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88화 (88/277)

#088화

【메인 미션: 하층민을 발견하라.】

【서브 미션: 방어력 15를 갖춰라.】

도화지의 설명을 들은 나는 재능마켓이 사람마다 다른 미션과 보상을 준다는 걸 깨달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전화론 그런데 내일 만날래?

마침 주말이었다.

"알겠어요. 아침 8시 어때요?"

-좋아, 강남역 5번 출구 앞에서 봐!

700시간을 버텨 낸 도화지가 대견하기도 하고, 앞으로가 걱정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하층민 발견' 미션은 희소식이었다.

'방어력 15는 당장 만들 순 없을 것 같고.'

매력+5가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봤다. 그런데 도화지의 방어력은 무려 11이나 된다. 그걸 15까지 올리는 건 다른 아이템을 더 얻거나 스탯을 더 모아야 한다는 건데, 하루아침에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었다.

끼이이익.

문이 열리고 밖에서 놀던 범이가 머릴 밀며 들어왔다.

규웃?

내게 뛰어오르는 범이를 안아 주면서 나는 깊은 사색에 잠겼다.

다음 날 아침.

이제 내 사전에 늦잠이란 없었다. 오전 6시에 일어나서 샤워하고 공부한다. 식당 일이 바빠져서 어머니도 새벽같이 시장으로 나가셨다. 점심 장사 전에 반찬거리나 재료를 손질해 둬야 하고, 고기도 양념에 재워 놔야 해서 부지런은 필수였다.

약속 시간이 가까워져 오자 나는 손에 책을 들고 지하철을 탔다.

힐끔, 힐끔.

주말이라 예쁘게 차려입은 여자들이 내게 시선을 보냈다.

-쟤 혹시 걔 아니야?

-너도 그렇게 느꼈지? 박채린이랑 하던 그 예능? 맞지?

-실물이 훨씬 낫다!

-잘생겼어! 키도 크고!

모자라도 쓰고 다녀야 하나….

'매력을 지우는 방법이라도 찾아야 하나.'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면서 강남역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내 매력 따윈 아무것도 아니란 걸 깨달았다.

바글바글.

남자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척, 교차로를 건너가려는 척, 핸드폰을 보는 척하면서 한곳에 모여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은 모조리 한 여자를 훔쳐보고 있었다.

"민준아!"

도화지였다.

그녀가 달려와서 내 팔을 잡았다.

-쳇.

-남친인가?

-부럽다.

남자들의 시기 어린 시선을 받으면서 나는 도화지를 이끌고 급히 자릴 떴다.

"그 매니큐, 안 지워져요?"

"왜 지워야 하는데?"

"너무 눈에 띄잖아요."

"뭐 어때. 예쁘기만 한걸."

빨간 손톱을 보며 도화지는 흐뭇하게 웃었다. 그런 그녀를 끌고 가까운 커피숍으로 갔다. 얘기만 하는 데 귀한 체류 시간을 낭비할 필욘 없었다.

"나는 딸셰."

"그게 뭔데요."

"딸기셰이크잖아! 넌 그것도 모르냐?"

"…."

난 처음 듣는데?

"아이스아메리카노랑 딸기셰이크 주세요."

음료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이따 밥은 내가 살게. 히이."

"말씀해 보세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 그게 말이지."

도화지는 '코어' 운동을 했다고 했다. 괴물처럼 따라오는 공들이 계속 그녀를 때렸다고 하는데, 머릿속으론 연상이 힘들었다.

"그래서 배로 빡! 빡! 했어. 그랬더니 요령이 생기더라고."

도화지의 설명이 난해해서 더 그랬다. 마침 음료가 나와 그걸 가져와서 앉았다.

쭈욱.

아이스아메리카노. 배달할 땐 참 많이 마셨는데, 오랜만인 것 같다.

"헐, 너 그거 아아임?"

"…."

저거 외국어는 아니겠지?

"시럽 탔어?"

"아뇨."

"으악, 그걸 그냥 먹는다고? 맛있어? 그게?"

"커피가 그냥 커피 맛이죠."

"나도 먹어 보자."

그녀가 내 잔을 낚아채서 빨대를 쪼옥 빨았다.

…내가 먹던 거잖아.

"우엑, 이게 무슨…. 독극물 맛이냐. 이걸 왜 사 먹어!"

"적응하면 괜찮아요."

"그러니까 왜 적응까지 해 가면서 마셔야 하는데!"

"전 좋으니까 이리 주세요."

그녀도 영락없는 고등학생이었다.

"냄새는요? 어때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만나자고 했어. 이걸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는데, 하여튼 가 보면 알 것 같거든? 근데 혼자 가긴 무서워서."

"방향은 알겠어요?"

"응. 근데 전철 타면 냄새가 없어져서 걸어야 할 것 같아."

"오토바이 있잖아요."

"헉…. 맞다, 그랬지…. 그거 여기서도 쓸 수 있는 거였어?"

"당연하죠."

하지만 대놓고 타고 다니려면 헬멧이 필요할 것 같긴 하다.

"매장에 들렀다가 가요."

이면 도로에 오토바이 용품점이 있다는 걸 봐 뒀었다.

헬멧 2개를 사서 머리에 쓰고 오토바이를 가장한 범이를 탔다.

"근데 너 면허는?"

"이거 표범인데요. 표범 면허도 있어요?"

"그러네…."

그게 아니어도 배달로 다져진 몸이시다.

"천천히 갈 테니까 냄새 잘 맡아야 해요. 방향 바뀌면 바로 알려 주고요."

"으응."

"꽉 잡아요."

그녀의 팔이 내 허리를 감아 오자 나는 오토바이를 몰았다.

시원한 바람이 지난다.

"이쪽, 저쪽, 여기서 오른쪽."

갓길로 천천히 몰며 가면서 2시간쯤 흘렀다. 워낙 속도도 느리고 도화지가 몇 번 헷갈리는 통에 같은 자릴 빙빙 맴돌기도 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

반포 굴다리를 지나 오른쪽으론 공원이 잘 발달되어 있고 매점도 있었지만, 왼쪽으로 갈수록 인적이 드물다.

우린 오토바이에서 내려 왼쪽으로 계속 걸어갔다.

"더 진해졌어."

"으음…."

아무리 인적이 드물다지만 이렇게 환한 대낮에 전투를 벌일 수 있을까?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난감하네.'

나는 도화지에게 말했다.

"뭐가 있든 오늘은 정찰만 하는 거예요. 놀라거나 당황하지 말고요. 저쪽이 눈치챌 수도 있어요."

"그냥 때려잡으면 되잖아. 네가 그 활로 죽여 버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거든요?"

경찰이 재능마켓 빌딩까지 왔던 걸 생각하면 더 조심해야만 했다.

"그럼 범이보고 물라고 해.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니야? 누가 봐도… 개가 물었다고 생각하겠지."

오, 그건 좀 기발한데?

"여하튼 상황에 맞게 대응할 테니까 누나는 무조건 조심하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응!"

도화지는 물가로 향했다.

"그쪽이에요?"

"어, 저 앞인 거 같은데?"

개구리 같은 게 더 있는 건가? 주변을 보았다. 저 멀리 낚시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사람으로 위장해 있을 수도 있어.'

나는 도화지에게 뒤로 물러서라고 말한 뒤 앞장섰다. 갈대들이 높이 자라 있었다.

누가 보면 불량 고등학생 연인이 한적한 곳을 찾아 돌아다니는 거로 보이겠지만 나는 극도로 긴장을 끌어올린 상태였다. 여차하면 활을 소환해 바로 쏘는 데 2초면 될 거다.

"발밑 조심하고요."

개구리, 물고기, 쥐, 지렁이까지 본 마당에 무엇이 우릴 기다리고 있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나는 천천히 걸어갔다.

"저 앞이야! 바로 앞! 여기서 달콤한 냄새랑 구린내가 같이 나!"

"알겠어요. 거기 계세요."

나는 갈대를 해치며 성큼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보았다.

'어? 이건?'

【균열을 발견했습니다.】

【수호자의 권능으로 균열을 닫으시겠습니까?】

오키나와 우물에서 봤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

.

.

"서초서 강력반에서 나왔습니다."

영배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우린 잘못한 일이 없는데요."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영배는 두 사람을 노려보다가 말했다.

"나가서 말씀하시죠. 보는 눈이 많습니다."

"보는 눈이 많으면 안 될 일이라도 있습니까?"

"아시고 오신 거 아닙니까. 경찰 싫어하는 사람 많아요. 아, 저는 좋아합니다. 사회와 사람들을 지켜 주시는 훌륭한 일을 하시는 분들이니까요."

영배가 옆 건물 커피숍으로 그들을 이끌었다.

'왜 온 거지?'

영배는 고개를 갸웃했다.

4년간 이 세계에 적응했다. 맨주먹으론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공권력은 그로서도 무척 조심해야 했는데, 한국은 치안이 매우 좋았고 북한 때문에 섬이나 마찬가지여서 도망자가 살기엔 좋지 않았다. 결국 도망칠 일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세 사람이 앉았다.

영배는 팀장과 강나은 경위를 보면서 넉살 좋게 웃었다.

"강남엔 간 적도 없는데요."

일단 떠봤다.

"압니다. 강서 지역에서 활동하는 조직이란 것도."

"하하! 조직이라니요?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습니다!"

앞으로 3년이면 된다. 그러면 전국 모든 조직을 흡수하고 대표님을 더 밝은 곳으로 내보낼 수 있었다. 그게 영배의 사명이다. 대표님께서 대한민국을 접수하고 나아가 세계 최고가 되는 것! 그 첫 단추가 지하 세계 제패였다.

"오늘은 그 일 때문에 온 건 아닙니다. 혹시 이 여자 아십니까?"

팀장이 김유선의 사진을 내밀며 영배의 표정을 예의주시했다. 강나은도 영배의 표정이 바뀌는지 확인하려고 뚫어지게 노려봤다.

"누굽니까? 이 여잔?"

영배는 진짜 몰랐다.

"…."

팀장이 사진 세 장을 더 꺼냈다. 김유선과 연관된 세 명의 실종자였다.

"모른다니까요? 이 사람들이 왜요? 우리와 관련됐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영배의 말에 팀장은 사진들을 회수하면서 옆을 봤다. 강나은 경위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술을 열었다.

"무작정 협조해 달라는 건 아니에요. 우리는 정보가 필요하고, 우리 역시 그쪽에 드릴 수 있는 게 있을지 알아보고 있어요."

"저희는 경찰에 도움받을 일 없습니다. 우리 직원들이 거칠게 살아온 녀석들이 많아서 경찰이라면 이를 갈 거든요."

"작년, 형진해운과의 입찰 건."

영배가 흠칫했다.

"형진해운 대표가 갑자기 사라지면서 그쪽 회사에서 입찰에 성공하셨죠? 그분은 아직도 실종 상태고요."

"우연입니다. 이미 경찰 조사도 받았고, 무혐의 결론 났습니다."

"그래요. 원래 다 그렇게 돌아가는 거잖아요?"

"생사람 잡지 마세요. 이런 식이면 저도 더 협조할 수 없습니다."

강나은이 싱긋 웃었다.

"싸우자고 온 거 아니에요. 이미 말했다시피 우린 정보를 공유하고 싶은 것뿐이거든요."

"저는 모른다니까요?"

영배가 완강하게 거부하자 강나은이 말했다.

"요즘 한강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는 거 아시나요?"

움찔!

'반응이 있어.'

'뭔가 아는 거야.'

이제까지와 다른 표정에 두 사람은 생각했다. 영배가 아차 한 표정으로 말했다.

"맨날 술 취한 애들이 싸움박질하고 그러는 곳 아닙니까. 우리는 강남도 그렇고, 한강도 간 적이 없습니다. 애들 노는 덴 관심도 없고요."

"그 애들이 그쪽 회사 주 고객들 아닌가요?"

"무슨 말씀하시는 건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어릴수록 충동적이고 약 같은 거에 자제력을 잃으니까요."

"하…. 지금 저희가 약에라도 손댔다 이겁니까?"

영배가 기막히다는 듯 분노를 보였다.

"내가 주먹질은 해도 약은 안 하는 놈입니다. 쪽팔리게… 진짜…. 지금 실수하시는 겁니다."

그 진지한 눈빛에 강나은이 한발 물러섰다.

'약은 아닌가? 하지만 한강엔 반응했었어. 그건 확실해!'

그러면서 말했다.

"저도 그쪽 다시 보고 싶지 않거든요? 우리가 필요한 정보를 찾으면 평생 다시 만날 일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그 정보를 왜 제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누가 무슨 말이라도 한 겁니까? 그 새끼가 누군데요?"

폭발 직전의 영배를 보면서 강나은은 말했다.

"한강에서…."

그 단어에 영배의 표정이 또 싸늘하게 식었다.

"있어선 안 될 일들이 벌어졌고…."

영배의 눈이 점점 더 무섭게 변했다.

"사람이 다쳤어요. 죽은 사람도 있을지 모르고요."

콰직!

영배의 손에 잡힌 유리잔이 산산조각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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