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5화
비명이 길게 울려 퍼질 때였다.
푸욱-!
날아온 화살 하나가 인어 공주의 가슴을 꿰뚫었다.
"민준아!"
도화지가 뒤를 돌아본 순간, 인어 공주의 품에 달려드는 짐승이 한 마리 있었다.
크아아앙!
"꺄아아아아아아-!"
거대한 표범은 인어 공주의 목덜미를 물고 아래로 추락했다.
"헉, 헉! 괜찮아요? 누나?"
민준이가 나타났다.
"으아아아아앙! 미워! 나한테 활 쐈어!"
"제, 제가요?"
"모른 척하지 마! 나쁜 놈아!"
"진짜 기억 안 난다고요!"
이때, 반가운 메시지가 울렸다.
【미션을 완료했습니다.】
【재능마켓에 돌아가서 보상을 수령하세요.】
저 아래를 보니 범이가 뭍으로 나와 몸을 바르르 털고 있었다.
-허억! 여긴 또 어디야?
-어이! 너희 괜찮아?
아저씨들이 경황없이 떠들 때, 민준이가 갯바위를 봤다.
"균열, 여기 있었네요. 다른 냄새 나요? 더 넘어온 게 있을까요?"
"모르겠어. 아직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좋아요. 닫을게요."
고작 인어 한 마리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 그녀의 힘은 유조선도 표류시킬 수 있을 정도였다. 여기가 신안이 아니라 목포 앞바다였다면 대참사가 벌어졌을 수도 있었다.
"너희! 괜찮은 거야!"
"네!"
"흐미, 우리가 단체로 귀신에게 홀렸나?"
어리둥절한 채로 모두는 다시 배로 이동했다.
그런데 갑자기 민준이 말했다.
"아저씨, 아까 저희가 있던 섬에 다시 갈 수 있을까요?"
"거긴 왜."
"아버지 유품을 흘린 것 같아요. 잠깐이면 돼요."
그 말에 도화지가 눈을 깜빡거리다가 생각난 듯 박수를 쳤다.
"저도 가야 해요!"
"너는 또 왜."
"그 뭐지…. 어… 맞다! 갈아입을 속옷 가방이 거기에 있어요!"
"…크흠. 그래?"
여자애라 그런 거에 민감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박장수는 알았다면서 배로 걸어갔다.
"사장님, 괜찮으시겠어요?"
"저도 뭐가 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얼떨떨한 얼굴로 배에 탄 두 사람은 궁금한 게 많았지만, 곧 더 놀라운 일을 보게 된다.
"고맙습니다! 아저씨!"
"라면 잘 먹었어요! 건강하세요!"
아이들을 발견한 섬에 도착한 그들은 곧 허공으로 사라지는 애들을 봤다.
"…."
"…."
그리곤 거짓말처럼 없어졌다.
"사장님… 우리가 귀신을 만난 모양이에요."
사장은 배 한쪽을 봤다.
애들이 먹다 만 컵라면들이 있었다.
"허, 허허허…."
물귀신이 컵라면도 먹나?
.
.
.
【재능마켓에 입장하셨습니다.】
돌아오자마자 나는 도화지에게 구박을 받았다.
"미안하다니까요."
"흥! 너무햇!"
"진짜 기억 안 난다니까요. 그래도…."
나는 도화지를 보며 웃었다.
"누나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진심이었다. 도화지가 아니었다면 우리 전부 몰살당할 뻔했다.
'정신계 공격이 이렇게 무섭다니.'
도화지의 기색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정말?"
"네, 고마워요. 누나 덕분에 살았어요."
"헤헤! 나 잘했지!"
마무리는 범이가 했지만, 그 괴물의 노래를 멈춘 건 분명 도화지였다.
1층으로 내려간 우린 벽장부터 열었다. 20,000포인트도 얻었고, 균열도 닫았다.
거기에,
【인어 비늘×10을 얻었습니다.】
【중급 필라테스 교환권을 얻었습니다.】
【귀마개(레어)를 얻었습니다.】
【인어 손톱(레어)을 얻었습니다.】
레어가 두 개!
우선 귀마개부터 보자.
【귀마개: 귀 안에 넣어 두면 정신계 공격을 막을 수 있다.】
아싸! 이거지!
심플하지만 꼭 필요했던 아이템이 아닌가!
【인어 손톱: 착용하면 평소엔 손톱이지만 언제든지 자라게 할 수 있다. 여성용, 착용 시 귀속.】
"이건 누나가 쓰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에엑? 싫은데? 징그러워! 그냥 팔면 안 돼? 팔아서 다른 거 사자! 스타킹!"
그녀의 말에 재능마켓이 바로 대꾸했다.
【인어 손톱을 700P에 파시겠습니까?】
"뭐어?! 미쳤냐!"
도화지가 버럭 외쳤다.
【인어 손톱을 710에 파시겠습니까?】
"우씨, 이게 장난해? 그거 받고 팔 바엔 내가 쓰지! 너 안 줘! 귀라도 후빌 거다! 흥!"
도화지가 울컥울컥 화내는 걸 보며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나는 도화지가 인어 손톱을 거두는 걸 보며 귀마개를 귀에 껴 봤다.
'오, 평소에도 차고 다녀야겠네.'
쏘옥 들어가더니 감쪽같다.
이것도 좀 진작 줬으면 얼마나 좋아?
"으앗! 나 알바 가야 돼! 먼저 간다! 전화할게!"
도화지가 나가자 나는 유리 벽으로 가서 빈 병을 샀다. 그리곤 오늘 얻은 인어 비늘과 뱀파이어 피를 하나씩 섞었다.
【드링크를 제조했습니다.】
숙성되길 기다리면서 나도 재능마켓에서 나왔다.
"후우…."
그 바다에 다녀온 게 꿈같다. 특별히 다친 곳은 없었지만, 정신계 공격을 당했던 후유증인지 기진맥진이 되었다.
'그래도 잘 풀렸어.'
이 정도면 정말 빨리 해결하고 왔다. 그 아저씨들의 배가 아니었다면 며칠을 거기서 더 헤맸을지도 몰랐고.
'감사합니다.'
우리가 사라져서 깜짝 놀라셨겠지만, 그래도 바다의 평화를 지켰으니 잘된 일 아닌가?
엘리베이터를 타러 발길을 향하는데, 아까 나갔던 도화지가 다시 복도를 뛰어오고 있었다.
"민준아!"
"왜 다시 와요?"
"큰일 났어!"
"왜요?"
"그 피비린내가! 냄새가!"
고된 하루는 이제부터가 진짜였다.
.
.
.
선부용역, 광수대가 들이닥쳤다.
팀장과 강나은 경위는 아직 현장에 있었다. 국과수가 와서 시체들을 수습 중이었지만 워낙 처참했던 곳이라 아직도 끝나질 않았다.
"팀장님."
광수대 윤일권이 팀장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이 사건, 팀장님만으론 해결할 수 없습니다."
맥 풀린 팀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선… 강서경찰서 경찰 한 명이 당했습니다."
"경찰이요…."
"그리고 확인된 사람만 24명이 죽고, 9명이 다쳤습니다."
"24명…."
"선부용역 대표는 도망쳤습니다. 그가 가슴에서 피를 흘리는 걸 제가 봤습니다. 상처가 심할 테니까 인근 병원부터 뒤지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윤일권도 이런 참사는 처음이었다.
"용의자는 누굽니까?"
팀장이 눈을 질끈 감자 강나은 경위가 나섰다.
"신원 미상, 나이는 15세 정도지만 그것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여성은 맞지만, 성인 남자들을 가지고 놀…정도로 훈련된 사람입니다. 처음 그녀가 나타난 건 한강공원에서였습니다. 경찰이 습격당했고, 그녀의 종적은 끊겼었습니다."
"이번에 다시 나타난 거고요."
"네."
윤일권은 히트맨 이 하나가 아닐 거란 생각을 했다.
"그녀 혼자서 이렇게 했고요."
"생존자… 아니, 목격자들의 진술이 일치합니다. 저희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도 그녀만 있었습니다."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아무리 훈련을 받는다고 해도 성인 남자를 그렇게 던져 버릴 수 있는 건가? 그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날 수 있을까?
"최초엔 저 창문으로 침입했다고 합니다."
"여기, 5층인데요."
"체구가 작고 날렵했었습니다. 어떤 방법을 썼는진 모르겠지만 외부로 침입한 것 같습니다."
"으음…."
윤일권이 주변의 피를 봤다. 피가 어떻게 흘렀는지만 봐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이건 불가능해.'
총을 사용했다면 이럴 수 있다. 훈련받은 정예병은 혼자서도 수십을 죽일 수 있다. 하지만 총이 없다면? 칼은 든다고 해서 강서 최대 조직의 깡패들을 혼자 상대할 수 있나?
그래, 한발 물러서서 그렇다고 치자. 일류 칼잡이라서 남다르다고 가정해 보자. 그래도 이렇게 사지가 통째로 뽑혀? 불과 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세계 일류 히트 맨이라고 해도 맨손으론 안 되는 거잖아.'
윤일권이 물었다.
"대표란 사람, 신원은요?"
"이름부터 출신까지 다 가짜였어요. 지문으로 찾는 중입니다."
"그 영배란 친구도 이미 당했을 것 같네요."
"아마도요."
서울에서 가장 큰 조직 중 하나였던 선부용역이 한 사람에게 괴멸됐다. 경찰까지 죽은 사건이라 언론에 쉬쉬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이 케이스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충격이 심하신 것 같은데 이만 들어가시죠."
윤일권의 말에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한마딘 잊지 않았다.
"공조한다는 말 잊지 않았습니다."
윤일권도 웃으며 끄덕거렸다.
"이 케이스에서 나온 건 뭐든 다 알려 드리죠."
"갑시다, 경위님."
팀장이 밖으로 나가자 강나은도 따라나섰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강나은이 물었다.
"정부에서 비밀 병기라도 키우는 걸까요?"
그걸 직접 보지 않은 사람은 믿지도 않을 것이다. 사람을 그렇게 던져 버릴 수 있는 여자가 또 있을까?
"여기 대표가 필사적으로 도망친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선부용역도 이 지역에서는 공포의 대명사였어요. 적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무서운 선부용역이 여자애 하나한테 당했네요."
"…."
팀장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조우진 형사의 복수를 하고 싶은데 괴물을 봐 버렸고, 그 괴물은 보고 나니 복수심보다는 공포심이 더 커졌다.
"팀장님, 아까 목격자 중에 누가 그랬잖아요. 원래 여기 대표가 태창 바이오를 치러 가려고 했었다고."
분명 그런 소릴 들었다.
"혹시 태창 바이오에서 먼저 친 거 아닐까요?"
음모론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괴물을 봐 버렸고 '바이오'라는 이름을 붙인 제약 회사가 심히 의심스러웠다. 경찰서로 찾아왔던 선부용역 대표는 분명 만만한 자가 아니었다. 분위기도 장난이 아니었는데, 아까 본 그는 짐짝처럼 내던져지고 있었다.
"생체 실험 같은 거 한 게 아닐까요? 마약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도 우리 관할은 아닙니다. 우리는 19번 방 살인 사건으로 움직이는 거예요."
"에이, 저희가 언제부터 그런 거 따졌다고요. 혹시 저 걱정돼서 하는 말씀이시라면 괜찮아요. 저도 제 몸은 지킬 수 있도록 훈련받았어요."
"…."
훈련이라….
팀장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자 강나은이 뜻을 알겠단 듯 웃으며 자신의 총을 손으로 두드렸다.
"이게 있잖아요."
확실히 총이 아니면 그 괴물은 잡을 수 없을 것 같다.
"광수대에서 주변 CCTV 다 확보하고 차량까지 뒤질 겁니다. 우리는…."
"그 괴물을 찾아봐야겠죠?"
그녀의 말에 팀장은 갑자기 소주 생각이 났다. 그만큼 목이 타들어 간 것이다.
.
.
.
"죄송해요오오오! 사장님! 오늘만 쉴게요! 내일 두 배로 열심히 하겠습니당!"
본래는 내일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냄새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말에 멈출 수가 없었다.
"정말 죄송해요!"
통화를 마친 도화지가 웃었다.
"괜찮아. 이 정도론 안 잘릴 거야. 그동안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우린 지금 도심 한복판에 있었다.
저쪽에 빌딩에 걸린 대형 TV에 뉴스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오늘 강서 지역에서 조직폭력배 간의 집단 난투극이 일어났습니다. 지금 현장에 기자가 나가 있는데요. 자세한 소식이 들어오는 대로 다시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걸 본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시대가 어느 땐데 아직도 조폭이 날뛰어?
-무섭다….
-죽은 사람도 있나 봐!
나는 오토바이에 타고 도화지에게 말했다.
"지금도 멀어지고 있어요?"
"그런 것 같아. 달콤한 건 저쪽으로, 피비린내는 저쪽으로 가고 있어."
도화지가 뒷좌석에 앉으며 헬멧을 썼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게 분명해요."
지금을 놓치면 안 될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빨리 달릴 거예요. 꽉 잡으세요."
"응. 이젠 적응됐어!"
나는 오토바이를 손으로 쓸며 말했다.
"가자, 범아."
오토바이가 질주했다.
"꺄아! 너무 빠르잖아!"
적응은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