고 입맛을 돋워 줄 겁니다. 이 빵을 찍어 드셔도 좋습니다."

요리는 2시간 동안 계속 나왔다.

남해에서 바로 올라온 싱싱한 해산물 요리와 메로구이 위에 캐비어를 뿌린 독특한 음식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한우 등심구이부터 맛조개를 통째로 튀겨서 껍질까지 씹어 먹을 수 있게 만든 식감 좋은 요리도 있었다.

"와…. 엄만 이제 더 못 먹겠다."

그녀는 배를 두드리며 힘겨워했다. 하지만 민준은 아직 시작도 안 한 표정이었다. 극한의 경험을 바로 어제 했던 민준에겐 여기 음식들은 기별도 가지 않았다.

이제 디저트가 나온다.

와인은 주문하지 않았기에 쿠키와 케이크, 아이스크림이 종류별로 플레터 접시에 나왔다. 못 먹겠다면서도 아이스크림을 작은 숟가락으로 떠먹던 그녀를 보며 민준이 말했다.

"여기랑 같이해도 좋을 것 같아. 엄마 음식이 그만큼 인정받는다는 거니까."

"그럴까…? 나는 막상 와 보니까 더 부담스러운데?"

민준이 피식 웃으며 쿠키를 입에 넣었다.

"솔직히 이런 것들도 맛있지만, 난 엄마 음식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해. 자신감을 가져!"

어머니의 정성 들은 요리에 더해 민준이 목숨 걸고 따낸 각종 양념까지 첨가되었으니, 금상첨화란 게 딱 이런 것 아니겠나?

"아, 잘 먹었다. 우리 아들하고 이렇게 데이트하니까 너무 좋네. 아빠도 여기 왔으면 참 좋아했을 텐데."

"아빠 생각나?"

"매일 나지. 우리 아들이 이렇게 멋있게 큰 것도 못 보고 갔으니까."

"나는 근데, 엄마…. 그냥 엄마가 엄마 인생 살았으면 좋겠어. 혹시 나 때문에 다른 사람 안 만나는 거면…."

"아니야. 그런 거."

그녀는 민준을 보며 손으로 턱을 괴고 푸근하게 웃었다. 그리곤 말했다.

"엄만 지금이 너무 행복해서 다른 뭣도 필요 없어서 그래. 괜히 사람 잘못 만나 봐. 울기밖에 더 해?"

그게 진심이란 걸 느꼈기에 민준도 활짝 웃었다.

이든이 다가왔다.

"식사는 맛있게 하셨습니까."

"네! 초대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해요!"

이든이 흐뭇하게 바라보는데, 민준이 작은 종이 가방을 내밀었다.

"저… 이거 선물이에요. 빈손으로 오기가 그래서…. 그때 그분들이랑 같이 드세요!"

"뭘 이런 걸 다! 주시니 감사히 받겠습니다. 오늘은 저희가 함께하는 사업에 대한 결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조만간 제가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녀는 아들의 팔짱을 끼고 레스토랑을 빠져나갔다.

"엄마, 나중에 또 오자. 내가 돈 많이 벌어서 엄마 생일엔 여기서 축하해 줄게."

"호호호호! 말만 들어도 좋네! 근데 엄마는 그냥 우리 아들만 있으면 어디든 상관없는데?"

두 사람을 배웅하고 돌아온 이든이 긴장을 풀었다.

'후…. 분위기는 좋았지?'

아마 누군가는 그에게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손가락질할 수도 있지만, 그는 카밀라 왕을 세계 최고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자존심 따위는 얼마든지 버릴 수 있었다. 최고의 전복을 위해서라면 어부에게 구걸할 수도 있었고 최상급 한우를 위해서는 소의 발도 핥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수석 셰프 두 사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땠습니까?"

"가셨습니까?"

두 사람도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그래요. 잘한 것 같아요. 음식도 남긴 게 없었고."

"오! 다행입니다!"

"그럴 줄 알았다고요! 하하!"

왠지 복수한 것 같은 표정으로 셰프들이 웃어 대자 이든은 아까 받은 종이 가방을 테이블에 올렸다.

"그게 뭔가요?"

셰프의 말에 이든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 사장님 아들이 주고 간 건데…주전부린가?"

종이 가방 안에서 뭔가를 꺼내 앞에 놓았다.

"으음…."

"이건… 꼭… 그거처럼 생겼는데요?"

김밥나라 같은 곳에서 음식을 담아 주는 저렴한 포장 용기 같았다. 심지어 노란색 고무줄까지 둘러 있었다. 2인분에 백만 원짜리 밥 먹고 가면서 설마 김밥이라도 사 온 건가?

'에이, 아니겠지.'

피식 웃으면서 용기를 열었다.

"만두네요…."

"만두네…."

"만두야…."

심지어 만두는 꼴랑 3개밖에 없었다. 천 원어치만 사 온 건가…. 아무리 고등학생이라지만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사 온 성의가 있으니까…. 크흠!"

이든이 젓가락을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별로 먹고 싶지 않았지만, 마침 허기가 질 시간이긴 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하지 않았나?

오물.

"…!!!"

한 입 배어 물자마자 이든은 독극물을 마신 사람처럼 온몸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이든?"

"괜찮습니까?"

혹시 만두가 상하기라도 한 것일까? 셰프들이 궁금해하며 남은 만두에 젓가락을 뻗으려 하자 이든의 눈이 번뜩거리며 눈빛이 변했다. 마치 내가 먹을 거야! 라고 외치듯 말이다.

'설마 이건?'

'저 표정은?'

두 셰프의 머리에 무언가 스쳤다. 하지만 앞서 이든의 젓가락이 다른 만두를 집으려고 하는 걸 보며 셰프 하나가 만두를 낚아챘다.

"으으으…."

이든은 말도 안 하고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셰프를 바라봤다.

우물우물.

입은 계속 만두를 씹고 있는데, 삼키질 않는다.

"제 겁니다!"

"이건 제거!"

셰프들이 이든을 피해 물러나면서 만두를 하나씩 집었다.

"으으으…. 제발…. 부탁입니다."

이든이 좀비처럼 셰프들에게 느릿느릿 걸어왔다.

"한 입만 더…."

"허억…! 싫습니다! 제가 먹을 겁니다!"

"저도요!"

셰프들은 본능적으로 만두를 한입에 넣었다. 그리고 그걸 깨물었을 때.

"…!?"

"…아아아아…."

한 사람은 현기증이 난 사람처럼 비틀거렸고, 다른 한 사람은 털썩 주저앉았다.

대체 이 맛의 향연은 무엇이란 말인가? 차갑게 식어 빠진 만두에서 나온 입 안 가득 퍼지는 풍족함이란! 온 세상 모든 맛을 다 느낄 수 있는 향과 본래부터 내 입 안에 있었던 혀처럼 익숙한 식감은 무엇으로도 형용할 수 없었다.

"미, 미쳤다…."

셰프는 이든이 왜 만두를 삼키지 않고 있는지 절실하게 깨달았다.

"이런 만두가 있다니…."

이든이 셰프에게 다가와서 그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더니 눈물을 뚝뚝 흘렸다.

"흐어어어엉."

왜 자기가 울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사실 이제까지 이들이 먹었던 제육볶음과 김치볶음밥에는 극히 소량의 첨가물만 들어가 있었다. 생수 반 컵으로 밥 100인분을 하고 제육에도 고작 몇 방울의 드링크가 전부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 만두는 오롯이 순도 100% 재능마켓 음식이었다.

"흑, 흐윽, 흐으으으으윽! 내가 한입에 다 먹어 버리다니. 크흐흐흑! 이건 요양원에 계신 우리 어머니 갖다 드렸어야 하는 건데."

이든에게 멱살 잡힌 셰프도 울었다. 역대급 만두를 먹고 행복한 것보단 이걸 혼자만 즐겼다는 죄책감이 더 커져 버렸다.

그들에게 다른 셰프도 다가왔다.

그리고 세 사람은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며 무릎 꿇고 앉아 목 놓아 울었다.

-저분들이 왜 저러시지?

-왜 그러는 건데! 무서워!

보통 사람보다 미각의 트인 최고의 셰프들. 그렇기에 오늘 먹어 본 만두는 이들 인생에서 정점을 찍었다.

.

.

.

어머니와 헤어져 곧장 재능마켓으로 왔다.

냉장고를 열었다.

"…아직도 많네."

냉장고 안엔 수북하게 만두가 쌓여 있었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하나하나 정말 귀하게 아껴 먹었던 적도 있었는데, 이번 필라테스 미션을 하면서 어마어마하게 얻어 버렸다. 그랬기에 3개쯤 빼서 선물로 줄 수 있는 여유도 생긴 거다.

킁킁.

상하지 않았나 냄새를 맡아 봤지만, 저번에 실험한 것처럼 이 냉장고에서 음식은 부패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제대로 포식하고 와서 지금은 만두가 필요 없었기에 냉장고를 닫고 안으로 들어갔다.

【재능마켓 체류 시간이 2시간 11분 남았습니다.】

어제 필라테스 복습하느라 체류 시간을 거의 다 소모했다. 하지만 이미 한번 했던 운동들이라 1,000시간을 초과하진 않았다. 스쿼트는 한 방에 300개씩 해 버렸고, 팔 굽혀 펴기나 철봉 같은 건 힘+3 덕분에 500개를 연달아서 했다.

이러다 보니 보상을 꽤 많이 받았는데, 포인트도 그렇지만 만두가 엄청나게 쌓여 버린 것이다.

그렇게 얻은 '중급 코어'로 아랫배가 더 단단해진 기분이 들었고 몸이 전체적으로 더 가볍고 묵직해졌다. 아직 전투를 하지 않아서 뭐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성장을 했다는 느낌이다.

"애매해…."

남은 체류 시간을 확인하면서 고민했다. 주말이 지나면 바로 중간고사다. 한번 1등 했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학업도 잘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재능마켓에서 공부하는 게 직방이라는 걸 알고 있다.

"역시 해야 하나."

바로 어제 살인적인 운동을 5만 회나 했는데도 나는 다시 재능마켓에 와서 체류 시간 획득 미션을 고민하고 있었다. 중독자라고 해도 할 말은 없었다.

때마침 메시지가 들렸다.

【드링크 제조가 완성되었습니다.】

'호오.'

어제 운동을 하면서 그간 숙성시켜놓은 드링크들이 몇 개 완성됐다. 전투에 쓸 만한 것들도 있었고, 기괴한 것도 있었는데 레시피를 얻었으니 언제든 더 만들 수 있었다.

【자라나라! 얍! 드링크를 만들었습니다.】

【자라나라! 얍! 드링크: 식물에 뿌리면 성장을 촉진한다. 동물에게 뿌리면 털이 자란다.】

"이거 웃기네."

가볍게 웃으며 드링크를 확인했다. 막상 이렇게 전투에 도움이 전혀 안 될 것 같은 것도 상황에 따라 어떻게 쓰일지 모르니까 잘 보관해 둬야 했다.

유리 벽 안을 보면서 나는 팔짱을 끼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긴 해야겠어. 다른 미션들도 기약이 없는데 재능마켓 시간까지 없으면 시간 낭비야.'

이미 필라테스를 해 버려서 재능마켓에서 할 게 없다. 도화지가 들으면 미쳤다고 하겠지만 나는 이제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한 단계까지 왔다.

'중급 코어도 얻었으니까.'

뭐가 나와도 어떻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메시지가 또 울렸다.

【드링크 제조가 완성되었습니다.】

"오?"

드링크는 각 드링크마다 숙성 시간이 제각각이었다. 어느 건 빠르게 되는데, 어느 건 더디다. 그렇다고 더딘 게 꼭 좋은 게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이제 나올 건 하나밖에 없는데?"

백작을 잡고 얻은 고급 뱀파이어 피 5개를 한 병에 때려 넣은 드링크!

【축하합니다!】

번쩍!

눈앞에 찬란한 빛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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