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91화 (91/277)

#091화

팀장과 강나은 경위가 영화관 야외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광수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무슨 냄새를 이렇게 잘 맡아?'

팀장이 인상을 쓰며 광수대 대장 윤일권에게 걸어갔다.

"요즘 광수대는 사건만 나면 어디든 가나 봅니다?"

"그러는 팀장님은요? 여긴 서초 관할이 아닌데요?"

"…실종자를 제가 어제 만났었습니다."

"아, 그러셨습니까?"

윤일권이 그건 몰랐다는 것처럼 미소를 짓더니 팀장을 이끌었다.

"여기 보입니까? 구멍 세 개."

"핏자국이군요."

"피가 중요하다기보다는 이 구멍을 자세히 보셔야 합니다."

"음…. 뭐였습니까?"

팀장이 이마를 구기자 윤일권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가정이지만 실종자는 여기서 당했습니다. 혈흔이 튄 자국으로 보면 목, 배 위쪽과 심장. 이렇게 세 곳을 공격당한 것 같고요. 돌아서 있다가 갑자기 당한 겁니다. 작살에 맞은 사람처럼 대항도 할 수 없었겠죠."

"이걸 광수대가 왜 궁금해하는 겁니까? 그냥 조폭 사건인데요. 흉기는 찾았습니까?"

"흉기라…."

묘한 웃음을 매단 윤일권을 보다가 팀장은 몸을 돌렸다. 더 얻을 게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팀장과 강나은 경위가 사라지자 윤일권의 옆으로 사내가 다가왔다.

"히트맨이 확실합니다. 화살로 어떻게 벽을 뚫었는진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히트맨이지. 큰 석궁 같은 걸 썼을 거야."

윤일권이 손으로 코를 비볐다.

"범행 패턴이 변했어. 지금까진 피해자들 시체를 두고 갔다면 이젠 시체조차 남기지 않으려는 모양이야."

"우리가 추적하고 있다는 걸 알아서일까요?"

"아마도 그렇겠지. 더 철저하고 교묘해지고 있어."

"그런데 히트맨이 왜 강서 조폭을 건드렸을까요?"

"끝이 닿아 있다고 보는 수밖에. 어쩌면 이 조폭이 하청이었을지도 모르고. 파 보자고. 히트맨이 움직였다는 건 분명 선부용역과 무슨 일이 있는 거야. CCTV는?"

"실종자가 올라온 것까진 확인되었습니다."

"나가는 건 없고?"

"네."

"대단하군."

쇼핑몰 특성상 여기저기 CCTV가 설치되어 있는데, 건장한 성인 남자를 흔적도 없이 치운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어제 이 주차장에 드나든 모든 차량을 수배 중입니다."

"차가 아닐 수도 있어. 계단하고 입구도 뒤져 봐. 큰 가방 같은 걸 든 사람이 있을 거야. 목격자는 전혀 없지?"

"영화가 상영 중이었으니 주차된 차가 있었을 겁니다. 블랙박스만 확보하면 특정할 수 있을 거고요."

"좋아, 일하자고."

.

.

.

『백작, 뱀파이어, 레어 등급, 송곳니.』

지하철에 앉아 노트에 이것저것 써 보고 있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와 향하는 곳은 양주였다. 살면서 이쪽엔 처음 와 봤는데, 지하철로도 2시간 가까이 걸리는 먼 곳이었다.

덕정역에서 내려 버스를 탔다.

버스로도 또 한참을 달려야 하는 외진 곳이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나는 탄성을 질렀다.

"와아…."

사설 양궁장이라기에 어느 정도 규모는 예상하고 왔는데도 저기 보이는 산 하나가 통째로 양궁장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국궁과 양궁이라….'

두 가지 활을 쏘는 연습장이었다.

국궁은 조선 시대 이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던 대표적인 활이었다. 양궁보다 훨씬 멀리 날아가고 화살도 가벼운데, 그만큼 바람을 심하게 타는 화살이었다. 그에 비해 양궁은 단거리 표적에 강했다.

아침인데도 사람이 많다.

"혼자세요?"

"네, 이 할인권 쓸 수 있는 거죠?"

"그럼요! 필요한 장비도 대여할 수 있으니까 모르는 게 있으면 직원을 찾아 주세요."

"감사합니다."

안으로 들어가자 저쪽에 수많은 과녁이 보였다. 거리별로 25미터부터 500미터 이상까지 있었다.

'국궁.'

이제까지 나는 활을 근거리 무기처럼 써 왔다. 내가 서툴러서 그렇지 활은 본래 아주 먼 곳에서 날릴 수 있는 무기다.

'백작을 상대하려면 더 멀리서 쏠 수 있어야 해.'

어제처럼 저격할 수만 있다면 나를 위험에 노출할 이유가 없었다. 반드시 근거리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얼마든지 커스컴할 수 있으니까.'

여태 양궁은 이골이 날 정도로 쏴 봤다.

'뭐든 배우면 쓸모가 있을 거야.'

그래서 오늘은 새로운 도전을 목표로 이곳에 왔다.

나는 장비 대여소로 갔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네요? 필요하신 게 있나요?"

"네, 국궁을 쏴 보고 싶어서요."

"처음이에요?"

"양궁만 해 봤어요."

"아, 그러셨구나. 잠시만요."

30대 중반의 여자는 활과 화살을 챙겨서 다시 왔다.

"초심자용 국궁인데, 화살은 이만큼이면 되겠죠?"

"화살이 되게 얇네요?"

"네, 맞아요. 하지만 우습게 보다간 큰일 나요. 이렇게 작아도 아주 멀리까지 날아가니까. 왼쪽으로 가시면 선생님 계세요. 그분께 간단한 지도 받으시고 쏘시면 돼요."

화살 50발이 작은 통 하나에 담겨 있었다.

'이거라면 다른 건물 옥상에서 노릴 수도 있을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선생님을 찾았다.

"2달이요?"

내 양궁 경험을 듣곤 그가 코웃음을 쳤다.

"하하! 그냥 양궁 쓰는 게 더 나을 텐데요? 국궁이 훨씬 더 어렵거든요. 이놈은 과녁하고 싸우는 게 아니라 바람과 전쟁하는 물건이에요."

바람…. 그건 무시할 수 있으니 어떻게 되지 않을까?

"도전해 볼게요. 알려 주세요."

"알았어요. 하고 싶으면 해야죠. 제가 시범을 보여 줄게요. 양궁은 이렇게 들고 턱에 시위를 붙이잖아요."

"네."

"하지만 국궁은 이렇게 좀 더 가슴 쪽으로 든다고 느끼면서 화살촉으로 구름을 뚫는다고 봐야 해요."

"아…."

"일반인들은 군대 다녀온 습관 때문에 영점 잡는다고 하는데, 사실 그건 맞는 말이 아니고 감을 잡아야 한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에요. 일단 쏴 봐야 어디까지 날아갈지 알겠죠?"

피잉.

그의 화살이 날았다.

그러더니 50미터를 날아서 파란색 부분에 맞았다.

과녁은 중앙에 노란색이, 그 밖으론 파란색이 있었고 테두리엔 하얗게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게다가 양궁은 조준경을 붙이지만, 국궁은 안 그래요. 바람 조금만 불어도 쓸모가 없어지거든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에게 활을 받아들었다.

"이거 만만해 보여도 50발 쏘고 나면 팔에 근육통 올 거예요. 멀리 쏘려면 25미터 양궁보다도 힘이 더 들어가니까."

나는 시위에 붙은 플라스틱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이건 뭐예요?"

"초심자들이 쉽게 하라고 붙여 둔 클립이에요. 그 부분 잡고 쏘면 돼요. 화살도 이 앞 구멍에 넣으면 옆으로 튈 일 없어요."

"아…."

화살이 활대에 딱 붙지 않으면 제대로 날아가기 어렵다. 그런데 이 작은 도구들은 그런 것들을 도와준다.

'내가 너무 막 쏘고 있었네. 처음부터 이런 게 있었다면 쉬웠을 건데.'

화살을 활대 구멍에 넣고 시위에 얹으면서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이제 이런 게 필요 없을 정도로 단련되었지만 있어서 나쁠 것도 없다.

'멀다.'

옆에서 볼 때와 활을 들고 섰을 때는 50미터 밖 과녁이 체감상 달랐다.

'일단 쏴 보고.'

투욱.

시위를 놓자 화살이 날았다. 그러더니 한참 앞에서 바닥으로 처박혔다.

"구름을 뚫는 느낌이라고 했죠? 포물선을 그리면서 떨어지도록 하는 거예요. 양궁 때문에 그냥 힘으로 하는 습관이 잘못 든 것 같은데, 다시 해 보세요."

그는 팔짱을 낀 채 웃었다. 초보니까 실수하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아, 이건 중력과의 싸움인데?'

내겐 '바람 무시' 스킬이 있었다. 태풍이 불든 비바람이 몰아치든 상관없다는 것이다.

'어디까지 올라갔다가 어디서부터 화살이 떨어지는지부터 알아야겠어.'

나는 그렇게 50발을 쏘면서 감을 익혀 갔다.

6시간 후.

-하? 아직도 쏘고 있네?

-그, 근데 쟤 초보라고 하지 않았어? 500미터 과녁에 대고 쏘는데?

-에이. 잘못 봤겠지. 저게 어떻게 초보야? 곧잘 맞히고 있잖아.

티잉!

화살이 날았다.

【바람을 무시합니다.】

【명중률이 증가했습니다.】

상승하던 화살은 이래로 내려가면서 과녁을 찾았다. 그리곤 파란색 부분에 콱 박혔다.

'됐어. 감 잡았다.'

나는 빠르게 화살 하나를 더 꺼냈다. 밥도 안 먹고 내리 6시간을 쐈다. 처음엔 과녁에 도달하지도 않았지만 이제 요령을 찾았다.

'근본적으론 양궁과 비슷해. 힘과 중력의 차이야.'

조만간 재능마켓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연습을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벌써 마지막이네.'

화살이 다 떨어졌다. 50발 더 할까 하다가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웅성웅성.

어느덧 사람들이 내 근처로 모여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활을 들었다.

그리곤 호흡을 멈추고 조준했다.

이때 바람이 불어왔다.

후우우우우우웅웅!

실바람이 아니라 산 전체의 나뭇잎들이 흔들릴 만큼 강한 바람이었다.

뭐, 내겐 상관없었다.

피잉-!

-아앗! 지금 쏘면 어떻게 해!

-바람 불잖아!

구경꾼들이 안타까움에 소리칠 때, 나는 활을 내렸다. 그리곤 돌아섰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퍼억-!

500미터를 날아간 화살이 과녁 한가운데에 정확히 들어가서 박혔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오늘 잘 배웠습니다."

아까 나를 가르쳐 주던 선생님이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방금 저, 저거 어떻게 한 거예요? 이 바람에 맞을 게 아닌데?"

나는 그냥 웃었다. 활과 활 통을 돌려주면서 머릴 꾸벅 숙였다. 쉬지도 않고 6시간을 쏴 댔으니 나를 괴물처럼 보는 건 당연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바람'이었겠지만 그걸 설명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재밌었어.'

재능마켓에 처박혀서 활을 쏘는 것도 연습은 되지만 이렇게 탁 트인 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처음 활을 쏴 봤다. 이것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다시 올 것 같진 않다. 이미 오늘 하루에 많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집으로 가지 않고 강남역으로 향했다.

【재능마켓에 입장하셨습니다.】

유리 벽으로 곧장 가서 찾아봤다.

'있다!'

오늘 활을 쏘는 내내 생각했던 것.

【용의 수염으로 만든 시위(레어): 강력하고 질겨서 절대 끊어지지 않지만 그만큼 당기는 데 힘이 많이 든다. 초보에겐 절대 권하지 않는 시위. 하지만 잘 다룰 수 있다면 매우 위력적인 무기가 탄생할지도? 가격: 30,000p.】

'이거면 되는 거야. 국궁이든 양궁이든 중요한 건 내가 멀리 쏘려면 내 힘을 온전하게 받을 수 있는 시위가 필요해.'

무려 힘+3을 보유하고 있는 나다. 하지만 지금 양궁으로 아주 멀리 쏠 수 없는 것은 시위가 힘을 다 받아 내지 못해서다.

탄성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보통 사람은 당길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시위가 필요했다.

'역시 비싸네.'

활 전체도 아니고 줄만 3만이라니. 그래도 목표가 생겼으니까 포인트 열심히 벌어서 더 강한 장비를 만들자.

오피스텔에서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도화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알바 중 아니에요?"

-맞아. 근데 네게 알려 줘야 할 것 같아서 전화했어!

"뭔데요?"

-오늘 아침부터 피비린내가 사방으로 퍼지고 있어! 이 근처에서도 나고 있다고!

"강남에요?"

-응! 지금은 간 것 같은데, 분명 왔었어! 머리 아플 정도로 냄새가 나!

백작이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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