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86화 (86/277)

#086화

베이스캠프로 돌아오는 길에 우린 많은 얘기를 했다. 누군가와 의논할 수 있다는 것. 어찌 보면 내겐 너무도 어색한 일이었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나를 도와 적을 추적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높이 평가할 수 있었다.

【재능마켓에 입장하셨습니다.】

【10,000p를 획득했습니다.】

"와! 포인트 받았다! 이거로 아이템 살 수 있다는 거지?"

"그렇긴 한데, 누나는 일단 커스텀부터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도화지도 이제 위험에 노출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방어력이 빵빵하게 붙은 옷을 언제나 착용해야 생존 확률이 높아진다.

"알겠어. 그럼 나도 교복으로 바꿔야지!"

그 전에 확인할 게 있었다.

【보상을 수령하세요.】

벽장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도화지가 빼꼼히 내 뒤에서 벽장 안을 바라보았다.

"와! 예쁘다!"

반짝이는 돌들을 보면서 나는 이 돌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려 주었다.

【야광 버섯×5을 얻었습니다.】

【활력 버섯×15를 얻었습니다.】

【맛있는 버섯×15를 얻었습니다.】

버섯 군락지에 다녀와서인지 오늘 보상은 버섯 파티였다.

'더 많은 드링크를 만들 수 있겠어.'

드링크 하나가 매우 비싸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것도 꽤 훌륭한 보상이었다.

"우엑, 또 버섯이야!"

도화지는 질렸다는 듯 돌아서 유리 벽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더니 반색했다.

"우와! 이 머리띠 너무 예쁘다! 이 팔찌도! 귀걸이도! 목걸이도!"

성능을 보라고, 성능을!

호들갑을 떨어대는 그녀를 보다가 나는 말했다.

"커스텀이나 해요."

"알았어! 자, 됐지?"

교복으로 커스텀된 옷을 입고 빙글 도는 도화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직 매력+5를 유지하고 있어서 그런지 그녀는 누가 봐도 아름다웠다.

"됐으면 이제 가요."

"응? 어딜?"

"확인해 봐야죠."

그거 하려고 그 고생을 했던 거 아닌가.

"알았어. 기다려 봐."

교복을 주섬주섬 챙겨 현관으로 나오는 도화지는 아쉬운 듯 오피스텔을 힐끔 봤다.

"나, 자주 와도 돼?"

"그 마음 언제까지 가나 볼게요."

"그게 무슨 말인데?"

"곧 알게 될 거예요…."

곧 그녀에게도 재능마켓이 사악한 마수를 뻗칠 것이 분명했다.

'아니라면 좋겠지만….'

불길한 예상은 항상 빗나가는 법이 없다. 어쨌든 그건 나중 일이고, 지금은 그녀의 재능을 확인해야 했다.

오피스텔을 나와 거리에 섰다.

"어때요? 뭔가 느껴져요?"

기대감을 품고 그녀를 보았다.

하지만 도화지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으으. 뭐가 이래."

"왜요?"

"온갖 냄새투성이야. 근데 그게 어디서 나는 건지 잘 모르겠어. 다 뒤섞여서…. 어떤 냄새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고약하고."

쩝, 적응하려면 시간 좀 걸리겠네.

"움직이면서 익숙해져 보죠."

"그래, 일단 가자."

우리는 길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도 못해 도화지는 관자놀이가 욱신거리는지 멈춰 서서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서둘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야 해요. 재능마켓의 힘은 우리가 측정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라서요."

"알았어. 노력 중이야. 그런데… 민준아."

"네."

"여기에도 이렇게나 많은 괴물이 있는 거야?"

그 말에 내가 멈칫했다.

"얼마나 많은데요?"

"모르겠어. 근데 사방에서 냄새가 나. 저쪽에서도, 이쪽에서도."

"거리는 알겠어요?"

"아니. 그냥 냄새만…. 그 버섯들처럼."

우린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도화지는 강해지다가 다시 멀어지고 약해졌다가 진해지는 냄새를 맡으며 혼란스러워했는데, 오늘은 이만 철수해야 할 것 같다.

가는 길에 좀 더 확인할까 싶어 그녀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그녀의 집 앞이다.

"여기야. 이제 가."

"…혹시라도 뭔가 알아내면 바로 전화하세요. 아시겠죠?"

"으응."

그때 집 안쪽에서 누군가 밖으로 나왔다.

"어? 할머니! 왜 나와?"

"우리 강아지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지."

할머니는 도화지를 보자마자 꼬옥 안았다. 도화지도 익숙한 듯 그런 할머니를 마주 안았다.

"안녕하세요."

내가 꾸벅 머릴 숙이자 할머니가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우리 강아지 친구?"

내가 입을 열려고 했을 때, 도화지가 옆에서 장난스럽게 말했다.

"내 남자 친구야."

"…."

할머니가 그 말에 반색하며 나를 덥석 끌어안았다.

"우리 손녀, 잘 부탁해요."

"아, 예…."

얼결에 할머니에 품에 안긴 모양이 되었는데, 무언가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도화지가 왜 그렇게 스킨십이 쉬웠는지도 대충 짐작이 되었다. 나는 어머니와 언제 안아 보았던가? 내가 뭔가 씁쓸한 기분과 함께 머쓱해할 때, 도화지가 말했다.

"할머니, 먼저 들어가 있어. 금방 갈게."

"그래, 어여 들어와. 조심히 가고, 또 놀러 와요!"

할머니가 나를 보며 훌훌 웃곤 들어가자 도화지가 말했다.

"오늘 있었던 일, 나는 뭐가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거든. 근데 할머니 낫게 할 수 있는 약이 거기 있다면 나는 널 도울 거야."

도화지의 말에서 할머니에 대한 사랑이 철철 흘러넘쳤다. 솔직히 좀 까진 애인 줄만 알았는데, 생각해 보면 고깃집에서 알바를 하며 생활비를 돕는 소녀 가장이었다.

문득, 미안해진 나는 가방에서 드링크를 꺼냈다.

그걸 내밀자 도화지가 물었다.

"꿀물 아닌 것 같은데?"

"드려 보세요."

나도 할머니가 어떤 약을 써야 나을 수 있는지 모른다. 만약 그걸 발견한다면 의학계에 파격적인 충격을 주는 대단한 일이 되겠지.

"고마워…."

나는 그녀에게 다시 당부했다.

"100가지 냄새를 구별할 수 있는 것부터 해 보셔야 해요. 그 냄새들이 아마 각기 다른 적의 흔적들일 거예요."

"알았어."

"그리고 섣불리 나서지 말고요."

"알았다고!"

"그럼 갈게요."

내가 몸을 돌려 성큼 걸어가자 뒤에서 그녀가 큰 목소리로 불렀다.

"민준아!"

"네."

"정말 고마워! 진심이야!"

팔을 힘차게 흔드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픽 웃곤 왔던 길을 거슬렀다.

.

.

.

【재능마켓에 입장하세요.】

【필라테스를 할 수 있습니다.】

머엉.

'자다가 무슨 소릴 들은 것 같은데….'

아침에 일어난 도화지는 밤새 악몽을 꿨다. 수많은 버섯들에게 쫓겨 다니는 꿈이었는데,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꿈인데, 꿈이 아니었어.'

민준이와의 그 '비밀'은 현실이었다. 어째서 민준이가 다른 애들 앞에서도 그렇게 기죽지 않고 당당했는지, 왜 그렇게 강인했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

그녀는 곤히 잠든 할머니를 보다가 욕실로 들어가서 씻었다. 그리고 나왔을 때 할머니가 청소를 하는 걸 봤다.

"할머니? 허리 괜찮아?"

"응. 어제 그 약 먹고 푹 잤더니 아주 힘이 펄펄 나!"

꿀물로도 기력을 찾긴 했었지만, 오늘은 또 달랐다. 구부정하던 허리도 꼿꼿하고 주름진 얼굴에 생기가 한가득이었다.

할머니가 좋으면 그녀도 좋다.

"어서 옷 입고 나와. 할미가 밥해 줄게."

"으응!"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악몽으로 시작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건 경험이었다. 살면서 누가 그런 버섯들과 놀아 보겠는가?

'냄새가 나….'

밖으로 나온 그녀는 코를 킁킁거렸다. 아직 냄새로 거리가 얼마나 된다든지 이 냄새를 어떻게 따라가야 할지 같은 건 모르겠지만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민준이 말대로 익숙해져야 해.'

코 하나로 100가지 냄새를 맡는 느낌이 아니라 코가 온몸에 달려서 코 하나당 한 가지 냄새에 반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은 코가 6개쯤 반응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하나는 아주 강렬한 피 냄새다.

'지독해.'

어쩌면 냄새들 중에서 제일 진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도화지가 걸음을 멈추고 동쪽을 바라보았다.

'이것도 강해.'

달콤한 향기.

뭐에 막혀 있는지 아니면 거리가 먼진 몰라도 이 냄새 또한 다른 것들보다 존재감이 셌다.

그녀가 학교에 갔다.

-화지야, 안녕!

-와, 화지 오늘 예쁘다!

-머리 잘랐나?

-화장도 안 했는데? 뭐지? 너 왜 빛이 나는데! 꺄아! 너무 예쁘다!

그녀는 학교에 가서 깨달았다. 모든 아이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진들하고 사이가 틀어진 뒤론 잘 다가오지 않던 애들도 오늘은 우르르 몰려와 이것저것 물어봤다.

'기분 좋아.'

온 세상이 그녀를 사랑하는 것 같았다. 애들도 선생님들도 친절하게 웃어 주었다.

학교가 끝나자 그녀는 민준이한테 톡을 했다.

『오늘도 강남 와?』

『아니요. 어머니 가게로 곧장 가요.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시고요.』

『알겠어.』

그녀도 알바를 가야 했기에 고깃집으로 향하다가 멈춰 섰다.

'분명 재능마켓에 입장하라고 했었는데….'

잠결에 그런 소릴 들었었다.

-와, 쟤 누구야? 연예인인가?

-진짜 이쁘다!

-쩐다. 가서 번호 물어볼까?

거리의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보며 넋을 잃었다. 매력+5의 효과는 대단했는데 효과가 떨어지면 상당히 아쉬울 것 같았다.

'시간도 남았는데 잠깐 들렀다 갈까?'

오피스텔로 가며 깨달았다. 봉천동에 사는 민준이가 왜 강남까지 와서 알바를 했는지. 집과 학교는 멀어도 오피스텔이 가까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갔다. 아직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재능마켓이 마음 편히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서큐버스의 매니큐어 같은 게 몇 개 더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당황하고 힘들긴 했지만 민준이와의 모험을 더 하다 보면 매니큐어 같은 소중한 아이템을 잔뜩 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문을 여는 그녀의 손길에 망설임이 없었다.

【재능마켓에 입장하셨습니다.】

쿠웅!

닫히는 문을 뒤로하고 그녀가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오피스텔은 인적이 없어서 황량하기까지 했다. 그녀가 이끌리듯 유리 벽으로 걸어갔다. 두 손을 유리 벽에 대고 하나의 물건을 보며 침을 흘렸다.

【서큐버스의 머리띠(레어): 보석 장식이 매혹적인 예술품. 영구적으로 파괴되지 않으며 방어력과 매력을+2씩 올린다. 가격: 50,000p.】

"정말 예쁘다아아…."

멍하니 그걸 바라볼 때, 그녀의 머릿속에 메시지가 울렸다.

【추적자 미션을 수행하기 전에 필라테스를 할 수 있습니다. 필라테스 이용권을 지급합니다.】

"응? 필라테스? 저거?"

기구들을 보며 그녀가 눈을 깜빡거리자 메시지가 울렸다.

【두 가지 운동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볼 트레이닝 10,000회. 방어력+1.】

【밸런스 볼 오르내리기 10,000회. 순발력+1.】

민준이와 다르게 추적자인 그녀는 얻을 수 있는 스탯이 평소와 달랐다. 하지만 그녀는 알 리가 없었고,

"우움…. 하나를 골라야 하는 거야?"

이걸 선택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조차 몰랐다.

"쉬운 거 하고 싶은데, 뭘 하지?"

민준이었다면 방어력을 더 올릴지 부족한 순발력을 향상할지 고민했겠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음, 볼 트레이닝 해 볼게."

그냥 단순한 선택.

【볼 트레이닝을 선택하셨습니다. 미션을 완료하기 전까지 재능마켓에서 나가실 수 없습니다.】

【재능마켓 체류 시간 999시간 남았습니다.】

복서들이 복부 코어를 강화할 때 누워서 힘을 잔뜩 준 뒤 농구공을 떨어뜨리는 연습을 한다. 이 볼 트레이닝은 그것과 흡사한 코어 운동이자 맞는 연습이었다.

"어떻게 해?"

다음 어떤 상황이 다가올지도 모른 채 해맑게 웃는 그녀 앞에 토옹. 통. 통. 머리만 한 공이 사방에서 나타났다. 그것들은 살아 있는 것처럼 도화지를 향해 튀겨오다가 갑자기 빠른 속도로 그녀의 배를 향해 날아들었다.

"아악?"

공은 보기보다 딱딱했다.

그녀의 방어력을 뚫지는 못했지만, 공에 얻어맞는 게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복부 코어에 힘을 제대로 준 뒤 배로 공을 튕겨 내야 1회로 인정됩니다.】

"아파! 아프다고!"

날아오는 공을 보며 도화지가 본능적으로 고갤 숙였을 때 재능마켓이 다시 강조했다.

【필라테스 미션을 완수하기 전까지 재능마켓에서 나가실 수 없습니다.】

"…뭐어어?"

그녀의 얼굴이 사색이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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