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7화
어머니 가게로 가는 길.
'괜찮겠지?'
재능마켓을 만났을 때의 그 당혹감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다. 현실에서 비현실로 진입하는데, 시키는 걸 안 할 수도 없고, 한다고 해도 그것들이 만만치 않은 도전들이라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들의 연속.
이번 백작 미션도 마찬가지였다. 무려 레어 등급의 미션이자 지금까지 해 온 것 중에서 가장 높은 난이도. 그나마 도화지가 '추적' 스킬을 얻은 덕분에 그걸 개발하면 백작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언제 될진 모르겠다.
"엄마? 왜 혼자야?"
가게로 들어갔다.
오늘도 어김없이 밖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힘들다고 그만뒀지 뭐니."
"하… 그렇다고 혼자 하면 어떡해!"
설거짓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주방으로 들어가면서 팔을 걷어붙이는데, 손님들이 밥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든든한 우리 아들이 왔잖아! 호호호!"
"어휴."
나는 한숨을 쉬며 식기를 씻어 냈다.
【광택이 깃들었습니다.】
그릇이 내 손을 거치면 반짝반짝 윤이 난다.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불판을 닦으며 늘어난 실력은 내가 봐도 예술이었다. 뿐인가? 스킬 덕분에 체력도 소모하지 않았다. 이런 건 온종일 해도 내게 무리가 없다는 거다. 그렇다고 계속 여기에만 매달려 있을 순 없었다. 요리하느라, 서빙하느라 바쁜 어머니를 도와야 했다.
'으으…. 바쁘다! 바빠!'
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가는데, 2번 테이블에 앉아 있던 중년인이 손을 들었다.
"네! 주문하시겠어요?"
"여기… 공깃밥 하나 더…."
잘 차려입은 양복의 40대 후반 사내는 심각한 얼굴로 된장찌개와 제육볶음 그리고 밥을 보고 있었다. 이미 한 그릇을 비운 뒤 두 그릇째가 나오자 뚜껑을 열고 흐으으으읍! 냄새를 맡았다.
숟가락을 들고 경건할 정도로 진지한 표정으로 밥을 떠서 입에 넣는 그를 보며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가 바바바박! 그릇을 비우더니 벌떡 일어났다.
"지저스!"
그의 외침에 밥을 먹던 손님들이 깜짝 놀랐다.
-깜짝이야.
-저럴 만도 하지.
-조용히 밥이나 먹읍시다!
나도 어이없이 보다가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계산해 드릴까요?"
"아, 고맙습니다. 그런데 사장님과 이야기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의 정중한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무슨 일이신데요?"
그가 카드와 함께 명함을 내밀었다.
'카밀라 왕 총괄 이든.'
카밀라 왕이 뭔진 모르겠지만 명함을 내미는 그의 얼굴엔 자부심이 가득했다.
"사장님께 꼭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한가할 때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아, 그러면 마감 때 다시 오겠습니다."
그가 나가자 나는 카운터에 명함을 내려놓았다. 잘 먹었다면서 명함을 주고 가는 사람이 꽤 있어서 그러려니 했다.
밤 10시.
식당이 끝났다.
나는 어머니 팔을 주무르며 말했다.
"빨리 사람 구해야겠어. 이렇겐 힘들어서 못 해."
"그러게. 갈수록 손님이 많아져서 큰일이네. 호호호!"
SNS와 유튜브에 우리 식당이 오르내리면서 젊은 손님들까지 대거 몰려오기 시작했다. 재료 준비를 하면서 좀 쉬어 가려면 브레이크 타임이 필수였지만, 어머니는 마냥 행복하다며 아침잠을 줄이는 걸 선택했다.
이때, 문이 열렸다.
영업이 끝났지만 그를 보자마자 알았다.
"실례합니다. 약속대로 다시 왔습니다."
약속을 했던가….
"아, 네. 앉으세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어머니께 말했다.
"아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 해서 끝나고 오시라고 했거든."
"네, 안녕하세요. 물이라도 드릴까요?"
"아닙니다! 하하! 생각 같아선 한 끼 더 먹고 싶지만, 민폐를 끼칠 순 없죠!"
저게 밥 달라는 소리인가? 아니면 마다하는 건가?
"저는 카밀라 왕 총괄을 맡고 있습니다. 이든이라고 합니다."
"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어요?"
"제가 이 식당 밥을 먹어 본 뒤 충격을 받았습니다. 대한민국을 넘어서 세계의 모든 맛집을 다 가 보았다고 자부했고 그것을 토대로 우리 카밀라 왕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혹시 어디 쌀을 쓰시는지 알 수 있습니까? 아! 제가 한번 맞혀 보겠습니다! 이천입니까? 아니면 일본산을 직수입하십니까?"
그가 매우 조심스럽게 물었다. 쌀 하나도 영업 비밀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서다. 하지만 어머니는 별생각이 없으셨다.
"호호호! 그냥 김포 쌀 써요, 김포 쌀."
"아, 김포 쌀이요. 메모해도 되겠습니까? 이게 습관이라서요."
"네, 물론이죠. 그런데 요리 배우러 오신 거예요?"
"하하하! 저, 카밀라 왕의 이든입니다!"
그가 가슴을 탕탕 치다가 또 물어봤다.
"물은… 어디 걸 쓰십니까? 에비앙이라도 쓰시는 겁니까?"
"수돗물 쓰는데요."
"그럴 리가!"
그가 충격을 받은 듯 입을 떡 벌렸다. 김포 쌀에 수돗물로 어떻게 이런 밥맛이 난단 말인가!
"…제가 오늘 지켜본 바론 서울에서, 아니 대한민국에서 이 집 밥맛이 단연코 최고였습니다. 손님들도 그걸 아니까 긴 시간 웨이팅을 하는 것이겠지요. 맛있는 밥 지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더 고맙죠."
나는 주방에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든이 신중한 목소리로 어머니께 물었다.
"혹시 사장님 밥을 저의 카밀라 왕에 납품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네에…?"
"제가 분석해 본 바론 찌개나 다른 요리들은 그저 그랬지만, 밥은 세계 최고였습니다. 꼭 우리 카밀라 왕 고객들에게도 선보이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저희는 한식이 주류가 아니라서 많은 양도 필요 없습니다. 값은 10배라도 쳐 드릴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을 주방에서 듣던 나는 묘하게 울컥했다.
'뭐? 그저 그래?'
나는 쟁반에 주섬주섬 팔고 남은 반찬들을 덜었다. 제육도 조금 볶았고 된장찌개도 끓였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밥통의 밥을 싹싹 긁어서 반 공기를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맛 좋은 버섯 드링크: 어떤 음식에 첨가해도 홀딱 반할 맛! 조미료로 딱 좋아! 고기에 뿌려도 딱 좋아!】를 몇 방울씩 첨가했다. 나도 써 본 적 없는 드링크지만, 내가 직접 만든 물건이자 버섯의 추억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제품이었다.
'이것도 그저 그런지 봐라.'
카밀라 왕이고 뭐고, 그 자존심이 어디까지 지켜지나 확인해 보자고.
"좀 드세요."
"아…! 이러실 필요까진 없었는데! 하지만 이왕 준비해 주셨으니 감사히 먹겠습니다!"
쟁반째 식탁에 내려놓고 돌아섰다.
역시 이번에도 그는 밥부터 냄새를 맡았다. 밥양이 충분하지 않자 아쉬웠는지 입맛을 다시다가 반찬으로 젓가락을 움직였다. 밥은 아껴 먹으려는 속셈인 것 같다.
"저희 카밀라 왕에 밥만 납품해 주신다면 제가…."
그의 젓가락이 김치를 집었다. 그래 봐야 3조각밖에 없다. 그중 하나가 그의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
"오! 지저스! 이게 뭐야!"
그가 벌떡 일어나더니 크게 소리 질렀다.
"왜, 왜요?"
어머니가 놀라서 물었는데, 그는 바르르르 몸을 떨더니 김치 접시를 두 손으로 들고 얼굴에 바짝 가져와서 보며 말했다.
"어떻게 이런 맛이? 대체 이건 어디 김치입니까? 최소 100가지 향기와 바삭한 새우튀김에서나 맛볼 수 있는 미친 듯한 식감! 족히 1,000년의 세월이 숙성시킨 깊은 맛이 담겨 있지 않습니까?"
"그냥 제가 시장에서 배추 사다가 담근 거라서… 아, 고춧가루는 중국산 썼어요. 국산이 너무 비싸서."
"중국산 고춧가루…. 그런데 어떻게 여기서 트러플 맛이 나는 겁니까?"
"그런 거 안 넣었었는데…."
버섯의 왕이라는 송로 버섯의 향기까지 김치에서 맡은 이든은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다리를 덜덜 떨어 대더니 남은 김치를 모두 밥에 올려서 숟가락으로 떴다.
"죄송합니다. 일단 먹겠습니다."
터업! 입으로 넣은 밥과 김치는 서로 어우러지면서 그의 머릿속에 폭죽을 터뜨렸다.
주르르륵.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앗? 왜 우세요? 여, 여기 휴지요."
"아닙니다, 사장님. 닦지 않고 싶습니다. 이 숭고한 눈물은 그간 김치를 무시했던 저 자신에 대한 반성입니다. 이런 조화라니…. 그런데 아까는 분명 이런 맛이 아니었는…."
그가 문득 숟가락을 찌개에 담갔다. 그러더니 중독자처럼 입에 넣었다.
"…."
"…."
또 작살을 맞은 사람처럼 부들부들 떨어댔다.
"세상에…. 맙소사…. 이 된장은…."
"그냥 된장인데요…. 기성품…."
그는 어머니를 잠시 바라보다가 말없이 모든 음식을 먹었다. 나는 그걸 지켜보며 깨달았다.
'드링크 효과 죽이네.'
한 병 다 부었다간 저 아저씨, 심장 마비로 죽었겠다.
"평범한 재료로 어떻게 이런 맛을 내신 겁니까."
그가 수저를 내려놓고 물었다.
"그냥 열심히 한 것밖엔…."
"분명히 아까는 밥만 맛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제 식견이 짧았습니다. 용서하십시오."
그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일어서서 만 원짜리 열 장을 식탁 위에 올렸다.
"됐어요. 어차피 팔다 남은 거 드린 건데요."
"팔다 남은 거… 크흐윽!"
그가 비틀거리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이 돈은 제 최소한의 수업료입니다. 솔직히 100만 원도 아깝지 않은 음식이었습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아까 제가 감히 무례하게 밥만 납품해 달라고 했던 일도 사과드립니다. 잊어 주십시오."
그가 허리 숙여 인사했다.
"또 뵙겠습니다."
그러더니 밖으로 나갔다.
어머니와 나는 멍하니 있다가 쿡쿡 웃었다.
"뭐니? 저 사람?"
"몰라."
나는 어머니께 드링크 병을 내밀었다.
"제육 양념할 때 이거 한 방울씩만 넣어. 김치 담글 때랑."
"이것도 강남 사모님 비법이니?"
"응. 귀한 거니까 아껴 써야 돼. 많이 넣을 필요 없어."
우리 어머니 식당인데, 밥만 맛있다는 얘긴 묘하게 자존심 상한다. 어차피 여기서 잘돼 봐야 받을 수 있는 손님은 한정적이니까 이왕이면 다 맛있게 하자.
'나도 이제 드링크를 직접 만들 수 있으니까.'
어머니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꼭 고맙다고 말씀드려. 가게만 안 바쁘면 가서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싶은데…."
"아니야. 내가 충분히 했어. 그리고…."
벽을 봤다.
"메뉴를 줄이는 게 좋지 않을까? 그냥 제육이랑 된장찌개만 해도 될 것 같은데. 그게 쉽잖아."
"그럴까?"
어차피 주력으로 팔리던 건 '밥'이었다. 하지만 이제 김치와 제육도 많은 이들이 찾게 될 것이다.
"정리하고 들어가자."
어머니가 주방으로 걸어갈 때 전화가 왔다.
'음? 도화지?'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급히 받았다.
-민준아아아아아아!
"네? 뭐예요? 이 시간에!"
-아니, 왜 전화를 안 받아! 얼마나 했는데!
"아, 미안해요. 어머니 가게가 너무 바빠서. 근데, 무슨 일이에요? 무슨 냄새 맡았어요?"
-아니! 내가 아까 필라테스를 했거든!
아, 시작됐구나.
그 필라테스가 뭔지 바로 직감했다.
"바로 했어요? 좀 물어보고 하지…."
-죽는 줄 알았잖아! 전화 받지도 않았으면서 뭘! 아니다. 내가 그냥 들어갔구나. 호호! 암튼, 진짜 힘들었는데, 해냈어! 참, 너 그 만두 먹어 봤어? 대박이더라!
그 집 만두가 일품이긴 하지.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보상으로 뭐 받았어요?"
-방어력!
그런 것도 있었나?
"휴, 어쨌든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처음엔 못 할 줄 알았는데, 하다 보니까 되더라고. 700시간이나 써 버렸지 뭐야! 호호호! 근데 민준아.
"네?"
-나 미션 받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