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94화 (94/277)

#094화

소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빠지직.

백작의 턱이 으스러졌다.

그녀에게 물리 법칙은 어떤 의미도 없었다. 그녀의 권능은 폭력 그 자체. 노출당하는 순간 대항할 수조차 없었다.

"…으으…."

백작의 몸이 위로 들렸다.

소녀가 팔을 천천히 들어 올리자 백작의 몸도 위로 떠올랐다.

"요즘 계속 누가 지켜보는 것 같더라고. 뒤통수가 간질간질한 거야. 너도 그 기분 알지? 그래서 익숙한 냄새를 따라왔어."

"…끄으으으…."

"그게 너였구나? 어쨌든 만나서 반가웠어."

그녀의 다른 손이 백작의 심장을 노렸다. 살을 파고드는 손길은 두부를 칼로 찌르듯 어떠한 저항도 없었다. 스륵 안으로 들어온 그녀의 작은 손이 그의 심장을 만졌다.

"크흑…."

어떤 소리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백작의 심장은 그녀의 손에 잡혀 이렇게 터졌을 것이다.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탕탕!

공포탄이 발사됐다.

-진짜 쏠 거야!

-멈춰!

소녀의 눈이 얼굴이 뒤로 돌아갔다.

"…칫."

그녀의 뇌가 기억해 냈다. 인간은 얼마든지 죽일 수 있겠지만 경찰은 총이라는 무기도 있고, 얽혔다간 앞으로도 계속 성가실 것이다. 온전한 힘을 되찾기 전엔 참아야 했다.

화악-!

백작의 몸이 저쪽으로 날아갔다.

-허억!

-무슨 짓이야!

그와 동시에 소녀가 계단으로 향했다.

백작은 입구의 경찰들에게 날아가면서 몸을 뒤집었다. 그리곤 바닥에 착지하면서 곧장 밖으로 뛰었다.

-꺄아아아아!

-야! 너! 미쳤어!

도로로 뛰어든 백작은 차를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 반대쪽으로 질주했다.

"…."

"…."

총을 든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급히 말했다.

"제가 올라가겠습니다!"

팀장의 말에 강나은 경위가 도로 쪽으로 뛰었다.

"저는 대표를 따라갈게요!"

"조심하셔야 합니다!"

"팀장님도요!"

팀장은 총을 들고 계단으로 올라가면서 생각했다.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잠복을 하고 있었기에 곧장 올 수 있었다. 그런데 이마저도 늦었다.

"헉, 헉!"

전력으로 뛰었다. 옥상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소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다른 건물들과의 거리는 5미터 이상이었기에 그걸 넘을 순 없을 거라 생각했건만,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그는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그제야 대표 이사실로 간 그는 봤다.

"맙소사…."

이제까지 수많은 강력 사건을 접했지만 이런 건 보지 못했었다.

팔, 다리, 머리, 몸통.

인간을 이루는 사지가 장난감처럼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적어도 수십 명이었다.

-왜애애애애애앵!

경찰차가 속속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도망쳐!

-대표님은?

-몰라! 일단 튀어!

다른 층에 있던 조직원들이 건물을 빠져나가는 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팀장은 움직일 수 없었다.

이런 참상을 보고 어떻게 제정신일 수 있는가.

머엉….

그가 털썩 주저앉아 있는데, 누군가 들어왔다.

"팀장님! 허어억…."

강나은 경위였다.

"우왜애애애액!"

그녀는 참을 수 없었다.

가서 등이라도 두드려 주고 싶었지만, 팀장은 온몸에 기운이 다 빠져버렸다.

'그 괴물이었어.'

팀장은 이제 그걸 신원 미상의 소녀라고 부르지 않는다.

'우진아….'

그건 사람의 가죽을 뒤집어쓴 괴물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이 이런 일을 벌일 수 없을 테니까.

.

.

.

인간이 위대한 이유는 환경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박장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20년 차 낚시꾼이었고, 그의 삶에서 낚시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신안.

이미 몇 번 와 본 곳이지만, 여기가 매력적인 것은 태초의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 선장님, 저게 뭐예요? 보여요?"

작은 낚싯배엔 선장과 그만 있었다.

"불꽃인데요?"

"누가 조난당한 거 아니에요? 가 봐요!"

"알겠습니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불꽃은 주기적으로 쏘아지고 있었는데, 신기한 게 조명탄 불꽃이 아니라 진짜 횃불같이 보였다는 거다.

"어? 사람이 있어요!"

"봤습니다!"

배가 작은 무인도로 향했다.

그리곤 박장수가 깜짝 놀랐다.

"애들이잖아요? 이봐! 너희 괜찮아?"

이렇게 황당할 수가!

낚시 20년 만에 가장 놀란 순간이었다.

배가 섬에 닿았다.

"너희!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아이들은 믿기 힘든 얘길 했다.

"놀러 왔다가 물에 빠졌다고? 그게 말이 돼?"

말이 안 되면 어쩌겠는가. 그게 아니면 배도 없이 얘들이 여기까지 어떻게 오겠는가.

"경찰엔 신고했고?"

"핸드폰이 물에 빠져서 먹통이에요."

남자애의 말에 박장수는 한숨을 크게 쉬면서 말했다.

"우리가 지나갔기에 망정이지. 너희 진짜 큰일 날 뻔했다고. 어서 타라, 우리가 큰 섬까지 데려다줄 테니까. 거기엔 육지로 가는 배들이 다녀."

"고맙습니다!"

여자애는 품에 고양이까지 안고 있었다.

"하…. 정말이지. 이게 무슨 일이냐. 밥은 먹었어?"

박장수는 애들에게 컵라면을 줬다.

"감사합니다!"

"우왕! 라면이다!"

그와 선장은 애들을 바라보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이렇게 어린 애들이 신안까지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본섬엔 관광객들도 오곤 하지만, 이 근처는 낚시꾼들도 잘 찾지 않는 오지 중의 오지였다.

"운 좋은 줄 알아. 너희 진짜 큰일 날 뻔한 거라고."

"고맙습니다!"

"진짜 맛있어요! 헤헤!"

후루룩! 컵라면을 먹는 애들 표정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며칠 더 여기에 있었다면 탈수와 굶주림 때문에 사경을 헤맸을 것이 분명했다.

이때, 여자애가 이상한 소릴 했다.

"달콤한 냄새가 움직인 것 같아."

"지금요?"

"그건 잘 모르겠어. 여긴 머니까 내게 전달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모르는 거거든. 이게 어떤 느낌이냐면 아주 멀리 있는 냄새가 춤을 추는 것 같아.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겠지?"

애들은 연인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하는 행동을 보면 남매도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물에 빠지게 됐는지 물어보려던 박장수가 흠칫했다.

"사장님, 배 돌려요. 이쪽이 아니잖아요."

곧 어두워질 텐데 애들부터 본섬에 데려다줘야 하지 않겠나 생각했는데, 배가 반대편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때, 박장수의 귀에 이상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어어…."

그리곤 듣자마자 그의 눈동자가 흐리멍덩하게 풀렸다. 이미 배를 모는 사장님도 이 소릴 들은 후였다.

"민준아."

도화지는 컵라면을 내려놓았다.

"노래가 들려."

그건 콧소리로 허밍을 하는 것 같은 그런 소리였다. 파도와 함께 어우러져서 아주 작게 들렸지만, 그럴수록 더 애간장이 녹았다. 감질난다고 해야 할까? 먹다 만 컵라면보다도 매혹적이었다.

"민준아?"

문득, 도화지가 민준의 몸을 흔들었다. 하지만 어느새 민준이는 눈이 풀려 있었다. 아저씨들도 멍하니 서서 한곳만 바라봤다.

"히익? 왜 이래? 장난치지 마! 무섭잖아!"

도화지는 민준의 뺨을 찰싹찰싹 때렸지만, 민준은 반응조차 없었다.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란 표정이었다. 이렇게 무기력한 표정의 민준이는 처음 봤다.

"이… 씽…."

괜히 서러워지는데, 이 순간에도 배는 작은 섬 쪽으로 흘러갔다.

"정신 차리라니까!"

간지럽혀도 보고 흔들어도 봤지만, 민준은 영혼이 빠진 사람 같았다.

그러다가 도화지가 얼굴을 돌렸다.

"…?"

섬에 닿았다.

한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갯바위에 사람이 앉아 있었다. 벌거벗은 여자는 머리가 길었다.

"인어… 공주?"

그냥 보자마자 떠올랐다. 그녀는 입술을 모아 노래하고 있었는데, 그 노랫소리에 이끌리듯 아저씨들이 배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저거였구나!'

미션의 정체를 알게 된 도화지가 화들짝 놀랐다.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해?'

죽여 본 거라곤 버섯밖에 없는 그녀였기에 패닉에 빠졌는데, 민준이까지 배에서 내렸다.

"야, 야! 안 돼!"

도화지가 두 손으로 민준이 몸을 밀어 봐도 힘으로 민준이를 이길 수 없었다. 더 황당한 일은 배에서 꾸벅꾸벅 졸던 범이가 발딱 일어나더니 뛰어내렸다.

'그렇지! 범이라면 저 괴물을 이길 수 있을….'

생각이 짧았다.

규우우웃.

범이도 민준이처럼 멍청한 눈으로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종을 떠나 수컷이라면 무조건 걸려들 수밖에 없는 절대복종!

"이게!"

배로 올라가서 고기 손질용 칼을 잡고 다시 내려온 도화지가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달려서 갯바위로 올라갔다.

"야! 그만하지 못해?"

노랠 부르던 여자가 얼굴을 돌렸다. 노랠 멈추진 않았다. 신기하다는 듯 눈으로만 도화지를 응시했다.

"그만하라니까!"

도화지가 슬금슬금 다가갔다. 하지만 그녀는 겁을 먹지도, 움직이지도 않았다. 다만 입술을 더 동그랗게 모았다.

그때였다.

갸우우우웅!

불쑥 뛰어오른 범이가 도화지를 향해 달려들었다.

"꺄앗! 뭐얏!"

작고 귀여운 녀석이지만 그 앞발에 담긴 힘은 엄청난 것이었다. 만약 도화지가 아니었다면 일반 여자애는 즉사다. 하지만 퍼억! 맞았음에도 도화지는 견뎠다. 조금 비틀거린 게 전부였다.

방어력+11.

"너 미쳤어! 혼나 볼래!"

범이의 엉덩이를 걷어찬 도화지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세 사람을 보았다. 아저씨들은 무서운 얼굴로 그녀를 노렸고, 심지어 민준이까지 달려오고 있었다.

"엄마야!"

도화지는 기겁하며 뒤로 돌아서서 뛰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별로 없었다. 아저씨들은 어떻게 해 보겠는데, 민준이 힘을 이길 수 없을 거란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뾰족한 바위를 밟고, 훌쩍 뛰었다. 그런 그녀 옆으로 뭔가 빠른 게 지나갔다.

피잇!

화살이었다.

"히이이익! 민준이 너! 나한테 쐈어? 진짜로 쐈어! 나중에 가만 안 둔다! 너!"

다음 화살을 준비하는 걸 보며 도화지는 입을 다물고 바위 사이를 뛰었다. 그리곤 인어 공주가 있는 바위까지 뛰어올랐다.

기다렸다는 듯 인어 공주는 긴 손톱을 내보이면서 활짝 웃었다. 그 손톱이 얼마나 긴지 회칼 10개를 손에 달아 놓은 것 같았다.

지금도 휘파람처럼 노래가 들려왔다. 입술을 모은 인어 공주가 도화지를 향해 섰다. 다가오면 손톱으로 간을 꺼내 먹을 거다. 숙련된 사냥꾼인 그녀는 바다에선 무적이었다.

"그만하지 못해! 이제 나도 봐줄 수 없다고!"

도화지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인어 공주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에 맞춰 인어 공주의 손톱도 도화지의 가슴을 향해 움직였다. 이제 저 비늘보다 연약한 살결을 찢어 맛있는 간을 빼 먹을 시간이었다.

그랬는데.

포옥, 단단한 고무에 나무젓가락을 찌른 것처럼 그녀의 손톱이 막혔다.

"…?!"

그러더니 정신이 번쩍했다.

빠악!

도화지의 주먹이 그녀의 얼굴을 때린 것이다.

"그만하라고 했잖아!"

칼을 가져오긴 했지만, 그걸 휘두를 용기는 없던 도화지였다. 그래서 그냥 때렸다.

"언니가 말하면 좀 들어! 좀!"

퍼퍼퍼퍽!

도화지는 인어 공주의 입을 집요하게 노려 때렸다.

버억! 벅벅벅!

인어 공주도 가만있진 않았다. 날카로운 손톱으로 계속 도화지의 몸을 뚫으려고 할퀴었지만, 도화지의 피부엔 빨간 자국만 남을 뿐이었다.

'어떻게?'

인어 공주의 눈동자가 불신으로 흔들릴 때, 도화지의 주먹이 인어 공주의 이빨을 부러뜨렸다.

"꺄…."

고통과 함께 노래가 멎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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