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92화 (92/277)

#092화

'놈이 나를 찾는 건가?'

그런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역시 부하였던 게 맞았을까?'

얼마 전 잡은 뱀파이어가 백작의 졸개가 아니었을까 의심하던 차다. 그런데 이렇게 반응이 바로 온 걸 보니 더 확실해졌다. 하지만 중요한 건, 놈이 동요할수록 내겐 기회가 더 많이 생긴다는 것이다.

"혹시 발견하더라도 괜히 따라가지 말고, 그냥 모른 척하고 계세요. 절대 접근하지 말고요!"

-알겠어! 또 전화할게!

나는 신림으로 향했다. 아슬아슬하게 10시가 되기 전에 가게로 들어갔다. 오늘도 어머니는 지친 기색이었지만 행복한 얼굴이었다.

"왔니?"

"어. 많이 바빴지?"

"아니야. 알바가 잘해 줘서 괜찮았어. 손이 얼마나 야무지던지. 밥은?"

"배고파. 남은 거 대충 줘."

"아니야! 공부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엄마가 맛있는 거 해 줄게! 잠깐만 기다려!"

벽을 보니 메뉴가 두 가지로 줄어 있었다. 이제 어머니 가게에선 된장찌개와 제육볶음만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손님이 바글바글했다.

그런데 가게 문이 열렸다.

"어?"

나는 들어서는 남자를 한눈에 알아봤다.

"안녕하십니까!"

카밀라 왕의 이든이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그런데 오늘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뒤로 두 사람이 더 있었다.

"어머? 어서 오세요. 근데 영업 끝났는데요…."

"알고 왔습니다! 하하! 전에 다 못 했던 사업 얘길 하려면 이 시간밖에 없다고 생각해서요. 실례지만 10분만 시간을 내주시겠습니까? 자, 다들 앉지."

막무가내로 보였지만, 이든은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내게 꾸벅 머리 숙여 인사하며 말했다.

"오늘은 저희 수석 셰프 두 사람도 같이 왔습니다."

그 말에 어머니가 주방 쪽에서 물었다.

"식사는 하셨고요?"

"이른 저녁을 먹긴 했습니다만 차려 주시면 감사히 먹겠습니다! 하하!"

"알겠어요. 아들, 물 좀 갖다 드릴래?"

내가 컵과 물병을 가져가는데, 이든이 셰프들과 얘기했다.

"아무것도 상상하지 마세요. 그냥 먹고 음미하고 감탄하면 됩니다."

"대체 무슨 맛이길래…."

"궁금해 미치겠습니다."

이든은 혼자 아는 비밀을 자랑하듯 유쾌하게 웃었다.

"이 맛만 더해지면 우리 카밀라 왕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이 될 겁니다. 내 인생과 경력을 걸고 장담할 수 있어요."

나는 빈자리에 앉아 웃으며 이든과 셰프들을 바라봤다. 15분쯤 지나자 어머니가 쟁반을 내왔다. 그 위엔 김치볶음밥과 된장찌개가 있었다.

작은 쟁반을 내게 먼저 준 뒤 큰 쟁반을 이든 식탁에 놓았다.

"이건 볶음밥입니까?"

"네. 메뉴는 떨어졌고, 마침 아들 밥 차려 주려고 하던 거에 더한 거지만, 드실 만하실 거예요."

산처럼 쌓인 볶음밥을 보면서 세 남자는 자신의 앞접시에 볶음밥을 옮겨 담았다. 셰프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고작 김치볶음밥이라니?

이때, 나는 이미 크게 한술 떠서 입에 넣고 있었다.

'크으, 맛있어!'

참기름도 들어갔지만, 그보다 더 강력한 첨가물 덕분에 이 김치볶음밥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로 탈바꿈해 있었다. 내가 허겁지겁 밥을 퍼먹고 있자 그들도 한술 뜨기 시작했는데, 역시나 반응은 뜨거웠다.

"허억…!"

"이, 이 감칠맛이 대체 무엇?"

"이, 이봐요! 나눠 먹어야죠! 먹고 덜라고요! 다 덜지 말고!"

이든이 기겁했지만, 셰프들은 자기 접시가 흘러넘칠 만큼 볶음밥을 퍼내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결국 이든이 자기 앞으로 볶음밥 접시를 가져왔는데, 셰프들은 걸신들린 사람들처럼 볶음밥을 퍼먹었다.

맛 평가?

그런 걸 할 여유가 어디 있나? 빨리 씹어 삼키지 않으면 다른 경쟁자들이 다 퍼먹어 버릴 건데!

'저럴 만도 하지.'

나는 그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내가 재능마켓에서 그 만두를 먹어 봤을 때처럼 저들도 이 김치볶음밥에 흠뻑 빠졌을 거다. 이건 누구나 아는 맛에 이 세상의 맛이 아닌 게 섞여, 완벽한 조화를 이룬 하나의 작품이었으니까.

"호호호! 천천히 드세요!"

내 음식을 맛있게 먹어 주는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요리사들은 행복을 느낀다. 두 셰프들도 그런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요리사가 아닌 손님이 되어 있었고, 맛있는 거 먹을 때의 즐거움은 직업을 가리지 않았다.

"대단합니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리신 겁니까?"

이미 볶음밥은 쌀 한 톨도 남지 않았다. 어머니가 꽤 넉넉하게 준 것 같은데도 게눈 감추듯 싹 사라진 상태였다.

이든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손맛입니다. 이 김치도 평범한 것이고, 심지어 고춧가루는 중국산 쓰셨답니다."

"허얼…."

"중국산이라니…."

그 말에 어머니가 호호호! 웃으며 민망한 듯 말했다.

"워낙 비싸야죠."

그럴 만도 하다. 셰프가 벽의 메뉴를 봤다.

"오천 원…."

된장찌개나 제육볶음이나 둘 다 오천 원이다. 이 단가를 맞추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국산 쓰고 음식값을 올리자니 그건 어머니가 싫다고 하셨다. 오천 원도 부담되는 사람들이 찾는 식당이었다.

"어때요? 신메뉴인데. 호호!"

"엄마?"

이건 나도 처음 들었다.

"남는 김치가 아까워서 그래."

"늘리면 힘들다니까."

"재미있는데, 뭘."

우리 말을 들은 이든이 중얼거렸다.

"남는 김치가 아까워서 만든 요리라니…."

"하아…. 충격인데요. 솔직히 말해서 한 3인분 더 먹고 싶은 기분입니다."

"총괄께서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뭐든 좋으니 우리 카밀라 왕에서 내놓을 수 있다면 어느 나라 사람이든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사실 자존심 상하지만 이런 김치볶음밥은 만들 수 없거든요."

한탄하듯 말하는 셰프를 보면서 이든도 공감한 듯 말했다.

"그래서 제가 또 온 겁니다. 사장님, 잠시 얘기 좀 나눌까요?"

어머니가 의자에 앉아 대답했다.

"그러세요."

"제가 어제 잠도 못 자고 생각해 봤는데, 사장님께서 직접 저희 카밀리 왕에 와 주시는 게 베스트겠지만, 그건 안 되시겠죠?"

"죄송해요. 저는 지금이 좋아요."

"그럴 것 같았습니다. 이런 맛엔 언제나 고집이 담겨야 하는 거겠죠."

셰프들도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언제든 마음 바뀌시면 저희 카밀라 왕 수석 셰프 자리를 드리겠습니다. 잠실타워 본점으로요. 하지만 그 전에 사장님 식당과 MOU를 맺고 싶습니다."

"그게 뭔데요?"

"일종의 업무 협약입니다. 레시피 유출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이곳에서 조리된 음식을 저희가 플레이팅해서 손님들께 드리겠습니다. 게다가 저희는 코스 요리라서 사장님 음식은 최고급 코스의 소량만 나갈 거니까 괜찮으시다면 하루 100인분만 저희 쪽으로 보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뭘로요?"

"손맛만 유지된다면 음식 종류는 상관없습니다. 방금 그 김치볶음밥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렇죠?"

두 셰프도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오히려 저희 요리가 상대적으로 맛없게 느껴질까? 우려됩니다."

"이런 자극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코스 가장 마지막에 내야죠. 디저트 직전에요. 작은 아이스크림 컵으로 딱 하나만큼만 주는 겁니다."

"크으… 감질나겠는데요?"

이든이 말했다.

"100인분 기준 100만 원 드리겠습니다. 어떤 조건도 없고 어떤 제약도 없습니다. 그냥 납품만 해 주십시오. 저희는 그거면 됩니다."

"100만 원이나요? 너무 많은데요…."

어머니가 깜짝 놀랐다. 하루 100만 원이면 한 달에 삼천만 원이다. 재룟값이 들겠지만, 그걸 빼도 엄청난 돈이었다.

"그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장님! 저희와 함께하시겠습니까?"

"워낙 갑작스러워서… 생각 좀 해 볼게요."

"으음…. 결정을 돕고 싶은데요. 혹시 조만간 저희 카밀라 왕 디너에 와 주시겠습니까?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이든의 말에 셰프들도 외쳤다.

"최상급 재료와 신선함으로 저만의 특별한 요리를 대접할 겁니다! 꼭 와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날짜와 시간만 알려 주시면 차도 보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마다하는 것도 그랬다. 하지만 곤란한지 엄마가 머뭇거리는 것 같아 내가 나섰다.

"그래, 엄마. 나랑 데이트하자."

"그럴까?"

"이왕이면 시험 전에 가자. 공부해야 돼."

"그래, 알았어!"

금요일 오후 6시. 카밀라 왕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날 뵙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좋은 요리 고맙습니다!"

그들이 시끌벅적하게 나가자 어머니가 푸근하게 웃으며 의자에 앉아 나를 보았다.

"재밌는 사람들이네."

"좋은 기회인 것 같아. 엄마, 금방 부자 되겠는데?"

"나중에 너 장가갈 때 집이라도 하나 해 주려면 더 열심히 해야지."

대학이 아니라 집이라니? 그새 목표가 어마어마해졌는데?

"집은 무슨. 그건 내가 알아서 해."

"호호호! 엄마가 해 줄 건데?"

엄마가 환히 웃었다.

그러며 엄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걱정 말어."

요즘 장사가 잘돼서 그런지 어머니는 새로운 목표를 두고 계시는 것 같다.

"100인분에 100만 원…. 호호! 좋긴 하다. 그치? 홀도 좁아서 손님도 많이 못 받는데."

"힘들까 봐 그게 걱정이지."

"사람 더 구하면 돼."

어머니가 요즘처럼 환한 웃음을 짓는 걸 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근데 김치볶음밥, 진짜 하게? 일이 너무 많은데."

"호호호! 엄마가 알아서 해! 너는 공부나 열심히 해!"

어머니의 요리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

.

『다음 주에 첫방인데, 와 줄 거지?』

-그럼, 당연하지.

'시간 참 빠르네.'

어느새 다음 주 토요일이면 예원이가 벌써 신곡 발표를 한단다. 노래도 잘하고 열심히 하니까 꿈에 한 발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결정적으로 예원이한텐 서큐버스의 파운데이션이 있다. 그걸 바르고 무대에 섰을 때 어떤 반응이 터질지 나는 예상할 수 있었다.

-민준아! 잘 가!

-내일 봐! 민준아!

나는 요 며칠 일부러 백작을 찾아가지 않았다. 재능마켓에도 가지 않았다. 평범하고 흔한 학생처럼 집과 어머니 식당만 오가면서 생활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감각은 그 어느 때보다 주변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 날 못 찾는다면 안심해도 되겠어.'

혹시나 했다. 백작 냄새가 강남까지 왔다기에 나를 따라온 게 아닌가 싶었다.

도화지에게 전활 걸었다.

"누나, 별일 없죠?"

-응!

요즘은 도화지와 가장 많이 통활 했다.

"다른 냄새들은요?"

-똑같아. 달콤한 건 서쪽에서 안 움직이고 나머지는 멀어.

"알겠어요. 혹시 새로운 냄새 맡으면 바로 전화해야 해요."

-응!

그 달콤한 냄새라는 게 거슬렸지만 일단 백작부터 처리하고 확인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받은 미션도 아닌데 위험을 감수할 순 없었다.

그렇게 오늘도 어머니 가게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균열 경보. 재능마켓이 입장하세요.】

"…?"

갑자기?

지이이이이잉.

도화지에게 바로 전화가 왔다.

-들었어?

"네."

-가야 하는 거지?

"아마도요…."

-알았어. 거기서 봐!

안 가면 또 무슨 협박을 할지 모르기에 나는 깊은 한숨을 쉬며 발길을 돌렸다.

'균열이라니….'

오키나와에 갔던 일이 떠올랐다. 그런 일이 또 발생하면 도화지가 감당할 수 있을까?

'어차피 피할 순 없어.'

이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나 자신이 점점 보통 사람에서 멀어지는 것 같았지만, 내가 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할 수 없을 것이고 희생자가 또 나타날 것이었다.

'막 균열이 열렸을 때, 처리하는 게 가장 좋기도 하고.'

경험상 하층민이 이쪽으로 넘어온 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점차 강력해진다. 일본의 구울과 한강의 개구리는 어렵지 않게 처리했었지만, 서큐버스는 지금 생각해도 무섭다.

'이번엔 어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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